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발행일 2017-07-25 19:16:1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돈이나 권력이나 권위가 아닌명예로운 의무·책임으로 살고지위·권한 겸손하게 사용하길”



추운 겨울밤이었다. 우리 일병과 이병 열댓 명은 부대 내무반 뒤쪽 공터에 일렬 횡대로 집합했다. 내무반 선임인 상병은 어둠과 침묵 속에 서 있는 우리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군인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신참인 이병에게 다가가 재차 물었다.

신참은 두려움 때문인지 악을 쓰듯이 큰 소리로 “옛, 군인은 짬밥을 먹고삽니다”라고 외쳤다.

“아니야. 군인은 군기를 먹고산다.”

선임 상병은 단호하게 말했다. 서울 유명 사립대 법대 재학 중에 군대를 왔다는 그는 사병식당에 들른 장군이 사병들에게 했다는 말을 마치 자신이 장군이 된 것처럼 무게를 잡고 전했다. 그의 훈계 후 우리는 폭력에 가까운 기합을 단체로 받아야 했다.

80년대의 엄혹한 전방 군부대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의무복무 기간을 군기로 견딘 것도 아니고 장교나 상급자들의 지휘로 견딘 것도 아니었다. 내게 마음속의 힘이 된 것은 나와 함께 그곳에 있던 몇 명의 선한 동료들의 존재였다. 그들 가운데 중학교 미술교사를 하다가 군에 온 친구가 있었다.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군대 생활을 그는 지나칠 정도로 성실하게 복무했다. 눈치 빠르거나 줄 잘 서거나 언제나 자신의 것을 챙기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을 앞지르려 하지도 않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군 생활 내내 힘든 일에 몸을 아끼지 않았고 손해를 보는 일도 늘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의 이름은 신동근이다. 현재 경주 계림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다.

민사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송대리인으로서 당사자와 함께 재판에 참석하게 됐다. 당사자와 같이 앉아 재판장으로부터 사건과 관련해 그간 진행된 내용들을 정리하는 말을 듣고 있을 때였다. 의뢰인이 갑자기 재판장을 향해 “판사님 그런 게 아닙니다. 공부를 더 하셔야겠습니다”라고 나섰다. 나는 ‘아니 저 판사님은 재판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 실력이 출중한 것으로 소문난 분인데 의뢰인 말에 화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 판사들은 권위가 손상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재판장은 “예, 제가 모르는 부분은 공부를 더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름을 밝히겠다. 원호신 부장판사이다. 나는 그를 통해 판사의 지위가 권위나 권력을 누리는 데 있지 않고 지식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 있는 점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이 일들을 떠올린 계기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공직자로서의 품성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는 데도 왜 그렇게까지 공직자가 되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공직은 봉사의 자리가 아니라 아직도 권력의 자리로 남아 있다. 독점적인 지위와 권한을 가지는데다가 경쟁자도 없다. 공직에 있을 때는 물론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사적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여지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 공직자로 임명된 사람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눈치가 빠르고 줄을 잘 서고 무엇보다 이미 지위와 권한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확실하게 챙기는 능력이 유난히 뛰어난 부류 같은 인상을 준다.

보은 인사 논란을 젖혀두더라도 그들이 기를 쓰고 공직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유가 국민에게 봉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더 크게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들이 살아온 경로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공직자로서 돈이나 권력이나 권위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의무와 책임으로서 살았으면 한다. 힘든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독점적인 지위와 권한으로 위세를 부릴 것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겸손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윤정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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