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인 전신경화증을 진단받았더라도, 유해물질에 지속·반복적으로 노출됐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가 유해인자 노출기준 미만이라는 이유로 직업성 질병을 부정하는 자료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19일 〈매일노동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는 차량용 금속프레임 제조회사의 생산관리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의 손을 들었다.A씨는 2009년에 생산관리자로써 도장·용접 공정을 관리하다가 8년이 흐른 2017년 '진행성 전신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전신경화증은 다기관 질환으로, 작은 혈관의 기능·구조 이상, 피부 및 내부 장기의 섬유화 등을 증상으로 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발병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요양 신청을 불승인했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 노출 기준 미만으로 확인돼 업무관련성에 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1심 "유해인자에 노출됐다고 평가 어렵다"2021년 2월, A씨는 소송을 냈다. A씨 측은 "약 8년간 도장·용접 등의 작업이 이뤄지는 곳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했으며, 작업자 결원 시 직접 도장 보조 작업과 주요 설비 유지·보수를 하며 유기용제에 상당 수준 노출됐다"며, "연장·야간 작업을 하며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실제로 A씨는 직접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현장 관리자라는 이유로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아 유기용제에 노출됐다. 또한 A씨는 하루 2시간씩 고정적으로 잔업했고, 매달 2번씩 토요일에 8시간 일했다.그러나 1심은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토대로 재판부는 "원고가 유해인자들에 상당 수준 노출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역학조사 당시 공정 설비 일부가 철거돼 직접 용접·도장 공정을 확인하지 못했는데도 과거 조사 결과를 근거로 판단했다.■2심 "작업환경측정 결과는 업무상 질병 판단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2심의 판단은 달랐다. "노출 기준 이하의 자료들은 측정이 이뤄진 당시의 작업환경을 나타낼 뿐", "원고가 근무했던 당시의 작업환경이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작업환경을 나타낼 수는 없다"며 판시했다.또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역학적 연구에서 유기용제 노출수준이나 노출량을 정량적 또는 객관적 지표를 이용해 제시한 경우는 거의 없다", "노출확률·노출강도·노출빈도 등 누적 노출점수의 부여도 객관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 항목의 점수도 다분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고 꼬집었다.더 나아가 "평소 관련성 있는 질환을 앓은 적 없던 만 38세의 원고가 상병 발벼와 의학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유기용제에 노출됐다"고 설명했다. 보호구 미지급과 장시간 노동도 지적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 임지운 변호사는 "작업환경측정 결과의 한계점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보고서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최미화 기자 choim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