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스 앞에서/하수미

나아갈 수도, 피할 수도,/뛰어넘을 수도 없는/굴포스/그곳에선 걸음을 멈춰야 한다//옷깃에 촉촉이 내려앉은/살아낸 시간들//저기,/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한 치의 머뭇거림 절벽 위엔 없는데//왜 이리 부끄러운가/주저했던 그 시간이//다가올 시간이 노쇠할까 두려우면/굴포스를 감싼 물구름을 바라보라//추락이 만든 시간길도/황금빛으로 물든다「다층」(2020, 여름호)하수미 시인은 경남 마산 출생으로 2019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삶 속에서 이따금 여행이 이뤄진다. 여행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더구나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여행은 늘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여행지에서 얻은 시상은 시로 생산되기가 쉽지 않지만 ‘굴포스 앞에서’는 그것을 뛰어넘은 좋은 기행시다. Gullfoss는 황금빛 폭포라는 뜻을 가진 아이슬란드에 있는 폭포다. 폭포 앞에서 시의 화자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면서 그 소회를 세 수의 시조로 담고 있다. 이 시조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중심 뼈대와 같은 구실을 하는 시어로 시간이 주목된다. 각 수에서 한 번씩 쓰인 것으로 볼 때 화자는 굴포스라는 폭포 앞에서 제한된 시공간 속의 존재인 자아를 마음 속 깊이 보듬어 본 듯하다. 누구든지 한계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자연의 위용을 우러러보는 중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생각하며,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의 시간을 가질 만도 하다. 그래서 나아갈 수도 피할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굴포스 그곳에서는 걸음을 멈춰야 한다, 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실로 다른 도리가 없다. 옷깃에 촉촉이 내려앉은 살아낸 시간을 살피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화자는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한 치의 머뭇거림이 절벽 위에 없는 것을 보면서 왜 이리 부끄러운가 하고 주저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어서 다가올 시간이 노쇠할까 두려우면 굴포스를 감싼 물구름을 바라보라, 라고 강권한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은 눈길을 물구름 쪽으로 향할 것이다. 추락이 만든 시간길도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인생살이가 꼭 슬픔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자각에 이르지 않았을까. 시간의 길 위를 무한정 가고 있는 인생의 항로에서 때로 굴포스와 같은 경이적인 풍광과 맞닥뜨릴 때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기대되는 것이다. 기행시도 얼마든지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굴포스 앞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인생살이와 잘 접목했기 때문이다.시인은 또한 뜻밖의 정경과 마주한 것을 ‘정원에서’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때를 놓친 건 게으름이 아니란 걸, 때가 오면 모든 것 걸어야만 한다고 순간에 절명을 알아차린 겨울에 핀 흰 장미 이야기다. 미적 정황 묘사가 돋보인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이다. 스케일이 느껴지는 ‘굴포스 앞에서’와 같은 시 세계를 추구하면서 소소한 풍경에서 비롯된 도저한 정신세계를 천착하는 일에도 더욱 힘썼으면 한다. 단시조 ‘밤벚꽃’에서 더 기다릴 수 없어 터뜨린 하얀 꽃잎에 하루 밤새 화들짝 달빛도 놀라는 것을 보면서 한 번에 무너져 내릴 버거운 환희를 떠올리는 감수성이라면 앞으로의 문학적 행보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일이다.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때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저자전전에 한동안 떠돌았던 별의 순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시인에게 별의 순간은 언제인가? 바로 시가 찾아오는 때다. 어떻게 하든지 내 앞의 시, 내 목전에 나타난 시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한시도 시에서 떠날 수 없는 ‘쓰는 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이정환(시조 시인)

막걸리 한잔

손동섭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가수 강진의 ‘막걸리 한잔’)가수 영탁은 강진의 ‘막걸리 한잔’을 트로트 방송에서 부르면서 현재 유튜브 조회수 2천543만회를 기록하며 막걸리 업체 광고까지 찍게 됐고 막걸리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으리라. 막걸리 한 되박 사서 돌아오는 길에 호기심 발동해 노란 양은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막걸리 몇 모금 마시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심부름한 것을 기억한다.퇴직 후 소일거리로 막걸리를 빚어서 지인들과 즐거운 자리를 마련하려고 서울에서 근무할 적에 전통주 학원을 다녔다. 4년간 틈만 나면 집에서 막걸리를 빚었더니 이젠 제법 맛이 괜찮다는 지인들의 평가와 술도가 차려서 사업하자는 지인도 있어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가끔씩 들르는 처남과 처제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김치냉장고부터 뒤진다. 애지중지 하는 삼양주 술단지를 보관해 둔 김치냉장고에서 통째로 끄집어내서 밤새 비워버리곤 한다. 아파트 특성상 고두밥 찌는 게 한계여서 한번에 많은 술을 빚을 수가 없어 지인들에게만 살짝 맛보기로 주는 아끼는 술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내가 빚은 술맛을 인정해 줘서.막걸리는 발효시키는 횟수에 따라서 단양주(單釀酒),이양주(二釀酒),삼양주(三釀酒)로 구분한다. 누룩과 고두밥을 한번에 발효시키는 단양주는 대부분의 시중 막걸리이며, 누룩을 한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 다음에 고두밥을 넣어 빚는 것을 이양주, 삼양주는 이양주 방식에서 밑술을 한 번 더 투입하는 것으로 맛과 향을 최고로 꼽는 그야말로 명품주이며, 알콜 도수가 대략 16정도이다.물을 첨가하면 도수를 조절할 수 있으며 단양주는 통상 4~5일, 이양주는 5주, 삼양주는 18주가 소요된다. 술의 양은 맵쌀을 기준으로 1㎏에 막걸리 한 병 정도 생산된다.얼마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서 ‘인생막걸리’라고 올린 술을 소개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 번이나 취했고 막걸리 한 병 출고가 11만 원이며 일명 롤스로이스라는 애칭이 붙은 전남 해남의 해창막걸리다.이 술이 바로 삼양주 일 것이다.일체의 첨가물 없이 오로지 국내산 쌀, 누룩과 물로만 빚어서 프리미엄급 막걸리임에는 분명하다. 그야말로 최고급 막걸리이다.문화재청은 지난 달 ‘막걸리 빚기 문화’를 신규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이는 막걸리를 빚는 작업과 생업 및 의례, 전통 생활관습을 포괄한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 무형문화재가 된다는 의미다.2000년 이후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등장했고 자가 제조도 증가하는 추세에 ‘막걸리 빚기 문화’의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은 막걸리 열풍을 다시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막걸리는 어떤 재료를 섞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표현할 수 있다. 재료에 따라서 제주 한라봉막걸리, 가평 잣막걸리, 공주 밤막걸리, 강릉 옥수수막걸리, 문경 오미자막걸리 등이 시중에 선보이고 있다.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원재료로 이용해 빚어내는 막걸리와 맛깔난 먹거리,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풍광, 역사유적 등과 연계된 체험관광은 국내외 관광객을 유혹하는 관광거점으로도 톡톡히 역할을 할 수 있다.특히 대구·경북지역은 많은 역사유적과 더불어 다양한 과실류가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어 다양한 소비자 기호에 부응한 막걸리를 빚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원재료로 빚은 막걸리가 지역 맛집, 관광콘텐츠와 연계해 농촌융복합산업(6차산업화)에 한 축이 됐으면 한다.내일은 어버이날이다. 직접 빚은 막걸리로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드려야지.‘막걸리 한잔’ 노래를 읊조리며!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부작용 우려된다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블라인드가 직장 내부 고발 창구로 바뀌어 활용되면서 공직 사회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직장 내부의 비리 폭로와 고발 등 악용 사례가 적잖아 조직 문화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익명 커뮤니티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빌미로 건전한 조직 풍토를 해치는 경우는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최근 직장인 사회에서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Blind)’가 활발하다. 한국인이 만든 앱으로서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용자는 2020년 기준 415만 명으로 이 중 320만 명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 인증만 거치면 게시물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때 개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블라인드는 익명 게시판의 특성상 허위 정보, 선동, 마녀사냥, 사내 성희롱이나 타인이나 타사에 대한 비방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블라인드가 직장의 내부 고발 창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불법 토지취득 사건도 블라인드를 통해 알려졌다.최근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예전에 발생한 문제가 블라인드에 게시돼 홍역을 치렀다고 한다. 처벌과 사후 처리까지 끝난 몰래카메라 사건과 한 고위 간부의 성희롱 폭로가 소환돼 논란이 됐다. 일부 기초 지자체의 경우 인사 불공정을 폭로하기도 했다. 회식 때는 여직원 옆에 앉는 것을 기피하는 사례가 일상화됐다.이에 지역 공직사회에서는 자칫 블라인드에 글이 게시돼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무책임한 폭로의 파장이 걱정되는 부분이다.내부 폭로는 간부와 직원 등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직장 내 악성 폭로와 고발로 인한 스트레스로 병원 상담과 우울증 치료를 받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경우도 발생한다.블라인드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젊은 직원들의 적극적인 동료 평가가 철 밥통과 양심 불량 직원을 걸러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블라인드의 건전한 내부 소통 통로로서의 역할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분별한 익명 폭로와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는 자제돼야 한다. 악의적인 평가와 고발은 자제하는 문화가 형성되도록 가입자 모두가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직장 내부에서도 인성교육 강화 등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문명의 이기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긍정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박준우 시시비비/ 대구·경북 청년들은 어떤 꿈을 꿀까

요즘 20·30세대를 보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건 하는 자유분방함과 그 기발함은 우리 세대와는 다른 에너지를 보는 듯해 기분이 좋지만, 어느 세대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현실은 지켜보기가 안타깝다. 오죽하면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 낳아 가정 꾸리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조차 지금의 20·30세대들에겐 스스로가 얘기하듯 ‘야무진 희망’이 됐을까.최근 발표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대구지방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한 사람 중에 20, 30대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월별로는 2020년 12월 6.9%에서 2021년 1월 7.5%, 2월 8.0%, 3월 10.5%로 증가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개인파산 신청은 사업하다 실패한 중장년층이 많이들 한다고 알고 있는 상식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현상이다. 가상화폐나 주식 시장에 올인하는 청년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치솟는 집값과 이에 못 따라가는 급여 등 답답한 현실에서 오는 미래의 불안감과 절박함이 혹여라도 청년들을 이런 투기판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대구·경북에서도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연루자가 늘어나고 있다. 애초 의혹이 제기됐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임직원 외에도 일반시민, 공직자, 정치인 등으로까지 그 대상자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수사기관에 불려갈는지 걱정스럽다.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할 시기에 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 청년들이나, 세상 물정에 너무 밝아 돈 버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진 중장년층이나 모두 돈만 벌 수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세태가 반영된 듯해 기분이 씁쓰레하다.최근 대구상공회의소가 지역의 제조업체 160곳과 건설업체 50곳 등 210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2/4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 제조업체들은 2분기에는 경기가 지금보다 나아질 거로 전망했다 한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이번 2분기 BSI 지수는 2014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 한다.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도 또 덩달아 걱정도 생긴다. 경기가 좋아져 일감이 늘어나게 되면 기업들은 그만큼 인력을 더 채용하게 될 텐데, 이게 과거 경험상 지역에서는 반드시 좋기만 한 건 아니더란 말이다. 문제는 눈높이에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지역 기업들은 꽤 오랫동안 급여나 복지 수준이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아무리 기업이 채용 규모를 늘린다 한들 청년 일자리가 는다고 평가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사실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는 어제오늘이나 특정 분야만의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현상이 산업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심각하고 더 큰 문제일 것이다.보도에 따르면 국내 IT업계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구의 관련 기업들은 특수를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애를 먹는다고 한다. 경력이 좀 되는 쓸 만한 직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이나 수도권 기업으로 떠나면서,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기업들이 있는 일감조차 쳐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규 인력을 채용하려고 해도 대학을 갓 나온 관련학과 졸업생들은 지역 기업은 아예 외면한다는 것이다.카카오, 넥슨, 크래프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에 취업하게 되면 높은 연봉 외에도 최신정보 접근성, 고급기술 습득 기회 등 다양한 이점이 따라오는 현실에서 지역 기업들이 채용 시장에서 수도권 기업들과 경쟁하는 건 애당초 꿈도 못 꿀 일이란 것이다.지금 대구·경북의 청년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돈 되는 것이면 뭐든 하는 기성세대들의 행동을 보면서, 또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든 지역의 현실을 몸으로 부대껴 가면서 과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역의 기성세대들은 지금 이곳에서 그들이 어떤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게 그 토대라도 닦아주고 있는가.

먼 북소리/ 윤장근

~ 예술이냐, 사랑이냐 ~…처연한 남도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한녹주의 춤사위가 눈에 아른거린다. 살풀이춤의 부드러운 춤사위가 절절하다. 움직이는 듯 멈추는 듯 들어 올리는 바람결 같은 몸놀림은 일품이다. 스물에 입문하여 이십여 년 동안 민속무를 고수해온 집념의 결실일 것이다. 그녀의 춤엔 신선한 신비감마저 묻어난다. 오묘한 춤사위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무용계에 정통한 오규태로부터 한녹주의 내밀한 사연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오규태는 예술성 짙은 고유의 춤 도살풀이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나는 한녹주에 관심을 두고서 석운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놨다. 그는 그제야 석운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보남에게서 민속춤을 전수받은 석운은 괴팍하긴 했지만 희대의 명인이었다. 한녹주는 석운의 문하로 들어가서 민속무를 익혀갔다. 장고장단을 익히고 춤을 공부했다. 조금만 잘못해도 장고채로 얻어맞았다. 한해가 가자 요란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유연한 춤사위가 풀려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수 정수관이 나타났다. 그의 북 솜씨는 뛰어났다. 그날부터 그는 석운 도량에서 북을 쳤다. 한녹주는 처음에는 북소리에 관심이 없었으나 점점 애절한 듯 쓸쓸한 북소리에 매료돼갔다. 정수관의 눈빛이 심상찮게 변하자 북소리마저 그녀 마음을 흩트려 놓았다. 그해 가을, 정수관은 석운에게 한녹주와 함께 떠나도록 허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석운은 단호히 거절했다. 정수관은 거듭 간청했으나 스승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후, 정수관은 환상적인 북소리만 남긴 채 홀연히 떠나갔다. 한녹주는 정수관과 그 북소리를 잊으려고 춤에 더욱 집중했지만 틈만 나면 그 환영이 비집고 들어왔다. 석운은 그 마음을 읽은 듯 한때의 헛된 마음으로 명인의 길을 그르쳐선 안 된다고 타일렀다. 한녹주는 떠나고자 하는 내면의 소리와 명인의 길을 가야한다는 스승의 당부 사이에서 고뇌하였다. 결국 그녀는 명인의 길을 택했다. 한녹주는 석운에게 삼년을 배운 후 성홍심에게 갔다. 그의 춤은 석운과 또 달랐다. 성홍심에게 한해를 머물면서 한이 담긴 특유의 춤을 완성했다. 스물 셋이었다./ 이윽고 한녹주의 춤에 깃든 사무친 애원성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혼을 빼고 몸으로만 추는 춤은 춤 시늉일 뿐이다. 창작을 하더라도 내면에서 우러나는 영혼을 춤사위에 실어야 할 터다. 정수관은 살 의욕을 잃고 여기저기 떠돌다 남원에서 죽었다. 진나라 거문고 명인 사광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광은 기녀의 교태에 빠져 현묘한 가락을 잃어버리지만 어리석음을 깨닫고 쑥불로 두 눈을 지져버린 후 마침내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고사다.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기분이다.…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한녹주는 춤과 사랑의 갈림길에서 고뇌하지만 결국 예술의 길을 택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민속무의 명인으로 우뚝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눈물을 흘리며 포기한 사랑이 춤사위 속에 녹아들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롭고 독특한 민속무를 완성한다. 현명한 스승의 결단이 잔인하다. 절절한 북소리의 울림이 춤 명인의 길을 막는다는 두려움에서 두 연인의 사랑을 갈라놓은 셈. 고수와 춤꾼의 기구한 슬픈 사연이 가슴을 저민다. 세월이 지나면 가지 않은 길에 연연해하겠지만 그 어떤 선택도 인간의 미련을 해소해주진 못한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온다.오철환(문인)

‘이건희 컬렉션’ 환원…문화기부 확산 계기로

이승익대구문화재단 대표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들이 대규모 사회기부 계획을 밝혔다. 감염병 퇴치와 어린이 난치병 치료비 등으로 1조 원을 내놓기로 한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을 국민 품에 내놓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이 평생 모은 국내외 명작 2만 3천여 점을 조건 없이 기증한 것 못지않게, 법인출연 같은 우회 수단이 아닌 직접기증 방식을 택한 것도 일반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기증 작품 가운데는 모네와 고갱, 피카소부터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작가들의 걸작과 청자, 백자 등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명작이 두루 포함돼 있다. 굳이 따진다면 시가 감정 총액이 2조~3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절로 입이 벌어진다.이 덕분에 대구미술 선구자 여덟 작가, 21점이 대구로 온다니 지역 문화예술계로서도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은 작품이 대구미술관에 기증되기를 바라던 시민들 입장에선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인성, 이쾌대, 서진달 등 지역 작가들의 수작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구미술관은 지역작가 컬렉션을 보다 충실히 구성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동시에 관련 학계에서도 지역 미술사 연구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이 작품들이 대구로 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물론 일부에서는 이를 달리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은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이 회장이 남다른 안목으로 국내외 명작들을 수집해 기증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구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델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아가 이번 기부는 다른 많은 기업인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우리사회에 문화기부 운동에 눈을 돌리게 하는 등 긍정적인 후방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일제 강점기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재를 털어서 국보급 문화재와 예술작품을 지켜냄으로써 우리 자긍심을 높였듯이, 이번 사례 또한 세계수준의 문화예술 작품은 소장자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산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최근에 대구예술발전소에 문을 연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에 기증된 각종 자료 수집과정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기 충분하다. 수집작품 가운데는 1950~1960년대 대구 예술가들이 파블로 카잘스, 레너드 번스타인 등 해외 유명 예술인들과 교류한 전보와 편지 등 귀한 자료가 1천여 점이나 된다. 6·25 전쟁 포화 속에서도 예술의 꽃을 피우던 대구 소식을 전한 미국 음악잡지 ‘에튀드’ 기사 원본도 전시돼 있다. 이경희, 이필동 선생 같은 작고 예술인 유족과 원로 예술인들이 오랫동안 보관해 오던 자료도 부지기수다. 이사를 하거나 유품 정리 과정에서 버렸을 법한 각종 자료를 고이 보관해 오다가 아카이브 조성 취지에 공감해 조건 없이 내어 놓은 소장자들의 문화예술 사랑의 결과물이다.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 수장고’ 개관식에서 만난 지역 오페라운동 선구자 고 이점희 선생 유족은 “선친이 그토록 아끼던 자료를 시민들에게 내어 놓을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그렇지만 어른이 남기신 자료 가운데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폐기한 게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귀중한 자료를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오다 기증한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그는 정작 문화예술 자료는 공공자산인데 모두 고스란히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스스로를 낮췄다. 고 이건희 회장과는 다른 또 하나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문화재와 미술품을 상속세로 낼 수 있는 물납제 도입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더 많은 소장자들이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문화예술이 곧 국가와 도시 경쟁력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건희 컬렉션’ 사회 환원 발표에 이어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조성에 힘을 보탠 향토 예술인과 그 가족들의 훈훈한 소식이 시민들의 예술사랑과 문화기부 확대로 이어져 문화예술도시 대구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기 회복 체감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이제서야 국내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진입한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부터 따져보면 딱 1년 만이다. 예전 같으면 참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과 극복 과정까지 겹쳐지면서 체감 상으로는 벌써 수년이나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물론, 아직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국내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론의 여지없이 지금까지는 외수부분과 관련 산업 부문의 생산 회복이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전반의 흐름이 바로 얼마 전까지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 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이후 딱 1년 만에 기준치 100을 넘어섰다는 것이 이를 잘 대변해 주는데, 생산과 소비 투자 등 부분별로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확인할 수 있다. 더 두고 봐야 할 일이긴 하지만, 경기국면의 변환을 판단하는 지표인 제조업 재고출하순환도가 둔·하강 국면에서 벗어나 회복·상승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점도 반가운 일이다. 특히, 향후 경기 향방을 예견할 수 있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10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경기 회복세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매우 반가운 일이다.이처럼 국내 경기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해외에서도 긍정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국제기관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바라보는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대폭 상향 수정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전망치는 3% 중반대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제기관들보다는 훨씬 공격적인데, 4%대 중반까지 바라본다니 그 동안 우리 스스로가 우리 경제에 대해 너무 박한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세계적인 코로나19 백신 보급 확대, 글로벌 정치·외교·군사적 리스크 억제, 주요국 경기부양 기조 유지,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세 지속 등의 조건 하에서 투자와 소비 등 내수 부문이 기대 이상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인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막말로 우리 경제는 지난해 역성장한 것만큼의 기저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가 잠재성장력만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가정만해도 3%대 후반의 성장률 달성은 가능해진다. 하물며, 최근과 같은 분위기라면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예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4%대 성장에 대한 기대를 품어도 될 법해 보인다. 좀 과한 느낌은 있지만 말이다.이처럼 올해 우리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회복과 더 높은 수준의 성장세를 보여줄 것으로 거의 확신한다. 다만, 그렇다고 걱정거리가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아마도 빠른 경기 회복 속도 만큼이나 급하게 진행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그에 따르는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일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고 급격하게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경기 부양에서 경기 안정화로 금융통화 및 재정 정책 기조가 변화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는 부작용들이 동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경기 회복을 체감하는 정도가 경제 주체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기업과 가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서로가 처한 환경에 따라 경기 회복을 체감하는 시기와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칫,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이에 따르는 사회적 문제가 더 심각해 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하반기로 갈수록 내년에 있을 대선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경기 회복 동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리스크라면 리스크라 하겠다.백신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곧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국내 경제의 회복 기대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이 때에 모두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매우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 회복의 온기를 우리 모두가 온전히 체감하기 위한 때이른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일지도 모른다.

6차 공항계획에 통합공항 미래좌표 확보를

국토교통부의 공항 관련 최상위 국가계획인 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2021~2025년)이 오는 6월 중 확정 고시된다. 국내 공항개발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5년마다 수립되는 계획이다. 2028년 개항 예정인 대구·경북 통항신공항의 미래도 이번 계획에 담기게 된다.지역에서는 통합신공항의 기능과 항공 수요가 어떻게 반영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토부는 이번 계획수립 과정에서 향후 30년간 항공 여객·화물 수요를 예측하고 공항 체계를 검토하는 ‘비전과 전략 2050’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계획에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부산 가덕도신공항의 착공과 완공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계획대로 이뤄질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구·경북으로서는 건설이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 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두 공항의 향후 기능, 시설규모 등 기본적 사항이 이번 종합계획에 반영된다. 그 결과에 따라 공항의 위상이 판가름 난다. 대구·경북이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현재 대구공항의 기능은 5차 계획에 ‘대구경북권 내 제주 및 단거리 국제노선 항공 수요 등을 원활히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6차 계획에서는 ‘단거리 국제노선’이 ‘중거리 국제노선’이나 ‘중장거리 국제노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염원이다.지역 전문가들은 통합신공항이 현재의 공항보다 2배 가량 시설이 확대되기 때문에 여건은 충족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최종 발표 때까지 촉각을 집중시켜야 한다.또 하나의 관심사는 통합신공항의 수요 산정이다. 국토부는 2050년까지 수요를 산정해 종합계획에 반영한다. 대구·경북은 연간 1천만 명 이상이 이용할 수 있는 여객터미널을 희망한다. 대구공항은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 2019년 이용객 467만 명을 돌파했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에도 불구하고 1천만 명 수요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공항 위계 조정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통합신공항은 현재와 같이 거점공항(대구·김해·김포·청주·무안·제주)의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산은 가덕도신공항의 위상을 인천과 같은 중추공항으로 해 줄 것을 희망한다. 가덕도의 위상에 따라 대구·경북 신공항의 미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과에 따라 세심한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국토부의 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은 특별법 제정과 함께 대구·경북 신공항의 미래를 좌우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통합신공항의 미래 좌표 확보를 위해 지역 정치권과 힘을 합쳐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 바란다.

노동의 수고로움

천영애시인지인의 포도밭에서 종일을 보냈다. 지금 막 자라나오는 새순 중에서 못 쓰는 순을 잘라주고, 여기저기 잡을 곳만 있으면 휘감고 올라서는 포도손을 잘라주기 위해서이다. 지인은 도시에 사는 내가 하기 힘든 일이라고 극구 말리지만 나는 가끔 밭에 들러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그렇게 포도나무의 새순을 잘라주고 또 시간이 지나면 포도 알맹이를 빼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은 지인이 모르는 충만감이 내 속에 가득 찬다.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흐트러졌던 줄기가 가지런히 정리된 포도나무를 되돌아보면 알 수 없는 만족감과 기쁨이 생긴다. 노동은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작은 만족감과 더 나아가 알 수 없는 삶의 충만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책상에 앉아 책만 보는 시간에서는 느끼기 힘든 기분이다.무엇보다 그런 일이 좋은 이유는 머릿속이 아주 단순하게 비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오전 내내 책을 보다가 농장에 들러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여자이면서 도시인이기도 한 사람들은 잘 하려 하지 않는 일이라 농장주는 신기하다고 하지만 내 속셈은 몸도 좀 움직이고 싶고 머릿속도 비우고 싶어서이다.흔히 노동은 힘들다고 여긴다. 물론 힘들지 않은 노동은 없다. 어쩌면 내가 하는 그런 일들은 노동이라기보다는 놀이이기도 하다. 노동이 수입으로 연결돼야 하는 스트레스와 짧은 시간 동안에 하는 일이라서 고단함이 적다. 그냥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일들은 노동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하지만 포도나무 새순이 올라오고 수확 때까지 나는 자주 그런 일들을 한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하는 내게 그 일들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는데 최적의 일이기 때문이다.노동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노동이 되는 환경은 노동자에게는 최상의 환경이다. 이 말은 곧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일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종족인데 이것은 일이 없는 사람의 무력감에서 잘 느껴진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에서 보듯 사람은 일을 통해서 살아간다.그러나 그러한 일이 노동이 돼 버리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이 돼 그 일에 끌려다니고 종속된다. 그러나 일이 놀이가 되는 순간 그 일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포도밭에서 일을 도와주고 온 날은 온 몸이 아플 정도로 고생하는 날도 있지만 내가 즐겨 포도밭을 찾는 이유는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사람들은 가능하면 일을 기피하려고 한다. 일이 노동이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꼭 금전적인 것으로 댓가를 지불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금전적인 댓가는 그 일을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지만 반드시 그 이유만으로 노동을 한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스트레스로 지쳐 쓰러질 것이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성취감, 충만감 등이 알게 모르게 노동하는 인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행복하게 한다.오월은 근로자의 날이 있는 달이다. 문명을 만들어내는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노동자들은 예로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악전고투해 오면서 자본과 투쟁해 왔다. 그 오랜 투쟁이 좀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는데 오월에 들어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각종 전자제품과 자동차와 각종 사물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체하면서 노동자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노동자 없이 이 도시가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오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휘날리던 투쟁의 깃발은 이제 사라지고 여가를 찾아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근로자의 날 복잡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 속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의 여가에는 그동안의 오랜 노동에 대한 수고로움이 스며 있을 것이다.

누가 대학을 이 지경으로 내몰았나?

서충환교육문화체육부장“지난해 입학도 하기 전 코로나 사태가 터져 1년 동안 학교에 가본 기억이 없습니다. 학과 동기라고는 하지만 누가 누군지 솔직히 얼굴도 생소하니까 동기애는 애초부터 생길 수 없죠. 사이버대학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대학생활의 절반이 날아 갈 것 같아요”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난해 입학한 한 대학 신입생이 들려준 대학생활 이야기는 안타깝고 서글프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자기가 입학한 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한 이른바 ‘구조조정 대상 학과’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신입생을 유치하지 못해 학과가 없어지는 상황은 학교당국과 해당 학과 교수들이 책임질 문제인데 그 피해가 오롯이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오는 현실이 힘들고 슬프다는 이야기를 토로한다.올해 지역 대학가의 핫 이슈는 단연 모집정원 미달사태와 이로 인한 초유의 총장 사퇴, 학과 통폐합과 신입생 모집 중단 결정 등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후폭풍이다.사실 국내 대학의 구조조정 논의는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시작돼 2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립대 통폐합과 정원 감축에 초점을 맞춰 전국 18개 국립대를 9개 대학으로 통폐합 하는 등 강도 높은 국립대 구조조정을 통해 7만 명이 넘는 정원을 감축했다.이후 이명박 정부때는 부실 사립대 퇴출이 본격 진행돼 4개 대학이 폐교했고, 정원도 3만6천여 명을 줄였다. 이후 박근혜 정부 때는 지방대를 중심으로 6만 명 가량의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원 감축을 대학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1만 여명을 줄여 역대 정부 중 가장 적은 숫자를 기록했다.1970년대 초반 연 100만 명을 넘어섰던 출생인구 시대에 맞춰 만들어진 대학이 지난해 신생아 숫자가 27만 명으로 떨어진 현재도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1970년대 168개이던 국내 대학 숫자는 2020년 429개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대학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1990년대 10년 동안 무려 107개가 더 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년간 100만 명을 넘어섰던 1970년대 초반에 비해 40만 명 가까이 줄어든 65만 명으로 급감하던 시기다. 이후 출생아 감소수는 가파르게 떨어져 2020년에는 27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10년 동안 100개가 넘는 대학이 새로 문을 여는 사이 정작 대학에 입학할 인원은 외려 크게 줄어든 셈이다.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대학들은 근본적인 대책은 외면한 채 아이폰, 아이팟으로 유혹하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숫자 채우기에만 열중하는 등 눈앞에 닥친 위기를 애써 외면해왔다.지역교육관계자들은 오늘날 대학의 위기에는 낡은 커리큘럼에만 매달린 채 현장의 요구에 무감각한 일부 교수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군 입대 전 수강했던 과목의 담당교수가 수업 중 설명한 강의보충자료가 복학한 후 다른 과목 강의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더라는 어느 복학생의 하소연은 오래전 기자가 대학 재학 중 실제로 경험했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해 쓴웃음이 난다.대학의 위기를 불러온 주체를 교수나 학교 당국, 정부 등 특정 집단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비싼 등록금을 꼬박꼬박 가져다 바치는 학생 탓은 아니다. 그런데도 대학의 위기에는 항상 학생들이 피해자로 둔갑하는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얼마전 출간한 찰스 호머 해스킨스의 신간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의 탄생’이라는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볼로냐의 학생들은 교수가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공포했는데, 그들 각자가 낸 수업료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으려는 조치였다. 1317년 초기 규정에는 교수는 단 하루도 허가 없이 결석해서는 안된다. 〈중략〉 만일 교수의 정규 강의에 수강생이 다섯 명 미만이면, 그는 폐강에 준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얼마나 형편없는 강의면 학생이 다섯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대학의 위기가 단지 학령인구 감소 탓 이라고 에둘러대는 일부 양심 없는 교수들이 새겨들을 문구다.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최재목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쩌라고/ 너는 너대로 살았잖아/ 그런데 어쩌라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가/ 훨씬 좋잖아/ 그런데 왜 자꾸 나더러/ 너처럼 살라 하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한 번쯤 막 나가는 삶을/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삶을/ 너는 너처럼/ 나는 나처럼 살자/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야 옳잖아//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네 멱살을 잡으며/ 그렇게 말하고 싶다/ 너도 나처럼 그렇게 말해도 돼// 좋잖아/ 그게 좋잖아/ 한 대 때려 봐 그래도 돼/ 너는 너처럼/ 나는 나처럼 살 수 있다면/ 한 대 맞아도 돼/ 버림받아도 돼/ 어쩔래/ 그래 어쩌라고「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21세기문화원, 2021)자연스럽게 일상어로 툭 던진 말 속에 진리가 담겨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에 진리가 담겨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말은 솔직한 심정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모습이긴 하겠지만 깨달음을 줄 정도로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즉흥적인 말이 화두가 되고 인생을 통찰하는 의미 있는 빛과 소금이 되려면 인고의 세월을 거쳐 숙성되고 단련된 영혼의 자유로운 사색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시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는 범상치 않은 기막힌 대듦에 다름 아니다. 오랜 수련에서 나올 수 있는 자신감과 노련한 경륜에서 숨 탄 배짱 거기다 막다른 골목에서 내지르는 순발력 있는 재치가 버무려진 선문답이다. 시인의 대듦은 자신에게 던지는 화두이자 지나온 인생을 농축시킨 엑기스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정도의 내공이 실린 시는 강호의 고수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다.어떤 분야든지 입문 후 초창기엔 힘든 세월을 보낸다. 청소와 물 긷기, 부엌일은 기본이고 훈련과정도 고되고 험하다. 반면, 스승은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다. 그 모습을 보는 눈은 불만과 오만으로 차오르게 마련이다. 때 이른 시기에 스승에게 대드는 기회를 잡아 분수를 모르고 건방을 떨다간 된통 당하고 만다. 그건 한 계단 더 딛고 올라서는 발판으로 기능한다. 하산해도 좋은 경지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정상의 여유를 터득하는 법이다. 그러면 굳이 산에 남을 필요가 없다. 어디에 머물러도 편안하다. 내키는 대로 해도 무리가 없다.마음이 성숙하지 못할 땐 스스로 자제하거나 타의에 의해 통제받는다. 윗사람의 뜻을 따르고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며 아랫사람의 분위기를 살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스캔하고 다수 의견에 동조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예각을 숨긴다. 숨을 죽인 채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걷는다. 판이 깨질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얼음판을 걷듯 몸을 가볍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경공이 몸에 붙는다. 허나 고수는 거리낌이 없이 내달려도 만사 무탈하다.시인은 이제 ‘막 나가는 삶을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삶을’ 살아도 한 점 어긋남이 없다. 때리면 맞고 버려짐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맞을 일은 없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는 게 본질이다. 이제 시인은 혜안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예상을 초월한 시인의 일갈이 사고의 틀을 깬다. 그대는 그렇게 걸었고 나는 나대로 걸었다. 어쩔래. 아무도 대들 리 없는 기막힌 대듦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다.오철환(문인)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 기대와 우려 교차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 본격 실시를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경북의 12개 군지역(인구 10만 명 이하)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 1단계 시범적용이 오는 23일까지 3주간 연장됐다. 지난달 26일부터 2일까지 1주간 실시한 결과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때문이다.지난 1주간 이들 지역에서는 확진자 발생이 단 1명에 그쳤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편안을 시범 실시한 경북은 코로나19 방역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일단 평가된다.전남에서는 여수와 고흥을 제외한 20개 시군에서 3일부터 오는 9일까지 1주간 개편안 1단계가 시범 실시된다. 경북의 시범실시 성과에 따른 결정이다. 다만 전남 대부분 지역이 대상이기 때문에 사적 모임 규모를 6인이하로 제한한다.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 실시에는 우려한 대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사적 모임 인원제한 규제가 없는 경북 일부 시범지역에는 대구 등 다른 지역의 나들이객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지난 주말 청도·고령 등 대구 근교 테마파크·캠핑장 등지에는 나들이객이 몰렸다. 거리 띄우기를 하지 않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음식물을 나눠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람간 접촉을 줄여야 하는 코로나 방역에 가장 취약한 상황이다. 경각심이 해이된 지난 주말과 같은 경우가 거듭되면 어디서 대규모 확산 사태가 터질지 모른다. 적절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경주에서는 지난 주말 이후 40명 가까운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시범실시 지역이 아닌데도 이 같은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경로당에 다녀왔거나 이웃집에 결혼 축의금을 전달하러 간 과정에서 감염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상주에서는 주민 40여 명이 사는 마을에서 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주민의 15%가 감염된 것이다. 대구에서도 종교시설, 사우나 등에서 시작된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5월은 코로나 방역의 중요 고비다. 어린이날·어버이날 등 각종 기념일과 행사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온화해 나들이도 크게 늘어난다. 방역에는 가장 취약한 달이다. 가능한 한 모임과 나들이를 자제해야 한다.3일 전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488명이었다. 비수도권이 44%, 216명에 이르러 코로나가 전국 모든 지역으로 재확산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정부는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시기를 11월로 잡고 있다. 그때까지 경각심을 늦춰선 안된다. 힘들지만 조금 더 견뎌야 한다. 지금은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군위, 대구 편입’ 서둘러야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을 서둘러야 한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들어서는 군위는 대구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군위군의 대구 편입은 대구·경북 행정통합보다 규모가 작다. 하지만 추진재개 시점을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시도 통합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군위군이 편입되면 대구시의 면적은 단숨에 2배 가량 확장된다. 대구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대구·경북 통합이 ‘대통합’이라면 군위 편입은 그 전 단계의 ‘소통합’이다.편입은 지난해 7월 통합신공항 입지 확정 당시 약속한 사안이다. 군위군민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현재처럼 슬로 템포로 끌고 가서는 안된다.---군위군민을 희망고문해서는 안돼애가 탄 군위군민들은 통합신공항 유치 백지화 이야기까지 꺼내고 있다. 어차피 편입을 해야 한다면 서둘러 하는 것이 옳다. 군위군민을 희망고문할 이유는 없다.군위 편입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은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맞물려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구·경북 통합작업은 최근 멈춰섰다. 논의가 언제 재개될지 기약하기 어렵다. 내년 6월 지방선거도 변수다. 대구·경북 시도지사가 바뀔지 안바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가 당선되든 새로운 통합작업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도의회 답변에서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은 신뢰의 문제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올해 말까지 모든 행정절차를 끝내고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한 언급이다. 그러나 경북도의 실무 작업은 느리기 짝이 없다. 관련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는 편입 약속 이후 무려 9개월 만인 지난달 26일에야 개최됐다.대구시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대구경북연구원에 의뢰한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에 관한 기초연구’ 용역결과가 나왔지만 필수적 절차인 시의회 의견 청취는 뚜렷한 이유없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군위의 대구편입에는 대구시와 경북도 사이에 원칙적으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편입 약속은 통합신공항 유치과정에서 전격 결정돼 시도민들의 이해와 관심이 떨어진다. 편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감대를 높일 수 있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매듭지으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대선도 내년 3월에 치러진다. 늦어도 올 하반기에는 모든 절차가 마무리 돼야 한다.2020년 말 기준 대구시의 면적은 883.51㎢, 인구는 241만8천여 명이다. 군위군은 면적 614.24㎢, 인구 2만3천여 명이다. 군위의 면적은 대구의 약 70%, 인구는 약 1%다. 두 지역이 합치면 인구는 별 변동이 없지만 면적은 1천497.75㎢로 크게 늘어난다.군위는 용지난을 겪고 있는 대구에 대규모의 유휴 부지를 공급할 수 있다. 싼 가격의 용지 공급이 가능해져 우량 기업체와 주요 시설유치가 용이해진다. 또 도시지역에는 설치하기 어려운 SOC시설의 입지 확보가 쉬워질 수 있다. 문화·관광 분야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물론 대구시에 당장 부담이 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일정 수준의 교통망 구축, 교육, 정보통신, 생활편의시설 설치 등에 따른 재정부담이 증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은 상주 인구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접근해 갈 수 있다.---행정절차·주민 공감확대 동시 추진을경북도는 군위군이 빠져나가는 만큼 도세(道勢)의 약화, 대구인접 시군의 연쇄적 대구 편입요구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정적 요인은 통합신공항이 경북지역 전체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력에 비할 바가 못된다.군위의 대구 편입이 두 광역지자체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시간을 두고 따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편입 약속은 대구·경북의 상생을 위한 선택이다. 미적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편입 작업의 양대 과제는 행정적 절차 이행과 시도민들의 공감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이제 두 가지 모두 속도를 붙여야 한다.

대구 수성의료지구 본격 개발, 기대 크다

대구 수성의료지구가 본격 개발된다. 롯데쇼핑타운 건설 사업이 확정되면서 일대 개발에 탄력이 붙게 됐다. 13년간 방치됐던 수성의료지구 개발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지역 발전에도 호재가 될 전망이다. 대구시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은 의료 관련 기업 및 연구소 등 유치에 힘을 쏟고 상권 활성화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또한 교통 대책에도 소홀해선 안 된다.수성의료지구는 2008년 대구시 수성구 대흥동 일원(98만㎡)에 사업비 6천179억 원을 들여 조성됐다. 당초 지역의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활용해 체류형 의료관광단지로 개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핵심시설인 의료 용지의 분양이 난항을 겪은 데다 집객시설로 유치한 롯데쇼핑타운 건립이 지지부진하면서 10년 넘게 방치돼왔다.롯데쇼핑은 최근 수성구 대흥동에 5천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8층, 연면적 25만314㎡ 규모로 복합쇼핑몰을 건립키로 했다. 2025년 완공 예정으로 이달 초 착공에 들어간다. 이는 기존 지역 최대 유통시설인 신세계백화점 대구점보다 17% 가량 크다. 신세계가 독주하던 지역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대구시는 롯데쇼핑타운 조성으로 직접 고용 8천 명, 연간 2천만 명 이상의 집객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만큼 경제 파급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교통 인프라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당장 도시철도 3호선의 혁신도시 연장 계획의 예비타당성 통과가 유력해졌다. 수성의료지구는 도시철도 2·3호선이 교차하는 더블역세권이 될 전망이다. 시내버스 노선도 대폭 추가, 조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개발 중인 지식기반 산업시설과 연계 개발할 경우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숙제였던 수성의료지구의 남은 의료용지에 앵커시설 유치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경제자유구역청이 당초 한 덩어리로 묶어 일괄 개발하려던 계획은 어려워졌다. 계획을 변경, 부분 개발 방안을 수용키로 한 것이다.초대형 쇼핑몰의 등장으로 지역 유통업계는 피 튀기는 전쟁이 불가피해졌다. 코로나19 여파에다 온라인 유통의 강세로 가뜩이나 유통업계가 어려움을 겪던 터이다. 기존 대구 시내의 대형 마트가 최근 영업 부진을 이유로 문을 닫고 주거용 오피스텔을 건립하는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이참에 외자유치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개발이 어려웠던 의료지구의 유치 조건을 손질해 개발에 속도를 내도록 해야 한다. 수성의료지구가 빨리 모습을 갖춰 체류형 의료관광 단지로서 제 몫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름다운 구속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계절의 여왕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오월이다. 여기저기 온 사방에서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마음대로 찾아가 축하해 줄 수 없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의 앞날을 축하하며 날씨가 큰 부조하기를 기대한다. 여름을 방불케 하던 따스한 기온은 새로운 결심과 새 출발 하는 이들이 긴장이라도 하라고 일러주려는 듯 며칠 사이 찬바람으로 바뀌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반복하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도 유독 한 여인이 꾸준하게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봄볕 아래 벚꽃이 일시에 화들짝 피어나듯 뭉근하던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듯하더니 드디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 칠십 중반이 돼서야 이룬 큰 성공에 세상을 그다지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인 20·30대도 닮고 싶다고 열광하는 것 같다. 이국땅에 사는 한 친구도 아카데미 ‘K그랜마’ 성공담을 아는 대로 기록해 긴 메일을 보내왔다. 인생 후반에 큰 성공을 이룬 원로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앞날에 대한 기대로까지 여겨지는지 지나온 자신의 인생 곡절과 앞날의 희망 섞인 계획까지 구구절절 덧붙여놨다.60살 넘어서는 사치하고 살려고 마음먹었다던 그 배우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남는다. 그녀가 말하는 사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것(작품)은 하고, 싫어하는 사람 것은 안 하는 것이다. 돈 그런 거 상관없이 원하는 작품을 하리라’ 였다. 센스 있을 젊은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나이가 들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를 경계하고 편견으로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인 것 같아 귀감이 된다. 그는 또 이른다.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일흔 살 중반의 여배우에게 세상은 이제야 빠져들지만, 거의 반세기 동안 교류해온 오랜 친구들은 솔직 담백한 윤여정 표 화법에 익숙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이 윤여정이 밥 먹는 자리에서 수다 떠는 모습과 똑같아서 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나이 60이 돼도 인생은 몰라,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도 67살이 처음이야,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어떻게 계획을 할 수가 없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고” 세계 여행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이 담담하게 하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젊은 날이었다면 그녀의 말이 이렇게 가슴을 울릴까. 나이가 들어가니 지나간 말이 새롭게 되살아나곤 한다.세계적인 상을 받고서 와인 잔을 옆에 두고서 한 인터뷰 사진이 신문을 장식한다. 그 기사에서 깜짝 놀랄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오래전 미국에서 신생아에 관해 공부하고 귀국해 국내 신생아학의 붐을 일으켰던 유명한 분. 세상 떠나고도 수필 ‘인연’으로 유명세를 이어가는 피천득 수필가의 아드님, 자신의 업적보다는 아버지의 몇째 아들로 소개돼 섭섭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던 원로 교수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여배우의 오랜 지인으로 지면을 장식하는 것으로 놀라는 독자들도 꽤 있었으리라.까탈스레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가까이 지내는 이들의 면면이 참 다양해 놀랍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50여 년 인연이라며 그녀를 빚지고 못사는 왕 깔끔 성격에 의리파라고 했다.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기 집에서 신혼여행 첫날밤을 보낸 적이 있다면서 일화를 들려준다. 하룻밤 재워 줬더니 부부가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이들 목욕을 싹 다 시켜 놨다고. 가수 김수철은 누나 동생 하는 사이의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단다. 어떤 분야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 통하면 친구가 되고 그 끈은 오래오래 변함없이 이어진다고 더듬는다. 피천득 작가의 아드님인 피수영 박사는 ‘처음과 지금, 무대 위와 아래가 똑같은 사람’이라면서 신생아를 전공한 의사로서 또 오랜 친구인 윤 여정 배우의 매력을 자랑한다.‘겉·까·속·따’. 겉은 까칠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던가. 한번 맺은 귀한 인연은 소중하게 여겨지면 길고도 길게 이어가는 그녀 자신은 결코 미인이 아니란다. 독특한 개성의 얼굴이라고 인정하니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역으로 작품을 재해석해 더 좋은 역할을 해내지 않았으랴. 작품을 받으면 적어도 일백 번을 읽는다던 이. 자기만의 개성과 올바른 판단으로 맺고 끊음은 확실히 하는 꼿꼿한 인생 선배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언제나 아침에 눈 뜨면, 기도를 하게 돼, 달아날까 두려운 행복 앞에…’ 서영은의 노래 ‘아름다운 구속’의 가사가 입가에 맴도는 오월, 아름다운 날이다. 늘 희망 가득한 새로운 마음으로 또 새로운 계획을 꿈꿔보면서 오늘 하루도 더 많이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