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특별 기획- 하늘에서 본 대구 50년 〈1〉범어네거리

〈편집자주〉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시간이 흐르면서 허허벌판이던 것이 조금씩 개발돼 한때 단독주택 밀집지가 되기도 하고 어느새 주택이 허물어지면서 아파트 단지로 바뀌기도 하면서 변화를 거듭한다.아이러니한 건, 정작 거기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변화’를 안다는 것이다.우리의 생활 터전인 대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경상북도 대구시부터 대구직할시 그리고 대구광역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변화가 이뤄졌다.옛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아가 미래의 변화까지 점칠 수 있기 위한 ‘레트로’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마침 대구시가 1973년부터 매년 촬영한 항공사진을 최근 일반에 전부 공개하기로 했고 본지는 그 중 일부를 떼어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동대구로와 달구벌대로의 교차지점인 범어네거리는 대구의 ‘맨해튼 거리’라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곳이다.대구지법 등 법조계가 밀집해 있고 대구은행 등 주요 상업·금융업이 몰려있다. 지역의 굵직한 기관이 몰려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구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현재 왕복 13차로를 자랑하는 범어네거리는 과거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로 시작됐다.범어네거리는 1970년대까지 ‘범어삼거리’로 머물렀다. 당시 항공사진을 보면 동대구로는 수성구 황금동(구 경북 대구시 동구 황청동)과 단절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당시 도로는 수성네거리에서 범어먹거리타운을 거쳐 만촌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재정비계획에 따라 동대구로 남쪽 도로가 개설되고 교차점이 생기며 1979년 범어로터리의 모습을 갖췄다.대구고등·지방법원은 1973년 11월19일, 대구고등·지방검찰청은 1973년 12월12일 중구 공평동 58번지 구청사에서 범어2동 현청사로 이전을 막 마쳐 1974년 항측 사진에 띈다.오늘날의 수성구청과 대구여자고등학교 부지는 범어못이었다. 1974년 항공사진에는 못이 있었으나 1980년 동구로부터 분구되면서 지금의 수성구청 건립을 위해 못이 메워졌다.1989년 범어네거리가 완성됐지만 대구시민들은 ‘범어로터리’로 불렀다.‘1986 대구시정’에 따르면 반월당로터리 등 지역 대부분 로터리들은 1986년 네거리로 다수 명칭 변경했으나 범어로터리는 해당사항이 없이 범어로터리란 이름이 비교적 오래 남았다.1992년에 범어네거리라는 명칭이 처음 쓰였고 점차 자리 잡았다.1990년대 후반부터 범어네거리를 중심으로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1980년대 범어천로는 당시 옛 범어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1990년대부터 자취를 감췄다.범어천 남측은 1992년부터, 북측은 1994년부터 복개 공사가 시작됐다. 1998년에는 작업이 완료돼 현재의 복개도로 형태를 띄게 됐다.2010년대 범어네거리 항공사진의 특징은 단연 ‘두산위브더제니스’다.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이 부지는 약 400년간 능성 구씨의 집성촌이었다. 구씨 주민들은 대구 재정비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대구시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대구 곳곳으로 이주했다.2009년 12월 위브더제니스가 준공되면서 2010년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고 범어네거리의 랜드마크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범어네거리 일대 두산위브더제니스뿐 아니라 많은 아파트의 준공으로 2000년대에 비해 건물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2010년대 항측 사진에는 수성3가동 한국전력공사 대구전력관리처·화성파크드림아파트, 범어1동 롯데캐슬아파트·코오롱하늘채수아파트, 범어3동 KB손해보험빌딩·우방유쉘아파트·화성파크리젠시아파트 등 수많은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유현제 기자 hjyu@idaegu.com

<건강인>허리디스크와 척추관 협착증

최근 나이와 상관없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갑자기 찾아오는 ‘찌릿찌릿’한 허리 통증을 방치하면 걷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저려오거나 심하면 마비 또는 대·소변 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다.척추 질환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척추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퇴행성 병변이다.척추의 대표적인 구조물은 척추체, 추간판, 인대 및 후관절을 비롯한 다양한 뼈로 이뤄진다.추간판은 척추체 사이에서 움직임을 보존해 주고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정상적으로 척추체 사이에 있어야 한다.후관절은 여러 척추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황색 인대를 비롯한 다양한 인대는 척추의 안정성을 유지한다.이러한 구조물은 신경이 지나가는 척추관을 형성해 신경을 보호하는 것이다.척추관을 구성하는 구조물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변화가 발생하는 데 이로 인한 대표적인 질환으로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과 ‘척추관 협착증’이 있다. ◆추간판 탈출증과 척추관 협착증 증상‘추간판 탈출증’은 연령이 증가해 수핵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푸석해지고 어떠한 압력의 증가로 인해 추간판이 나와 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이다.추간판 탈출증은 대부분 ‘요추 추간판 탈출증’과 ‘경추 추간판 탈출증’으로 구분한다.흔히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라고 부르는 질병이다.또 다른 척추 질환인 ‘척추관 협착증’은 추간판을 비롯해 후관절과 황색 인대 등이 비후돼 척주관을 좁혀 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이다.추간판 탈출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허리 통증이지만 모든 환자가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탈출한 디스크가 신경을 압박하는 여부에 따라 통증 유무와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허리를 중심으로 한 요추 부위의 추간판이 탈출하면 다리의 찌릿함과 허리 통증, 다리의 감각 이상, 좌골신경통 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좌골 신경통은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 다리까지 이어지는 통증을 말한다.경추 추간판이 탈출하면 목과 어깨, 위팔, 손, 손가락 등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다.팔의 근력이 약해지고 기침을 하거나 웃을 때 통증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두가지 질환 모두 하지로 내려가는 신경을 압박해 다양한 신경학적인 증상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증상인 하지 통증 또는 저립감은 압박되는 신경의 분포에 따라 생긴다.심각한 압박으로 신경이 손상을 받게 된다면 감각 저하나 마비 등이 발생할 수 있다.더 심한 경우에는 대소변 장애까지 발생하는 ‘마미증후군’도 일어날 수 있다.척추관 협착증의 경우 일반적인 추간판 탈출증과 구별되는 증상은 보행 할 때 하지 통증이 더 심해지고 쭈그려 앉거나 쉬면 통증이 호전되는 신경학적인 간헐적 파행이 특징적이다.◆척추 질환의 진단과 치료정확한 진단은 신경학적인 증상을 기본으로 하여 MRI를 비롯한 CT를 통한 정밀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CT는 뼈 구조를 보기 좋은 검사이며 MRI는 신경 및 연부 조직과 추간판을 비롯한 근육 등의 변성도 확인이 가능한 검사이다.두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수술적인 제거이다.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통증이며 일상생활에 제약이 불편한 정도로 느끼지 않는다면 보존적인 치료로 증상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판단된다.즉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마비 등의 신경학적인 결손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술이 선행될 필요는 없다.보존적인 치료의 일반적인 순서는 안정을 비롯한 약물 및 물리 치료 등이다.만약 증상의 호전이 없다면 신경 차단술을 비롯한 다양한 시술이 도움이 될 수 있다.이러한 시술 후에도 증상의 호전이 없다면 결국에는 수술적인 치료가 요구된다.추간판 탈출증은 내시경이나 현미경을 이용해 신경을 보호하는 뼈 구조물을 일부 제거하고 탈출된 추간판 조각을 제거해 신경을 풀어주는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다.대부분은 5㎝ 미만의 절개로 가능하다.척추관 협착증의 경우는 신경을 압박하는 뼈와 인대를 비롯한 다양한 구조물을 제거해야 하는데 광범위한 절개가 필요하다.또 척추의 불안정증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면 나사못을 이용한 고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척추 건강을 지키는 법척추 질환은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므로 뚜렷한 예방법은 없다.다만 이를 지연하는 방법은 올바른 자세 유지와 스트레칭 등이 있다.요추는 정상적으로 배가 나오는 C자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각각의 추간판에 걸리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몸을 굽히는 동작이나 자세는 추간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따라서 앉거나 보행 시 허리를 펴는 자세가 중요하다.또 이러한 자세는 바닥 생활을 할 때 저하될 수 있어 의자와 침대를 이용한 생활도 필요하게 된다.복근이나 허리 주변 근육을 꾸준히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척추를 잡아주는 허리 근육이 강해지면 척추의 퇴행을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빠르게 걷기, 수영, 등산, 간단한 에어로빅 등을 통해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다만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는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오래 앉아 있을 때가 서 있거나 누워 있을 때보다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이 훨씬 크다. 시간당 1회 정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며 몸의 긴장감을 없애 주거나 틈틈이 스트레칭을 통해 굳은 척추 근육과 인대를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도움말=한양대의료원 서울병원 신경외과 전형준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국민건강보험 Q&A>건강보험료 환급 신청 사기문자 주의

Q=건강보험료 환급 신청을 빙자한 ‘사기 문자’가 뭔가요? A=최근 스마트폰으로 △건강보험료 ‘환급금’ 확인요망 △국민건강보험 환급금 확인하기 등의 사기 문자 및 SNS 유포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국민건강보험공단은 문자 메시지(인터넷 주소 URL 포함) 및 개인 메일로 환급금 신청을 안내하지 않습니다. 환급금 신청방법은 홈페이지(www.nhis.or.kr), The건강보험(앱), 고객센터(1577-1000) 전화, 방문, 팩스, 우편으로만 가능합니다. 사기 문자를 받았거나 악성 앱 감염 등이 의심되는 경우 국번 없이 118상담센터(한국 인터넷진흥원 불법스팸대응센터)로 문의하시면 무료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계좌이체 피해 발생 시(고객센터), 경찰(112,182)에 연락해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합니다.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13>월명사 도솔가

삼국유사가 소개하는 스님들의 이름이 수상하다.경덕왕 대에 유명했던 월명 스님의 이름이 그렇다.밝은 달이라고 해석된다.유사에서 소개하는 글의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이름이다.그리고 월명사는 이 대목 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더욱 가공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이 정당성을 확보한다. 충담 스님도 마찬가지다.그 역시 경덕왕 대에 안민가를 지은 내용과 같이 충성스런 이야기를 했던 스님이라는 뜻으로 유사가 소개하는 의미를 그대로 담은 이름이다.충담 스님도 삼국유사의 다른 곳에서는 등장하지 않아 가공 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월명사와 충담사의 예를 보아도 일연 스님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내용에 맞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의 의구심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천왕사에서만 머물렀다는 스님이 달밤에 길을 가면서 피리를 불었더니 달이 가는 길을 멈추고 그의 걸음을 비추고 있었다는 월명 스님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는 경덕왕의 마음도 함께 깃들어 있다. ◆삼국유사: 월명사 도솔가경덕왕 19년 경자(760) 4월 초하루에 해 두 개가 나란히 나타나 열흘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일관이 왕에게 “인연 있는 승려를 청해서 산화공덕을 베풀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은 조원전에 정결한 단을 만들고 청양루에 행차해 인연 있는 승려를 기다렸다.이때 월명사가 밭두둑으로 난 남쪽 길을 가고 있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서 단을 열고 기도문을 짓게 했다.월명이 “소승은 그저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을 따름이라 안다는 것이 향가뿐이오며, 불교노래는 익숙하지 못하옵니다”고 말했다. 이에 왕이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지목됐으니 향가를 짓는다 해도 좋소이다”며 요청했다.월명이 왕의 청을 받들어 도솔가를 지어 올렸다. 도솔가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용루에서 오늘 산화가 불러/ 청운에 한 송이 꽃을 날려보낸다/ 은근하며 정중한 곧은 마음이 시킨 것이니/ 멀리 도솔천의 부처님을 맞이하라.’ 지금 세간에서는 이를 가리켜 산화가라고 하지만 틀린 것이다.마땅히 도솔가라 해야 한다.따로 산화가가 있으나 글이 길어서 싣지 않는다. 이러고 나니 해의 변괴가 즉시 사라졌다.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좋은 차 1봉지와 수정염주 108개를 내려 줬더니 깨끗한 몸차림을 한 어떤 동자가 공손히 꿇어앉아 차와 염주를 받아 궁전의 서쪽 작은 문으로 나가버렸다. 월명은 이 동자가 대궐 안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라고 여겼고, 왕은 스님의 시종이라 생각했다. 서로 알아보니 모두 아니었다. 왕이 이를 매우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뒤쫓게 했더니 동자는 내원의 탑 안으로 사라지고 차와 염주는 남쪽 벽에 그려져 있는 미륵보살상 앞에 있었다. 월명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미륵보살을 강림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조정에서나 민간에서 이 일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왕이 더욱 그를 공경해 다시 비단 100필을 줘 큰 정성을 보였다. 월명이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 재를 올리면서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내자 홀연히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종이돈이 날아 올라가 서쪽으로 사라졌다. 그 향가는 제망매가라 하여 다음과 같다.‘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이 세상에 있으매 저어하고/ 너는 나는 갑니다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어찌해 가버렸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떨어져 가는 곳은 모르는구나/ 아아, 서방 극락세계로 간 누이를 만날 날을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라.’ 월명은 언제나 사천왕사에 살았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언젠가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의 큰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 가는 것을 멈췄다. 이로 인해 그 길을 월명리라 했으며 월명사란 이름도 이 일로 해서 불리게 됐다. 스님은 바로 능준대사의 제자이다.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숭상한 지 오래 됐다. 대개 시가와 송(제사를 지낼 때 덕성과 공을 신명에게 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바람은 종이돈 날려 저승 가는 누이 노자로 하고/ 피리소리는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의 걸음 멈추게 하네/ 도솔천이 하늘처럼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 한 곡조로 너의 넋을 맞으리라.’ ◆새로 쓰는 삼국유사: 경덕왕과 월명사경덕왕은 신라 천년을 통틀어 가장 발전했던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의 통치자라 할 수 있다. 역사에 남은 흔적을 보아도 그렇다. 경덕왕은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졌다. 왕이 재위하던 시기에 신라 최고의 종합예술을 자랑하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탄생했다. 석굴암의 기하학적 신비에 더해 석가탑과 다보탑의 조형미는 예술의 정점을 논하게 한다. 성덕대왕신종을 주조하기 시작했고, 화려한 누각이 있는 복원된 월정교를 가설했다. 경덕왕은 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한다면 나라가 평안할 것’이라는 안민가를 지은 충담사, 도솔가를 지어 하늘의 변괴를 사라지게 한 월명사 등과의 인연을 맺은 왕이기도 하다. 손에 칼을 들면 적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는 화랑 월명이 칼을 버리고 사천왕사에 머물며 목탁과 피리를 손에 잡은 인연은 기구하다. 월명은 하급관리의 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체구가 단단하고, 총명하며 무술이 뛰어나고 활달한 성격으로 그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항상 많이 모여들었다. 월명은 얼굴이 여자처럼 잘 생기고 단아한 체구였지만 단오날에 열린 씨름대회에서 그를 이긴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힘은 천하장사였다. 그는 항상 씨름에서 이기고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모래판에 주저앉아 피리를 불었다. 이때 월명이 부는 피리 가락에 따라 구경꾼들은 어깨춤을 더덩실 추다가 슬픔에 겨워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씨름을 보면서 흥분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가라앉혔다. 어느 단오날 월명의 활달함과 피리가락에 마음을 빼앗긴 천원마을 과수댁 처녀가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과일과 채소를 팔며 연명하는 처녀였다. 워낙 미모가 출중해 주변 총각들이 연일 추파를 던졌지만 곁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과일을 사던 월명과 그 처녀가 눈길이 마주친 이후 하루도 보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해버렸다. 그들의 마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이 채 영글기도 전에 월명의 아비와 그 처녀의 어미가 매파의 주선으로 일가를 이루게 됐다. 월명은 새어머니를 따라와 여동생이 돼 버린 마음속의 정인을 한지붕 아래에서 매일 만나게 된 것을 기쁨이요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야 했다. 그들의 애틋한 사랑은 오누이 사랑으로 발전해야 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장마비로 쏟아지는 소나기로도 끌 수 없는 뜨거운 불씨로 타오르고 있었다. 오누이가 된 연인은 하루가 멀다하고 저녁이면 마을 뒷산으로 올라 피리가락에 마음을 실었다. 바람이 불고 달이 차고 기울기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피리사랑은 자꾸 자랐다. 다시 단오날이 되어 씨름판이 열렸지만 월명은 나서지 않았다. 누이가 월명의 등을 떠밀어 다시 씨름판에 서게 했다. “슬픈 어깨보다는 호랑이 모습으로 모래판을 뒤집는 오라버니가 훨씬 보기좋다”는 말에 월명은 그해에도 천하장사가 됐다. 누이가 소를 타고 돌아오는 오라버니 월명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뒷산에 피어있는 개철쭉 한아름을 묶어주는 일 뿐이었다. 한달음에 뒷산으로 달려간 누이가 더 예쁘게 핀 철쭉을 꺾으려다 벼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월명의 피리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불귀의 길로 가버렸다. 누이를 철쭉이 핀 벼랑 아래 묻고 사흘 밤낮을 피리로 마음을 달래던 월명은 어버이에게 큰 인사를 올리고는 머리를 깎고 사천왕사로 들어갔다. 월명이 달뜨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 ‘제망매가’를 피리로 불었다. 월명의 피리소리가 멎을 때까지 밝은 달은 걸음을 멈췄다. 피리를 들고 사천왕사로 돌아오는 월명을 경덕왕이 불러 세우고 세상근심을 잠재우는 소리를 청해 도솔가를 들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86>가람솔(항아초)

14세기 흑사병이 만연하면서 유럽 전역이 초토화됐다.1억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이다.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기 어려웠다.이런 상황에서도 흑사병으로 사망한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탈취한 4명의 도둑이 있었다.병균이 득실거릴 것 같은 집들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거리를 활보했다.결국 체포돼 법정에 섰다.그런데 재판장의 관심은 죄의 경중이 아니었다.‘어떻게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고 도둑질을 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흑사병을 피해간 방법이 무엇이냐’는 추궁에 도둑들은 ‘죄를 묻지 않고 자유를 주면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응수했다.결국 ‘폴리바게닝(수사에 협조하고 죄를 감면받는 제도)’이 성립됐고, 도둑들은 예방법을 공개했다.‘수시로 식초를 마시고, 식초로 씻는다’는 것이었다.물론 식초를 만드는 레시피도 공개했다.이를 계기로 중세의 성직자나 의사들도 이 식초면역법을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도둑들이 공개한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진 식초는 ‘4명의 도둑식초’라는 브랜드로 아직도 남아 있다.식초는 예로부터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인 동시에 살균효과가 높아 소독약처럼 쓰였다.오늘날에도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의성에서 ‘재래식 정치배양법’으로 자연발효 식초를 만드는 ‘가람솔’의 정다해(58·여)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는 ‘항아초’라는 브랜드로 사과식초와 솔잎식초 등 다양한 종류의 식초를 만든다. ◆맛집에서 식초로 전환정 대표는 인근 도시에서 찜요리 전문점을 30년간 운영했었다.맛집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언제나 손님들이 북적였다.한식과 중식, 복어요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다.식당을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된장과 김치, 전통주 등 발효식품을 취급하게 되고 발효공부를 시작했다.그 과정에서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알게 됐다.일본견학을 하면서 식초를 만났고, 그 효능에 빠져들었다.식당 마당에 30개의 항아리를 들여놓고 식초를 만들기 시작했다.전문지식이 없이 혼자서 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다.일반적인 맛을 낼 수는 있었으나 명품식초는 나오지 않았다.식초에 대한 이론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욕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혼자서 기술을 터득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6개월 동안 지역 대학의 발효공학 전문교수 연구실을 드나들면서 식초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았다.‘모든 식품은 품질의 균일성 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도 이때 배웠다.식당 마당에 마련된 항아리로 3년 간 실습과정도 거쳤다.2008년 고향인 의성으로 자리를 옮겨 ‘항아초’라는 브랜드로 전통발효식초를 만든다. 지금은 사위인 최오습(45) 부장도 합류했다.최 부장은 홍보와 판매를 담당한다. ◆항아리는 나의 보물가람솔에는 600개의 정통항아리가 있다.200ℓ가 들어가는 대형이다.모두가 잿물로 구운 정통항아리다.일명 숨 쉬는 항아리다.표면에 있는 작은 숨구멍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숙성도 돕는다.청송과 호남지방의 옹기장(甕器匠)이 만든 것들이다.숨 쉬는 항아리에 식초를 담고, 자연발효를 통하여 좋은 식초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항아리다.식초를 만들면서 지인들이 대대로 보관해 오던 항아리를 가져오기도 한다.그 항아리에는 감사한 마음과 사랑만 담아둔다. 식초를 담지는 않는다.좋은 항아리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담아 두었던 된장이나 간장 등의 성분이 배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모든 항아리는 사용하기 전에 2차에 걸쳐 물 세척을 하고 물을 담아서 충분히 우려낸다.고온의 스팀세척을 통해 멸균작업도 거친다. 초산균 이외의 다른 잡균들로부터 오염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멸균작업을 마치면 식초를 담아서 1년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숙성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이것이 정치배양법으로 만든 자연발효식초다. ◆사과식초와 솔잎식초식초를 만드는 기본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쌀로 술을 빚은 후에 초산균을 접종해 초산발효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정 대표는 사과식초와 솔잎식초, 생강식초 등 다양한 종류의 식초를 만들지만 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현미식초 이외에는 쌀을 사용하지 않는다.사과식초와 솔잎식초가 가장 생산량이 많다.사과식초는 지역에서 GAP 인증을 받은 농가의 사과만을 구매해 원료로 사용한다.초미세입자로 분쇄해 착즙한 사과즙을 일주일간 알콜발효를 거친 후에 항아리에서 초산발효가 시작된다.3개월 정도에 식초가 완성되는 편이다.그 후 1년 정도 숨 쉬는 항아리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항아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정치배양을 거치면 자연발효 사과식초가 된다.사과는 착즙량이 65%에 이르고 당(糖)함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당을 첨가하지 않고도 식초를 만들 수 있다.솔잎식초는 이른 봄철에 송순(솔순)과 솔잎을 채취해 만든다.주로 간벌과 가지치기를 하는 청정지역에서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아서 채취한다.당분이 없기 때문에 당을 첨가해서 알콜발효를 하고 초산발효과정을 거치면 솔잎식초가 완성된다.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자연발효식초라 은은한 사과향과 솔향이 배어있고, 맛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다.사과식초는 2012년에 특허(제10-1137833호)를 받았다. ◆청결 또 청결정 대표가 좋은 원료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것은 청결이다.청결한 환경에서 깨끗한 식초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모든 원료는 지역 농산물로 사용한다.품질의 우수성뿐만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재배이력을 훤하게 알고 있다.그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이라는 의미다.발효탱크를 비롯한 모든 시설은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한번 사용한 항아리는 2차에 걸친 세척과 물 우림, 스팀세척을 기본으로 한다.잡균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1년 이상 정치배양을 하기 때문에 항아리 외면은 정기적으로 닦아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다.식초는 해썹 의무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2014년에 해썹인증을 받았다.식초제조 전 과정을 청결하게 관리하겠다는 생각에서다.전통 발효식초를 만들면서 해썹인증을 받은 것은 가람솔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식초를 담는 용기를 유리병으로 고집하는 것도 보다 위생적인 관리를 하기 위한 것이다.비싼 유리병은 경영비 상승요인이 있지만 기꺼이 감수한다.발효실을 비롯한 모든 시설에 외부인을 철저히 제한한다.꼭 필요한 경우에는 위생복을 착용하고 철저한 소독과정을 거쳐야만 출입할 수 있다. ◆ 제품의 다양화와 건강식품화정 대표는 “힘은 많이 들지만 전통발효식초를 계속 만들겠다”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전통기법에 얽매이기 보다는 전통과 현대적 기술이 융합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한다.이를 위해 항아리를 제외한 일부 시설을 현대화해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다.시설은 개선하되 우수한 천연재료와 자연발효기술은 지킨다는 생각이다.규모화를 통해 가동율을 높임으로써 경영비도 줄여 나간다.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제품의 다양하도 추구한다.보리수식초와 파인애플식초, 바나나식초, 커피식초까지 만들어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할 계획이다.태양인과 태음인 등 4가지로 구분하는 사상체질을 활용하는 개인별 맞춤형식초도 준비하고 있다.이를 위해 이제마 선생이 창안한 사상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식초를 조미료를 넘어선 건강식품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농장명: 가람솔(항아초)▲대표: 정다해▲구입문의: 054-861-2411, 010-8580-9227▲소재지: 경북 의성군 구천면 조성길 72▲홈페이지: http://www.hangacho.com/default/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뚜벅뚜벅 대구·경북 한 바퀴)<18>역사·문화·첨단이 공존하는 힐링 여행지, 구미

대한민국 최대 내륙 첨단산업단지가 있는 경북 구미는 금오산과 천생산, 태조산 등이 도시를 병풍처럼 싸안고 있고, 낙동강이 도심 중앙을 흐르며 비옥한 농토와 풍부한 수자원을 두루 갖춘 천혜의 땅이다.경부선 철도 및 경부고속도로가 지역을 관통하면서 물류 이동 및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 인근 KTX 김천구미역을 이용하면 서울이 2시간 이내의 거리로 가까워져 교통의 요충지로 거듭나고 있다.신라 시대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이며, 조선 시대 성리학의 기초를 다진 영남 사림파를 탄생시킨 정신문화의 근원지이다.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 사육신 하위지, 생육진 이맹전 등 명현과 한말 의병대장 왕산, 허위 등 숱한 우국지사, 새마을운동 창시자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 문화, 첨단이 공존하는 관광도시 구미로 힐링 여행을 추천한다.◆조선 성리학의 본향 구미성리학역사관예로부터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구미에 있다고 했다. 구미성리학역사관은 지난해 10월 금오산 아래 자락(금오산로 336-13)에서 개관했다.역사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3대 문화권 문화관광기반조성사업의 일환으로 8만4천285㎡ 부지에 지어졌다. 주요시설로는 구미역사관, 성리학전시관, 기획전시관, 문화사랑방, 체험관 등이 있다.야은 길재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조선 성리학과 구미의 역사·인물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연 2회 기획전시도 개최된다. 현재 기획전시관에는 6월30일까지 역사관 첫 기획전시인 ‘금오서원, 나라의 보물이 되다’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성인·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시민들의 휴식공간 마련을 위한 한옥 문화카페도 운영 중이다.◆대한민국 도립공원 1호 금오산영남 8경의 하나인 대한민국 도립공원 제1호 금오산은 해발 976m로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조화를 이뤄 경관이 수려하다. 대한민국 자연 운동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인동 방면에서 보면 능선이 부처님 얼굴로 보인다고 해 와불산이라고도 한다.금오산에 오르면 신라 말기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창건했고 임진왜란 때 폐사됐다가 1952년 복원된 해운사가 있다.금오산케이블카를 타고 해운사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케이블카는 약 6분30초가 소요된다. 해운사를 지나면 해발 400m 지점에 있는 높이 27m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폭포 소리가 산을 울린다고 해 명금폭포라고도 불리는 대혜폭포에서 망중한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대혜폭포 우측 절벽 중턱에 있는 천연 동굴 도선굴은 신라 말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이 이곳에서 도를 깨우쳤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비가 많이 오면 도선굴 옆에 세류폭포가 생겨난다.이밖에도 금오산 정상부와 계곡을 이중으로 두른 석축산성인 금오산성과 금오산 내성 안쪽 해발 800m에 형성된 마을터 성안마을은 1970년대 화전민 정리사업으로 이젠 흔적만 남아 있다. 당시 감자를 넣어 만든 막걸리 감자술을 팔았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할딱고개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성안마을 등산로가 나타나는데, 이끼계곡, 분지, 습지 등 금오산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금오산 정상에는 신라 시대 의상대사의 득도로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 약사암이 있다. 정상 절벽 아래 있으며, 천혜의 운해로 사진 마니아들의 눈을 사로잡는다.보물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10살 생을 살고 떠난 손주를 기리며 할아버지가 쌓은 오형돌탑 등 많은 볼거리로 가득하다.금오산 올레길은 금오지둘레 총 길이 2.7㎞(도보 50분)의 무장애 걷기길로, 2018년 관광공사 선정 물과 함께 걷기 좋은 길 8선, 2020년 한국관광공사 언택트 관광지 23선 등에 선정됐다.◆구미 독립운동의 발자취, 왕산허위선생기념관왕산허위 선생은 1855년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나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서울진공작전’ 군사장으로 활약하다 1908년 순국한 독립운동가이다.평리원재판장(검찰총장), 비서원승(대통령 비서관) 등 관직을 지냈으며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에 통분해 전국연합 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을 조직해 일제통감부를 공격하려는 서울진공작전을 펼쳤다.우리나라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대한민국장에 추서됐다. 이를 기리기 위해 2009년 9월 개관한 왕산기념관은 부지 9천851㎡의 면적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로 건립됐다.왕산 선생의 우국충정, 애국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추모의 장, 전시실, 영상관과 도서자료실, 열람실 등이 마련됐으며, 기념관 좌측에는 허위선생 묘소와 유허비가 있다.◆애국보수의 발상지, 박정희 대통령 생가박정희 전 대통령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한민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조국 근대화와 새마을운동의 창시자인 박정희 대통령은 상모동 출신으로 대한민국 5~9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재임 기간 경부고속도로 건설, 수출 증대,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육성, 식량 자급자족 등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화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뤄냈다.박정희 대통령 생가는 박 대통령이 태어나서 자란 집이며, 대구사범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구미공단을 테마로 한 구미 근현대 역사를 재조명하고, 박 대통령을 주제로 한 박물관 본연의 전시·교육 기능을 수행한다. 민족중흥관은 대통령향기실, 발자취실, 매직아트 포토존, 하이퍼돔영상관 등을 갖추고 있다.오는 6월30일 예비개관을 앞둔 박정희 역사자료관 1층에는 박 대통령의 유품이 보관된 수장고가 있으며, 개방형으로 외부에서 관람할 수 있다. 2층에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마련돼 있으며, 상설전시실에는 미디어 아트와 ‘조국 근대화의 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로 꾸며졌다. 3층에는 세미나실과 교육·휴게공간인 아카이브, 다목적실 등이 있다.◆도심 속 힐링 공간, 구미에코랜드와 낙동강체육공원구미에코랜드는 산림, 문화, 전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산림종합테마공원이다. 산림문화관, 생태탐방 모노레일, 산동참생태숲, 자생식물단지, 어린이테마교과숲 등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유아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에코랜드 내 산동참생태숲에는 느린우체통, 어린이놀이터, 숲속교실, 야외체험장, 꽃무릇단지, 생태연못 등이 조성돼 있다. 각종 목공예작품이 생태숲 곳곳에 전시돼 친환경 포토존 역할을 한다.낙동강체육공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시민들에게 안심하고 휴식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을 제공한다. 200만㎡에 달하는 넓은 수변공원에는 캠핑장, 물놀이장, 어린이 놀이시설, 초화단지, 각종 운동장과 넓은 잔디광장 등의 여가시설이 조성돼 있다. 장미, 금계국, 핑크뮬리, 억새 등 계절에 따라 색색의 꽃이 만발해 인생샷 명소로도 제격이다.낙동강체육공원 내 있는 구미캠핑장은 총 196면이며, 코로나19로 현재 카라반 13개 동과 오토캠핑장 40개 면, 일반캠핑 39면만 운영되고 있다. 편의시설로는 개수대, 화장실, 샤워장과 매점이 마련돼 있다.낙동강의 시원한 강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고 천생산 일출과 금오산 노을을 조망할 수 있는 낭만적인 캠핑 명소이다. 낙동강체육공원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도 구미캠핑장만의 장점이라 하겠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새로운 문화창고<16>경주시립도서관

세계적 역사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한 경주는 신라 천년의 화려한 역사를 비롯해 수천 년의 역사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도시다. 역사문화도시 시민들도 오랜 전통문화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신라인의 피가 면면히 이어지며 오랜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서라벌 역사문화도시의 허파로 불리는 경주 중심의 황성공원 한편에 우뚝 서있는 경주시립도서관은 신라인들의 정신과 역사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과거를 미래로 이어주는 수장고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삼국통일의 비밀과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워갈 지혜를 퍼내고 퍼내어도 샘솟는 깊은 우물인 경주시립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어본다. ◆경주시립도서관의 역사역사를 품은 도시 경주의 찬란한 미래를 위한 변화의 선두주자인 경주시립도서관은 경주도심의 허파 황성공원에 전통한옥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1953년 7월 경주읍립도서관으로 출발해 반세기를 훌쩍 넘기는 동안 경주시민들의 지식정보와 평생교육의 보고가 되고 있다. 1989년 9월22일에 현재 위치인 경주시 원화로에 경주시립도서관으로 신축 개관하고, 경주중앙도서관을 중앙분관으로 개칭했다.이후 감포, 단석, 칠평도서관을 각각 개관하고 2011년에는 송화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또 양남, 양북, 강동, 현곡, 화랑마을에 5개의 공립 꿈마루작은도서관을 개관해 원거리 시민들의 독서문화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현재 서무팀, 사서팀, 송화도서관팀, 중앙도서관팀, 칠평도서관팀의 5개팀 29명의 직원이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의 구성과 발전경주시립도서관 본관은 경주의 중심지 근린공원인 황성공원에 있어 시민들의 접근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의 메인 건물과 아이사랑책놀이터(지상 1층)의 두 곳 건물로 구성돼 있다. 본관 1층에는 어린이자료실, 보존서고, 열람실, 사무실 등이 있고, 본관 2층은 종합자료실, 디지털실과 향토자료실 등이 있다.지하 1층에는 문화강좌실과 휴게실이 있으며, 유아들을 위한 아이사랑책놀이터는 별관에 따로 위치해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분관별 특화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본관의 향토자료실에는 ‘경주선생안(慶州先生案)’ 등 2천677권의 고서들과 경주지역 관련 자료, 신라역사 자료 4천300여 권이 소장돼 있다. 또 노령자 및 저시력 이용자들을 위한 큰글자 도서와 다문화 및 점자도서들도 비치해 정보취약계층의 지식정보 격차 해소에도 노력하고 있다. 경주시립도서관 충효분관인 송화도서관은 지역 독서환경 조성 및 문화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2009~2011년 2년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된 연면적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송화도서관은 생활문화 복합기능의 공공도서관으로서 독서진흥 활성화를 도모하고 꿈과 미래를 설계하는 평생교육의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송화도서관은 치매·식물학 특화자료 등의 1천400여 권을 소장 중이며, 2019년에는 ‘치매선도 도서관’으로 선정됐다. 경주시립도서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중앙도서관은 1976년 11월에 개관한 도서관 역사의 산 증인이다.중앙도서관은 신라왕족의 3성, 육부촌의 6성 등 87개 성씨의 본관인 경주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조상의 중요성을 알리는 족보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족보자료관에서는 시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족보 상식을 상세히 기술했을 뿐 아니라 3왕성 6부성을 중심으로 한 양장본 족보 845권을 디지털 이미지화해 전자책으로 제공하고 있다. 학문과 충절의 고장으로 이름 높은 안강, 감포, 건천에 각각 자리 잡은 칠평도서관, 감포도서관, 단석도서관에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정보자료를 갖추고 있다.이들 도서관은 지역 향토자료를 수집·보존해 지역민을 위한 평생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의 이용2021년 3월 말 기준 경주시립도서관의 장서 수는 51만6천여 권이며 전체 회원은 7만6천여 명에 달한다.본관 자료실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열람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에는 휴관한다.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 중이며, 분관별 자세한 이용 안내는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경주시민은 물론 경주에 주소를 두고 있는 학생 및 직장인들도 도서관 회원가입을 할 수 있다.1인당 5권의 책을 14일까지 대여할 수 있으며 예약대출서비스를 통해 저녁 시간에도 책을 대출 할 수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의 독서문화프로그램경주시립도서관은 매년 인문·문화·예술·체험 등 시민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독서·문화프로그램 및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제57회 도서관주간 및 세계 책의 날을 맞아 ‘당신을 위로하는 작은 쉼표 하나,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지난 4월1일부터 30일까지 경주시립도서관 본관 및 분관(송화, 중앙, 칠평, 감포, 단석)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12주간, 경주시립도서관은 ‘도서관 지혜학교’를 개최해 ‘삶을 상상하는 지혜, 통섭하는 지혜’라는 주제로 문학, 영상, 이미지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당초 대면으로 진행됐지만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전환했지만 대부분의 수강생이 독서 과제 수행과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시민들이 숲 속에서 독서와 힐링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숲 속 책쉼터’를 황성공원 내에 운영하고 있다.‘숲 속 책쉼터’는 경주시립도서관이 황성공원의 시민 휴식공간인 정자를 활용해 공중전화부스 형태로 설치한 시민 자율형 무인도서관이다.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도서를 열람하고 반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시민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으며 도서관 본관 바깥으로 공원을 산책하며 책과 함께 힐링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임시 휴관 중 안심도서대출 서비스를 시행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안심도서대출 서비스는 도서관 휴관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 해소를 위해 읽고 싶은 책을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다음날 도서관에서 신청한 책을 빌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또한 본관 1층에 스마트 도서관 기기를 설치해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무인 도서 대출반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경주시립도서관은 물리적 공간과 함께 온라인 공간에서도 창의적 아이디어가 융합하는 소통의 장이자 독서문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박용섭 경주시립도서관장…미래를 담은 도서관 완성박용섭 경주시립도서관장은 경주시 최초로 사서 사무관으로 승진해 도서관장을 맡았다.그래서 직렬에 걸맞은 관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관장은 대학 졸업 후 1989년 경주시 사서직 공무원으로 시작해 32년 동안 도서관에서만 근무했다. 그는 “직원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으며, 어떠한 일에도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이며 이용자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더없이 친절하다”며 “시민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일심이면 만능이다”라며 전체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소개했다.박 관장의 목표는 동료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책읽는 도시, 책으로 행복한 경주시민, 미래를 담는 도서관’을 완성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매년 이용자가 43만 명 이상으로 연 도서대출 47만여 권이었으나, 지난해에는 코로나 사태로 이용실적이 많이 줄었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로 휴관할 경우에도 책을 빌려주고자 신청한 도서를 사서들이 일일이 서가에서 찾아서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볼 수 있도록 안심도서대출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관장은 도서관이 많은 장점이 있지만 보완할 점도 없지 않다고 했다.“현재 경주시립도서관 종합자료실 면적이 904.25㎡이다. 주제별 공간을 하나로 만들다보니 개관 당시에는 상당히 큰 규모였는데 인력이 부족할 때는 반납된 책들을 서가에 꽂다 보면 상당한 거리로 인해 직원들이 기진맥진할 정도였다”며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아쉬운 점은 주말이면 청소년들과 대학생, 일반인과 함께 은퇴 이후의 실버세대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계층 간의 마찰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했다.박 관장은 “도서관이 즐기는 공간, 휴식과 놀이도 겸하는 문화공간으로 가는 세계적 추세이다. 이제 우리 도서관도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간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여유로운 독서문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관 운영계획에 대해 그는 우선 역사를 품은 도시, 미래를 담는 경주 시립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또 “우리 도서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전에 남기신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생긴다’는 말을 새긴 기념비가 있다. 추후에 건립기념비를 도서관 정문이나 햇빛이 잘 비치는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현재 장서를 보관·제공하는 시설의 가용상태가 한계점에 달했다. 그래서 미래의 첨단시립도서관 건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향후 경주에는 신라 왕경 조성이나 황룡사 건축물을 도서관으로 이용되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건강인-스트레스가 파킨슨병의 원인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 등이 투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파킨슨병’은 3대 퇴행성 뇌질환으로 꼽힌다.파킨슨병의 가장 중요한 발병 인자는 ‘고령’이며, 특히 만성적 스트레스가 파킨슨병의 발병률을 높인다고 한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 치매에 뒤이어 신경퇴행성 질환 중 두 번째로 흔한 질병이다.평균 발병 연령은 55세로 세계적으로 보면 60세 이상의 경우 1%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운동 능력 저하와 더불어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을 동반하는 파킨슨병은 40~50세의 생산인구에서의 발병률이 치매보다도 9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파킨슨병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꾸준한 증가 추세이다.치매와 파킨슨병과 같은 노년기에 주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에 대한 관심도 고령화와 함께 늘어나고 있다.시니어(senior)는 ‘(계급지위)가 고위의, (스포츠에서 상급 수준에 이른)성인을 위한, 연장자’의 뜻이다.흔히 경험이 많거나 상위 직책의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최근에는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보편화되고 사회가 분열과 혐오의 양상을 띠면서 시니어는 존경과 배움 및 보호의 대상이기보다는 도전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그들의 스트레스는 안팎으로 많아진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시니어로서 살아가는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기간도 길어졌다.이러한 ‘시니어 스트레스’가 파킨슨병과 관련이 있을까? ◆파킨슨병이란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해지면서 몸동작이 느려지는 서동증과 더불어 떨림, 강직, 보행 장애로 나타난다. 도파민은 인체 운동 능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이러한 도파민을 생산하는 신경세포가 퇴행하고 사멸하면서 운동 능력이 떨어지면 파킨슨병으로 진단한다. 파킨슨병이라고 하면 손 떨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모든 떨림이 파킨슨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파킨슨병에 특징적인 떨림은 가만히 있을 때만 손, 발이 떨리고 젓가락질을 할 때처럼 운동 시에는 문제가 없다.또 한쪽에서 시작해 병이 깊어지면서 반대쪽으로 퍼지게 된다.떨림 외에도 몸이 굳고 움직임이 느려지며,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떨림 증상이 없는 파킨슨병도 적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증상을 관찰해서 조기 발견해야 한다.통상 도파민 분비 신경세포가 70%까지 없어지고 나서야 증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운동 증상이 나타난 시점에는 이미 퇴행성 변화가 진행된 상태이다.이러한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만성 변비, 기립성 어지러움, 소변 장애, 심한 잠꼬대, 냄새와 맛 구분이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비운동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비운동 증상만 있는 시기에 조기 발견하면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원인?스트레스와 파킨슨병의 관계는 이미 100여 년 전에도 장기간의 불안과 정서적 충격은 파킨슨병의 흔한 전조라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언급됐었다.실제로 홀로코스트나 포로 생활과 같은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에서 파킨슨병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났다.정서적인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감수성이 높은 환자에서 파킨슨병의 원인이 되는 흑질 선조체 변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장기간 활성화해 부하를 유발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켜 도파민 활동 감소로 이어져 파킨슨병을 일으킬 수 있다.만성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면서 약물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던 환자에 대한 보고도 있는 만큼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파킨슨증과 유사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예방과 증상 완화법세계 파킨슨병 학회에서 말하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은 긍정적인 태도와 웃음, 건강한 식단과 영양 섭취, 운동 및 여가, 약물치료 등이 있다.건강한 식단은 신경독성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장 건강이 뇌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신경계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특히 견과류와 토마토, 당근,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 색깔이 분명한 채소들이 뇌 신경세포 보호에 도움이 된다.운동은 스트레스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신경 가소성(신경세포 회로 구축 및 재구성)을 향상시켜 퇴행성 질환의 예방과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약물치료의 도움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파킨슨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경과 전문의의 신경 진찰과 비운동 증상에 대한 체계적인 설문이 필수적이다.비운동 증상에는 후각, 어지러움, 배뇨 장애, 기억력 저하, 기분장애 등의 신체 여러 부위에 다양한 증상이 있는 만큼 신체 기능 전반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다.파킨슨병의 치료는 부족한 도파민을 보충하는 것을 기본으로 도파민 보충에는 다양한 약제가 개발돼 상황에 맞게 전문의와 상의해 복용해야 한다.파킨슨병은 운동·비운동 증상이 서서히 악화되면서 일상생활 능력에 큰 지장을 준다. 예방과 완치가 아직까지는 어렵지만 증상을 완화시키고 경과를 늦출 수 있는 치료가 있는 만큼 적절한 검사를 통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도움말=한양대병원 신경과 류창환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국민건강보험 Q&A>위질환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

Q=위질환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된다는데 어떤 혜택이 있나요? A=만 40세 이상이라면 2년마다 위암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국가암검진사업에 따라 본인부담금 10% 비용으로 위암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건강보험료 하위 50%는 본인부담 없습니다.다만 수면내시경 마취 비용 등 본인부담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위암 진단을 받았다면 중증질환 산정특례제도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경감됩니다.암은 5년간 외래, 입원 진료 시 본인부담률 5%만 부담하면 됩니다. 확진 받고 공단에 산정특례 대상자로 등록한 경우 적용 시기는 확진일로부터 30일 이내 신청하면 확진일부터, 30일 이후에 신청했다면 신청일로부터 적용됩니다. 2018년 5월부터 위암 치료제인 사이람자주의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용하기 전에는 비급여 1주기(4주) 투약 비용 (제약사 신청가로 계산)이 약 500만 원(피클리탁셀 투여 비용 포함)이었지만, 건강보험 적용으로 환자 부담이 약 19만 원 수준으로 대폭 경감됐습니다.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11>경흥이 문수보살을 만나다

경흥은 백제 출신으로 18세에 승려가 돼 모든 불경에 통달해 명망이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경흥을 이미 불경에 통달해 신문왕이 국로로 책봉했다고 소개하면서도, 관음보살과 문수보살에게 가르침을 받는 우매한 백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국로에 책봉된 최고의 스님이면서도 스스로의 심화에 빠져 병이 들었는데 변신한 부처의 치료를 받아 회복하는 이야기를 소개해 사학자들은 백제인이 통일신라 왕실에서 겪는 고충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경흥의 화려한 생활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라사람들이 그를 책망해 비난하는 시류를 은유한 삼국유사의 지적이 적나라하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시대에까지 이름을 떨친 경흥국로의 깨우침을 통해 삼국유사가 추구하는 시대상을 읽어본다. ◆삼국유사: 경흥이 문수보살을 만나다신문왕 대의 경흥대덕의 성은 수씨이며 웅천주 사람이다. 나이 열여덟에 승려가 돼 모든 불경에 통달하니 그 시대에 명망이 높았다.개요 원년(681년)에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신문왕에게 뒷일을 부탁하기를 “경흥법사는 국사가 될 만하니 내 명을 잊지말라”고 했다.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국로로 책봉해 삼랑사에 머물게 했다. 경흥이 갑자기 병이 들어 한 달이나 아팠다.한 여승이 와서 그에게 문후를 드리면서 화엄경 중에 착한 벗이 병을 고쳐준다는 이야기를 했다.그러면서 “지금 법사님의 병은 근심으로 생긴 것이니 즐겁게 웃으면 치유될 것입니다”라 하고는 열한가지 모습의 익살스런 춤을 추는 광대를 만들었다. 뾰족하기도 하고 깎은 듯도 해 그 변하는 모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너무 우스워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법사의 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자 여승은 문을 나서서 바로 남항사로 들어가 사라지고 여승이 가졌던 지팡이는 십일면원통상을 그린 불화 앞에 있었다. 어느 날 경흥이 왕궁으로 들어가고자 했다.시종하는 이들이 동문 밖에서 먼저 준비를 하는데 말과 안장은 매우 화려하고 신발과 갓 또한 제대로 갖췄으므로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길을 비켰다. 이때 행색이 초라한 한 거사가 지팡이를 짚고 등에 광주리를 지고 와서는 말에서 내릴 때 밟는 디딤돌 위에서 쉬고 있었다. 광주리 속에는 마른 물고기가 보였다. 시종하는 자가 그를 꾸짖기를 “너는 스님의 옷을 입고 어찌 더러운 물건을 짊어지고 있느냐”라고 말했다.승려가 말하기를 “두 다리 사이에 산 고기를 끼고 있는 자도 있는데 시장의 마른 물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무슨 흉이 되랴?”라고 하자 일어나 가버렸다. 경흥이 막 대문을 나오다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의 뒤를 쫓게 했다. 그는 남산 문수사의 문밖에 와서 광주리를 버리고 사라졌다. 그의 지팡이는 문수보살상 앞에 세워져 있었으며 마른 고기는 바로 소나무 껍질이었다. 따라갔던 사람이 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경흥은 이를 듣고 탄식하며 “문수보살이 와서 내가 말 타는 것을 경계한 것이구나”라고는 그후 죽을 때까지 다시는 말을 타지 않았다. 경흥의 아름다운 덕행과 그가 남긴 뜻은 승려 헌본이 지은 삼랑사비문에 자세히 실려 있다. 언젠가 보현장경을 봤더니 거기에서 미륵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내세에는 마땅히 염부제에 태어나 먼저 석가의 말법제자들을 득도시킬 것이다. 다만 말 탄 승려만은 제외시켜서 부처님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 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아니할 것인가!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옛 성현이 남긴 교훈 뜻이 더욱 많은데/ 어찌하여 후손들은 갈고 닦지 아니하는가/ 마른고기 등에 진 건 오히려 괜찮으나/ 후일에 미륵불 문책 어찌 감당할까.’ ◆새로 쓰는 삼국유사: 문무왕과 경흥대덕문무왕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무열왕을 따라 전쟁터를 누볐다. 특히 문무왕은 외삼촌 김유신 장군에게서 검법과 병법을 철저하게 공부했다. 문무왕은 전쟁터를 누비면서 백성들이 창과 칼, 활에 맞아 죽은 체 장사도 지내지 못한 시신이 빨래처럼 논두렁과 밭두렁에 널려 있는 모습을 보고, 반드시 전쟁을 없애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 더욱 전쟁을 혹독하게 치렀다. 그래서 문무왕은 왕이 되기 전인 장군으로 전장을 누빌 때부터 군사는 물론 일반 백성들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겼다.군사들이 전쟁에 이겨 적의 땅을 지날 때에도 함부로 부녀자와 어린이, 노인 등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음식과 곡식도 약탈하지 못하게 군기를 아주 엄하게 다스렸다. 문무왕이 백제를 쳐서 흡수 통일하고, 고구려와 힘겨운 전쟁을 벌릴 때였다.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공주지역에 주둔하고 있는데 후방에서 군수물자 보급이 늦어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민가를 약탈하거나 탈영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조짐이 보였다. 그때 문무왕은 술과 음식을 훔쳐먹은 군사들을 색출해 주민들과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재판을 열어 곤장 백대를 치고, 열흘동안 막사와 마을 청소를 담당하게 했다.다음부터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참하겠다는 엄한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문무왕은 성의 안팎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모아 군인들과 함께 성을 보강하는 공사에 참여하게 해 서로 화합하는 한편 군인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또 굶는 이들이 없도록 주민들의 곡식과 성의 물자를 임대해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나눠 주며 함께 먹도록 했다.이어 군수물자로 다시 백성들에게 대여했던 곡식을 정확하게 계산해 되돌려 줬다. 이를 지켜본 경흥스님이 문무왕을 찾아와 당시 백제 부흥운동을 하던 인물들을 포섭해 통일신라에 충성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정책을 건의했다.문무왕은 경흥스님의 건의에 따라 백제 출신 인물들을 공주성주와 고구려를 공격하는 장군으로 발탁해 신라 대신, 장군들과 똑같이 대우했다.백제 인물들이 부흥운동을 스스로 그만두고 통일신라 발전을 위한 일에 적극 참여했다. 그때부터 문무왕은 경흥스님을 책사로 삼아 곁에 두고 불교진흥정책과 함께 전쟁에서의 전략도 함께 고민하게 했다.경흥은 그의 폭넓은 인맥을 동원해 백제 경계지역과 고구려 깊숙한 곳까지 관리와 장군들을 설득해 싸우지 않고 신라로 흡수 합병하는 평화의 전쟁을 전개했다. 문무왕은 전쟁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경흥대덕에게 법회를 열어 사병들은 물론 백성들에게도 불교의 이념에 대해 가르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병사들이 군사훈련을 통한 신체적인 단련과 정신적인 수련을 함께 병행해 왕의 군대는 강하게 성장해갔다. 왕의 숙소 옆에 경흥의 막사를 크게 지어 숙소와 함께 강의실을 마련했다. 경흥은 강의와 사병들의 신상문제를 상담하는 역할까지 기꺼이 수행해 착하며 강한 군대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했다. 문무왕과 경흥은 장군과 군사의 관계에서 발전해 완전히 친구처럼 가까워져 서로를 이해하고 믿고 아끼는 사이로 발전했다. 경흥의 불교적 수양도 전쟁터에서 깊어졌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하다보니 불교 또한 이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도 접목한 생활불교가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경흥은 혼자 정신을 수련하던 소승불교에서 원효가 주장했던 대중불교를 서서히 몸으로 익히고 받아들였다. 자연스럽게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철학을 전파하게 됐다. 경흥은 원효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문무왕의 주선으로 분황사에 남은 원효의 깨달음을 상당부분 습득하게 됐다. 문무왕은 고구려를 정벌하고, 당나라군사까지 몰아내어 완전한 삼국통일을 이룬 후 경흥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교리를 책으로 만들어 보세요”라고 명하고 삼랑사에 머물게 했다. 문무왕은 죽기 전에 아들 정명에게 “후일 네가 왕이 되거든 경흥대덕을 국사로 책봉하고 모든 일을 그에게 물어 시행하라”고 틈만나면 당부하듯 일렀다. 경흥은 왕의 분부에 따라 삼랑사에서 외출을 삼가고 책을 집필하는데 몰두해 왕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알았지만 책임을 완수하지 못해 궁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멀리서 묵묵히 기도로 작별인사를 올렸다. 늦게 신문왕이 국로로 책봉하고 왕궁으로 불렀으나 경흥은 궁으로 들어가지 않고 삼랑사에 머물며 거리를 두고 왕명이 있을 때만 응했다.그러나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은 서신으로 알려 예방하게 했다.신문왕은 김흠돌의 반란에 대한 낌새를 어머니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대비책은 경흥이 귀뜸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새로운 문화창고<15>청도어린이도서관

청도군은 인구 4만5천여 명의 전형적인 농업도시다.군은 농촌지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저출산 및 인구 감소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어린이도서관 건립을 선택했다.경북 최초로 세워진 청도어린이도서관은 청도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원하며 어린이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도어린이도서관의 역사2012년 2월8일 청도어린이도서관은 청도군 화양읍 일원(1천120㎡)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개관했다.청도어린이도서관이 보유한 장서는 6만 권에 달한다.이중 80% 이상이 어린이 도서다.일반도서와 영유아 도서 외에 노년층을 위한 대활자본 도서코너도 마련돼 있다.또 영어동화, 참고도서 등도 비치해 다양한 연령대와 관심사를 가진 이용자들의 활용도도 충족시키고 있다.어린이도서관과 함께 청도에는 스마트도서관(매전면)과 금빛작은도서관(금천면)이 있다.이들 도선관은 먼 거리로 어린이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군민들에게 독서 환경을 지원한다.스마트도서관은 430여 권의 도서를 보유하며 24시간 무인 도서대출반납시스템으로 운영하며 군민들과 도서관을 늘 연결해 주고 있다. 금빛작은도서관에는 2천300여 권이 비치돼 있으며 도서대출 서비스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문화센터를 제공한다.사랑방 같은 문화센터는 지역사회의 문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햇살가득 품은 도서관 청도어린이도서관은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려 건립돼 빛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친환경 자재와 신생 에너지로 꾸며진 실내 또한 군민에게 안전한 도서관 또는 친환경 도서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도서관 1층에 있는 어린이자료실은 영유아와 부모를 위한 공간으로 영유아 서적과 수유실, 세면대 등으로 구성됐다.어린이자료실 바로 옆 이야기 방에는 부모가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으며 3만5천여 권의 어린이 도서가 진열돼 있다.통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채광으로 환한 어린이 열람실은 개방형의 계단식방이 설치돼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가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다.도서관 2층에는 DVD, e-learning, e-book을 볼 수 있는 디지털열람실과 2만여 권의 성인 도서가 있다.이와 함께 문화강좌실 공간에서는 여러가지 문화체험과 문화교육을 제공한다.강당에서는 아동극, 인형극, 작가와의 만남 등 소규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도서관 이용시간은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매주 금요일과 국가 공휴일에는 휴관한다.도서 대출은 1회 5권까지 가능하다.다만 문화의 날인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10권을 빌릴 수 있다. ◆어린이문화센터로 자리매김도서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행사와 공연, 무료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부모와 자녀, 조부모와 손자 등 가족 단위 이용자가 많이 찾는 만큼 도서관은 가족 편안한 소통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이러한 흐름에 맞게 청도어린이도서관은 문화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지역 어린이문화센터로 거듭나고 있다.또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고자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문화교실 프로그램은 △영유아(6~24개월) 또랑또랑 △인지놀이(6~24개월) △엄마와 함께하는 미술나들이(3~4세) △동화구연과 손유희(5세) △창의력 up 가베놀이(6~7세) △노래로 부르는 영어동화(6~7세) △영어그림책 피크닉 외 2개 강좌(초등 전학년)△역사논술(3~6학년) 등으로 진행된다.문화교실에는 분기별 200여 명의 어린이가 참여한다.특히 접수와 동시에 마감을 기록할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도서관은 어린이 문화공간을 지향해 온 청도군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도서관 주간, 독서의 달, 방학 특강, 강연과 전시, 체험 등 어린이를 위한 유익한 강의도 제공한다. 어린이들이 상황과 배경에 상관없이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갖도록 하려는 청도군의 배려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지난해부터는 문화생활이 여의치 않은 어린이들이 집에서 독서와 친숙해 질 수 있도록 북 드라이브 스루와 북스타트 책꾸러미를 전달하는 택배서비스도 제공했다.이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건축물, 마스크 스트랩, 컬러링 색칠하기 등의 만들기 키트를 지원해 이들이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할 수 있는 온택트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청도어린이 여행과 요리에 큰 관심공공 도서관의 대출도서 경향은 현재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청도지역 어린이들이 지난해 가장 많이 찾은 책은 여행과 요리에 관련된 책들이다.최다 대출 도서는 ‘GOGO 카카오프렌즈 한국편’으로 꼽혔다.이어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시리즈’가 2위를 기록했다.또 집콕 놀이의 정석인 요리에 관한 도서인 백종원의 ‘도전 요리왕 시리즈’와 ‘퐁당퐁당 등교와 더불어 길어진 방학에’, ‘집에서 술술 읽혀질 어린이 학습 만화’ 등이 뒤를 이었다.성인 도서로는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속에 품고 산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 △여행의 이유 △최고의 삶을 살아라(열정적 삶을 향한 10가지 꿈의 기술) 등이 인기를 끌었다. ◆소통공간이 된 “어도”청도어린이도서관은 아이들의 만남이 있는 책으로 소통하는 놀이터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청도어린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우리 어도 갈래?”, “어도에서 만나자!”어도는 청도어린이들이 어린이도서관을 줄인 말로 어린이들에게는 가까운 소통의 공간으로 통하고 있다.청도어린이도서관 김은지 사서는 “도서관은 조금 소란스러워도 된다. 아이들이 있어야 도서관이 있고, 누워서, 앉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며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이자 친근한 문화 쉼터로 여겨주니 참 감사한 일이다”라고 말했다.청도군수인 이승율 청도어린이도서관장은 “독서활동은 어느 시대의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본기이다”며 “청도 어린이들이 책 속에 담긴 상상력과 새로운 생각들을 융합해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독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산희 기자 sanhee@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10>광덕과 엄장

광덕과 엄장은 신라시대 평범한 백성이자 분황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며 도를 깨우치려 노력하는 친구이자 승려이기도 했다. 결국 두 친구는 열심히 도를 닦아 극락으로 가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극락으로 가는 일은 광덕의 처이자 나중에 엄장의 처가 됐던 보살의 덕이 컸다고 해야겠다.두 친구의 부인이 되었던 여인은 광덕과 엄장이 불도를 닦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현신했던 부처였던 것이다. 당시 엄장은 친구 광덕이 먼저 극락세계로 올라간 것에 충격을 받아 더욱 정진하게 됐는데 그 정진하는 방법을 원효대사에게서 배웠다. 원효대사는 거리에서 무애춤을 추었던 거리낌 없는 행동으로 일반 백성들 틈에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기도 하며 대중불교의 뿌리를 내리게 한 공신이라 해야 한다. 원효는 여러 고승을 찾아다니며 공부했지만 당나라 유학도 하지 않았으며 혼자 스스로 공부하며 깨우친 성인 반열에 올랐던 스님이다.분황사에 주석하며 100여 종 300여 권의 책을 쓴 원효대사의 공덕을 이제는 새로운 각도에서 인정해야 한다. ◆삼국유사: 광덕과 엄장문무왕 대에 광덕과 엄장이라는 승려 두 명이 서로 친해 밤낮으로 약속하기를 극락으로 먼저 가는 사람은 반드시 서로 알리도록 하자고 했다.광덕은 분황사 서쪽마을에 숨어 살면서 신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엄장은 남악에 암자를 짓고 화전농사를 지었다. 어느 날 해 그림자가 붉게 노을지고 소나무 숲 그늘에 어둠이 깔릴 무렵에 창 밖에서 소리가 들려 오기를 “나는 이제 극락으로 가네. 자네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게나”라고 하자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서 쳐다보니 구름 위에서 하늘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밝은 빛은 땅까지 뻗쳤다. 이튿날 광덕의 처소로 가보니 광덕은 과연 죽어있었다. 이에 즉시 광덕의 처와 함께 유해를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다. 장사를 다 치르고 광덕의 부인에게 말하기를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떠하오?”고 물으니 부인이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드디어 머물러 밤에 자면서 정을 통하려고 하자 부인이 응하지 않으면서 “스님께서 서방정토를 구하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고 말했다. 엄장이 놀라면서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 “광덕도 이미 그랬는데 나 또한 어찌 안 되겠소?”고 이야기했다.부인이 말하기를 “남편은 10년을 살아도 아직까지 하룻밤도 한자리에 잔 적이 없는데 하물며 몸을 더럽혔겠소. 오로지 매일 밤마다 몸을 단정히 하고 반듯이 앉아서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혹은 16관을 짓고 관에 익숙하자 달빛이 창문 안으로 들어오면 때로는 빛 위로 올라가 그 위에서 가부좌를 했습니다. 정성을 다함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서방정토에 가려고 아니한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무릇 천 리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첫걸음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니 지금 스님의 관은 동쪽으로 간다고는 할 수 있지만 서방으로 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며 단호히 말했다. 엄장은 부끄럽고 무안하여 물러나와 그 길로 원효법사의 처소로 가서 도 닦는 요점을 간곡하게 청했다. 원효는 정관법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다.엄장은 이에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한마음으로 도를 닦으니 그 또한 서방정토로 올라가게 되었다. 정관법은 원효법사본전과 해동고승전에 실려있다.광덕의 부인은 바로 분황사의 계집종이니 대개 관음보살의 19응신 중의 한 분이다. ◆분황사의 원효대사신라시대 대중불교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원효대사는 진평왕 39년인 617년 경산에서 태어났다. 원효의 성은 설, 아명은 서당, 신당으로 불렸다. 법명 원효는 새벽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불교를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지었다. 15세에 출가해 자신의 집을 절로 지어 초개사라 부르고 있으며, 태어난 곳에는 사라사를 세웠다.원효는 진덕여왕 2년(648년)에는 황룡사에 주석하기도 했다. 원효는 낭지와 혜공 등에 불법을 배우기도 했고, 의상과 당나라 유학을 떠나던 길에 깨달음을 얻어 다시 신라로 돌아와 일심과 화쟁사상으로 불교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분황사에 주석하며 100여 종 240여 권의 책을 써 불교 사상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원효는 한국불교사상 발달에 기여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해동보살, 해동종주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려 숙종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원효의 사상은 중국의 법장과 징관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설총 낳고, 떠돌며 소성거사, 복성거사로 불리며 불교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박으로 무애를 만들어,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고 설파했다.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쳐 백성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됐다. 원효는 지금은 댐에 수몰된 고선사에 머물기도 했으며, 686년 신문왕 6년, 3월30일 혈사에서 70세 일기로 입적했다. 아들 설총이 유골을 빻아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했다. 후손 설중업이 김언승 각간(후에 헌덕왕)의 도움으로 고선사에 서당화상비를 세웠는데 비석의 일부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원효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송고승전 등에 전하고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광덕과 엄장광덕과 엄장은 어릴 때부터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다. 둘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마을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둘은 원효대사가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누구나 관세음보살을 외기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극락에 가기 위해 불교에 대해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광덕은 분황사의 북쪽에서, 엄장은 분황사의 남쪽에서 각자 암자를 지어 생업도 뒤로하고 불도에 전념했다. 그들은 오일장날에 시장에서 만나 수양에 대한 방법과 진전에 대해 논의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의 국밥집 여주인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불쑥 끼어들어 “극락에 가시려면 전념해야 할텐데 제가 두 분 중 어느 분의 아내가 되어 시중을 들고 싶어요”라며 아내가 되겠다고 했다. 두 친구가 서로 양보하며 눈치를 봤다.여주인이 거듭 독촉하자 광덕이 흔쾌히 “제 아내가 되어 뒷일을 봐 주신다면 염치불구 하고 허락하겠네”라며 제안을 받아들여 그날로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두 친구는 그 자리에서 축배를 들고, 더욱 불법에 정진하기로 약속했다. “누구든 부처가 돼 극락세계로 가면 서로 연락을 하자”고 맹세하고는 시장에 나오는 시간도 아껴 수도하기로 했다. 그날부터 광덕은 아내가 주는 죽으로 연명하며 밤을 낮삼아 기도하는데 전념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것 같아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말없이 웃더니 분황사 원효대사를 찾아가 방법을 물어보라고 언질했다. 광덕은 바로 원효대사를 찾아가 아무래도 기도법이 잘못됐는지 진전이 없어 왔다며 방법을 물었다. 원효는 그가 쓴 ‘정관법’이라는 책을 전해줬다. 그로부터 날로 정진해 광덕은 어느날 밤 몸에서 사방으로 빛을 발하며 공중으로 부양하더니 지붕 위를 한바퀴 돌고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그날 엄장의 꿈에 친구가 나타나 “나는 극락으로 가네. 자네도 곧 따라오게”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엄장은 다음날 바로 광덕의 집으로 찾아갔다. 광덕의 아내가 엄장을 맞아 “그이는 어제 극락세상으로 갔어요”라며 장례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엄장이 자초지종을 묻자 “분황사 원효대사에게서 기도법을 배워와 정진하더니 날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엄장도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는 바로 분황사로 달려가 원효대사에게 기도법을 가르쳐주길 졸랐다. 그로부터 엄장도 집을 버리고 따라온 광덕의 아내 도움을 받아 기도에 정진해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처럼 극락세계로 날아갔다. 그 이후 광덕과 엄장이 기도하던 암자에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닮은 불상이 앉아 있었고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새로운 문화창고<14>상주도서관

상주도서관은 사람과 사람, 책을 연결하는 공감과 존중이 있는 공간이다.특히 시민의 삶으로 직결되는 책 읽기를 통해 이웃 간 서로 공감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널리 확산되기를 희망하고, 도서관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보존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력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상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 상주시는 9만7천1여 명이 거주하는 도농복합도시이다.경북도교육청 소속 상주도서관은 접근성이 뛰어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상주의 유일한 공공도서관으로 1987년 7월16일 개관해 올해로 34주년을 맞으며 상주시민의 역사와 삶에 자리 잡았다. 부지 7천628㎡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연면적 3천898㎡로 건립됐다.1층에는 어린이 자료실과 일반 자료실, 2층은 참고 자료실, 디지털 자료실 및 평생학습실, 3층에는 열람실과 시청각실이 있다.도서관에는 23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주제별·매체별 다양한 지식정보서비스를 운영하며, 매월 신간도서와 매주 희망도서를 제공하고 있다.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시민의 요구를 충족하는 장서 개발을 위해 매년 정책을 수립하고 탄탄한 장서구성을 위해 이용자와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특화된 서비스를 위한 영어원서, 큰 글자 도서, 다국어도서, 향토자료, 전자신문, DVD 등을 확충하고 있다.특히 큰 글자 도서와 오디오북 서비스는 중장년층이 높은 지역 실태를 반영한 것으로 쾌적한 독서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도서관 이용시간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조정 기간을 제외하면 각 자료실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열람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정기 휴관일은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이다.연중 운영되는 문화 프로그램들도 알차다.전문 사서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독서 동아리, 인문학 강연, 예술 공연 등을 제공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운영방식 또한 참여자와 프로그램 특성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 방식을 병행한다.대면뿐만 아니라 유튜브, 실시간 화상 회의앱, SNS 등 다양한 비대면 채널을 통해서도 시민과 소통하고 있다. 변화에 대응하는 독서 인프라 확충으로 시민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상주도서관이 추구하는 목표다. ◆코로나 블루 극복과 사회적 독서지수 향상 기여지난해 전국적으로 대유행한 코로나19 여파와 특히 지난해 12월 발생한 BTJ 열방센터 집단감염으로 시민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상주도서관은 2021년 화두를 시민의 ‘코로나 블루 극복’과 ‘사회적 독서지수 향상’으로 정하고 다양한 독서진흥사업을 전개하고 있다.3월부터 전 연령층이 참여해 삶의 온기를 더해주는 책을 만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도서관, 온도 100℃’ 사업을 오는 10월까지 운영한다.책과 사람 및 주제를 잇는 강연, 대상별 정서함양 프로그램, 계층별 감성개발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코로나로 지친 시민을 위로하고 있다.또 혼자서는 읽기 힘든 교양도서를 한 달 한 권씩 선정해 함께 읽고,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핵심 문장을 필사하는 ‘각양각冊(책), 한 달 한 권’ 사업도 운영한다.이 사업은 참여자가 완독의 보람을 느끼고, 참여 후 한층 높아진 사회적 독서지수를 지역사회에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또 같은 맥락으로 어린이, 청소년, 학부모, 직장인 등 연령별로 구성된 5개의 독서 동아리는 ‘함께 읽기’를 중심으로 사회적 독서 활성화를 지원한다.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모임은 주말을 활용하고, 성인을 위한 책모임은 평일 오후에 운영한다.도서관 관계자는 “책모임은 도서관에서 아주 중요한 활동 중 하나이다. 혼자 읽고 혼자 성장하는 독서보다 함께 읽고 고민해나가는 공동체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아낌없이 성장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상주도서관을 찾으면 주말, 평일 주·야간, 방학 등 연중 70개 이상의 평생교육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어린이들이 온몸으로 독서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그림책 하브루타, 연극놀이, 동화구연 등을 제공한다.또 성인 및 고령자를 위해 서양미술, 문학창작, 자녀학습코칭, 타로 인문학 등의 인문·교양과정도 진행한다.코로나로 인한 임시휴관 기간 중에는 시민들이 집에서 편리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 무료 택배 서비스, 북테이크아웃, 논스톱 회원 가입 서비스, 학습꾸러미 배부 등의 안심대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또한 서가 속에서 잠자고 있는 책을 사서가 수시로 꺼내어 시민의 정서에 위안을 주는 책을 직접 큐레이션해 선보이고 있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계기별 독서 캠페인을 연중 추진하며 시민의 일상회복과 행복충전에 앞장서고 있다. ◆협력 프로젝트로 지역 독서문화 조성상주도서관은 어려서부터 단계적으로 올바른 독서생활이 정착될 수 있도록 가정·학교·사회 협력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도서관과 학교 간의 협력을 중심으로 독서진흥사업을 펼쳐 가정과 사회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도서관의 공공성 향상을 통해 지역 독서문화를 이끄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목적이다.특히 상주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면적이 6번째로 넓은 도시인만큼 도심에서 떨어진 읍·면 소재지에서는 도서관을 이용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고자 상주도서관은 원거리 지역 학교로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인 도서관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이밖에도 독서상, 다독상, 책 읽는 가족, 독서통장 마일리지 등 대상별로 다양한 시상 이벤트를 마련해 시민의 독서의욕을 고취한다.해마다 어린이 동화구연 대회, 청소년 인문학 감상문 쓰기 대회 등 독서장려 행사를 개최하며 지역 독서문화에 앞장서고 있다.또 상주도서관은 상주권역(김천·상주·문경·예천) 학교도서관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담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초·중·고·특수학교 164개교를 대상으로 운영 컨설팅, 자료관리, 독서교육, 도서부원 연수 등 다양한 업무지원을 통해 학교도서관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도서관 아웃리치 확대상주도서관은 정보로부터 소외된 특수 환경 및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도 지원하고 있다.이들에게 보편적 지식정보와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 지식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보육원, 지역아동센터, 군부대, 요양원, 장애인기관 등과 연계해 문화학교 사업을 추진한다.대상별로 요구되는 프로그램을 사서가 구성해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인 도서관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이 밖에도 상주도서관은 2016년 초등학력 인정 기관으로 지정받아 성인 비문해자를 대상으로 문해교육 사업을 추진 중이다.지난 2월에는 제3회 졸업식을 개최하며 지금까지 1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이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의 다문화서비스지원 공모사업에 8년 동안 선정되는 진기록을 세우며 다문화가정과 자국민을 위한 상호 문화이해 교육에 나서고 있다.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이용자를 위해 우편배달 서비스를 확대 시행하고, 병원과 교도소 등 특수환경 계층을 위한 책 배달 서비스인 순회문고 사업도 확대했다.특히 올해는 개인에게 기증받은 책을 필요로 하는 마을문고, 작은 도서관 등 지역 유관기관에 재기증하는 도서기증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윤보영 관장…독서는 성숙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윤보영 상주도서관장은 “독서를 통해 내면의 성찰에 이르면 ‘나’ 라는 개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로 나아간다”며 “도서관은 사회의 건강한 흐름을 이끌고 있다. 독서를 통해 시민의 힘을 키우고, 사회적 독서력을 향상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고 확신했다.그는 “코로나로 인해 정서적으로 지친 시민들에게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책으로 다가갈 계획이다”며 “많이 읽는 것보다 독서가 삶이 될 때 책의 진정한 가치가 만들어지듯이 상주도서관은 시민의 삶으로 직결되는 책읽기를 통해 이웃이 서로 공감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널리 확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또 도서관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보존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화하며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윤 관장은 “상주도서관은 시·공간의 제약을 이겨내고, 외부 자원과의 협력으로 적극적인 독서복지정책을 추진해 사회통합 및 독서나눔 실현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경북 최고의 도서관이다”고 자부했다. 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계명대 동산병원 김병훈 교수의 전립선암 Q&A

Q=전립선은 어떤 기능을 하는 장기인가요?전립선은 남성에게만 있는 장기로 방광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전립선의 안쪽으로는 요도가 지나갑니다.전립선에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질환은 전립선 비대증입니다.나이가 들수록 점점 커지는 전립선이 안쪽으로 요도를 눌러서 소변이 잘 안 나오거나 화장실을 자주가게 되는 질환으로 대부분의 연세 많은 어르신의 고민거리입니다. Q=전립선비대증이 진행되면 전립선암이 되나요?전립선비대증과 전립선암은 전혀 다른 질환으로 전립선비대증이 오래됐다고 암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이런 전립선암은 남성에서 생기는 암 중 매우 흔한 질환으로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에서는 남성암 중 1위를 차지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점점 증가해 현재는 5번째로 많은 남성암입니다. Q=어떤 증상이 있을 때 전립선암을 의심해봐야 할까요?전립선암이 진행되면 전립선비대증과 같이 방광이 막혀 소변을 보지 못하거나 소변에 피가 나고, 자기도 모르게 소변이 세는 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또 암이 진행돼 뼈에 전이되면 통증이나 골절, 척수압박에 의한 신경증상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암의 초기에는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조기에 발견되는 전립선암이 많아졌습니다. Q= 증상이 없으면 전립선암은 어떻게 발견하나요?전립선암의 진단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전립선 특이항원 검사입니다.혈액에 있는 전립선의 항원을 찾는 검사로 최근은 대부분의 건강검진에 포함돼 있고, 또 소변보기가 불편해 비뇨의학과를 찾는다면 반드시 시행하는 검사입니다.만일 이 수치가 3.0ng/㎖ 이상이 나오면 전립선암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립선 조직검사로 암의 유무를 확인해야 합니다. Q=전립선암으로 진단되면 어떤 치료를 하나요?전립선암의 치료는 병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달라집니다.전립선암은 5년 생존율이 90%가 넘는 진행이 매우 느린 암 중 하나입니다.그러므로 초기 전립선암인 고령의 환자에서는 드물게 치료를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경우도 있습니다.하지만 대부분 환자에게는 적극적인 치료를 추천하며, 암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고 전립선 안에만 국한된 경우는 주로 수술을 이용한 치료를 합니다.또 다른 장기로 퍼진 전이 암의 경우에는 호르몬 치료 등의 전신적인 치료를 선택합니다. Q=전립선암의 수술에 로봇을 이용한다는데 정말로 효과적인가요?전립선에 한정된 초기의 전립선암은 대부분 전립선을 제거하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합니다.과거에는 복부를 30㎝정도 여는 개복수술 밖에 방법이 없었는데 이런 개복술은 정밀한 수술이 어려워 수술 후 자기도 모르게 소변이 세는 요실금과 발기부전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하지만 최근 로봇수술이 도입되고는 배를 열 필요가 없어 수술 후 통증이 적고, 또 정밀한 수술이 가능해 수술 후 요실금과 발기부전이 획기적으로 줄었습니다.최근 미국은 전립선암 수술의 80~90%가 로봇수술로 진행되며 국내에서도 로봇수술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Q=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전립선암은 항암치료를 하나요?대부분 전이된 암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것과 달리 전립선암은 항암치료 이전에 호르몬치료를 시행합니다.전립선암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데 이 치료는 우리 몸의 남성호르몬을 차단해 암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치료입니다.대부분의 환자에서 효과를 거두며 항암치료와 같은 고통이나 큰 부작용이 없고, 환자에 따라서는 10년 이상 암의 진행이 억제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전립선암이 더 이상 호르몬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그 이후의 치료는 항암치료나 2차 호르몬 치료 등 다양한 최신 치료를 시행합니다. Q=전립선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동물성 지방은 식이요인 중 가장 유력한 전립선암의 위험인자이므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고 육류를 적게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그리고 50세 이상에서는 전립선암의 조기발견을 위해 매년 전립선특이항원을 측정해 보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비뇨의학과 김병훈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코로나19 의료진 수면의 질과 정신건강에 대한 대책 필요

코로나19 대응팀으로 참여한 의료인의 상당수에서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우울·불안 등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수면센터 조용원·김근태 교수팀이 국가 지정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활동하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1주일 이상 근무한 의사 47명, 간호사 54명을 대상으로 우울과 불안, 그리고 수면의 질을 평가한 후 이 같이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지원방안과 정책 등은 코로나19 환자에 초점이 맞춰져, 의료진의 육체적 또는 심리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 부족하다.이에 계명대 동산병원 수면센터 교수팀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진들의 피로도와 스트레스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코로나19 대응팀에 참여한 의료진의 수면과 정신건강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분석했다. 2020년 3월23일부터 2020년 4월3일까지 실시한 2주간의 조사에서 전체 의료진 대상자 101명 중 24명(23.8%)에서 우울감을 의심할 만한 증상을 보였다.36명(35.6%)에서는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 불안감이 나타났으며, 26명(25.7%)은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그리고 의료진 중 의사와 간호사 집단을 비교한 결과, 간호사가 우울·불안·수면의 질 저하가 더 심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계명대 수면센터 교수팀은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의료인의 심리적 건강과 수면의 질에 대한 첫 번째 연구로서, 코로나19 진료를 위한 의료진을 구성하고 운영 및 유지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해당 연구는 2020년 12월에 대한수면연구학회에서 발간하는 ‘Journal of Sleep Medicine’ 17권 2호에 ‘코로나19 거점병원 의료진의 수면과 정신건강 조사’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