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까지, 대구신세계갤러리에서 열려
마치 분필로 그은 것처럼 섬세한 흔적이 드러난다. 긁어낸 흔적이다. 광목천 위에다 기름기를 최대한 덜어낸 다양한 색의 유화물감을 덧칠한 뒤, 못이나 면도날,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긁어내는 일을 반복해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내면과 마주하는 수행처럼 느낀다고 설명한다.한국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오세열 화백 초대전이 대구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린다.오는 2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대구신세계갤러리가 쇼움갤러리(관장 김수현)와 함께 기획한 특별전이다.오 화백의 초기작에서부터 최근 신작까지 총 망라한 대표작 30여 점과 영상 아카이브가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지역에서는 처음 열리는 기획전이다.작가의 60여 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 배경이나 시기적으로 변화해 온 화풍의 변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다.1945년에 태어난 오세열 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격동의 대한민국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아련한 기억 속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특히 어린 아이의 낙서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나 기호, 여러 가지 사물 등을 통해 우리의 삶과 흔적들을 뒤돌아보게 한다.작가는 어린 시절 학교나 소꿉놀이에서 사용했던 것들을 캔버스에 옮겨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숟가락, 밥그릇, 단추, 넥타이, 들꽃, 새, 숫자 등 우리의 생활과 익숙한 사물과 숫자는 작가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나 느낌을 압축한 것이다.작가의 작품은 거친 표면 처리와 두드러진 마띠에르가 특징이다. 무수한 층의 물감을 반복적으로 긁어낸 작업은 내면에 깔려 있는 세계를 찾기 위한 작가의 정신 세계이며, 기억 저 편 동심에 머물고 있는 구도자의 몸짓이다.또한 캔버스를 거칠게 가득 채운 반복되는 숫자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기호이기도 하다.전시 작품의 또 다른 주제인 인물상은 두상을 강조한 전신상으로 이집트 피라미드 미술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눈에 보이는 모습대로 그리지 않고 그 대상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모습으로 형상을 왜곡, 해체, 재구성해 그 내용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게 갤러리 관계자의 설명이다.대구신세계갤러리 김유라 큐레이터는 “정물과 인물에서 출발해 반추상과 추상 그리고 낙서하듯 벽면을 거칠게 긁어낸 1980년대의 암시적 추상, 이후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기호와 숫자를 바탕으로 하는 기호학적 추상 작품 등 작가의 시기별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이번 전시의 묘미”라고 했다.서라벌예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화풍으로 유명하다.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대전시립미술관, 국회의사당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현재 목원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이번 전시를 기획한 쇼움갤러리 김수현 관장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동심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한편 이번 오세열 화백 초대전은 대구신세계갤러리 전시 이후 이달 25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는 쇼움갤러리에서 계속 된다. 문의: 053-661-1508.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