▲ 금동지 전 경남대학교 교수 / 경남대 고운학 연구소 연구원
▲ 금동지 전 경남대학교 교수 / 경남대 고운학 연구소 연구원
며칠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구미술관을 들렀다. 이제 미술관은 벼르고 날을 잡는 곳이 아니라 가는 길에 혹은 오는 길에 들릴 수 있는 나의 쉼터가 되었다. 천원의 입장료도 참으로 감사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무료로 모든 전시를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더구나 도슨트의 설명까지 들을 수 있으니 횡재가 따로 없다. 15년 전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내가 겪었던 그 속상함을 생각하면.

나의 수업을 들었던 한 만학도가 자신의 후배 대학생들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간다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들을 따라나선 적이 있다. 열흘 정도의 여정이었고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비행기로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니스, 피렌체, 로마로 도시 간 이동을 위해 렌트카를 이용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가이드를 자처했던 그 만학도는 어린 대학생들의 여행 후 추가비용을 줄여주려고 한 도시에 도착하면 유류비 절약을 위해 가능한 대중교통과 걷기를 강요했다. 단체로 몰려다닌 프랑스에서의 시행착오 후 이탈리아에서는 아침만 같이하고 동반자와 행선지를 마음대로 정하는 자유일정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콜로세움과 몇몇 공통 관심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홀로 하는 뚜벅이 투어가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산마르코 광장에서 지체하느라 곤돌라도 못 타봤고 피렌체에서는 1시간 걸리는 트레비 분수까지 중간에 만난 베키오 다리를 건너보느라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그러니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낸 오후 시간은 참으로 야속할 만큼 짧은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 미술관에서 한국인이 몇몇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이야 미술관에서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예약해서 듣는 것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 당시 내 눈에는 참 대단한 부와 학구열을 가진 상류층 가족들로 보였다. 홀로 바쁘게 입장한 미술관에서 무엇보다 한국말이 반가웠고 모국어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멀리서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갈등,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타난 연인의 얼굴 설명이 여간 흥미롭지 않았다. 그들을 따라가면 속성과외를 받듯 미술사가 한 번에 이해될 것 같았다.

재미를 느낀 내가 너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는지 갑자기 그 가이드가 다가와서 지금 자신의 작품 설명은 돈을 받고 하는 것인데 옆에서 무료로 듣는 것은 그분들한테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무안하기도 하고 해외에서 만난 동포끼리 야속하기도 해서 “대체 얼마인데요?” 하고 돈을 확 던져주고 싶었지만 복잡해진 마음을 억누르고 그들 곁을 떠났다.

예전 미술 시간에 배운 온갖 지식과 상식을 동원하여 그림과 조각을 대하니 나만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도 생겼다. 눈과 머리에 많이 넣으려고 빨리 지나가다 마감 시간이 임박했을 때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를 한 번 더 보려고 되돌아 달리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후에도 나는 우피치 미술관을 꿈속에서 여러 차례 다녀왔다.

그리고 작년에 다시 한번 그 기회를 잡았을 때 나는 느긋해졌고 원하는 작품만 골라보는 여유도 생겼다. 원하기만 하면 작품도 화가도 그들의 일생도 터치 몇 번으로 나의 눈앞에 불러올 수 있고 수많은 인문학 강의나 미술사 강의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과 영감을 준다. 그러니 무료로 입장해서 도슨트의 설명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인간 중심의 세상인 이 지구가 원래는 ‘누구의 숲, 누구의 세계’였나를 질문하는 작품들을 보며 반성의 시간도 함께 선사한 미술관에 감사하며 제자와의 인연도 다시 이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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