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강물

~ 전쟁과 인권 사이 ~…위안부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중년시절 할머니 사진은 50년 전 베트남에서 만났던 그 여자와 많이 닮았다. 얼굴, 나이, 말씨. 허나 할머니는 그때 대만에 있었다고 했다. 고명딸이라니 자매일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닮긴 했다?/ 월남전 참전 중에 중년의 한국여자를 만났다. 위안부로 있다가 내팽개쳐진 여자로 베트남 남자와 살고 있었다. 그 난리 통에 살아남기나 했을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하나 둘 재생됐다. 일단 재생된 기억들은 떨쳐버리려 해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그는 우기에 매복 작전에 참여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섯 명을 사살했다. 소대장은 매장을 하고 절까지 했다. 그 인간적인 소대장은 부비트랩에 걸려 곧 전사했다. 먼저 보고 먼저 쏘는 놈이 살아남았다./ 미군은 수송기로 고엽제를 뿌렸다. 모기가 달려들지 않는다며 다들 그것을 덮어썼다. ‘안개비 샤워’라 불렀다. 베트콩은 한 산촌마을에 출몰했다. 첨병이 마을로 잠입하다가 벌집을 건드렸다. 말벌의 공격으로 우회하는 길로 빠졌다. 논둑길로 올라섰을 때 총소리와 함께 전우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그는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다./ 그의 보직이 행정병으로 바뀌었다. 촌장과 주민을 관리하고 베트콩과 주민을 가려내는 일을 맡았다. 그 때 그 여자는 부대 철조망 밖에서 푸성귀를 팔고 있었다. 한국여자란 걸 알고 그 여자를 스파이로 섭외했다. 남편은 베트콩이었다. 어느 날 중대장은 그 여자를 부대 안으로 불러들였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성분 지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가족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여자의 정보를 토대로 적성가옥과 위험지역을 가려 정밀타격 했다. 그 이후 그 여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의 생사여부가 궁금했다./ 외손녀가 결혼 준비 차 내려왔다. 자기 부모를 이혼하게 만들었다고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딸의 이혼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거북해서 그냥 그렇게 덮어쓰고 살아왔다. 그의 피부병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유전질환이었다. 그 사실이 사위에게 외도 명분을 줬고 이혼 사유로 악용됐다. 유전질환 핑계로 자기 친딸마저 팽개쳤다. 그는 책임을 통감하고 딸과 손녀를 보듬었다./ 그가 가려움을 못 참고 몸을 긁어대자 손녀도 따라서 몸을 긁었다. 손녀는 뜻밖에도 외할아버지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자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손녀는 훌쩍 커 있었다. 결혼식 날, 자신을 버린 아버지 대신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서 신부의 손을 잡고 카펫 위에 섰다. 벽을 극복한 두 남녀의 새 출발을 축복하는 박수소리가 오래도록 들려왔다.…역사의 뒤안길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큰 수레바퀴에 치여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숙연해진다. 일제 만행에 심신이 거덜 나고 설상가상 앵벌이로 전락한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가슴을 찢는다. 자유세계를 지킨다는 명분과 돈을 벌어온다 실리, 말하자면 도랑 치고 가재 잡겠다는 의도로 파병이 이뤄졌다. 다만 생사기로에서 고군분투했던 장병들이 다시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어이없는 상황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때 옳은 일이 지금은 옳지 않을 수 있고, 국가적 차원에선 대의라 하더라도 개인적 차원에선 인권 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는다.오철환(문인)

시골할머니 손 글씨체가 한컴오피스 공식 글꼴로

“며느라! 내 글씨 콤푸타(컴퓨터)에 나오네. 억수로 고맙데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 태어난 시골할머니들의 손 글씨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글프로그램의 글꼴로 사용하게 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글과컴퓨터는 12일 공식 SNS를 통해 한컴오피스에 칠곡 할머니의 손 글씨를 디지털로 전환한 ‘칠곡할매글꼴’이 정식으로 탑재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한컴오피스에서 칠곡할매글꼴을 검색해 선택하면 다섯 분의 시골할머니 손 글씨체로 한글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칠곡할매글꼴의 한컴오피스 탑재 소식이 알려지자 손 글씨를 작성한 할머니들은 잔칫집 분위기다.추유을(87) 할머니는 토마토, 가지, 오이 등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상자에 담아 한글과컴퓨터에 전해달라며 칠곡군청을 찾았다. 추 할머니는 “너무 감사한 마음에 농산물을 준비했다”며 “내가 죽더라도 글꼴을 통해 나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해 준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칠곡군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할머니들의 굴곡진 삶이 녹아있는 칠곡할매글꼴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칠곡할매글꼴을 많은 국민들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행정에 평생학습을 접목해 삶의 질을 향상 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최경진 교수는 “아날로그 감성과 고향이 정이 녹아있는 칠곡할매글꼴은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칠곡할매글꼴의 한컴오피스 정식 탑재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한편 칠곡할매글꼴 글씨체는 원작자의 이름을 딴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의 5가지로 구성됐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칠곡 할머니 글꼴, 경주 황리단길 상시 전시된다

경주 황리단길에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칠곡 할머니들의 글꼴이 상시 전시된다.칠곡군은 최근 백선기 칠곡군수와 이국필 경주공고 교장이 서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칠곡 할매 글 판을 경주공고 본관 외벽에 상시 전시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현재 황리단길 입구인 경주공고 본관 외벽에는 지난달 9일 칠곡 할머니 권안자씨의 글씨체로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고 적힌 가로 5m, 세로 10m의 대형 글 판이 내걸려 있다.칠곡 할매 글꼴이 상시 전시된 배경에는 글 판을 배경으로 황리단길을 찾은 청소년은 물론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이 쇄도하는 등 이곳이 사진 촬영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위로하고,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칠곡 할머니 글꼴 광고판을 연중 전시하게 된 것이다.이를 통해 경주 황리단길을 찾는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칠곡 할매 글꼴을 통해 고향의 정과 따뜻한 위로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이국필 경주공고 교장은 “칠곡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글꼴을 활용해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들이 좋아서 뿌듯하다”고 전혔다.백선기 칠곡군수는 “황리단길에 칠곡 할매 글꼴이 소개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경주공고 교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정과 인생이 녹아있는 글씨체를 통해 코로나와 각박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힐링을 얻었으면 한다”고 밝혔다.한편 칠곡군은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운 할머니 400명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 5가지를 선정해 글꼴로 제작했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칠곡 할매 글꼴, 경주 황리단길 상시 전시된다

경주 황리단길에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칠곡 할머니들의 글꼴이 상시 전시된다.칠곡군은 최근 백선기 칠곡군수와 이국필 경주공고 교장이 서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칠곡 할매 글 판을 경주공고 본관 외벽에 상시 전시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현재 황리단길 입구인 경주공고 본관 외벽에는 지난달 9일 칠곡 할머니 권안자씨의 글씨체로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고 적힌 가로 5m, 세로 10m의 대형 글 판이 내걸려 있다.칠곡 할매 글꼴이 상시 전시된 배경에는 글 판을 배경으로 황리단길을 찾은 청소년은 물론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이 쇄도하는 등 이곳이 사진 촬영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위로하고,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칠곡 할머니 글꼴 광고판을 연중 전시하게 된 것이다.이를 통해 경주 황리단길을 찾는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칠곡 할매 글꼴을 통해 고향의 정과 따뜻한 위로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이국필 경주공고 교장은 “칠곡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글꼴을 활용해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들이 좋아서 뿌듯하다”고 전혔다.백선기 칠곡군수는 “황리단길에 칠곡 할매 글꼴이 소개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경주공고 교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정과 인생이 녹아있는 글씨체를 통해 코로나와 각박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힐링을 얻었으면 한다”고 밝혔다.한편 칠곡군은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운 할머니 400명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 5가지를 선정해 글꼴로 제작했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새 보금자리 찾은 이용수 할머니…앞으로의 행보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3)가 7일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자료 제작 및 역사관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 등 도움과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이 할머니는 대구 중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서 정 장관을 만나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위안부역사관을 확충해 일본과의 교류의 교육장으로 삼아야 한다”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해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며 “ICJ에 회부해 결과에 문제에 있더라도 일본과의 교류는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정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이날은 이용수 할머니의 새보금자리 입주를 축하하기 위해 정 장관을 비롯해 김대권 수성구청장이 새 집에 방문했다. 이 할머니는 새 거주지에 만족했고 다음주께 남은 이사 일정을 끝낼 예정이다.이 할머니와 정 장관 등은 오전 10시50분께 중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서혁수 대표로부터 위안부의 만행과 역사에 대한 설명을 약 15분간 들었다.이용수 할머니는 서 대표에게 ‘희움(희망을 모아 꽃피움)’ 역사관이 아닌 ‘위안부’ 역사관으로의 개명을 요청했다.이 할머니는 또 대구 곽병원 의료진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했다.이 할머니는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지난해에도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며 “특히 지난해 3월2일 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와주신 곽병원 원장님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이 할머니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그는 “위안부에 대한 진실이 널리 퍼지게 해 ICJ에 제소할 계획”이라며 “또 일본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교류를 이어나간다”고 했다.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한국에 사과하고 배상해라’만 주장하는 것보다 양국이 올바른 역사관을 잡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본은 이웃나라기 때문에 원수를 지기보다는 위안부가 무엇이며 왜 일본이 한국에 사죄하고 배상해야하는지를 자라나는 학생들이 깨닫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유현제 기자 hjyu@idaegu.com

연륜/ 김금철

~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만난 지 30년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 결혼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인생의 전환점이지만 이혼 또한 일상적인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전기다. 이혼 선고를 받고 법원 문을 나서는 순간 법적 효력이 현실이 되고 부부는 남남이 된다. 떠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한 바탕 꿈을 꾼 듯하다./ 자취를 하던 대학시절 역시 자취를 하던 아내를 만나 동거를 했다. 동거 여섯 달 만에 애가 들어서서 아내와 결혼을 했다. 첫딸을 낳았다. 군대를 갖다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자식 둘을 가지면 군 면제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믿고 또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과 달랐다. 대학원에 등록해 군 입대를 연기해두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형의 일을 도왔다. 주말부부가 된 셈이다. 집에 들렀더니 4살 난 큰딸이 서울 가지 말라고 매달렸다. 아빠가 서울로 가고나면 엄마가 한밤중에 시장을 자주 간다는 것.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어린아이의 응석 정도로 받아들였다./ 형님 사업을 본격적으로 돕고자 서울로 이사를 했다. 딸은 엄마가 밤에 몰래 나간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군 입대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차일피일 연기한 끝에 스물여덟에야 군에 입대했다. 두 번째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8살 난 큰딸이 엄마가 한밤중에 집을 자주 비운다고 고변했다.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70대 중반의 할머니에게 사실 확인을 해봤다. 그런 말하면 천벌 받는다고 펄쩍 뛰었다. 휴가 끝나기 하루 전, 마당에서 4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하여 응접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밤마다 밖에 나가서 사내를 물고 들어온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리니 좋은 쪽을 믿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귀대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약이지만 치유할 수 없는 후유증도 존재한다. 아내를 만난 지 30년 만에 마침내 이혼을 결행했다. 지금쯤 한 집에 살던 70대 중반의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고, 4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는 6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주인아저씨가 지금 나이였다면 아내의 불륜을 바로 일러바쳤을까. 아마도 70대 중반의 할머니처럼 말했을 지도 모른다.…세상에 확실한 건 거의 없다. 특히나 남녀관계는 영원한 미스터리다. 남녀는 끝없는 밀당을 거쳐 헤어지기도 하고 만남을 이어가기도 한다. 밀당을 통한 이성 탐색은 우수한 유전자를 2세에게 물려주려는 본능이고 약육강식의 투쟁에서 살아남을 강한 배우자를 고르는 작업이다.결혼해 부부가 됐다고 이성 탐색이 끝나는 건 아니다. 결혼은 치열한 배우자 쟁탈전의 법적 타협일 뿐이고 유전자 보존에 대한 본능적 욕망을 마무리하는 근원적 처방은 아니다. 수컷은 가능한 한 씨를 많이 뿌려 그중에 최선의 후세를 얻는다는 전략이고 암컷은 가능한 한 사전에 우성을 가려내 불필요한 출산을 막는다는 전략이다. 이는 신체구조와 회임기간 및 산고에 기인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사랑은 인간에게 준 신의 선물이다. 잠재적 생산가능기간(4~5년)에만 지속되는 시한부 감정이다. 일부일처제는 신이 예정한 제도가 아닐 수 있다. 신은 사랑의 유효기간 동안만 일부일처를 기획한지 모른다. 세상이 워낙 급속히 바뀌다보니 기존 삶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것 같아 불안하다. 결혼제도의 균열도 그중 하나다. 그냥 다 비우고 살까보다.오철환(문인)

고인이 된 봉화 70대 할머니…평생 모은 재산 장학금으로 기부

고인이 된 한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을 봉화군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에 귀감을 사고 있다.봉화군에 따르면 최근 지병으로 별세한 70대 할머니가 봉화군교육발전위원회에 4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기탁된 장학금은 할머니와 친분이 있던 지인이 그의 유지에 따라 봉화군교육발전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슬하에 자녀가 없는 할머니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는 등 이웃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특히 학생들이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애기를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엄태항 봉화군교육발전위원장(봉화군수)은 “할머니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긴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소중하게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한편 봉화군은 기탁자가 익명 기부를 희망함에 따라 고인의 이름과 사진자료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박완훈 기자 pwh0413@idaegu.com

이용수 할머니 참여한 하버드 온라인 세미나…램지어 교수 망언 반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 할머니가 17일 위안부를 매춘부로 폄하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억지 주장에 대해 반박하며 ‘무시하라’고 강조했다.이날 이 할머니는 하버드대 아시아태평양 법대 학생회(APALSA)가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 원격으로 참석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의 존재를 알게 됐으니 논문의 내용에 신경을 쏟기보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더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또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신 여러분들의 지지 덕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며 “어제(지난 16일) 가진 기자회견 내용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해 반드시 승리하고, 일본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게끔 힘쓰겠다”고 전했다.이용수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따져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재차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소하기도 했다.미국 시민운동가 등은 세미나에서 마크 램지어 교수를 향해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아태 법대 학생회 임원 로잘린드 리앙은 토론자들을 소개하며 “논문 내용인 위안부 부정 문제는 국가 간 정쟁이 아닌 국제적인 인권 문제고 학문을 탐구하는 학생들과 남녀평등주의자 등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위안부 지킴이’로 유명한 마이크 혼다 전 연방 하원의원은 “우리가 할 일은 그 교수직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고 하버드대가 미쓰비시로부터 더 돈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토론자들은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는 피해자라는 역사를 부정하고 자발적으로 계약한 매춘부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은 일부의 주장만을 참고한 편협한 결과”라며 “기존에 공개된 위안부가 현존했다는 증거 문서는 논문의 참조 문항에 빠져있다.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2천500여 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같은 증언을 하는데 어떻게 거짓일 수 있겠느냐”고 탄식했다.유현제 기자 hjyu@idaegu.com

이용수 할머니, 30평대 수성구 아파트로 보금자리 옮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30년간 거주한 공공임대아파트를 떠난다.대구시는 이용수 할머니의 새 보금자리로 수성구 30평대 아파트를 낙점하고, 이달 중순 입주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그동안 이 할머니는 준공한 지 28년 된 좁고 낡은 달서구의 한 공공 임대아파트에 거주해 왔다. 할머니를 찾는 국내·외 손님맞이는 물론 간병인이나 자원봉사자가 머물 공간도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이에 대구시는 할머니가 건강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난해 9월 주거 지원을 위한 관련 조례를 개정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4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대구시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할머니가 다니시는 병원과 희움역사관에서 가까운 30평대 수성구 아파트(방 3개, 화장실 2개)를 마련했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2주간 전면 리모델링을 통해 새단장했다.현재 전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6명으로 대부분 공공임대주택, 쉼터, 개인주택 등 열악한 거주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아파트를 임대해 주거공간으로 제공한 사례는 대구시가 처음이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어려운 이웃 위해 써달라”…익명의 할머니, 대구시청에 돈 통투 전달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할머니기 불우이웃을 도와달라며 쌈지돈을 내어놓고 가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지난 23일 오전 10시30분께 주말이라 휴무인 대구시청에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근무 중이던 청원경찰은 어떻게 찾아 왔는지 묻자 할머니는 하얀색 봉투 하나를 꺼내들었다.“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으면 좋겠다”며 청원경찰에게 봉투를 건냈다.청원경찰은 할머니에게 담당 부서로 안내해 드릴 테니 직접 전달하기를 권했으나 “자신은 심부름으로 대신 온 것이다. 전달만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봉투 안에는 5만 원 지폐 74장이 노란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대구시는 할머니가 전한 성금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접수했다. 성금은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대구시 박재홍 복지국장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따뜻한 나눔을 전해주신 기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어려운 이웃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이용수 할머니, 30년 거주 임대아파트 떠나 새 거처로 옮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 할머니가 30년간 거주한 비좁은 공공임대아파트를 떠나 새 거처로 옮긴다.12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올해부터 대구시가 지원하는 새로운 주거공간에서 생활한다.지난해 9월 김성태 시의원(건설교통위원회·달서구)이 대표 발의한 ‘대구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개정된 조례는 위안부 피해자의 생활 안전 지원을 위해 주거공간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이 할머니는 30년간 달서구에 있는 39.6㎡ 크기 공공임대아파트에 살았다.시는 이 할머니가 거주할 아파트 전·월세 관련 예산 4억 원을 확보하고 적절한 아파트를 찾는 대로 집행할 계획이다.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중구 희움역사관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서 이 할머니를 모실 20∼30평형대 아파트를 물색하고 있다.대구시 관계자는 “이 할머니가 여생을 보낼 새 거처를 최대한 빨리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바닷물도 얼어붙었다. 소띠 해, 순하게 생긴 그의 코에도 얼음덩이가 달릴 만큼 엄청난 추위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 따스하고 향긋한 커피가 생각났다. 드라이브스루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뜨거운 음료를 한 모금씩 마셔가며 출근했다. 일과를 마치고 컵홀더에 꽂힌 커피가 눈에 들어와 목을 축이려 입에 댔다. 묵직한 것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거품까지 그대로 꽝꽝 얼어있는 것이 아닌가. 건물 바깥도 아니고 사람이 연방 드나드는 지하주차장, 그곳까지 냉동고 한파가 찾아든 모양이다. 이런 강추위를 뚫고서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이들, 그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무덤덤하게 대한 그들에게 새삼 미안해진다.평소 말없이 진료 마치면 눈인사만 하고 나가곤 하던 환자 보호자가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요즘, 월요일이 기다려져요”라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돼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글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면을 펼치며 그 면이 나와서 칼럼이 나오는 요일도 알아차렸다며 새로운 발견인양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몇 년 전 제목이 눈에 들어 살까 말까 고민하던 바로 그 책,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였다. 그녀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며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겠는가. 그러다 보니 그 책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것 같다.누군들 고민하고 살고 싶겠는가.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손에 쥔 모든 것을 놓고 훌훌 떠나게 되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를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 누구든지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고 전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주인공들을 힘들게 한 것은 사랑이었고,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죽을 날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은 지금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되면 고민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기 위해 분노한다. ‘나인 나’로 살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또 당당하게 마주한다.고민 없이 즐겁게 사는 방법, ‘나’를 인정하고 ‘나’로써 사는 것이라는 그녀들에게 한 수 배워본다. 고민이랑 훌훌 날려버리고 인생은 그냥, 즐겁게 사는 거야.새해 벽두 해외 뉴스를 장식한 것은 즐겁게 살아온 세계 최고령자의 이야기, 일본인 다나카 할머니가 118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뉴스였다. 후쿠오카시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그 할머니는 1903년에 태어났고 재작년 3월에 116세 66일의 나이로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 측으로부터 남녀 통틀어 생존한 세계 최고령자로 공인받았다. 일본 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인 연호로 따지면 메이지(明治)부터 현재의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까지 5개 시대에 걸쳐 살고 있다. 장수비결을 묻는 말에 “맛있는 것을 먹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목표 수명은 120세라며 앞으로 최소한 2년은 더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평소 체조로 몸을 움직이거나 두 사람이 하는 게임 등으로 소일하는 할머니는 식욕도 왕성해 좋아하는 초콜릿과 콜라를 즐긴다. 손자인 다나카 에이지(61)씨는 교도통신에 “코로나19 때문에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할머니께선 건강하시다. 매일 즐겁게 지내고 계셔 기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의 농가에서 9명의 형제 중 7번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19세 때에 결혼해 장남을 낳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남편과 장남이 징집된 후로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억척스럽게 살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남자 몸은 아니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몸도 마음도 남자처럼 돼 방아를 찧고 떡메질을 하는 등 뭐든지 할 수 있게 됐다”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1993년 90세가 된 남편과 사별 후 백내장(90세), 대장암(103세)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 지병은 없다고 한다. 올 5월로 예정된 후쿠오카 지역 성화 봉송 때 휠체어 타고 성화 봉송 주자로 할머니가 나설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태어난 해인 1903년은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1896년 불과 7년 뒤였고 도쿄에서 처음 올림픽이 개최된 1964년엔 그의 나이 61세였다. 장수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다나카 할머니의 성화 봉송을 추진하려는 눈치다. 할머니의 희망 여명이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어떤 강추위가 몰아쳐도 저 멀리서 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동지 지나면 하늘의 봄이 시작된다지 않은가. 그러니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

칠곡 할머니 글꼴, 국내 최초의 한글 전용 박물관에 선보여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칠곡 할머니 글꼴(폰트)이 국내 최초의 한글 전용 박물관에 전시된다.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은 5일부터 칠곡할머니 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하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또 칠곡 할머니 글꼴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제작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 책자를 비치하고 별도의 기획전도 가질 예정이다.군은 지난해 6월부터 지역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권안자(76)·김영분(74)·이원순(83)·이종희(87)·추유을(86) 할머니의 글씨체 폰트 개발을 시작해 최근 완료했다.글씨체 폰트는 한글 글꼴 5종과 영어 서체로 제작됐으며, 제작에 참여한 할머니들의 이름이 각각 붙었다.군은 할머니 글꼴 무료 배포에 이어, 축제 등 공식행사 현수막과 티셔츠, 홍보용품, 농산물 포장 디자인 등에 활용할 방침이다.또 휴대폰, 태블릿 PC 등의 모바일 환경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할머니 글꼴을 개발해 배포할 예정이다.김상석 우리한글박물관장은 “칠곡할머니 글꼴은 해방 이후 할머니들의 굴곡진 인생은 물론 성인문해교육 성과와 한글의 역사가 담겨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앞으로 박물관 관람객과 한글학회를 대상으로 칠곡 할머니 글꼴 홍보와 보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백선기 칠곡군수는 “할머니 글꼴이 한글 박물관에 전시돼 많은 분들에게 공개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어머니와 고향의 정이 가득 담겨있는 칠곡 할머니 글꼴을 통해 지역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연극 ‘돌아와요 미자씨’, 무대에 올려져

레트로 감성 코믹 연극 ‘돌아와요 미자씨’가 오는 11일부터 내년 3월14일까지 대구 남구 대명동 소극장 ‘아트벙커’ 무대에 올려진다.미자 할머니를 두고 벌어지는 두 할배의 쟁탈전이 코믹하게 그려진다.극단 창작플레이가 선보이는 이 연극은 황혼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온 미자 할머니와 그녀를 사랑했던 정호, 민수 할아버지가 벌이는 에피소드를 다뤘다.미자의 외면에도 더 열심히 고백하는 두 할배. 그러던 어느 날 미자가 사라지고, 할배들은 온 동네를 뒤지다 어렵사리 미자를 발견하는데….이 연극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스토리 구성으로 복고적인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 낸다. 또한 각 캐릭터들이 추구하는 사랑의 방식을 코믹하고 감동적인 매력으로 풀어낸다.극작과 연출은 김하나가 맡았으며, 창작플레이의 대표 배우들인 이창건, 박인경, 권성윤과 객원 배우인 윤규현, 강영은 등이 출연한다.창작플레이 정병수 대표는 “레트로적인 감성으로 젊은층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40대 이상의 관객들에게는 추억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연극 ‘돌아와요 미자씨’는 10세이상 관람할 수 있으며 전석 3만 원이다. 문의: 010-9260-3520.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