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는 낯선 이방인들에게 볼거리 천지다. 밤하늘에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천문우주센터는 청소년들의 공부방인 동시에 놀이터로 충분하다.
드라마, 영화 촬영지인 금당실 전통마을과 초간정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부족함이 없다. 육지속의 섬마을인 회룡포, 700리 낙동강변에 유일하게 남은 삼강주막, 천년고찰 용문사, 세금 내는 나무로 유명한 석송령도 예천의 자랑이다.
# 천문우주과학 문화센터
예천시내에서 영주방면으로 가다보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천문학의 발달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예천 천문우주과학문화센터가 나타난다.
별 천문대는 밤에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별(4등급이상)을 대낮에도 관측 할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천체망원경과 플라네타리움, 전시실 강당을 갖추고 있다. 100여명이 동시에 체류할 수 있는 숙소도 보유하고 있다.
천문학사 소공원은 7만5천㎡의 잔디동산에 별자리가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복원품을 비롯해 태양계 행성모형, 첨성대와 관측자 모형, 뉴턴과 사과나무 언덕, 동서양의 해시계와 관측기기 등이 전시돼 있다. 휴게식당, 야외공연장, 어린이놀이터 등 각종 편의시설도 두루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주에 가지 않고도 우주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예천우주환경체험관은 ‘로켓을 타고 지구를 떠나(가변중력), 우주공간에 도착한 후(무중력 적응), 달에 착륙하여 활동(월면보행)’하는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서 4층은 각 층별로 실제 우주비행사들이 받는 가변중력발생기, 무중력 적응 훈련기, 월면 보행기와 입체 영상에 따라 움직이고 바람과 물 등이 환경에 맞게 뿜어 나오는 4D 시뮬레이터가 설치될 계획이다. 5층에는 옥상정원이 설치되고, 60m 높이의 타워에는 천체관측실과 사방이 유리로 이루어져 관람객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전망대와 휴게실이 설치돼 마치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설계돼 있다.
어린이용의 작은 기기들이 아닌 실제 훈련용 등급의 장비로 우주여행을 떠나는 체험활동도 진행되고, 여가와 문화생활의 장으로 활용될 예천 우주환경체험관은 전국에서 제일가는 명소가 될 전망이다.
감천면의 석송령(천연기념물 제 294호)은 수령 600세로 황목근의 형뻘 된다. 토지대장에 자신의 이름으로 땅 6천여㎡를 등재해 놓고 있다. 1년에 1만여 원가량 세금을 내며 석송령보존회에서 대납해 주고 있다.
#금당실 전통마을과 초간정, 용문사
예천에서 용문면 방면으로 따라서 가면 용문면금당실 마을이 있다. 금당실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으로 정감록에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마을 전체가 영화, 드라마 세트장이나 다름없다. 2003년 ‘영어완전정복’, 2004년 ‘나의결혼원정기’, 2006년 ‘그해여름’,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황진이’가 이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무덤과 조선 숙종때 도승지 김빈을 모신 반송재고택 등 옛 건물 20채를 비롯, 십수년 전 우리 농촌의 정겨운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금당실은 마을 지형이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고택과 구불구불 얽히고설킨 돌담길이 시선을 끈다. 돌담 길이만 7.4㎞에 달하며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골목에서 길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마을 주민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골목골목이 모두 비슷하다.
마을의 매력은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반상의 문화가 공존했던 마을의 특성을 살려 올 4월부터 다양한 고택민박과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초간정(草澗停∙문화재자료 제 143호)은 용문면 원류마을 앞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경승지에 우뚝 서 있는 건물로 조선 선조 15년에 초간 권문해(1534~1591)선생이 건립한 ‘초간정사’다.
초간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보물 제 878호)’을 편찬한 퇴계 문하의 학자 출신으로, 당시 건물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중 소실됐으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현손이 세운 것이다. 당시는 석조헌, 화수헌, 백승각을 함께 세웠으나 지금은 현판만 남아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4면은 누간으로 구성돼 있다.
용문사는 용문면 내지리의 산세가 수려하고 울창한 수림이 운치를 더해 주는 천년 고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직지사 말사인 용문사는 신라 48대 경문왕 10년(870) 두운조사에 의해 개창됐지만 이후 고려시대 들어 더욱 번창, 대가람을 형성하게 됐다.
‘중수용문사기’나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두운조사가 산의 동구에 이르렀을 때 산정상의 바위 위에서 용이 나타나 영접했다고 해서 용문사라 불렀으며 창건 도중 16냥이나 되는 은병을 캐내 절의 공사비로 충당했다는 이적이 있었다고 한다.
1천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용문사에는 국보급 문화재도 많다. 대장전을 비롯해 회전식 장경각인 윤장대, 목각탱화 및 목각삼존불, 왕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세조의 교지 등이 보물 및 문화재 자료로 보전돼 있다. 또 61년 전 이곳에서 대강백으로 엄풍을 드높였던 안진오 스님이 만든 ‘석문의범’은 우리나라 불교계의 염불 및 의식의 근간을 이룬 큰 업적으로 용문사 강원이 당대에 차지했던 위상을 말해준다.
#회룡포, 장안사, 황목근, 삼강주막
경북 봉화군 북쪽 선달산과 옥석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제 1지류 내성천이 영주와 안동 등지를 지나 남쪽을 향해 흐르다 예천으로 접어든다.
난데없이 앞길을 막아선 예천의 명산 비룡산에 부딪친 내성천이 350도 태극무늬 모양으로 돌아나가며 거대한 모래사장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마을을 하나 얹어 놓은 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물돌이동이라 평가받고 있는 ‘회룡포(回龍浦)’다.
말 그대로 비룡산을 부여잡은 용이 몸을 외로 꼬며 돌아나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내성천과 회룡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경남 기장, 황해도 개성, 예천 등에 세운 같은 이름의 절집 3곳 중 1곳이다.
고려시대에는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絶唱)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회룡포 마을 주민 수는 현재 20명 정도. 우리 농촌이 그렇듯 55세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경주 김씨 동성만 모여 사는 것이 이채롭다.
회룡포 인근 금남리 금원마을에는 세금 내는 팽나무가 있다. ‘황목근’(黃木根)이란 어엿한 이름도 갖고 있다.
5월이면 누런 꽃을 피운다 해서 성이 ‘황’이며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무려 1만2천899㎡나 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부자나무로, 나이는 500세 안팎으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제 400호로 지정돼 있다. 황목근 보존회에서 대납의 형태로 1년에 9000원 가량의 종합토지세를 낸다.
회룡포를 돌아본 후 풍양면 삼강리의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인‘삼강(三江)주막’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700리 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이다. 190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 삼강의 합수머리에 있다고 해서 ‘삼강주막’으로 불린다. 이 시대 마지막 ‘주모’인 유옥연 할머니가 지난 2005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덩그러니 빈집으로 남았다.
고 유옥연 할머니는 16살 되던 1932년 이 마을 배봉송(50년 전 작고)씨와 혼인한 뒤 70여 년간 주막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200년 된 회화나무가 굽어보고 있는 삼강주막은 방 2개에 흙바람 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수많은 과객들이 발냄새를 풍기며 잠을 청했을 봉놋방, 장정 예닐곱이 앉아 술추렴했을 마루, 주모가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방, 시커먼 검뎅이가 묻은 부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삼강주막으로 진입하는 암거 박스의 벽 280㎡에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해 금의환향하는 모습의 벽화가 오는 15일 첫 선을 보인다.
예천=권용갑기자 kok9073@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