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도 지났고, 이제 송구영신을 선포하는 서울 보신각의 종소리가 울릴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나에게는 은퇴를 통해 백조라는 새로운 신분을 획득한 해이기도 하고, 이 칼럼을 쓰면서 지나온 나의 인연을 되돌아보게 된 해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 학교에서만 보내다가 이제 은퇴를 하니 “시원섭섭하시죠?”라는 질문이었다. 은퇴 후의 삶은 또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그리고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까지 기대한다.반전이 없으면 재미도 없으니, “저는 시원만 합니다.”라고 말한다. 긴 세월 머물렀던 나의 연구실과 교정, 동료 교수님들, 출퇴근길의 봄꽃과 가을 단풍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수업시간이 끝났다고 울리는 종소리를 싫어하는 분은 없으리라. 나는 나의 은퇴를 수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그 신호로 받아들였다. ‘아, 한 시간짜리 수업이 아니라 내 생의 모든 수업시간이 이제 끝났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니 출석부를 들고 교재를 챙기며 다음 시간을 기약하는 대신 학기 말 수업처럼 “긴 방학 잘 지내세요.” 하고 돌아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시원하다고 한 것 같다.섭섭지 않다고 한 것은 미련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가르치는 즐거움이나 만나는 기쁨도 가질 만큼, 누릴 만큼 다 한듯하다. 떠나온 사람은 다시 만나면 될 것이다. 퇴직과 이어진 자연스러운 이별 대신 카톡이나 전화라는 현대과학의 힘을 빌면 더 애틋한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평생 해왔던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학생들 앞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른 채널을 구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특별한 지식도 아닌데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봉사하면 그만이다.그런데도 미안함과 아쉬움은 남는다. 한해를 돌아보며 시원섭섭함이 아닌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나의 지난 한 해를 정리하기로 했다. 나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고, 옛 제자가 일부러 찾아온 수업에서 공정과 평등이라며 구태여 C를 주어 배신감을 안겨준 것도 미안하다. 나를 도와주려고 애쓴 사람에게 무심했거나 오해했던 일도 지금에 와서야 보이고 알게 되니 참으로 미안하다. 나의 부족함이나 잘못된 행동에 대상이 있어서 미안하다. 어렵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그 인연을 회복할 기회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하지만 아쉬움은 또 다른 것이어서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이나 관계에서, 일이나 성취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고, 그때는 최선이라고 한 행동이었지만, 다른 방법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니 그게 아쉬운 것이다. 나의 힘으로 불가능한 큰 능력이나 큰돈이 아니라, 생각의 전환이나 조금만 더 부지런했으면 달라졌을 소소하고도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일들에서 아쉬움이 생긴다.나의 감각 기능이 저하되고 약해지니, 젊은 시절 더 많은 책을 읽지 않은 것, 더 많은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 더 많은 여행을 다니지 못한 것, 더 치아 건강에 힘쓰지 않은 것, 큰돈 들이지 않고도 예쁘게 집치장하는 것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그런 자질구레하면서도 갑자기 키워지지도 않는 미적 감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집 앞 소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어 불을 밝혀보리라 했는데 20년째 벼르기만 했으니 그 또한 아쉽다.시간이 나면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짐과 실행이란 더 힘든 미션이 남은 것 같다. 마침 종인 줄 알았는데, 다음 미션을 알리는 종소리였나 보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