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시간이 휙휙 소리를 내며 달리는 듯하다. 또 한 해가 다가온다. 하루해가 떠올랐는가 싶은데 어느새 점심시간, 조금 일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해가 저물어 가는 일상이 이어진다. 그래도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 감정의 기복을 심하게 겪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참으로 고맙게 여겨진다. 봄이 가고 여름을 나고 가을이 지나고 이제 동짓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왠지 조금은 들뜨고 바쁘다.코로나 재감염이 정말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한 달 한 번씩 때맞춰 주사해야 하는 아이들이 코로나 감염으로 시간에 늦어 발을 동동 구른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급히 약속을 잡았다. 정기휴진 날이지만, 학교 가기 전 일찍 주사만 맞게 해주고 다시 시골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먼 거리를 달려왔다. 막히는 출근 시간을 피해 새벽에 출발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각이 지나 이제나저제나, 설마 하면서도 나타나겠지 싶어서 서성이고 있기를 한참,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와 아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출근 시간이라서 길이 막히는가? 늦잠을 자서 그런가?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기다려도 오지 않아 연락해보니 아이가 체육 수업하고 싶다고 해 그곳에 보냈다는 것이 아닌가. 아하하~! 어허허~! 웃어야지, 웃어버려야지. 약속은 지킬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니었던가. 따끔한 한마디가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눌러 꿀꺽 삼켰다. 다 지나가는 올 한해에 좋은 기억만 남겨야 하지 않으랴.달콤하고 향긋한 비엔나커피 한 잔을 뽑아 손으로 감싼다. 코끝에 전해지는 향기가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힌다. 빳빳하게 배달된 새 달력을 집어 들어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새로운 일에 관심을 돌린다. 계묘년, 육십 간지의 40번째로 계는 흑색, 묘는 토끼를 의미하는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띠의 성격으로 순하고, 상냥한 이미지를 준다. 가까운 토끼띠 지인은 본인은 게으르고 수동적이라고 늘 말하지만, 착한 성품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그이는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많다. 낙천적이고 쾌활하고 주변에 친절해 친구들이 참으로 좋아한다. 그를 보면 늘 십이간지가 떠오른다.십이지신의 유래는 옛날에 신이 동물들을 불러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차례를 정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평소 느리다고 생각한 소가 늦을까 봐 일찍 출발해 착실하게 달려 1등으로 도착하기로 됐다. 약삭빠른 쥐가 소뿔에 매달려 오다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뛰어내려 1등, 그 뒤를 소가 2등, 호랑이가 3등, 낮잠 자던 토끼를 호랑이가 깨워 토끼가 바로 달려서 4등으로 들어오고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가 순위를 차지했고 마지막으로 돼지가 꼴찌가 돼 12등을 했다고 전해진다.십이간지 유래는 땅을 지키는 십이신왕을 의미하는 12마리의 동물을 뜻한다. 옛사람들은 십이지신이 모든 나쁜 기운이라 잡귀를 몰아낸다고 믿어서 무덤이나 탑에 조각해 놓기도 했다. 불교에서 유래한 것인가.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 있을 때 보기도 하는 사주와 궁합에도 띠가 주요 요소인 것 같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사이가 좋으면 궁합이 찰떡같이 맞는다고 하지 않던가. 토끼와 궁합이 좋은 띠는 무슨 동물의 띠일까. 양과 돼지와 개띠라고 한다. 토끼와 스승과 제자로 만나면 좋은 띠는 양띠, 토끼의 부족한 부분을 잘 다스리고 조화롭게 이루도록 도와주는 띠는 개띠. 토끼를 포용하고 다정하게 이끌어주는 띠는 돼지띠란다. 양과 돼지와 개띠는 2023년 토끼띠와 궁합이 좋다고 한다. 궁합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잘 처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해, 궁합 맞는 해가 되지 않겠는가.한때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하버드대 출신, 푸른 눈의 선승, 현각 스님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 “제일 좋아하시는 경이 무엇인가요?” 그러자 스님이 답했다. “순간 경! 커피를 마시는 순간, 음악을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는 순간, 친구와 악수하면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기쁘고 흐뭇하고 때로는 슬프거나 힘들 때도 있으리라. 날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이지 않으랴.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후회할 일은 줄이고 설렘으로 가득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