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경제의 뇌관 또는 시한폭탄으로 지목되는 현안이 있다. 바로 가계 부채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안팎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정의 빚이 늘어나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의 생산도 위축되면서 우리 경제는 불황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를 보면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2년 963조 원이었던 가계 빚은 2015년에는 1천200조 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1천344조 원까지 불었다. 1년 사이에 무려 141조 원이 늘어나 역대 최대 규모다. 국민 한 사람당 2천613만 원의 빚을 안고 있다. 반면 지난해 가계 소득은 0.6% 정도 느는데 그쳤다. 빚은 두자릿수로 늘어나는데 소득은 거의 늘지 않으니 소비가 살아날 리 없다. 가계 빚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질이 악화하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특히 최근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자영업자나 저소득층이 종합금융회사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몰려 문제가 심각하다. 이 또한 한국은행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3년 상반기 이후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최근 대출금리 오름세가 본격화되면서 부실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저소득 다중채무자와 고령층, 차입규모가 과다한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도미노식’ 연쇄 부실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 모 은행의 가계대출부문 고정이하여신 금액은 지난해 3월 113억 원에서 12월 211억 원으로 1년이 채 안 돼 100억 원 가까이 불어났다. 고정이하여신이란 금융기관 대출금 중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을 의미한다.
제2금융권에서 가계대출 비중이 높은 대구지역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 금액도 크게 늘고 있다. 지역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을 반영하면 최근 6개월∼1년 사이 부실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300억∼4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지역 금융권의 추산이다. 이자가 은행보다 훨씬 높은 저축은행의 경우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만 해도 12% 정도였지만 2015년 38%로 늘더니 지난해에는 42%까지 늘었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가계 대출 기준을 강화하자 대출조건이 더 불리한 2금융권으로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금리 인상과 대출규제 강화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한계가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금융비용 부담 가중으로 올 들어 지역의 워크아웃 신청 건수는 2천 건이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나 증가했으며, 직장인과 30∼40대 젊은 층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4천130여 건에 이른다. 지역에서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 채무자의 대출규모는 18조 원이 넘는다. 앞으로 추가 금리 인상과 가계 금융비용 부담이 가중되면 워크아웃으로 내몰리는 한계가구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랜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의 부채까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가계부채와 함께 터질 경우 우리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득도 신용도 낮고, 재산도 많지 않은 생계형 자영업자나 비정규직이 많다. 가뜩이나 어려운 이들이 2금융권의 높은 금리에 시달린다면 사채에 손을 대거나 신용불량, 파산 같은 벼랑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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