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거리가 한산하다. 오늘따라 초록의 신호등이 계속 손짓한다. 앞만 보고 그냥 내달려도 될 정도다.주말을 앞두고 긴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 휴가 떠난 직원을 대신해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어린 친구가 메모를 건넨다. 신기한 일만 취재해 방송하는 매체에서 전화가 왔다고. 내용인즉, 생고기만 먹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몸에 병은 없는지? 성장에 문제는 없는지? 예상되는 결과는 어떤 것이 있는지? 체크 해 봐 달라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임과 함께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했다. 익히지 않은 날고기를, 그것도 어른도 부담될 것 같은 간, 천엽, 등골, 오드레기, 뭉티기 라니! 밥은 입에도 안 대고 나물도 반찬도 안 먹고 오직 생고기만 고집한다는 녀석이라니. 건강 상태는 과연? 너무 궁금했다. 다음 날 새벽같이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태권도복을 차려입은 아이는 깡마른 체구에 나이보다 두 해는 어려 보이는 초등학생이다. 진찰, 혈액 검사, 소변 검사, 대변 검사, 엑스레이 사진,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기생충 감염에 영양 불균형이 아니겠는가. 결과는 과연?가능성을 떠올리고 있는데, “저 기억하시겠어요? 00이예요”라는 카톡이 날아들었다. 어릴 적에 설사로 입원했던 아이, 기저귀에 움직이는 큰 덩어리가 나왔다며 겁에 질려있던 보호자, 커다란 성충이 여러 마리 서로 뒤얽혀 야구공처럼 꿈틀거려 식구 모두에게 구충제를 처방해주고 나서야 증상이 좋아졌던 가족,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옛날에는 채소를 기를 때 인분을 써서 채소를 키우다 보니 기생충 감염이 많았다. 학교 숙제로 변을 담은 봉투를 챙겨갔던 기억도 난다. 변 봉투에 채워오지 못한 반 친구들이 가져온 아이의 그것을 조금씩 얻어서 내다보면 한 반의 절반 이상이 구충제를 먹기도 했다. 지금은 화학비료로 인해서 기생충 감염률이 확 줄어들었다. 필수적으로 챙겨 먹던 구충제의 필요성도 감소했다. 건강한 사람은 감염으로도 거의 자각증상이 없다. 하지만 기생충 감염에 주의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나 영양이 부족해 허약한 사람, 특히 유기농식품이나 날생선, 날고기를 자주 먹는 이들이다. 익힌 고기보다는 육회, 생선회를 즐겨서 먹는 이나, 동남아 등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이들이라면 유의해야 한다.지난해 태국서 날고기 즐겨 먹던 60대 남성의 뱃속에서 18m 기생충이 나왔다. 이는 ‘무구조충(Taenia saginata)’으로, 쇠고기를 날로 먹거나 덜 익혀 먹으면 감염되는 경우가 많아 ‘쇠고기 조충’이라고 불린다. 이 남성은 월 1~2회 쇠고기를 날로 먹었던 것으로 전해졌다.몇 달 전엔 “두 달째 날고기, 날생선을 먹는다”는 10년 채식 남성의 반전 식단이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날고기를 꾸준히 먹으면서 얼마나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지 실험에 나선 것이다. 주로 익히지 않은 스테이크용 고기나 생간, 날생선, 닭가슴살 등을 뜯어 먹는 영상이다. 날계란을 삼키거나 가공되지 않은 원유를 마시고 도전 45일째 되는 날에는 익히지 않은 베이컨을 먹기도 했다. 그는 날고기의 장점에 대해 “식사 비용이 줄었고 소화가 빠르다”며 “대장균 등 박테리아에 감염될 때까지 이 식단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날고기를 먹으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 대장균, 리스테리아균, 캄필로박터균 등에 감염될 수 있다. 고기나 생선, 달걀은 충분히 익혀 먹는 것이 답이다. 날고기는 함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날고기를 함부로 먹으면 복통에 설사 인수공통감염병인 E형 간염에 걸릴 수도 있어 특히 여름엔 물은 끓여 마셔야 한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는 손을 씻지 않고 눈과 코, 입을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도 최근 10년간 600명의 E형 간염 환자가 발생했고 연간 환자 수도 증가 추세에 있다.기생충에 감염되면 소화불량, 설사, 복통, 구토 등이 생길 수 있다. 성충이 위나 장을 뚫고 들어가면 고열도 난다. 10세 이하의 아이들은 요충에 감염되기가 쉬운데 요충은 전염성이 강해서 가족이 모두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 요충은 성충이 죽을 때 항문 주위에 알을 까놓고 죽는다. 부화한 기생충까지 모두 죽이려면 구충제를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복용 하는 것을 추천한다.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여행 떠날 때 특히 위험지역이라면 코로나19 감염뿐 아니라 기생충에 대한 준비도 조금은 하시길.8월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생고기~~ ! 방송분을 기대하며.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