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영남당 유감

오철환객원논설위원대통령선거가 열 달 앞으로 다가오자 각 정당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당 대표와 원내대표 선출을 마치고 대선주자 선출일정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참패한 충격으로 내부에서 파열음이 새나오고 있는데다 경쟁력 있는 후보마저 떠오르지 않아 대선일정을 연기하자는 말까지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력 있는 참신한 인물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어보자는 의미일 것이다.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당내에서 유력한 대권주자가 부상되지 않는 가운데 대선일정만 짠다고 될 일이 아닐 것이다. 당 외의 유력한 대권 출마예정자와 어느 시점에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야권단일화가 성사되지 않는 다자구도에서 야권 대선주자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당의 대선일정만 진행할 순 없을 터다. 당 밖 잠용들의 거취를 마음먹은 대로 관리할 입장이 되지 않는 점이 난제인 셈이다.어쨌든지 국민의힘은 대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당의 새 지도부 진용을 갖추는 일이 급하다. 당의 대표와 최고위원 및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지난 달 말 원내대표가 선출된 상태이나 다른 핵심 지도부는 이제 막 경선 출발선에 서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원내대표가 울산 출신인 점을 들어 당 대표가 영남 출신이 되면 안 된다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이 유포되고 있다. 눈앞의 사탕만 보는 소갈머리 없는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이는 ‘도로 영남당’이 되면 확장성이 없다는 논리다. 한 마디로 비상식적인 언어도단이다. 이런 분열적 자해가 과연 같은 당내 인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 번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전남 출신이었고 현 대표도 전남 출신이다. 4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호남당’이라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게 유권자를 존중하는 자세이고 민주주의 하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영남당이라는 표현은 영남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이자 모독이다.선출직의 경우, 그 선택이 어떻게 되든지 유권자의 뜻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 유권자의 선택이 최종 결론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선거도 하기 전에 선거공학적인 측면을 들어 선출직의 성분을 정할 거면 무엇 하러 선거를 하고 경선을 하는가. 영남당 운운하는 것은 돈과 시간을 들여 굳이 번잡하게 선거를 치르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그 어느 나라든지 선거를 통해 사후에 각 지역별로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다 마찬가지다. 정당별 지지가 전국적으로 같은 비율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런 까닭에 캘리포니아당, 텍사스당 하는 식으로 특정지역 정당이라고 빈정거리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만 유독 특별하다. 그것도 꼭 영남지역만 대놓고 빈정거린다. 과할 정도로 특정정당 편향이 극심한 호남지역엔 토를 달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말 희한하고 불합리한 불가사의다.백보를 양보한다하더라도 야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같은 지역 출신이면 표의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대선주자가 선정될 경우, 대선주자와 당 대표의 보완성이 표의 확장성에 영향을 미치고 대선 승패를 좌우할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 개연성은 분명 이론상 존재한다. 허나 유권자가 출신지역을 보고 판단한다는 가정은 유권자를 얕보는 외눈박이 발상이다. 어떻든지 간에 모든 것은 유권자나 당원이 각자 판단할 영역이다.정당의 지도자 선출은 정권창출에 초점이 맞춰질 일이다. 이를 위해 당원을 하나로 묶고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할 터다. 그 적임자를 찾아내 당 대표로 뽑는 일이 작금 야당의 최대 과제이다.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갖고서 중재하고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경륜과 리더십이 그 본질이다.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후보를 발굴·선출하고 선거승리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현명하고 노련한 리더십이 그 필요충분조건이다. 뜬금없이 영남당 운운하는 것은 영남 뿐 아니라 전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마트료시카처럼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가정의 달이다. 오월에 접어드니 산으로 들로 부모를 찾아 나서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오랜만에 우리 식구도 때늦은 성묘를 하러 산에 오른다. 부모님 누워 계신 산소 언저리에 들어서니 에워싸고 있는 풍경이 참으로 아늑하고 평화롭다. 어디선가 향기가 진동한다. 코를 벌렁대며 돌아보니 하얀 찔레꽃이 바위 뒤에 피어나 산소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진한 찔레꽃 향기에 그리움이 몰려든다. 땀내 젖은 엄마 품이 그립다.눈 부신 햇살 아래서 찔레꽃은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와~!”하고 반가이 손짓하는 것 같다.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좋아하실 부모님이 안 계시자 오월이면 발길이 자꾸만 산으로 향한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기세로 꺾지 않아도, 미세먼지가 제아무리 하늘을 가려도 어머니 아버지 누워 계신 곳은 봄볕을 받아 아늑함 그 자체다. 차가운 눈발이 날려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가리개 역할을 하고. 제 살기에 바빠 좀처럼 오지 않는 자식을 대신해 찔레꽃은 바위 뒤에 피어서 향기로 부모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던 게다.참 기막히게 향기 좋은 찔레꽃이 온 천지를 위로한다. 끝내 없어지지 않고 겨울 감기처럼 토착화 할 것 같은 코로나도 찔레꽃 향기를 맡아보고 향기에 취해 썩 물러나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무덤 위에 돋아난 잡초들도 색색의 꽃을 달고 있다. 손으로 뜯고 칼로 자르고 예초기를 돌리는 자식들이 오랜만에 자기 힘껏 부모님 이발 단장을 해드리는 데 열심이다. 뜯긴 풀에서도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풀을 뜯다가 문득 생각한다. 풀들도 각자 제 나름의 꽃을 피우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생명체, 미생물도 풀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 제 나름의 꽃을 피울 한창때는 찾아 오리니.비탈진 언덕배기에 붉은 황톳빛 찻집에 들어섰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고향 땅 한 바퀴 돌아볼 때 자주 찾는 집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창가에 마트료시카 인형이 놓여있다. 언젠가 러시아 공항을 지나는 길에 나도 어머니께 사다가 드렸던 기념품이 그곳에 있다니. 어머니는 그 인형이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면서 주르르 내놓았다가 또 하나하나 차곡차곡 넣어서 하나로 단단히 합체된 완전체로 두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웃고 또 웃으며 바라봤다. 어머니 가시고 그 인형을 보면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도 마트료시카 인형을 시장가에 늘어선 기념품점에서 보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덥석 집어 들었다. 마치 어머니를 본 듯이.마트료시카는 나무로 만든 러시아의 전통 인형이다. 몸체 속에는 조금 작은 인형이 들어가 있고 이것이 몇 회를 반복해 들어가는 구조로 돼있다.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어 여자 이름인 마트료나(Матрёна)의 애칭으로 어머니를 뜻하는 어원 마쯔(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쉬까(ешка)의 결합이 된 것이니 ‘어머니 인형’이라는 뜻이다.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고 부유함과 행운을 가져오는 인형이란다. 각각의 인형은 여성이 그려져 있는 것이 기본이지만, 대통령 등 유명인이 그려진 변형도 있다. 러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1890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 나온 기념품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900년에 러시아 각지에서 여러 가지 마트료시카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러시아의 민속 공예품과 선물로 알려지게 됐다.생김새는 나무 오뚝이처럼 생겼고 기본형으로는 러시아 전통 두건을 쓴 소녀 그림이 그려져 있다. 큰 인형 안에 약 80% 크기의 작은 인형이 계속 들어 있어서 큰 인형을 열면 안에서 작은 게 튀어나오고 그걸 열면 또 안에서 더 작은 게 튀어나오고 열면 더 더 작은 게 튀어나오고 열면 더 더 더 작은 게 튀어나오는 식으로 인형 안에서 인형을 꺼내고 또 꺼낼 수 있다. 제일 안쪽의 것은 거의 손톱만 한 크기다. 일반적으로 5개 정도부터 시작하지만 대개 6개 이상 만들어진다고, 작은 인형들의 수가 많을수록 가격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원래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지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인형 하나하나의 의상과 표정 그리고 배분에 들어가는 그림이 각자 모두 다르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여유로운 자태로 의젓하게 버티며 자식들에게 향기로운 꽃으로 그리움을 전하는 찔레꽃처럼, 엄마 품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엔 이 황토 찻집에 놓인 마트료시카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비대면으로 만나 봐야겠다. 상상 속에서나마.마트료시카처럼 우리들 안에도 부모와 그 부모, 그 윗대 부모님들의 유전자들이 겹겹이 쌓여 내려오지 않았으랴. ‘겹겹이 제일 단단해진 열매 같은 우리’ 로 말이다.오월은 가정과 가족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달이다. 사랑과 이해로 뭉쳐서 날마다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늘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막걸리 한잔

손동섭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가수 강진의 ‘막걸리 한잔’)가수 영탁은 강진의 ‘막걸리 한잔’을 트로트 방송에서 부르면서 현재 유튜브 조회수 2천543만회를 기록하며 막걸리 업체 광고까지 찍게 됐고 막걸리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으리라. 막걸리 한 되박 사서 돌아오는 길에 호기심 발동해 노란 양은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막걸리 몇 모금 마시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심부름한 것을 기억한다.퇴직 후 소일거리로 막걸리를 빚어서 지인들과 즐거운 자리를 마련하려고 서울에서 근무할 적에 전통주 학원을 다녔다. 4년간 틈만 나면 집에서 막걸리를 빚었더니 이젠 제법 맛이 괜찮다는 지인들의 평가와 술도가 차려서 사업하자는 지인도 있어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가끔씩 들르는 처남과 처제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김치냉장고부터 뒤진다. 애지중지 하는 삼양주 술단지를 보관해 둔 김치냉장고에서 통째로 끄집어내서 밤새 비워버리곤 한다. 아파트 특성상 고두밥 찌는 게 한계여서 한번에 많은 술을 빚을 수가 없어 지인들에게만 살짝 맛보기로 주는 아끼는 술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내가 빚은 술맛을 인정해 줘서.막걸리는 발효시키는 횟수에 따라서 단양주(單釀酒),이양주(二釀酒),삼양주(三釀酒)로 구분한다. 누룩과 고두밥을 한번에 발효시키는 단양주는 대부분의 시중 막걸리이며, 누룩을 한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 다음에 고두밥을 넣어 빚는 것을 이양주, 삼양주는 이양주 방식에서 밑술을 한 번 더 투입하는 것으로 맛과 향을 최고로 꼽는 그야말로 명품주이며, 알콜 도수가 대략 16정도이다.물을 첨가하면 도수를 조절할 수 있으며 단양주는 통상 4~5일, 이양주는 5주, 삼양주는 18주가 소요된다. 술의 양은 맵쌀을 기준으로 1㎏에 막걸리 한 병 정도 생산된다.얼마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서 ‘인생막걸리’라고 올린 술을 소개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 번이나 취했고 막걸리 한 병 출고가 11만 원이며 일명 롤스로이스라는 애칭이 붙은 전남 해남의 해창막걸리다.이 술이 바로 삼양주 일 것이다.일체의 첨가물 없이 오로지 국내산 쌀, 누룩과 물로만 빚어서 프리미엄급 막걸리임에는 분명하다. 그야말로 최고급 막걸리이다.문화재청은 지난 달 ‘막걸리 빚기 문화’를 신규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이는 막걸리를 빚는 작업과 생업 및 의례, 전통 생활관습을 포괄한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 무형문화재가 된다는 의미다.2000년 이후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등장했고 자가 제조도 증가하는 추세에 ‘막걸리 빚기 문화’의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은 막걸리 열풍을 다시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막걸리는 어떤 재료를 섞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표현할 수 있다. 재료에 따라서 제주 한라봉막걸리, 가평 잣막걸리, 공주 밤막걸리, 강릉 옥수수막걸리, 문경 오미자막걸리 등이 시중에 선보이고 있다.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원재료로 이용해 빚어내는 막걸리와 맛깔난 먹거리,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풍광, 역사유적 등과 연계된 체험관광은 국내외 관광객을 유혹하는 관광거점으로도 톡톡히 역할을 할 수 있다.특히 대구·경북지역은 많은 역사유적과 더불어 다양한 과실류가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어 다양한 소비자 기호에 부응한 막걸리를 빚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원재료로 빚은 막걸리가 지역 맛집, 관광콘텐츠와 연계해 농촌융복합산업(6차산업화)에 한 축이 됐으면 한다.내일은 어버이날이다. 직접 빚은 막걸리로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드려야지.‘막걸리 한잔’ 노래를 읊조리며!

아름다운 구속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계절의 여왕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오월이다. 여기저기 온 사방에서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마음대로 찾아가 축하해 줄 수 없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의 앞날을 축하하며 날씨가 큰 부조하기를 기대한다. 여름을 방불케 하던 따스한 기온은 새로운 결심과 새 출발 하는 이들이 긴장이라도 하라고 일러주려는 듯 며칠 사이 찬바람으로 바뀌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반복하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도 유독 한 여인이 꾸준하게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봄볕 아래 벚꽃이 일시에 화들짝 피어나듯 뭉근하던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듯하더니 드디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 칠십 중반이 돼서야 이룬 큰 성공에 세상을 그다지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인 20·30대도 닮고 싶다고 열광하는 것 같다. 이국땅에 사는 한 친구도 아카데미 ‘K그랜마’ 성공담을 아는 대로 기록해 긴 메일을 보내왔다. 인생 후반에 큰 성공을 이룬 원로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앞날에 대한 기대로까지 여겨지는지 지나온 자신의 인생 곡절과 앞날의 희망 섞인 계획까지 구구절절 덧붙여놨다.60살 넘어서는 사치하고 살려고 마음먹었다던 그 배우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남는다. 그녀가 말하는 사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것(작품)은 하고, 싫어하는 사람 것은 안 하는 것이다. 돈 그런 거 상관없이 원하는 작품을 하리라’ 였다. 센스 있을 젊은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나이가 들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를 경계하고 편견으로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인 것 같아 귀감이 된다. 그는 또 이른다.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일흔 살 중반의 여배우에게 세상은 이제야 빠져들지만, 거의 반세기 동안 교류해온 오랜 친구들은 솔직 담백한 윤여정 표 화법에 익숙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이 윤여정이 밥 먹는 자리에서 수다 떠는 모습과 똑같아서 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나이 60이 돼도 인생은 몰라,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도 67살이 처음이야,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어떻게 계획을 할 수가 없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고” 세계 여행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이 담담하게 하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젊은 날이었다면 그녀의 말이 이렇게 가슴을 울릴까. 나이가 들어가니 지나간 말이 새롭게 되살아나곤 한다.세계적인 상을 받고서 와인 잔을 옆에 두고서 한 인터뷰 사진이 신문을 장식한다. 그 기사에서 깜짝 놀랄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오래전 미국에서 신생아에 관해 공부하고 귀국해 국내 신생아학의 붐을 일으켰던 유명한 분. 세상 떠나고도 수필 ‘인연’으로 유명세를 이어가는 피천득 수필가의 아드님, 자신의 업적보다는 아버지의 몇째 아들로 소개돼 섭섭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던 원로 교수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여배우의 오랜 지인으로 지면을 장식하는 것으로 놀라는 독자들도 꽤 있었으리라.까탈스레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가까이 지내는 이들의 면면이 참 다양해 놀랍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50여 년 인연이라며 그녀를 빚지고 못사는 왕 깔끔 성격에 의리파라고 했다.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기 집에서 신혼여행 첫날밤을 보낸 적이 있다면서 일화를 들려준다. 하룻밤 재워 줬더니 부부가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이들 목욕을 싹 다 시켜 놨다고. 가수 김수철은 누나 동생 하는 사이의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단다. 어떤 분야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 통하면 친구가 되고 그 끈은 오래오래 변함없이 이어진다고 더듬는다. 피천득 작가의 아드님인 피수영 박사는 ‘처음과 지금, 무대 위와 아래가 똑같은 사람’이라면서 신생아를 전공한 의사로서 또 오랜 친구인 윤 여정 배우의 매력을 자랑한다.‘겉·까·속·따’. 겉은 까칠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던가. 한번 맺은 귀한 인연은 소중하게 여겨지면 길고도 길게 이어가는 그녀 자신은 결코 미인이 아니란다. 독특한 개성의 얼굴이라고 인정하니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역으로 작품을 재해석해 더 좋은 역할을 해내지 않았으랴. 작품을 받으면 적어도 일백 번을 읽는다던 이. 자기만의 개성과 올바른 판단으로 맺고 끊음은 확실히 하는 꼿꼿한 인생 선배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언제나 아침에 눈 뜨면, 기도를 하게 돼, 달아날까 두려운 행복 앞에…’ 서영은의 노래 ‘아름다운 구속’의 가사가 입가에 맴도는 오월, 아름다운 날이다. 늘 희망 가득한 새로운 마음으로 또 새로운 계획을 꿈꿔보면서 오늘 하루도 더 많이 행복하시길.

코로나19와 교육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아는 학부모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고집하는 고2 학생을 데리고 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넌지시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뭔가?” “누워서 휴대폰 보는 겁니다.” 너무 직설적인 답변에 순간 놀랐다. “네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줘서 정말 고맙다”라고 답하면서 상담자인 내가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밖에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날그날 마음 끌리는 대로 합니다.”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물었다. “귀찮아서요.” 아주 태연하게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최상위권과 최하위권이 늘어나고 중위권이 급속하게 줄고 있다는 여러 보고서와 설문조사 내용을 떠올리며 나는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았다.학생과 상담하고 한 달쯤 지났다. 최근(4월19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초(4~6학년)·중·고생 8천6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동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단지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학업을 중단하고 싶다는 초·중·고등학생 비율이 30%에 이른다는 내용을 보고 다시 놀랐다. 코로나19로 인한 불규칙한 등교 수업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학업 성적과 경제적 수준이 낮을수록 학업 중단을 생각했다는 응답률이 높았고, 이들의 무기력증이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학생을 데려온 어머니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고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이다. 가정 형편이 좋은 집 아이도 이런 생각을 하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학생이 학교에 가기 싫은 여러 가지 이유를 종이에 적게 했고,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씩 검토하며 질의응답을 계속했다. “학교에 친한 친구가 있는가?” “있어요.” “자네가 자퇴한 후에도 친구와 잘 지낼 것 같은가?”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아, 친구 엄마가 자네를 못 만나게 할 가능성이 크네. 자네한테 영향받아 자기 아이도 학교를 그만둘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지.”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학교를 그만두면 엄마 아빠가 행복할 것 같은가?” “아닐 것 같아요.” “자네가 종일 집에 있다면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수도 있어. ‘남자와 학교 다니는 아이는 해 뜨면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와야 한다’라는 말이 있지.” 학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는 물의 소중함을 몰라, 교복을 입고 있을 때는 벗고 싶지만, 교복을 입을 수 없어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닌다면 교복이 간절히 그리울 수도 있어. 소속감이 없으면 어른도 견디기 어렵단다.” 이런 식의 대화가 한 시간쯤 진행되자. 학생은 “학교에 계속 다니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학생에게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책이 좋다고 말했다. 책이 주는 감동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한 개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책을 읽으면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꿈을 꿀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책은 각박하고, 무료하고, 권태로운 현실에서 도피처와 안식처를 제공해 주며. 책을 읽는 사람은 책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고 더 강해져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책이 휴대폰과 다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1995년 이후 출생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기성세대와 기업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갑자기 뜬 챌린지에 너도나도 몰려들고, 특이한 것에 반응하며 색다름을 즐기는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다른 재미로 갈아탄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유행도 금세 식어버린다. 이런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1’은 이처럼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짝하고 지나가는 짧은 유행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신의 삶을 즐기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롤러코스터 라이프’라고 부르며, 이들을 ‘롤코족’으로 명명한다고 했다. 교육이 세대별 성향과 소비 트렌트를 이해하고 참고해야겠지만, 스마트 폰을 손에 들고 더 자극적이고, 색다른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의 즉흥적인 사고방식과 현실 도피에 영합해서도 안 된다. 국가 미래 경쟁력을 위해 교육 당국은 학업에 흥미를 잃고 무기력에 빠진 학생들을 구제할 지원 대책과 지도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윤여정을 롤 모델로

오철환객원논설위원미나리의 윤여정이 우리나라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감독상, 작품상, 외국어영화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았지만 연기부문은 아예 노미네이트되지도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토종 배우 윤여정의 연기상 수상은 아쉽고 찜찜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로 인해 심신이 지친 가운데 날아든 낭보라 더욱 반갑다.유교적 엄숙주의와 점잖은 예법 하에서 감정을 감추는 관행에 익숙한 연기자가 개방적인 유목사회의 연기자보다 그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불문가지다. 서슴없이 자기주장을 하고 다이내믹한 제스처와 파워풀한 표정이 일상인 미국의 배우를 우리 배우가 제키고 앞서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유교권 동양3국의 사정도 대동소이하다. 이연걸이나 성룡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동서양에 가로놓인 신체적 문화적 장벽을 실감한다. 압도적인 몸집과 역동적인 표정에 위축되는데다 영어까지 어눌하다보니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윤여정의 연기상은 더욱 값지다.윤여정은 수상 소감에서 자신은 운이 좋아서 과분한 상을 받은 것처럼 말했다. 겸양의 말씀이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배우의 면면을 보면 모두 주연 급이다.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보랏 속편’의 마리아 바칼로바,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 등 쟁쟁한 연기자가 버티고 있었다. ‘골든 글로브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세계 최정상급 배우 글렌 클로스에서부터 한창 핫한 스타 어맨다 사이프리드까지, 윤여정은 그들과 당당히 겨뤄 승리한 것이다. 가히 인간승리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사회적 환경적 악조건 속에서 글로벌 스타들과 겨뤄 아카데미 연기상을 거머쥔 윤여정 배우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신체적 문화적 장애를 짊어진 채 이혼과 자녀 양육 등 개인적 불행까지 안고 7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적 연기자로 우뚝 선 모습은 감동적이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흔히 ‘인생은 육십부터’라면서 ‘인생 이모작’을 이야기한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말은 오히려 ‘인생은 육십까지’라는 역설로 귓전을 울릴 뿐이다. 하지만 윤여정은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줬다.윤여정의 쾌거는 거저 주어진 건 결코 아니다. 혹독한 고난에 굴하지 않고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겨낸 결실이다. 그녀는 생계형 연기자였다. 쌀독에 쌀이 떨어질 때가 더 많았던 적도 있고,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최저시급 2.75달러를 받고 슈퍼마켓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단역이나 보조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목숨 걸고 연기했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기적을 만든 원천은 절박함이다.부모나 배우자가 돈이 많아 비빌 언덕이 있으면 악착같은 근성이 사라진다. 독기가 빠지고 늘어지게 마련이다. 천천히 놀면서 대충대충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게을러터진 사람이 무엇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배우가 편하면 떨림이 없는 연기가 나오고, 그런 죽은 연기는 보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 제대로 된 연기, 감동을 주는 연기를 하려면 절박해야 한다. 절박한 사정을 통제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보여준 윤여정은 스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박경리 소설가도 고난을 당해 굴복하지 않고 성공을 일궈낸 위인으로 평가된다.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된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생활의 방편으로 소설을 선택했다.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글을 썼고, 어린 딸을 지켜내기 위해 처절하게 원고지를 메웠다. 불후의 대하소설 토지는 절박함과 작가정신이 만나 일궈낸 아름다운 진주다. 불행이란 도전을 피와 땀으로 녹여내 응전함으로써 진주 같은 문학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다.좋은 환경에서 자란 열매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여문 열매가 훨씬 달고 맛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과관계는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문화예술 부문에 뚜렷이 나타난다. 비록 무척 힘들겠지만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큰 성취를 이루고 고지에 도달하는 법이다. 앞으로 윤여정을 롤 모델로 삼아 성공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가든파티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왕관 모양의 꽃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두꺼운 녹색 잎사귀는 마치 칼처럼 뾰족하다. 연보랏빛 꽃송이의 튤립이 고고하게 솟아 올랐다. 어느 해 봄, 화살나무로 경계를 이룬 이웃집에서 건네준 구근 몇 개를 심었더니 다시 봄이 왔음을 알린다.시골 나무 시장에서 사다 심은 영산홍은 비실비실하더니 이젠 제법 화사하게 꽃피어 자리를 빛낸다. 집 방문자들이 들고 와 심었던 꽃 잔디도 질긴 생명력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진분홍으로 검은 돌 마당에 봄을 색칠한다. 치자는 큰 나무 그늘에 가려서도 진한 향기로 하얀 꽃의 존재를 찾아보게 한다. 눈부신 4월이 말없이 지나간다. 코로나19가 끝났다면 마음 놓고 봄을 즐기련만,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노을이 아름다워도 그것을 마음껏 즐기기엔 무거운 납덩이가 한구석에 들어 있는 듯, 기분은 어쩔 수 없다.꼭 해야 할 일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오래 했으면서 조금이라도 역할을 찾아서 하면 좋지 않을까. 여기저기 몸과 마음을 보태기로 노력한다. 그중에 의사회 봉사단이 있다. 외국인 유학생, 이주 노동자, 불법체류자 등 몸이 아프지만, 의료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으면 의사회에서 하는 무료 휴일 진료를 지원했다. 코로나19가 심해지자 그곳도 문을 닫았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오갈 데가 없고 이전에 오던 사람들은 나에게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마음이 늘 불편하던 차에 응급실 야간에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10일에 한 번 정도 밤샘 근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 낮 근무를 마치고 이어서 응급실 밤 당번을 했다. 주말이 되면 갖가지 사연의 환자들이 찾아와 온갖 인생살이의 교훈을 전한다.2박3일째 울기만 해 달랠 수가 없어 왔다는 신생아, 배를 살살 만져주고 관장해줬더니 금세 울음을 그친다. 기르는 반려견이 여러 지병을 앓아서 주사 놓다가 바늘에 깊이 찔려 찾아온 이, 손가락 끝이 부어오르고 쑤셔댄다며 울상이다. 얼른 치료하고 마음마저 안심 시켜 줬다. 코로나19 밀접 접촉자가 돼 오랫동안 집안에 누워만 있었더니 갑자기 허리통이 생겼다며 119를 타고 온 중년, 근본적인 원인과 치료까지 원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는 통증이라도 조절하고 견딜 수만 있다면 자가 격리 후에 자유롭게 검사와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밤이 깊어간다.사회적 거리 두기가 조금 완화되자 동네마다 술을 먹는 술 골이 성황인 모양이다. 갓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시험 끝나자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못 이겨 술집으로 달려가는가 보다. 주량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분위기에 맞춰 입안으로 술을 들이붓다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119에 실려 오기 일쑤다. 이제 겨우 성인이 되는 생일날 아이가 실려 왔다. 말끔한 옷에 토사물 범벅이다. 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무런 연락처도 없이 길가에 쓰러진 친구들은 정말 난감하다. 정신을 못 차리니 어떤 일 있었는지 알 수 없고 혹시나 나쁜 상황이라도 생기면 연락할 보호자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밤새 노심초사하는 일도 생긴다.하얀 바지 차림의 학생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 가든파티 가방만 팔에 꼭 낀 상태로. 같이 온 친구가 알려준 번호로 보호자에게 전화하니 그는 먼 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한밤중에 달려 올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검사해보고 이상이 없고 의식이 깨어나면 혼자 자취방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어쩌랴. 멀리서 한밤중에 달려올 수 없다고 하니. 씁쓸한 마음이 돼 멍하니 있다가 환자를 보면서 들락거리고 있으려니 한 시간쯤 지나서 보호자가 병원 응급실을 향해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두 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불안한 얼굴로 아이 보호자가 찾아왔다. 결과를 듣고는 아이 옆에서 깨어나기만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일어선다. 다시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밤새 거리를 달리다가 새벽 출근을 나가는 부모, 그 마음을 자식이 알아주어야 할 텐데…퇴근하니 하늘 빛 가든파티 가방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명품 에르메스 가방 가든파티인가 놀라니 생일 선물로 왔다는 것이 아닌가. 직장인 취미 교육으로 가죽 공예를 배운다 던 제부. 수업 내내 만들어서 생일 선물한 것이란다. 어느 가수 남편이 선물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명품이다. 그가 아내를 위해 가방을 사주려고 30만 원씩 달마다 넣는 1년짜리 적금을 부었다고 방송에서 자랑했단다. 그를 보고 “바로 저거야” 싶었다는 제부,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백신으로 어서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든파티 가방을 만들어준 제부와 여러 고마운 이들과 허브 향 부침개 구워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가든파티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AI와 메타버스는 교육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장성애하브루타창의인성교육연구소장교육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AI가 바탕이 된 4차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 아래 코딩교육 등이 학교현장에 빠르게 도입 됐다. 미래 시대를 염려하고 준비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AI는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세계시장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미래세대가 단순한 수요자나 이용자이기보다는 공급자이며 주체자가 돼야 한다는 교육 당국의 열망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덮친 순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AI 교육에는 문외한이었던 일반인들까지 랜선 교육 등을 통해 AI를 통한 현실 속의 새로운 세상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특히 미래에는 인터넷이 3차원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메타버스’는 향후 IT산업의 핵심 키워드가 될 전망이라고 봤지만, 이제는 당면 현실이 됐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며 3차원으로 이뤄진 또 다른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코로나로 대중공연이 불가능해진 때 블랙핑크가 세계최초로 3D아바타로 가상공연을 시도하면서 급부상하며 이슈화되고 있다. 네이버는 2억 명의 전 세계 유저들이 가입한 새로운 소통방식의 메타버스인 제페토를 운영하고 있다.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급부상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융합된 ‘아바타’ 영화를 떠올리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우리는 이전의 ‘싸이월드’를 통해 어느 정도 경험을 하고 있고, 게임 사용자들인 청소년들은 이미 가상의 세계를 어릴 적부터 익숙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게임에도 익숙하지 않고, AI의 혜택을 받는 정도의 세대들에게도 놀랄만한 일에서 경제적 가치를 선도하는 공간으로 갑자기 익숙해져야 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 또한 2019년도까지 가상화폐가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때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일반인들에게까지 투자의 장으로 확산해가고 있는 것과도 맞물리는 현상이다. 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당연하게’, ‘갑자기’, ‘익숙해지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현실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것들에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 어리둥절한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한다.1970년대 일제강점과 6·25 전쟁 직후 황폐해진 국토와 경제살리기에 골몰한 나머지, 경제 대국으로는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적·정신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챙기고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 문제는 아직도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는 안타까운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우를 또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문제와 같은 측면에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진행형인 AI를 기반으로 한 4차산업에다 가상현실의 세계까지 휘몰아치듯이 펼쳐지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우리 자녀들의 정서와 정신적 가치 그리고 신체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기성세대가 따라잡지 못할 가상의 세계에 더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이 때에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체계와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어떻게 보완하고 해결할지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단순히 가상의 세계에서 게임을 하며 노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공간이며 부를 창출하는 공간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은 코딩 등 기술적인 부분을 따라가기 위한 교육보다는 인간이라는 스스로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에 중점을 둬야 한다. AI와 가상의 세계인 메타버스는 ‘교육’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간절한 질문이 필요하다. 물질과 경제를 중요시한 나머지 인성교육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서 문제점이 야기됐다고 하더라도 이미 코로나 사태에서 어떤 나라보다 선진적인 국민의식을 보여준 만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따라서 지금이 참다운 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적기이다. 부의 창출이라는 매력적이고도 달콤한 말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열려 있지만, 인간의 가치에 대한 교육의 장은 바이러스와 실제적인 돈의 가치상실로 인해 닫혀 가고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둔 교사와 부모와 학습자를 돕는 교육정책이 시급하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아직 때가 아니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하자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빗발치고 있다. 국내의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를 검토하라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교부장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적합한 절차에 따라 방류된다면 굳이 반대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외교부장관의 말에 온도차가 느껴진다. 선출직인 대통령과 임명직인 외교부장관의 태생적 한계로 보이긴 하지만 임명권자의 말이 보도되고 난 후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한 점을 보면 저급한 레임덕 조짐이 아닌지 염려된다.어떤 정권이든 집권 말기로 가면 정도의 차는 있지만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 대통령과 장관이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지 않은 채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은 최고통치자나 외교책임자다운 자세는 아니다. 대통령은 어엿한 법조인으로서 국제법상 승소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아무리 국민정서를 살핀 것이라고 하더라도 문외한 같은 감정적 언동은 어울리지 않는다. 외교부장관은 전문외교관으로서 국제법적으로 막을 방도가 마땅찮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국민정서를 고려한 임명권자의 말을 존중해주는 것이 맞는다.이성적으로 봐 객관적 판단은 외교부장관의 말이 타당할 수 있다. 미국과 IAEA의 태도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주도면밀한 일본정부가 오죽 잘 알고 결정했을까. IAEA가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국제법규에 맞도록 해양 방류가 진행된다면 공식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그 기준과 절차는 다른 생명체나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를 토대로 설정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계 과학자들의 견해도 해양 방류에 호의적이다. 해양 방류 반대가 이론적으로 세 불리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삼중수소 외 미지의 치명적 방사성 핵종이 오염수에 섞여 방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 살아있긴 하다.법적 과학적 근거를 찾아 해양 방류를 막기보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국제여론뿐만 아니라 일본 내부의 반대세력도 만만찮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감성적 접근 방법이 유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방사능에 대한 무조건적 공포와 생선이나 해조류를 통한 불특정 다수의 피폭 개연성이 일반대중을 불안하게 하는 점에 집중한다면 의외의 결실을 기대해봄직하다. 과학적 이론적으로 안전성이 증명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불안하다면 문제가 있는 법이다. 모두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세련된 선택이다.국가나 공식기구는 법규를 따르지만 시민단체나 민간협의회는 명분 혹은 손익을 중시한다. 그린피스를 위시한 환경단체는 환경보호가 제1의 과제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가 기준 이하라 하더라도 환경단체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어업이나 수산물유통관련 민간단체는 당해 업종 종사자의 손익에 민감하다. 과학적 결론에 관계없이 해양방류가 생업을 위협한다면 과격한 단체행동도 불사한다. 이런 점에 착안한다면 국제환경단체와 민간협의회를 앞세운 우회적 접근방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국가 간에도 ‘채찍과 당근’은 필요하다. 경제적 외교적 압박이나 시민단체의 반대시위만으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역지사지로 배려하고 십시일반으로 협조하는 접근 방법이 탈출구를 열 수 있다. 매년 5~6만 톤 가량 늘어나는 방사능 오염수를 무작정 계속 저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일본의 사정도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더불어 고민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도망갈 길을 열어 두고 쫓아야 한다. 방사능처리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자금을 갹출·지원하는 것도 선택 가능한 방법이다.2년 여 기간을 앞두고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덴 윈·윈 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뜻이 숨어있다. 방사능이 더 잦아들 때까지 오염수를 계속 저장토록 하려면 명분과 실질을 아울러 제공할 필요가 있다. IAEA 기준 이하로 해양 방류하면 무해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도록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침묵의 중요성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하얀 꽃을 잔뜩 달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철 푸른 잎으로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서서 지나는 이들에게 말 없는 싱그러움을 주는 나무 피라칸타다. 어느새 하얀 꽃을 피워내 제 소임을 시작했음을 알린다. 뜨거운 여름에도 푸른 잎으로 꿋꿋이 서 있다가 가을이면 정열적인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 결실의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하얀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두꺼운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빨간 열매를 지키며 추위를 씩씩하게 견디며 움츠린 이들에게 기운과 격려를 보탠다.신록이 짙어가는 나무들 사이에는 팬지, 피튜니아, 베고니아가 조용히 무탈하게 있다는 소식을 알리고 울타리 너머 정원에는 첫사랑이라도 떠올리라는 듯 갖가지 색의 영산홍이 피어있다. 마음이 들뜨는 봄이다.밖으로 나가 봄을 즐기는 대신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뤘던 일을 드디어 시작했다. 신기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책장을 가득 채우는 책부터 버리기로 했다. 책을 꺼내 먼지를 털고 차곡차곡 상자에 담아 쓰레기장에 가져다 뒀다. 누군가 필요한 이들은 가져갈 것이고 아니면 폐지로 나가지 않겠는가. 그중에는 아들의 국어책도 있었다. 버리려고 혹시 중요한 서류라도 끼어 있을까 싶어 뒤적이다가 어느 시인이 쓴 수필을 읽게 됐다.한국을 떠난 미국의 애리조나주 투손시의 인디언 축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티피 안에서 인디언 노인들과 흥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나는 아주 뜻밖의 일을 경험했다. 티피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마주 앉자마자,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며, 인디언 세계에 무척 관심이 많고,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했다. 인디언의 철학과 역사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도 넌지시 내비쳤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티피 안이 어슴푸레해서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건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티피마다 그런 식이었다. //…중략…//얼마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이 인디언 부족의 전통인 것을 알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한동안 침묵으로 상대방을 느낀다고 한다.자기 앞에 있는 존재를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은,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침묵을 통해서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후, 미국에서 돌아와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인디언 흉내를 내곤 했다. 상대방의 존재를 느낀답시고 입을 다물고 5분이고 10분이고 앉아 있었다. 그 결과가, 아주 괴팍하고 거만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침묵은 흉내가 아니라 존재의 평화로움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미처 몰랐다. ​몇 번의 여행을 인디언과 함께 하면서 나는 그들에게서 여러 개의 인디언식 이름을 얻었다. 그중의 하나가 ‘너무 많이 말해’였다. 내가 뭘 얼마나 떠들었기에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는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너무 많이 따져’라는 이름을 또 얻게 될까 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 고백하지만, 나는 그들의 침묵에는 턱없이 모자랐고, 그들의 말에는 더 없이 넘쳐났다. 나는 이생에서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지는 않는지? 류시화 시인의 ‘나의 모국어는 침묵’ 이라는 글이었다.나는 아들들에게 또 나의 지인들에게 이 글을 보내봤다. 그랬더니 아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하겠네요”라는 답이 왔다. 여동생은 “입 다물라고”라는 문자로 즉시 응답했다. 글을 다 읽고 보냈을까? 아니면 그냥 답부터 하는 것이 예의라고 시작한 것일까 싶었다. 여러 가지 응답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베트남 어머니를 가진 초등학생 아이가 하루 지나서 보내온 답장이었다. 그 아이는 글을 잘 읽었다면서 이제는 사람을 만날 때 먼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라코타족 인디언인 ‘서 있는 곰’은 말한다. “침묵은 라코타족에게 의미 있는 것입니다. 라코타족은 대화를 시작할 때,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진정한 예의로 알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 닥치거나 누가 병에 걸리거나, 또는 누가 죽었을 때, 나의 부족은 먼저 침묵합니다. 어떤 불행 속에서도 침묵하는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자주 소통하는 것 같지만, 끝까지 읽지 않고 잘 듣지 않고 내 말부터 먼저 하지는 않는지,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지 않으랴 싶다.

4·7 재보궐 선거, 감성과 이성의 대립과 조화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선거는 돈, 조직, 바람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 세 가지 중 앞의 둘은 바람을 이길 수 없다. 한국의 선거는 이성보다는 감성이라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당락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감성과 바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이룬다.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에서는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선거 캠페인에는 춤과 노래가 있다. 바람에 선행하는 유권자의 관심과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춤과 노래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무속적 상상력과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무속적 상상력의 특징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있다. 여기서는 형식적 균형을 깨는 파격, 비대칭을 낳는 역동적 흐름이 관건이다. 무속적 역동성은 단순히 질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어떤 무질서의 질서, 비형식의 형식이다. 물론 이런 역동성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빠져들기 쉽다. 무속적 상상력이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번져갈 가능성, 이 끔찍한 위험성이 과거 한국문화의 진보와 좌절을 모두 설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라고 서울대 김상환 교수는 말한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촛불 집회가 일으킨 바람은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태풍으로 발전해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그 바람으로 권력을 장악한 현 정권은 적폐 청산, 원전 폐지, 부동산 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성보다는 감성과 바람을 활용했다. 합리적인 설명과 설득, 양보, 토론과 합의보다는 감성을 앞세운 파격적 행보로 정책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견해가 다른 사람은 수구 골통, 토착 왜구, 적폐로 몰아붙였다. 코로나19 초반의 효율적인 통제가 일으킨 바람은 다른 모든 바람을 잠재우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 바람으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관행을 무시하고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는 법안 처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적 불신과 저항이 있을 때마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그들의 오만과 독선, 위선의 방패막이 돼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재유행, 집값 폭등, LH 사태 등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다.여당은 촛불집회가 일으킨 바람이 아직도 민의의 바다에 불고 있다고 착각했다. 여당은 당헌을 고치고 궁색한 변명으로 후보를 냈다. 뚜렷한 전략이 없다 보니 내곡동 땅 보상에 상대 후보가 개입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분명하게 입증을 못 하니 생태탕, 신발 이야기로 핵심을 벗어난 프레임을 만들어 바람을 일으키려고 했다. 누적된 불만이 야기한 분노의 바람 앞에선 백약이 무효였다.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가 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차가운 머리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가 쓴 ‘여씨춘추’에 ‘엄이도종(掩耳盜鍾)’이란 말이 있다. 어느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가 종을 훔치려고 했다. 도둑은 종이 너무 무거워 조각으로 깨뜨려 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망치로 종을 내려치는 순간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도둑은 다른 사람이 쫓아올까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았다. 자신의 귀를 막아도 다른 사람은 그 종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은 자신의 귀만 막고 선거운동을 했다. 야당 역시 별 차이가 없으니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막대기를 세워뒀더라면 더 많은 표를 얻었을 것이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되새겨 봐야 한다.4·7 재·보궐 선거를 감성과 이성의 관점에서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성이란 본능·충동·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 법칙을 만들어 그것에 따르도록 의지를 규정하는 능력, 올바르게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성은 욕구 또는 본능을 가리키며, 그것은 이성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고 했다. 감성과 이성은 우리 삶과 정치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상호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를 돌이켜 보며 여야 정치인과 모든 국민이 “감성 없는 이성은 공허하고, 이성 없는 감성은 맹목이다”라고 한 칸트의 말을 다시 곰곰이 음미해 보길 소망해 본다.

종부세는 세금일 뿐이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 물은 열을 받아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안으로 삭이지만 비등점을 넘어서는 순간 무섭게 끓어오른다. 반응이 늦다고 깨춤을 추다간 된통 당한다. 작금, 민심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LH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분노는 민심의 일단을 보여준 돌출사건이고 서울과 부산시장 등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표심은 빙산의 일각이다. 민심 대폭발이란 미션을 떠안을 악역은 세금 폭탄일 가능성이 크고, 그 도화선은 단연 부동산세금일 확률이 높다.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납부자가 최근 4년간 4.2배 늘어났고, 종부세 납부자 중 1주택자의 비율이 43.6%까지 올라갔다. 세액으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2016년 대비 1주택자 종부세액은 무려 9.4배나 늘어났다. 아닌 밤중에 세금 폭탄을 맞았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 급이다.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민심이 폭발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의 결과라 할 밖에 없다.종부세는 참여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응해 다주택 소유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부유세이다. 이젠 이를 조자룡 헌 칼 쓰듯 징벌적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다. 무분별한 표퓰리즘으로 뿌린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고집스럽게 공급 억제 정책으로 일관했다.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꼴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1주택자 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폭증했다. 설상가상 과표인 공시 가격을 비정상적인 속도로 현실화시켰다. 종부세와 재산세가 급등하는 건 불문가지다.부동산 보유세가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재분배차원의 이념적 징벌적 조세 도구라 하더라도 담세력의 범위 안에서 부과하는 세금일 뿐이고 형벌로 기능해선 안 된다. 부동산 보유가 불법도 아닌데, 부동산 보유에 벌과금을 부과할 수 없고,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세액을 징수할 수 없다. 집 한 채 밖에 없는 은퇴자에게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세와 종부세를 과징하는 것은 복지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횡포다.모두 다 잘 사는 것이 이상적 가치이긴 하지만 평등만이 유일한 절대가치는 아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소중한 가치들을 서로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도 다양한 기본권을 함께 보장하고 있는 터다. 국가에게 국민을 통제하고 강제할 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그 한계도 아울러 가진다. 세금을 징수·집행할 권한을 가지지만 국민대표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조세법률주의는 절대왕권과 싸워 확립한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슬로건은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을 관통하는 정신을 간명하게 표상한다. 숭고한 목적을 가진 세금이라도 국회에서 입법한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 부동산 공시 가격을 부동산 시가에 연동시키고 이를 과표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절차는 법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부동산 공시 가격을 현실화한다는 명분으로 과표를 무리하게 인상하는 것은 국회 승인 절차 없는 편법 증세이다. 위헌 소지가 있다.빚을 내지 않고 집 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동산 공시 가격을 그대로 과표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 부동산 과표에서 빚을 공제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빚은 이자라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자동 조절된다. 빚이 많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상환능력도 없는데 무작정 빌려주지도 않겠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무한정 빚을 내는 사람도 없다. 자기 책임 하에 독자적으로 판단해 형편에 맞게 균형을 유지한다. 국가가 간여할 영역은 제한적이다.부동산 보유세는 미실현이익에 과세한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이미 납부한 세후소득으로 형성된 재산에 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이중과세라는 태생적 한계도 지닌다. 소득 없는 은퇴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는 윤리적으로 난감하다. 집을 팔고 이사 가라는 의미라면 주거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마저 있다. 조세제도로 근사한 형이상학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폼은 나지만 애당초 잘못된 과욕이다. 세금은 그냥 세금일 뿐이다.

화중지왕(花中之王)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먼 산봉우리가 깨끗하게 눈앞에 다가선다. 맑고 고운 봄날이다. 햇살 가득한 양지쪽 정원에는 작약이 큼직하고 화려한 꽃을 자랑하며 벌써 피어나 오월처럼 일렁인다. 두려움에 떨면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이를 위로 하려는 듯, 선별 진료소 뒤편에 서서 풍성한 ‘부귀화’가 여기에서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고 속삭인다. 지난봄, 우울하기 그지없던 그때에도 하염없이 피어나 있지 않았던가. 자연은 변함없이 다시 돌아와 그때 그 빛과 향기로 자리를 지키며 본분을 다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향이라는 ‘국색천향’ 모란의 향을 즐겨볼 일이다.모란은 예로부터 화왕(花王)이라고 해 꽃 중의 꽃으로 꼽았다. 중국 유일의 여 황제였던 당나라 측천무후는 어느 겨울날, 꽃나무들에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령을 내린다. 다른 꽃들은 모두 이 명령을 따랐으나 모란만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래서 불을 때서 강제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끝나자 화가 난 황제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낙양으로 추방해버렸다. 이후 모란은 ‘낙양화’로도 불렸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모란은 자그마한 꽃나무다. 아름답고 화려한 모란은 꽃의 대표 자리를 차지했고 목단, 부귀화라고도 불린다. 오래전부터 화단이나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었다.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워 과거에는 ‘꽃 중의 왕’이란 뜻의 ‘화중지왕’ 혹은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향’이란 뜻의 ‘국색천향(國色天香)’ 등으로 불렸다. 자그마한 나무가 검은 가지에 자색의 꽃을 올해도 잔뜩 단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하다.지난봄, 어느 새벽 모습이 떠오른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서 모란 나무를 이리저리 살피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자초지종을 여쭤보니, 코로나19로 병원이 폐쇄되면 모란이 말라서 죽어버릴 것 같아 얼른 옮겨 다른 데 심어 잘 키워보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모란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러실까. 해마다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세월 보내기를 낙으로 삼았는데, 코로나가 덮쳐 그 꽃을 더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부리나케 달려오신 모양이었다. 선별진료소 앞과 뒤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도, 코로나란 녀석도 두렵지 않고 오로지 꽃나무만 눈에 들어오신 게다. 어르신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다짐했었다. 코로나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고 다시 꽃은 피어날 것이니 봄이 되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뵐 수 있기를….삶에 지칠 때, 자신만의 이상향을 꿈꾸게 되는 것 같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평생 사랑했던 땅 ‘월든’처럼 마음속 유토피아를 상상만 해도 아늑해진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 시절에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홀로 사색에 잠기고 책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용한 삶을 택했던 소로는 자신이 다른 하버드졸업생들처럼 되지 못하고 가정교사나 연필 제조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다른 이들이 불쌍히 생각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숲속을 산책하면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느끼고 배우고 일구는 삶을 직업으로 삼았다. 익숙한 일상을 버리고 월든 호수로 떠나 오로지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땅을 직접 갈아 감자와 완두콩, 순무를 심었다. 종일 일하기보다 새벽 5시에서 정오까지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산책과 글쓰기, 명상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했다. 소박한 농사꾼이자 조용한 수행자의 삶을 그는 사랑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적게 걱정하고 크게 만족했다. 월든 호수의 갈대 사이에서 속삭이는 바람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호수에서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할 일은 넘친다고 생각했고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지극한 내면의 희열을 느꼈다. 고향에 머무는 재능이 있는 사람, 멀리 떠나지 않아도 바로 그곳이 천국임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평생 고향에 머물러도 세상 모든 곳을 여행하는 듯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혜안, 단조롭게 보이는 자연 속에서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 그것이 소로의 지혜였다.완전히 자신의 의도대로 살아보기 위해 평생 애썼던 소로,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때 깨닫지 않았으랴. 내가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농사와 명상을 결합한 삶, 낚시와 글쓰기를 병행하는 삶, 자연 일부로 완전히 동화되는 소박한 삶, 봄이 무르익는 이 즈음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으리라.화중지왕 옆에서 이상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미나리이야기

손동섭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매년 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지는 이맘때 즈음이면 봄 마중 먹부림하러 가는 곳이 있다.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삼겹살에 김치, 된장을 바리바리 싸들고 청도 한재 골짜기로 미나리 먹부림하러 다녀왔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미나리는 벚꽃이 피는 이맘때가 제철이다.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나리라고 할 수 있는 ‘한재미나리’를 먹지 않고는 봄을 지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구 사람들에게 한재미나리는 봄맞이 대표 먹부림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특히 한재미나리는 다른 지역 미나리에 비해 식감이 연하고 미나리 특유의 향이 강할 뿐 아니라 줄기 아랫부분이 자주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미나리 수확철에는 한재골짜기 전체가 비닐하우스로 옷을 입은 진풍경도 볼만하다.처가가 청도 한재골인 직장 동료는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처가의 미나리 수확 작업을 거들어야 한다면서 자랑 같은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그래도 그 친구 덕분에 귀한 미나리를 제때 살 수 있어서 봄철 우리집 냉장고엔 언제나 미나리향이 가득하다.이 즈음에 한재골에 가면 절정에 이른 봄 향기에 취하고, 벚꽃의 화사함에 취하고, 미나리쌈에 삼겹살 곁들인 소주 한잔에 취한다. 그야말로 한재골 전체가 한판 미나리 축제를 벌려 놓는다.지금이야 깨끗한 지하 암반수로 키워낸 청정 미나리가 전국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지만,그 옛날 미나리 재배환경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미나리꽝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던 그 옛날 미나리에 대한 기억은 결코 좋은 추억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5년전쯤 청도에서 근무할 당시 지하암반수로 재배하는 미나리 농가의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 열렬한 미나리 예찬론자가 됐다. 물론 삼겹살 품은 미나리쌈에 소주 한 잔이 최고의 궁합인 것도 한몫 했으리라.미나리는 ‘물에서 자라는 나리’라는 뜻이 있다. 동의보감에서 미나리는 독을 풀어 주고 머리를 맑게 해 주며, 주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대소장(大小腸)을 잘 통하게 하고, 황달, 부인병, 음주 후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적이며, 김치를 담가 먹거나, 삶아서 혹은 날로 먹으면 좋다고 기록돼 있다. 혈관 청소부 미나리는 비타민 A·C 및 베타카로틴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으며 알칼리성 식품으로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이런 미나리의 효능 때문에 최고의 찰떡궁합은 역시 중금속 배출에 효과적이며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봄철에 자주 먹는 삼겹살이다. 또 주당들이 즐겨찾는 해장국인 복어탕의 복어 독을 중화 시켜주는데도 미나리가 한몫 한다. 그래서 복어탕에는 늘 미나리가 필수다. 복어 독을 중화시키기 위한 우리 음식문화의 지혜가 살아있음을 볼 수 있다.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한국배우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한국인 최초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주연상 타이틀을 거머 쥔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씨는 “미나리는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먹을 수 있어”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청바지가 잘 어울리며 열정적인 연기와 예능프로에서 보여주는 정갈한 요리 솜씨와 유머러스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늘 감동이다.영화 ‘미나리’ 신드롬을 타고 미나리 소비가 크게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농민신문에 따르면 GS더프레시의 지난 2월26일~3월22일 미나리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55% 증가했고, 이마트의 3월1일~22일 미나리 매출은 지난해보다 47%나 증가했다는 이야기다.대구시와 대구농협이 미나리1㎏과 삼겹살600g을 한 세트로 꾸민 ‘미삼세트’를 새롭게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청도군에서는 ‘미나리삼합세트’(미나리, 삼겹살, 새송이버섯, 막걸리) 600개를 자매도시인 안산시에서 완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니 올봄엔 미나리가 대세인 것 만은 확실해 보인다.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미나리 향과 ‘삼소’(삼겹살+소주)에 취해서 ‘입호사’를, 화사하게 핀 봄 꽃으로 ‘눈호사’를 겹으로 누리면서 미나리 재배 농가에도 힘을 보태면 어떨까!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나무라선 안 된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한 일간신문의 시사만평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풍파가 거세게 일고 있다.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라는 제목의 만평 코너에서 부동산 실정과 세금폭탄으로 인한 서민의 고통을 신랄하게 꼬집은 한 컷짜리 만화에 대해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가 불쾌감을 갖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항의 청원을 올린데 이어 주한교황청대사관과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해당 신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적인 조치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의인화한 세 명의 무장군인이 땅바닥에 쓰러져 웅크리고 있는 ‘9억 이상 주택보유자’를 몽둥이로 때리는 모습의 그림이다. 누가 봐도 만평의 목적은 국정 비판이다. 부동산가격 폭등과 부동산공시가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주택보유자에게 세금폭탄이 떨어진 상황을 날카롭게 비튼 기발한 패러디다. 가혹한 세금과 폭정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점에 착안한 듯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 메시지는 명약관화하다.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는 무장군인은 5·18 당시 가혹하게 진압하던 공수부대원을 연상시킨다면서 해당 만평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지 않는가. 게다가 그 희평이 ‘트레이싱(tracing) 방식’의 그림이라면 그 원본이 5·18 사진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인들이야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몰라 볼 리 없다.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그 사진을 베꼈다면 관련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렇긴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목적이 엄혹한 현실고발에 있고 5·18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책의 실패로 부동산가격이 폭등해 집 없는 서민과 청년이 절망하고 있고,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한 사람에게 재산세를 대폭 인상함으로써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설상가상, 서울의 평균 아파트시세가 11억 원을 웃돌자, 9억 원 이상 1가구 1주택 서민이 징벌적 성격의 종부세까지 내야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은퇴자라면 더욱 난감하다. 세금폭탄은 목줄을 죄는 폭압에 다름 아니다.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설사 5·18 사진을 의식적으로 끌어와 썼다 하더라도 악의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폭압적인 세금폭탄을 비유할 악랄한 캐릭터로는 계엄군이 제격이고, 세금폭탄을 맞아 궁지에 몰린 억울한 서민을 표현하는 캐릭터로는 유린당한 시민이 적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해당 일간신문을 구독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터이고, 혹시 보더라도 원본 사진을 연상해내지 못하거나 그 선의를 이해해주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점은 결정적인 실책이다.일간신문의 만평에서 완벽을 기대할 순 없다. 마감시간에 대한 압박이 과중하다. 비판할 만한 시사뉴스를 매일 찾아내고 이를 간결하고 세련되게 가공해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를 일목요연하게 한 컷의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행이다. 시사만평은 비꼼과 비틂이 그 본질이고, 풍자와 익살이 그 생명이다. 그 대상으로 채택됐다 하더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아 성찰하면 그만이다. 아무런 제재나 처벌이 없다. 그 의도나 목적과 무관하게 단지 수단으로 채택된 것에 대한 과민 반응은 실익이 없다. 지나치면 역효과가 난다.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오랜 세월 투쟁한 끝에 획득한 기본적 인권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보더라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위정자를 견제·감시할 수 없고 주인 된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한정 보장되는 건 아니다. 국가안전보장이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 희평은 한계를 일탈했다고 보기 힘들다.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나무랄 수 없다. 손가락에 찔린 옛 사연만 되뇌며 가리키는 사람만 탓한다면 화풀이는 되겠지만 호응은 고사하고 싸늘한 시선만 받을 터다. ‘나 홀로 블루스’를 자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