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수도권 주요 4개 오케스트라가 정기연주회에서 한 번씩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하였을 뿐 아니라 대구시립교향악단도 지난 8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KBS교향악단은 더 나아가 12월 이틀에 걸쳐 기획공연 시리즈인 ‘마스터즈’를 통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1~4번 전곡을 연주하면서 실황 중계하였다.라흐마니노프는 음악사적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국내 클래식 대중들이 많이 사랑하는 음악가로 꼽힌다. 그도 교향곡 1번의 실패와 사촌과의 결혼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비난으로 심한 우울증에 걸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는 니콜라이 달 박사의 ‘자기 암시 치료’를 받고 교향곡 2번을 작곡해 완전히 재기했으며, 이 곡을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했다. 또한 라흐마니노프는 손가락을 완전히 펼치면 대략 30cm 정도의 길이가 되었고 키가 무척 커서 마르판 증후군을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질환은 거미의 다리 모양처럼 긴 손가락과 발가락, 관절의 과신전, 큰 키, 눈의 수정체 이탈, 근시, 망막 박리, 녹내장, 백내장, 심장 대동맥의 확장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결체조직질환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그의 곡 대부분이 슬픔과 한의 정서를 기반에 깔고 있어서 한국인의 정서와도 맞아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가이기도 하다.2021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클래식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로 조사되었다. 이 곡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베토벤의 난청이 심해지면서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나폴레옹군의 빈 정복으로 그의 열렬한 후원자인 루돌프대공이 빈을 떠났을 때에 작곡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이 그들의 음악을 더욱 사랑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많은 의사들이 클래식 음악에 몰입하고 위로를 받는 이유라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지난 12월 1일 대구 남성 합창단의 37회 정기 연주회가 대구 콘서트하우스 그랜드 홀에서 열렸는데, 많은 단원들과 후원자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의사들이었다. 30명의 단원들이 성가곡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곡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맞는 경쾌한 곡들을 코믹한 제스처와 함께 연주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었다. 남성만의 합창은 혼성 합창과는 또 다른 깊이와 울림이 있었다. 그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시내의 조그만한 심장내과 전문의원인 김윤년내과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가 지난 16일 열렸다. 대부분 동산의료원의 교수 중창단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퇴임 후에 개원을 하거나 봉직의로 있으면서 한 달에 한번씩 모여 연습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호흡을 맞추었다. 진료 틈틈히 까다로운 부분을 연습하고 외우려고 노력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빨간색과 녹색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9명의 단원이 무대에 섰다. 숨을 쉴 수 있는 동안 노래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단장의 인사와 함께 준비된 5곡의 중창과 독창, 클래식 기타연주 그리고 에어로폰 솔로 특별연주까지 50분간 진행된 음악회는 60여명 가족들의 응원과 환호를 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미래학자 브래들리 셔먼은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것을 ‘초고령화’라는 용어 대신 ‘수퍼 에이지(Super Age) 시대’라고 명명하고 이 ‘수퍼 에이지 세대’가 MZ세대를 능가하는 신(新)소비 권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인구 고령화가 신산업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발상 전환으로 ‘엘더노믹스’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근로 수명 연장만이 답이며, 노인의 노동력을 연장하고, 로봇을 활용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의 질병과 어려움이 더 깊은 음악의 세계를 연 것 처럼, 나이 든 꼰대가 아니라 열정적인 슈퍼 에이지로 인해 이 사회가 더 활성화되고 따듯한 온정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한다.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대학교 명예교수)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