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불편하니?”환자는 아무 말이 없다. 대신 보호자가 “이틀 전부터 기침 콧물 있고요, 목이 아프대요”라고 말했다.‘본인이 또 다른 증상이 있는지 얘기해줄래’라는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그러자 보호자가 “열은 없었고, 최근에 시험 때문인지 스트레스 많이 받고 소화도 잘 안된대요”라고 답변했다. 이어 “학생, 다른 불편한 데는 없어?”라고 묻자 환자는 “예, 엄마가 말씀하신대로요”라고 했다.환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고 보호자는 학생의 어머니다. 자주 오는 환자는 아니지만 평소에 병원 밖에서도 자주 마주치고 인사 정도는 나눈다. 몸집이 커서 얼핏 보면 거의 20대 중반으로 보이기도 한다.고등학교 3학년, 18살이니 본인이 충분히 의사표현을 하고 불편한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나이지만 보호자는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아이가 더 많은 정보를 자세하게 의사에게 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진료를 하는 의사도 시쳇말로 ‘후딱’ 끝내고 다음 환자를 보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리할 수 있지만, 보호자와 의사의 별로 크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이득으로 타협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의료의 본질이기도 하다.소아 진료를 보다보면 위와 같은 사례가 드물지 않다. 걷고 말하고, 또 남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소아 환자가 엄마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오면 아이는 그저 진료의자에 앉아있고 오로지 보호자와만 대화를 하게되는 상황이 그렇다.여기에는 몇가지 이해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첫째, 아이의 표현을 보호자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는 50이 넘은 자식도 ‘애’라지 않던가. 그저 증상을 더 잘 설명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된다.그러나 진료든 공부든 또는 그 밖의 어떤 활동이든 부모님들께는 조금 기다려 보시라는 권고를 드리고 싶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나중에 누굴 가르칠 때, 표현이 풍부하고 쉽고 정확하게 가르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해시키기 위해 아이의 두뇌는 (좋은 의미에서의) 풀가동을 한 결과일 것이다.둘째는 엄마 아빠가 모두 맞벌이로 바쁘고, 아이는 아이대로 늦지 않게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야하니 가급적 빨리 진료를 끝내고 싶은 것이다. 그 형편도 의사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세번째가 중요한데 아이의 증상이 그저 단순 감기나 그밖의 경증 질환일 것이라고 미리 예측 진단을 하고 온다는 것이다. 물론 동네의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환아는 주로 경증질환이라고 봐도 되지만, 중증질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1년여 전 운동을 안하고 툭하면 누워서 게임이나 하는데 가끔 숨차다는 얘길 듣고 보호자가 데리고 내원한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증상을 쉴 새 없이 얘기하면서 운동 좀 하도록 교육해달라는 당부까지 했다.아이에게 숨이 언제부터 찼는지, 걸을 때도 그런지, 흉통은 있는지, 밤에 숨이 차서 깨지는 않았는지 등을 물어보았는데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12세이던 환아가 갑자기 우는 것이었다. 본인은 운동하는 게 너무 힘들어 엄마가 운동하라고 내보낼 때마다 죽고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약 5~10분 가까이 본인의 증상을 설명하였는데 차트에 적듯 정확하고 충분하였고, 필자는 심질환이 의심되어 소아초음파를 볼 수 있는 병원에 의뢰하였다. 보호자로부터 해당 환아는 후에 심장판막질환으로 대구소재 대학병원에서 잘 조절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보자.내 아이가 본인의 증상을, 그것도 진료실이란 낯선 환경에서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 보다는 1분만 기다려 줘보자. 처음에는 ‘왜 우리 엄마(또는 아빠)는 나보고 하라하지?’라는 생각에 보호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겠지만, 몇 번만 반복하면 아이의 언어와 아이의 몸짓으로 충분히 증상이상의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모자라는 부분을 보호자가 추가해주면 되는데, 이는 병원 방문이 진료이자, 동시에 아이에게는 ‘자신감’과 ‘표현력’을 기르는 교육이 될 수도 있음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