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간 이식 수술로 남겨진 구미 세 남매 4개월 만에 상봉

“오빠! 언제 우리 집에 갈수 있어?”막내 동생의 간절함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홀로 아이들을 돌보던 아빠가 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사회복지시설에 맡겨졌던 세 남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김철수(가명·14)군과 세살 터울의 남동생, 막내 여동생(8)의 세 남매는 지난해 12월 유일한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급성 간경화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 구미시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복지시설에 입소했다.간이식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진단에 따라 아버지가 장기간 입원을 해야 하는 탓에 세 남매를 돌볼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복지시설 입소로 숙식은 해결됐지만 세 아이 모두 학교를 다니고 있어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다.구미시 드림스타트는 행정복지센터와 교육청, 지역아동센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관련기관의 도움을 받아 긴급돌봄서비스와 물품지원 등에 나섰고, 위생관리와 건강·심리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는 등 세 남매를 적극적으로 보호했다.또 굿네이버스 경북지역본부를 통해 ‘세 아이의 집에 가는 날’이라는 모금캠페인을 진행해 1천300만 원의 병원비와 퇴원 후 5개월간의 생활비를 후원했다.세 남매는 물론 이들 남매를 도운 여러 기관의 애틋한 마음이 통했다.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먼저 퇴원하고 아이들도 지난 13일 시설에서 나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갔다. 4개월 만에 만난 아버지와 세 아이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아버지는 “많은 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을 다시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도와주신 모든 분과 구미시드림스타트에 정말 감사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구미시 박영희 아동보육과장은 “하늘 아래 모든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세 아이를 위해 도움을 준 관계기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한편 구미시는 취약계층 아동들의 건강한 성장발달을 지원하고 공평한 출발기회를 보장하고자 드림스타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를 통해 지역자원을 개발하고 가정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자원을 연계하며 신체·건강, 정서·행동, 인지·언어 영역별 서비스와 부모교육, 가족 간 갈등해결 등을 위한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한 가업을 잇는 2대 이색기술인들

지역 숙련기술인들의 축제인 대구시 기능경기대회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나갈 젊은 기술인들이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주인공은 목공 분야에 김수영(19) 선수, 화훼장식 분야 한승우(20) 선수다.김 선수의 아버지는 가구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목공의 일을 접할 기회가 잦았다. 그는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공방에서 나무를 톱질하고 조립하는 모습을 보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해 목공 분야에 빠져들었다.그는 “평소 사무직처럼 앉아서 일하는 것 보다 몸을 쓰는 일을 선호했다”며 “목공을 하면서 몸을 쓰고 톱질하는 그 촉감이 너무 좋아서 이쪽으로 점점 관심도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가정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재미를 느끼고 진로를 정한 그는 지난해 기능경기대회에서 이미 은상을 수상했고 이번 대회에서는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그는 “대회 진행 과정을 매일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고 불안감과 긴장감을 최대한 느끼지 않도록 진행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화훼장식 분야에 출전한 한 선수는 농구 선수에 대한 진로의 길을 걷던 가운데 부상으로 인해 그 꿈이 좌절됐다.그는 “꿈이 좌절됐을 때 아버지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고 처음부터 가업을 이을 생각은 없었다”며 “평소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조금씩 흥미가 생겨서 아버지 뒤를 잇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그는 “선수들의 작품을 보면 실력을 알 수 있는데 확실히 경험이 풍부한 참가자들이 많았다”며 “일부 과제 및 화훼에서 미흡한 부분들이 많아서 아쉬웠는데 이를 보완하며 더욱 실력증진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한 선수는 지난해 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동상을 받을 예정이다.한복 분야에 출전한 이필늠(72) 선수는 딸 백지아(44) 선수와 함께 출전하려 했으나 딸이 두통 때문에 기권해 아쉬움을 더했다.이 선수는 “가업을 잇기 위해 딸이 이번 대회 준비와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걱정과 긴장이 컸었는지 대회 첫날부터 두통을 호소했다”며 “혼자 대회에 출전해서 아쉽지만 내년으로 기약하겠다”고 아쉬워했다.박준혁 기자 parkjh@daegu.com

퇴계 이황에게 배우는 아버지의 참모습

장성애하브루타창의인성교육연구소장조선 중기의 사람이었던 퇴계 이황은 정치가로, 학자로, 교육자로서 현대적 의미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예문관 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의 요직을 제수받아 역임했기 때문이다. 또한 말년에는 16살의 어린 선조 임금을 위해 성학십도를 만들어 올리는 등 임금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로써 퇴계는 숙부 이우, 친형 온계 이해와 더불어 진성이씨 가문을 명문가로 만들었으며 성리학자이자, 교육자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퇴계의 가정사는 불우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는 전처 자식과 더불어 7남매를 건사해야 했다. 퇴계는 첫 번째 부인과는 둘째 아들을 낳자마자 사별했다.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재취부인과도 힘든 결혼생활을 했으며 출산 도중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장성한 둘째 아들도 결혼하자마자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증손자도 어릴 때 영양실조로 죽게 됐다. 중종반정 이후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퇴계의 형 온계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퇴계도 관직을 내려놓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이런 와중에 퇴계의 자녀 교육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퇴계가 남긴 편지인 가서(家書)에 잘 나타나 있다. 퇴계는 개인적인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 그런 일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핑계도 변명도 하지 않는 당연함에 대한 태도로 일관한다. 대신 어머니가 부재한 자리를 아버지인 자신이 꽉 채워준다. 엄할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은 퇴계의 이미지에 비해 그가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들은 더할 수 없는 자애의 말로 가득 차 있다. 가정의 불운이 자녀 교육을 게을리할 이유가 될 수 없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절망과 좌절의 이유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퇴계는 보여주고 있다. 퇴계는 평생 대략 200여 명이 넘는 인물을 대상으로 3천200여 통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서간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 집안사람들에게 보낸 가서는 1천200여 통이다.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가 621통, 맏손자 안도에게 보낸 편지가 131통이다. 퇴계가 100통 이상 편지를 보낸 제자들은 정유일(176통), 월천 조목(150통), 이정(138통)뿐이다. 퇴계가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수를 비교해 볼 때, 퇴계가 아들과 손자와의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가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들은 흔히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교육을 소홀히 한다. 퇴계의 가서를 살펴보면 농사일, 하인 다스리기, 집안 대소사 챙기기 등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지만, 그중 아들과 손자 그리고 조카들의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자녀들에게 성공 지향적인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방법으로 학문을 권장하고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며, 일생 아버지인 자신의 삶과 더불어 점검하고 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60살이 넘은 아버지가 자식으로부터 ‘아버지를 존경한다’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퇴계의 아들 이준, 퇴계의 맏아들 이안도 그리고 조카, 처조카 심지어 사돈들의 집안사람들까지 퇴계의 문하생들로 기록돼 있다. 퇴계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의미이다. 좋은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아버지일 것이다. 그러나 존경하는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답을 보여주는 삶의 모델 그 자체이다. 가까운 가족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만큼 행복하게 성공한 삶이 또 있을까? 퇴계는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하는가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어른’을 대변한다. 사회적으로 바쁜 것도, 가정의 불우함도,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는 것도 자녀 교육을 할 수 없다고 변명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또한, 자녀와의 소통이 어렵다고 하는 부분 역시 야단맞을 일이다. 건강이 늘 여의찮았던 퇴계가 붓으로 장거리 소통을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녀에게 한 줄의 글이라도 전하려고 하는 관심과 사랑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인류의 스승 퇴계의 모습이 바로 현대의 우리가 추구하는 다시 살펴야 보아야 할 참된 아버지상이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든 아니든 우리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는 아버지인가?

개구리 소년 아버지 “아이들을 왜 이렇게 했는지 편지라도 보내달라”

“해를 보지도 못하는 차가운 곳에서 볕드는 따뜻한 곳으로 오기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30년 만에 조성되는 개구리 소년 추모·기원비 건립 예정지를 지켜보던 우철원(당시 13세)군의 아버지 우종우(73)씨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우씨는 “추모비에 유족들 의견을 반영해 이름 석 자를 비석 뒤편에 새기는 등 지금까지 사건을 잊지 않고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분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우씨는 추모·기원비 건립 소식에 언젠가부터 보지 않던 휴대전화 사진첩을 다시 들여다봤다.그는 “식구 네 명이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한 사람 자리가 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보니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렸다”며 고개를 떨궜다.실종 아이들의 아버지 중 우씨를 제외한 나머지 아버지들은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우씨는 실종 당일 하루를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했다.그는 “사건 당일은 기초의회 의원 선거로 임시공휴일이었다”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에 아이들은 아침을 먹자마자 페트병에 도롱뇽 알을 채집하러 나갔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2002년 9월 사라졌던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사건 해결에 대한 기대를 가졌지만 공소시효가 2006년 만료되면서 유족의 기다림은 더 깊어졌다.대구경찰청 미제 사건 수사팀은 2019년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 기록 재검토와 첩보 수집 등을 하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우씨는 앞으로도 정부와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그는 “사건 초기 부실한 조사로 담당 경찰들과 언쟁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건 담당하는 분들도 그 분들 나름대로 많은 고생을 한 것 같다”며 “국민적 관심에 우리가 보답하는 길은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내는 것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범인에게도 말을 남겼다.우씨는 “이제 공소시효도 끝났다. 제발 양심 고백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자수를 해달란 말도 아니다”며 “쪽지에 설명 정도 달아서 어디 관공서에 주고 갔으면 좋겠다. 그게 힘들면 편지로라도 해달라. 왜 죄 없는 아이들 5명을 그렇게 한꺼번에 그랬나. 어떤 방식으로든 좀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권종민 기자 jmkwon@idaegu.com

가족의 해체, 무엇이 중심이어야 하는가?

김시욱애녹원장일을 마치기 바쁘게 집으로 퇴근한다. 코로나19가 만든 일상은 단조롭고 무기력하다. 코로나 확진여부에 대한 불신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접촉을 꺼려지게 한다. 정치, 사회면 기사를 대할 때면 여느 때보다 강한 분노를 터뜨리는 우리를 발견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인하고 엄마가 간난 애기를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한 뉴스 보도는 이젠 낯설지 않아 보인다.단순히 쳐다본다는 이유로 30대가 60대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은 차라리 낯익은 풍경처럼 다가온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주체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연이어 터지는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기사’는 다른 업종으로 확산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생명 존중과 인권이란 단어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방어기제로만 사용되는 듯하다. 유아와 성인의 생명가치를 다르게 재단하고 자신과 타인의 존재 가치를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가는 현실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더 저지(THE JUDGE, 2004, 미개봉)’란 영화를 접하게 됐다. 제목을 통해 흔한 법정 영화라 추측했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실루엣처럼 흐르는 도입부 신문 위 안경, 야구선수 팀으로 구성된 액자와 구식 영상 녹화기, 탐스런 꽃을 가꾸는 중년여인의 모습이 다소 생소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것들은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소품이자 복선이었음을 이해하게 됐다. 단순한 법정 영화가 아니라 가족의 해체와 결속, 그리고 법적 갈등의 중심에서 가치관의 중심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승소율 100%의 능력과 재력을 겸비한 변호사 행크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가족’이다. 부인과는 이혼 직전이고 하나뿐인 아버지와는 연락을 끊고 산지 오래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몇 십 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지만 부자간의 관계는 이미 회복불능처럼 보이는 어색하고 먼 사이다. 장례식 후 아버지는 식료품을 사기위해 차를 끌고 나가고 존경받던 판사에서 살해용의자로 바뀐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아들은 아버지의 변호를 맡게 되고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범죄에 대한 시각적 차이는 판사와 변호사라는 부자의 직업적 관점에서도 판이하게 다르다. 더불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갈등의 저변에 자리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자리한다. 대사 중 죽었을 때의 ‘성조기 조기 게양’은 존경받는 판사로서의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명예를 상징한다. 말기 암으로 일시적 기억상실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판결들에 대한 무효라는 위험성과 무죄평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증인 없는 재판에서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불리한 고의성을 인정함으로써 배심원들의 유죄 평결을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 마지막을 차지하는 아버지의 죽음과 조기 게양, 42년간 재직한 아버지의 법정을 돌아보는 아들의 모습은 많은 울림을 전한다. ‘나 여기 있어(I am here)’로 표현 되는 아들 행크의 마지막 대사는 자신의 뿌리와 중심이 가족과 고향임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우리 사회의 가족 해체는 19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음이 사실이다. 경제적 위기로 인한 가족 해체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없는 고통과 가족상실을 맞보게 했다. ‘홈리스의 가장’으로 대변되던 그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인 상황이다. 대가족 중심의 경로사상으로 노인복지를 지탱해오던 한국 전통적 모습은 핵가족화와 노인문제가 대두하면서 붕괴의 길로 가고 있다. 가족의 해체는 노인복지 해체다. 노동시장에서의 조기 퇴출과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리스크의 등장은 공원 곳곳에 모여 소일거리를 찾는 노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공공근로 자리를 찾지 못해 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이 흔한 일상이 돼버린 지금 ‘고독사’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나이든 부모를 공양하라 하기에는 실업과 부동산 문제에 휩싸인 청년들에게 가혹한 처사로 비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의 경제적 안위마저 힘겨운 현실에서 부모와 자식, 이웃 간의 유대는 꿈같은 이야기로 전락하고 있다.이쯤에서 우리는 진정 가족의 중심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물질적 풍요만 쫓아온 사회적 구조는 가족의 중심이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몰아내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금수저’를 물려준 부모만 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옳음’을 지켜온 가난한 부모 또한 이 시대의 부모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해산방기(苦海山房記)/ 문형렬

~ 험한 세상의 세 얼간이 ~… 직행버스 정류장에 내려 두 시간을 걸어가야 박호네 집이다. 완행버스를 타고가면 20분 거리인데 박호는 맹추위에 굳이 걸어가자고 고집이다. 종석과 달문은 엄동설한에 도저히 못 걸어간다고 버텼지만 박호는 어림도 없다. 박호는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지는 바람에 ‘파박선생’이란 별명을 얻었다. ‘깨진 박’이란 뜻이다. 결국 세 사람은 시골길을 걸어갔다. 삭풍이 살을 에는 듯 불었고 눈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씨암탉 고아놨다는 말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워 진 후에야 마을에 도착했다. 두 친구는 박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박호는 대학합격통지서와 등록금고지서를 아버지에게 주면서 두 친구를 함께 합격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석과 달문은 앞으로도 함께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둥 각본대로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는 누런 돈 봉투를 아들 박호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닭백숙을 들고 들어왔다. 박호는 입맛이 없는지 닭다리 하나만 뜯었지만 두 친구는 배 터지도록 포식했다./ 박호와 종석, 달문은 재수 끝에 대학입시에 또 낙방했다. 종석과 달문 두 사람은 박호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는데 영장까지 나온 상태다. 그즈음 대학에 합격한 친구가 놀러와 합격통지서를 보여주면서 으스대었다. 그걸 본 박호는 맹랑한 아이디어를 냈다. 종석과 달문은 조연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박호는 시골집에 장거리전화를 걸어 후보 1번으로 걸렸는데 한명이 등록을 하지 않아 합격하였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종석이 합격통지서와 등록금고지서를 위조했다. 두 친구는 박호의 합격을 증명하기위해 시골집에 동행하였다. 계획은 성사되었다. 그 후, 그 소문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 그 일을 벤치마킹했다. 그 친구는 시집 출간으로 돈을 탕진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박호는 등록금으로 산동네에 달세 방을 얻어 ‘고해산방’이란 이름을 붙이고 두 친구와 함께 기거했다. 박호가 밥을 하면 두 친구는 인근 밭에서 반찬을 채집해왔다. 비포장 길가에 ‘고해산방’이란 헌책방도 차리고 세 사람의 헌책을 진열했다. 박호는 주인집 부부의 부부싸움을 중재하여 떡고물을 얻어먹었고 종석은 능청스런 말솜씨로 외상술을 마셨다. 달문은 빈들거리며 빈대처럼 붙어살았다. 양식이 떨어지자 주인집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와 배를 채우기도 했다. 그해 늦가을 두 친구는 군에 입대했고, 박호는 자동차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세월이 흘러 박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오랜만에 세 사람이 상가에서 만났다. 영정을 올려다보며 종석이 말했다. 대학도 못 가고 문서를 위조하긴 했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있는 거 맞제? 그 후, 박호는 그의 별명, 파박처럼 파도가 보이는 부산에 가서 살았다.…우리 사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학벌이 중요한 스펙이다. 전답과 소를 팔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가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학벌주의와 사농공상에 치여 자신의 적성을 살리지 못하고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다. 장기를 발휘했으면 대성했을 사람들이 대학 문을 두드리다가 좌절한 채 소중한 인생을 허송한 경우다. 세 사람은 불합리한 세상을 맘껏 조롱한다. 그들의 반항과 대듦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그 무기력함이 오히려 가슴을 저민다. 오철환(문인)

부스/ 김동혁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 나는 주유소 유리부스에서 근무한다. 늦은 시간에 차 한 대가 셀프세차장에 들어온다. 여자운전자가 쓰레기통에 흰 봉지를 버리곤 사라졌다. 쓰레기통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왔다. 동정심 따윈 없었지만 강아지를 부스로 데려왔다. 낡은 포터가 들어왔다.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해 가는 꿀꿀이 차다. 꿀꿀이아저씨와 그의 벙어리아들이 타고 있다. 아저씨는 그 아들을 마구 거칠게 다룬다. 강아지를 달라고 해서 아들에게 강아지를 줬다. 새벽 두 시경 어머니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기일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괜찮은 주유소를 했다. 그 덕에 대학원까지 돈 걱정 없이 마쳤다. 나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고 아내는 빚을 내어 영어교습소를 차렸다. 아내는 영혼까지 끌어와 학원 사업에 올인 했다. 어느 순간 빚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는 둘째를 낳고나서 홀연히 사라졌다. 재산을 정리하고도 그 빚을 청산하지 못하자 아버지는 명줄을 놓았다. 어머니는 아직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눈이 내렸다. 염화칼슘을 뿌렸다. 새벽 네다섯 시쯤, 주유소 이층에 세든 보도방 승합차가 들어왔다. 토사물을 털어내는 일로 다투었다. 일용잡부들을 태운 승합차가 올 시간이 됐다. 폭설 탓인지 승합차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남긴 사채에 시달렸다. 사채는 갚아도 줄지 않았다. 주유소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돈을 받으러 주유소로 찾아왔다. 열흘 후에 갚겠다고 했지만 허사였다. 집에까지 찾아와 애들을 데려갈 듯 협박하곤 돌아갔다.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여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소장도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소장은 내게 야간근무를 권했다. 월급은 많았지만 어린 두 딸을 두고 야간에 집을 비우는 것이 문제였다. 작은 아이가 근무 중에 없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놀이터에서 찾긴 했지만 여간 놀라지 않았다. 소장이 가불을 해주어 밀린 사채이자를 해결했다. 다시 눈이 내렸다. 염화칼슘이 떨어져 삽으로 눈을 치웠다. 눈 더미가 많이 생겼다. 퇴근할 땐 맑은 하늘이 보였다. 거리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도로엔 차들로 가득 찼다. 세상이 생기를 되찾았다. 폭설이 내린지 며칠 지났다. 꿀꿀이아저씨가 왔다. 아들이 강아지와 함께 포터를 몰고 사라졌다고 한다. 혹시 보거든 연락해 달란다. 사실, 그 아들이 포터를 타고 주유소에 왔었다. 조수석엔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그는 기름을 넣고 셀프세차를 했다. 세차장 바닥까지 깨끗이 씻었다. 그는 편안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떠났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찾지도 못할 것이다. 새벽 4시, 늦음과 이름의 경계가 없는 시간, 주유소는 조용했다.…빚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아내는 어린 두 딸을 두고 가출했다. 야간알바를 하면서 근근이 연명한다. 사채업자가 돈을 받기위해 딸을 두고 협박까지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살기가 죽기보다 힘들지만 두 딸을 지켜내야 한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견뎌내야 산다. 엔코 된 차를 밀어주고 난 다음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조금 회복한다. 아버지와 함께 막장인생을 살던 벙어리아들이 강아지와 함께 새 출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본다. 얼어붙은 세상도 해가 뜨면 생기를 되찾는다. 엄동설한이지만 봄은 온다. 새벽 4시, 곧 해가 뜬다. 용기를 내야지.오철환 (문인)

아버지의 집/ 김봉근

내 어릴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망치 소리/손수 지은 뼈대 위에 그 간 세월 묻어두고/남몰래/들추어보는/감꽃 피는 그리움//고향 길 산자락에 하늘 한 채 들이셨다/백년 집은 다 살았고 천 년 집을 찾아왔네로/춤사위/장단에 맞춰/저승길을 물으시고//지나는 바람결에 그 목소리 들리려나/기러기 하늘 물고 낮게 저어 오는데/지금은/외출 중인지/빗장 굳게 거셨다「대구시조 제24호」 (2020, 그루)김봉근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1995년 ‘시조문학’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시간의 흔적’이 있다.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중에 아들은 아버지와 같지 않으려고 하고, 딸 역시 어머니와 같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부정하려고 한다기보다 더 잘 살아보아야 하겠다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양육 받았으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아버지의 집’에서 화자는 자신에게 특별했던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애틋한 사부곡이다. 어릴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망치 소리를 늘 기억하고 있다. 손수 지은 뼈대 위에 그 간 세월 묻어두고 남몰래 들추어보는 감꽃 피는 그리움은 화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추억에는 힘이 있다. 추억은 한 사람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 될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은 활력으로 작동한다.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기침소리까지도 추억의 장면으로 뇌리에 남아 있어서 애틋함을 더하게 된다.그러던 아버지는 어느 날 고향 길 산자락에 하늘 한 채 들이셨다. 그날 백년 집은 다 살았고 천 년 집을 찾아왔네, 라면서 춤사위 장단에 맞춰 저승길을 물으셨다. 화자는 못내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창을 잘 하시던 아버지가 가족 납골당이 완성되던 날 납골당 문 앞에 앉아서 어깨춤을 추며 창을 하셨던 것이다. 그 몇 해 뒤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그리하여 지나는 바람결에 그 목소리 들릴까, 하고 그리워하면서 기러기 하늘 물고 낮게 저어 오는 날 지금은 외출 중인지 빗장 굳게 거셨다, 라면서 다시는 뵐 수 없는 아버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있다.회자정리라 했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픈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간절해진다. 철이 바뀌어 스산한 바람이 부는 때이면 더욱 그렇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라는 소월의 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지만 다함없는 하늘의 은총 덕분인 것은 분명하다.그는 이국땅 ‘그랜드캐니언’을 노래하면서 생명의 연원을 상고하고 있다. 어느 일면 사부곡과 맥을 같이 하는 일이다. 누가 그 무엇을 억겁이라 불렀는가 태초에 먼지 하나 이 땅의 시작이거늘, 이라고 외치며 장엄한 광야의 바람 그 끝을 묻고 있다. 또한 지평선의 아지랑이를 보면서 세상 끝이 아님을 자각하고 한순간 발 아래로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 실핏줄 가는 길 따라 온몸이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물살에 닳은 등줄이 층층이 쌓여가고 시원의 강물 따라 미리내로 젖어들 때 깊은 저 강물 끝에 열리는 하늘 길 땅길 만 리를 이윽히 주시한다.‘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던 화자가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그랜드캐니언과 마주했다. 그러면서 생명의 근원을 떠올렸다. 광대무변의 우주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은 더욱 소중하지 않을까? 이정환(시조 시인)

혼수상태 빠진구미의 특수학교 학생…부모·장애인단체 체벌 ‘의심’

교실에서 쓰러진 뒤 2주 가까이 혼수상태인 학생을 두고 학교 측의 체벌이 원인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적장애 1급인 A군은 12년 동안 이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2일 구미경찰서에 따르면 구미의 한 특수학교 학생 A(18)군은 지난달 18일 교실에서 쓰러졌다. A군은 사고 이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지만 학교 측의 설명은 ‘넘어져서 다쳤다’는 게 전부였다.A군의 아버지는 이틀 뒤인 지난달 20일 담임교사인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담임교사가 A군을 매트리스로 말아 방치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장애인 단체들도 A군의 아버지에게 힘을 실었다.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은 2일 학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결박과 폭행 등 학대행위가 강하게 의심된다”며 경찰에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하지만 학교 측은 ‘단순한 사고’였다고 이런 의혹들을 부인하고 있다.A군이 소란을 일으켜 주의를 주는 차원에서 매트리스로 덮은 건 사실이지만 ‘멍석말이’를 하지는 않았고 사고 당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는 것. 또 A군의 몸에서 발견된 끈 자국은 양호 교사가 혈관을 찾기 위해 고무줄로 묶은 자국이라고 설명했다.A군이 쓰러진 교실에는 CCTV가 없었고 A군과 담임교사, 사회복무요원, 같은 반 학생 2명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은 당시 사고를 목격하지 못했고 같은 반 학생 2명도 중증 장애인으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신고 직후, 수사에 나선 경찰도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이 학교 교장은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 할 말이 많지 않다”며 “다만 A군이 하루빨리 의식을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조옥상 ‘그날의 단상 희방사’

천년사찰 희방사를 감싸고 흘러가는 숲이 울울창창하다. 소백산 아래 고즈넉한 희방사! 불자들이 삼삼오오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이 해사한 잎을 흔든다. 흐르는 계곡물은 감로수처럼 신령스럽다. 숲 향기가 훅 풍기자 맹맹했던 코가 뻥 뚫린다.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향기가 숲 향기라 한다. 거대한 소백산 숲 향기에 온몸이 경쾌해진다. 희방사로 오르는 길에서 얻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 가슴 또한 설렌다. 자연은 늘 그러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좋다. 서로를 조화롭게 보안하는 자연이라는 웅장한 이치가 길을 나선 나그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들꽃 소소한 이 길은 생경하지 않다. 희방사에서 십 리쯤 떨어진 풍기에서 유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작로에 수없이 박혀있던 돌부리는 다 어디로 가 뒹구는지, 잘 닦아진 길에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청아한 매미소리와 거대한 숲이 바투 다가온 걸 보니 희방폭포가 눈앞에 펼쳐질 모양이다. 매표소를 지나 폭포에 다다랐다. 수십 년의 풍화작용에도 청청한 위상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은빛 포말에 우중충하게 뒤집어쓴 세상 먼지를 씻고 가파른 철제계단을 오른다. 너럭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진 풍상에도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바위에 앉아 이끼 낀 추억 한 자락을 꺼낸다.희방사 마당으로 들어섰다. 천년 역사의 숨소리가 마치 지나간 어제 같다. 댕그렁! 정연한 기와비늘을 떨며 산사 처마에 달린 풍경이 운다. 허공의 뜰을 깨우는 저 풍경은 얼마나 많은 날을 쇠줄에 묶인 채 견뎌 왔을까. 저리 맑은소리는 어떠한 성불로 하여 얻어진 공명일까.아버지는 몸이 허약하셨다. 희방사에서 두 해쯤인가 요양을 하셨다. 국가고시를 준비하시던 중 지병이 도진 것이다. 가족을 두고 깊은 산중으로 거처를 옮기셨던 아버지, 장녀인 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동생들은 어리광부리는 나이였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조르면 엄마는 우리를 깔밋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혀 희방사로 향했다. 완행열차만 쉬어가는 역사를 지나, 개망초 흐드러진 비포장을 폴짝거리다 엎어지면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잠시 쉬어가는 그 옆으로 산수국이 구슬처럼 피어 있었다. 잉크색 꽃을 탐스럽게 피운 산수국은 아버지의 얼굴처럼 환했다.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시는 아버지는 여름이면 다래를 따서 쌀 속에 묻어두었다가 꺼내주셨다. 말랑해진 다래는 달콤하고 맛있었다.숲속으로 달아나는 조릿대 바람을 붙들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서성인다. 대웅전 옆이었던가, 지장전 앞이었던가, 아버지의 방 띠살문은 보이지 않고, 돌과 나무와 꽃과 새들이 조화로운 화음을 주고받을 뿐이다. 텅 비어서 다시 채울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낙심천만에서 오는 실망의 간극에는 어떠한 값이 주어질까.초등학교 사학년 가을소풍이었다. 소풍 장소는 희방사! 고민에 빠졌다. 폭포 위 너럭바위에 오르면 희방사가 보이고 그 사찰 오두막에는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했지만 그곳에 와 계시는 수척해진 아버지를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소풍날 아침 엄마는 분주하지 않았다. 김밥을 말고 계셨지만 맛있는 냄새도 나지 않았고 선생님께 드릴 김밥은커녕 과자도 사과도 들어있지 않았다. 선생님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찐빵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바위 모퉁이에 숨어 김밥 서너 개만 먹고 집결 장소로 내려왔다. 특기 자랑이 시작되는 동안 아버지는 말랑해진 다래를 주시려고 당신 딸을 찾으셨던 것 같다. 발칙하게 간과했던 철없는 행동에서 오래도록 자유롭지 못했다. 부모님께선 소풍날에 대하여 일절 묻지 않고 빙그레 웃어넘기셨다. 그날 이후 다래는 맛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입에 대지 않았다. 요즘에도 서양 다래라는 키위를 보면 딸을 찾다가 쓸쓸히 돌아서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른거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동종소리 은은한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두운조사가 창건설화*에 기인하여 세웠다는 수수한 사찰이다.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지만 천년고찰의 고아한 향기를 품고 있다. 내 선친에게 무량한 자비를 베풀어준 희방사! 건강을 되찾으신 아버지는 국가고시도 합격하는 영광을 얻으셔서 우리 가족은 별 굴곡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종심이 된 이쯤 이승을 떠나시던 선친의 세수가 되어서야 참회의 서를 써 내려가는 심정으로 희방사를 찾았다. 산허리를 휘감은 운무 따라 아버지의 흔적도 흘러갔지만 애잔한 그림자 하나 어릿어릿 얼비쳐온다. 수그러진 고개를 들어 평화로이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닦는다.*창건주인 두운조사가 소백산 연화봉 중턱 동굴 속에서 겨울철에 수도할 때 찾아온 호랑이의 목에 박힌 비녀를 뽑아주자 호랑이는 은혜를 갚고자 처녀를 물어다 놓는다. 처녀는 지금의 경주 유석의 무남독녀다. 두운은 동굴 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봄에 집으로 데려가니 유호장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고 무쇠로 수철교를 놓아주며 절 이름을 희방사라 하였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세태 단상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코로나19로 청승맞게 자주 과거를 떠올린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는 부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길에서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끼니때마다 인사가 달랐다. 아침에는 “아침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했다. ‘조반석죽(아침에 밥 먹고 저녁에 죽)’이면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집이라고 했다. 모두가 서로의 형편을 잘 알다 보니 이웃 사람들은 굶는 집이 없는지를 눈여겨 살폈다. 저녁때인데도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이웃 아낙은 “철수야 왜 밥 안 하나 양식 떨어졌나?”라고 물으며 쌀 반 양푼을 담 너머로 넘겨주곤 했다. 동네 어른들은 남의 집 제삿날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집과 담을 같이 하고 있으면 자정이 넘어도 자지 않고 기다렸다. 밥과 나물, 생선, 떡 등의 음식이 넘어오기 때문이다. 파젯날 아침에는 동네 어른 모두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꼬마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꾼이 많았다. 연필과 지우개 같은 문구류, 멍게와 해삼, 스크루가 돌면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유해 색소가 든 오렌지 주스, 엿과 사탕 등 종류가 다양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세 녀석이 계란만 한 눈깔사탕을 한 개 샀다. 돌아가면서 입에 넣고 양볼 좌우로 열 번씩 왔다 갔다 하며 빨고는 사탕을 꺼내 다른 친구에게 넘겼다. 세 명이 돌아가며 그렇게 빨아먹었다. 어떤 녀석은 논두렁 옆 수로에 사탕을 헹구고 입에 넣기도 했다. 크기가 아주 작아졌을 때 어느 녀석이 남은 사탕을 씹어 먹어버리면 나머지 둘은 그 녀석의 등짝을 때리며 깨 먹은 것을 원망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이해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콩 하나도 열 조각으로 나눠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새벽에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는 보리쌀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밥을 드시고, 자신은 죽을 먹고 학교에 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밥 드시는 모습을 이불속에서 눈을 반쯤 뜨고 바라보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에게 친구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다 좋은 일만은 아니다. 때론 똑같이 나누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에 두부 한 모가 있는데 친구 네 명이 4분의1 씩 나눠 먹는다고 가정해 봐라.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은 잠시 기분이 좋겠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러나 4명 가운데 가장 힘이 센 한 친구에게 한 모를 다 먹인 후, 지게를 지고 산으로 보낸다고 생각해 봐라. 그 친구가 갈비(떨어진 마른 솔잎)를 한 짐 해서 시장에 내다 팔면 두부 여덟 모는 사 올 수 있다. 한나절 배고픈 것 참고 저녁에 두 모씩 나눠 가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버지가 밥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죽을 먹는데 자신은 밥을 먹으니 얼마나 괴롭겠느냐. 밥맛이 제대로 나겠느냐. 그 아비는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초등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은 분명하게 이해가 됐다. 경제 이론에 문외한인 나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문제가 쟁점이 될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 원씩 지급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크다. 한 여론 조사 기관은 국민의 6할 정도가 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국가 채무가 한 해에만 106조 원 급등한 상황에서 4차 추경 7조8천억 원 중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통신비 2만 원 보조에 쓴다는 게, 제대로 된 생각을 갖고 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정의당 원내 대표조차도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통신비 2만 원 지급이야말로 별 효과도 없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지 않는가.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힘을 모아 정말 생계가 어려운 국민을 찾아내어 그들이 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하라. 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 좀 멀리 바라보고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대책도 동시에 마련하라.

히포가 말씀하시길/ 이근자

~의창에 비친 가족의 모습~…아버지는 점포 서른여섯 개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전형적인 한량이다. 히포는 그의 별명이고 하마 ‘히포포타무스’의 약칭이다. 하마는 온순한 듯 보이지만 변덕스럽고 공격적이다. 어머니 하 여사는 소비를 취미이자 업으로 살아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큰누나는 향락과 소비에 중독된 독신녀이고, 작은누나는 세달 전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한 초보 주부다. 벌써 생활에 쫓기는지 하 여사에게 손을 벌리는 처지다. 나는 막내아들로 ‘무위’를 즐기는 대학생이다.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 것이 인생목표다. 어느 날, 히포가 급성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신장기능이 망가져 혈액의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하지 못해 쇼크가 온 것이다. 혈액투석을 하고 있으나 신장이식이 화급하다. 제각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던 가족들이 히포의 입원으로 인해 널찍한 병원 특실에 함께 모였다. 외부인인 자형으로 인해 다섯 식구가 제법 예를 갖추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다섯 사람은 히포에게 간을 제공하기위해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작은누나는 신혼으로 임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명단에서 뺐다. 검사과정에서 임신 중인 것으로 드러난 큰누나도 자동으로 제외되었다. 큰누나는 그런 명분을 지키고자 결혼을 서두르는 액션을 취했다. 그 남친이 느닷없이 병실에 나타나 예비 사위행세를 했다. 결국 하 여사, 자형 그리고 나까지 세 명만 남았다. 직계혈통인 내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그건 내 생활신조인 무위에 맞지 않다. 군대라도 가고 싶었다. 하 여사가 간이식 이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지를 강구했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히포를 설득했다. 히포는 내 신장을 원했다. 하 여사는 싱가포르에서 기증할 사람을 구해와 국내에서 시술하는 방법을 밀어붙였다. 하 여사만 믿을 뿐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친이 병실로 찾아와 살가운 정을 보여주었다.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어떤 여자가 병원 지하주차장의 아버지 차안에서 장시간에 걸쳐 열정적으로 울고 있었다. 병실 안에선 뜻밖에도 히포가 서럽게 울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내 신장 따윈 필요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하 여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뚱뚱하고 욕심 많은 데다 변덕스럽고 독단적인 아버지의 캐릭터가 히포라는 별명 속에 은근히 녹아있다. 부부관계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외도와 소비로 벌충하는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만은 살아있다. 첫째 딸은 어머니의 불행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독신으로 뻗대지만 결핍에 대한 공허함을 향락으로 달랜다. 둘째 딸은 정상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부족하다. 그래서 평범한 봉급쟁이와 살아가는 삶이 사상누각처럼 위태하다. 나는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무위’의 삶을 추구한다. 돈으로 연결된 취약성은 한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위기에 처하면 쉽게 부서진다.역경에 처한 뒤에라야 각자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신장이식이란 위기상황에 처하자 나머지 가족들의 의식은 느긋한 가운데 바쁘게 돌아간다. 돌발적인 비상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에 따라 각자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지가 관건이다. 엄청난 재산과 급성 신부전증이 다양한 미래변수로 작용하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만들어낸다. 히포의 태도, 병의 경과, 신장이식의 성공여부와 히포의 생사 등이 예측하기 힘든 미래변수다. 가족과 그 주변인들 사이의 긴박한 숨결이 행간에서 흘러나온다. 날카로운 의식의 분주한 흐름이 숨 가쁘다. 오철환(문인)

빈집1/ 공영구

아직도 고향에는 등기된 집 한 채 있다/ 아버지가 애써 일군 집/ 어머니가 금비녀처럼 가꾸신 집/ 오남매 꿈이 영글어 피어난 외딴집// 썩어가는 기둥에 녹슨 못/ 거미줄이 애써 감싸고/ 몸통 드러낸 주춧돌/ 잡초에 매달린 채 힘겨워하며/ 찢어진 양철지붕 빗물 막으려/ 용쓰다 뒤집혀 바람 겁나 떨고 있다/ 그을린 정지문 붙잡고 의지하는/ 뒤뜰 가죽나무의 무성한 잎사귀/ 주인 없이 지켜온 텅 빈 마음/ 십 년 상처 다독이고 있다// 점점 넓혀가는/ 타성바지 틈에 끼어, 그래도/ 가끔이면 가보고 싶은 집「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의식주는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꼽힌다. 그 순서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인간생활의 엑기스를 잘 뽑아낸 말이다. 의복은 인간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도구이고 개성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다. 음식은 생존에 절대적인 존재로 생명유지의 기초적인 전제조건이다. 주거는 비바람과 상위포식자 또는 해충으로부터 비켜나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씨족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생활공간이다. 의복과 음식은 개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에 그치지만 주거는 개인을 넘어 가족의 안락한 공간이란 범주로 그 중요성이 확장된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주거는 발을 디디고 있는 땅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주거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함의다.안락하고 안정된 삶은 주거안정 없이는 기대난망이다. 만족스런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욕망이 끈질긴 이유다. 집값 폭등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는 현상이 생뚱맞은 일은 아닌 셈이다. 먹고 입는 것은 생존의 기초조건이긴 하지만 그 필요성이 반복적 소모적이어서 그 대가가 시계열적으로 잘게 분산되는데 비해 주거는 그 성격이 배타적 영구적이어서 그 희생이 집중적이고 덩어리가 크다. 더구나 주거공간은 각자의 생활근거지에서 근접할 필요가 있는 까닭에 땅이 갖는 고정성, 부동성과 부증성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극심한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하다.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족의 안락한 쉼터이자 생활공간인 집으로 나타난 것은 자연스럽다. 아직도 남아있는 고향의 집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남매까지 그리움의 광장으로 불러낸다. 아버지가 힘들게 마련하고 어머니가 정성껏 가꾼 보금자리에서 오남매가 숨결을 함께 나누며 꿈을 키웠다. 그 가족의 둥지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방어기제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비록 빈집이지만 든든하다.기둥은 썩고 못은 녹슬었다. 함께 숨을 탔던 거미마저 안쓰러운 듯 거미줄로 가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세월의 시샘을 막을 수 없다. 무성한 잡초에 가린 주춧돌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비바람에 찢어진 양철지붕은 서럽게 떨고 있다. 연기에 그을린 부엌문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뛰어나올 것만 같다. 뒤뜰에 선 가죽나무엔 가죽 잎이 무성하다. 양념장에 곰삭힌 가죽 잎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흐뭇해 할 것 같다. 타성바지에 둘러싸여 주인도 없는 곳을 홀로 지키고 있는 그 정성이 갸륵하다. 십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모진 세월을 버텨낸 그 의지가 기특하다. 옛 사람은 떠나고 새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일 뿐이다. 세상사가 무상해지고 지난 삶을 되돌아 볼만한 때가 되니 수구초심은 인지상정이다. 고향 집이 아련히 생각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오철환(문인)

반복/ 신평

이제 막 날개 짓 하려는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같은 방법/ 아버지와 달리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다// 구부려 올려다보는 아들의 어깨 너머/ 그가 겪어나갈 신산의 세월이 겹겹이 둘러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더/ 세상은 차갑고 무섭단다// 내 힘 한 점 소용없을 때까지/ 네 기력을 돋울 군불이 되고 싶건만// 이미 달빛이 된 아버지/ 나도 곧 달빛으로 오른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 가르치며/ 그 옛날 자신의 숨결과 닿았던 내 숨결을 기억하리/ 생의 반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이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Ⅱ」 (대구문인협회, 2013)딸 키우는 재미가 아기자기하고 좋다. 그러나 아버지에겐 아들 키우는 즐거움도 전혀 없진 않다. 목욕탕의 등 밀기가 그것이다. 이는 딸 가진 아버지가 부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흔히 꼽히곤 한다. 물론 공짜로 거기까지 가는 건 결코 아니다. 팔에 힘이 제법 붙는 날까지 부지런히 씻기고 닦아줘야 한다. 몰캉몰캉한 젖살이 빠지고 팔뚝이 제법 탱글탱글해지면 상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등의 때가 밀리는 순간 그동안 보살펴 준 수고가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린다. 아들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엄마가 독점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넥타이 매는법은 아버지의 전매특허다. 사회로 첫발을 내디디려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소환된다. 아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엄마가 갑자기 당황해하며 남편을 찾고 아들이 굵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긴급구조를 요청한다. 새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를 든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쑥 다가선다. 별 것 아닌데 괜스레 기분이 좋다. 아들의 등밀이 서비스를 처음 받은 때처럼 마음이 달뜬다. 시인이 첫 출근하던 날, 그 아버지가 넥타이 매는법을 가르쳐주었다. 방향이 좌우로 바뀌는 지라 헷갈릴 만도 했지만 능숙하게 가르쳐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막상 넥타이를 아들의 목에 걸고 보니 매일 매다시피 한 것이지만 한번 만에 매어지지 않는다. 자기 목에 매어 본 후 다시 아들 목에 건다.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헷갈리니 배우는 아들도 헷갈린다. 구경하는 엄마는 한심하다며 핀잔을 준다. 그렇지만 아버지도 웃고 아들도 웃는다.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세파가 아들의 어깨 너머로 넘실거린다. 극복해야 할 도전이 산 넘어 산이고 겪어야 할 시련이 가혹하고 매서우리라. 거친 바다로 항해를 내보내는 부모마음은 안쓰럽다. 교과서에서 익힌 대로 했다가 낭패 볼 일도 있으리라.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많이 다르단다. 비록 세상사가 한심하고 추악하게 보이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얕잡아 봐선 안 된다. 엎어지고 자빠지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험한 세상이 어느덧 살맛나는 세상으로 다가온단다.부모는 아들딸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온몸을 다 바치는 법이다. 부모는 아들딸을 위해 항상 군불 땔 준비가 되어있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갈 때까지 아버지는 온힘을 다해 뒷바라지 할 터다. 아버지의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긴급구조를 요청해도 좋다. 아버지는 비록 세상을 떠나가지만 텁텁한 숨결을 통해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법을 물려준다. 인연으로 맺어지는 생의 전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엄숙한 반복은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슬픈 고리다. 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