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수고로움

천영애시인지인의 포도밭에서 종일을 보냈다. 지금 막 자라나오는 새순 중에서 못 쓰는 순을 잘라주고, 여기저기 잡을 곳만 있으면 휘감고 올라서는 포도손을 잘라주기 위해서이다. 지인은 도시에 사는 내가 하기 힘든 일이라고 극구 말리지만 나는 가끔 밭에 들러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그렇게 포도나무의 새순을 잘라주고 또 시간이 지나면 포도 알맹이를 빼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은 지인이 모르는 충만감이 내 속에 가득 찬다.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흐트러졌던 줄기가 가지런히 정리된 포도나무를 되돌아보면 알 수 없는 만족감과 기쁨이 생긴다. 노동은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작은 만족감과 더 나아가 알 수 없는 삶의 충만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책상에 앉아 책만 보는 시간에서는 느끼기 힘든 기분이다.무엇보다 그런 일이 좋은 이유는 머릿속이 아주 단순하게 비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오전 내내 책을 보다가 농장에 들러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여자이면서 도시인이기도 한 사람들은 잘 하려 하지 않는 일이라 농장주는 신기하다고 하지만 내 속셈은 몸도 좀 움직이고 싶고 머릿속도 비우고 싶어서이다.흔히 노동은 힘들다고 여긴다. 물론 힘들지 않은 노동은 없다. 어쩌면 내가 하는 그런 일들은 노동이라기보다는 놀이이기도 하다. 노동이 수입으로 연결돼야 하는 스트레스와 짧은 시간 동안에 하는 일이라서 고단함이 적다. 그냥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일들은 노동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하지만 포도나무 새순이 올라오고 수확 때까지 나는 자주 그런 일들을 한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하는 내게 그 일들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는데 최적의 일이기 때문이다.노동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노동이 되는 환경은 노동자에게는 최상의 환경이다. 이 말은 곧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일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종족인데 이것은 일이 없는 사람의 무력감에서 잘 느껴진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에서 보듯 사람은 일을 통해서 살아간다.그러나 그러한 일이 노동이 돼 버리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이 돼 그 일에 끌려다니고 종속된다. 그러나 일이 놀이가 되는 순간 그 일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포도밭에서 일을 도와주고 온 날은 온 몸이 아플 정도로 고생하는 날도 있지만 내가 즐겨 포도밭을 찾는 이유는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사람들은 가능하면 일을 기피하려고 한다. 일이 노동이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꼭 금전적인 것으로 댓가를 지불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금전적인 댓가는 그 일을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지만 반드시 그 이유만으로 노동을 한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스트레스로 지쳐 쓰러질 것이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성취감, 충만감 등이 알게 모르게 노동하는 인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행복하게 한다.오월은 근로자의 날이 있는 달이다. 문명을 만들어내는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노동자들은 예로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악전고투해 오면서 자본과 투쟁해 왔다. 그 오랜 투쟁이 좀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는데 오월에 들어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각종 전자제품과 자동차와 각종 사물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체하면서 노동자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노동자 없이 이 도시가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오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휘날리던 투쟁의 깃발은 이제 사라지고 여가를 찾아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근로자의 날 복잡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 속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의 여가에는 그동안의 오랜 노동에 대한 수고로움이 스며 있을 것이다.

‘하고재비’를 잃어버린 시대, 청년들이 꿈이다.

김시욱에녹 원장흔히 우리는 욕망으로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홉스는 인간 본성의 변함없는 사실로 쾌락에 대한 욕망을 인정한다.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은 자기쾌락 또는 자기보존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심리적 동인이 쾌락에 대한 욕망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에 기초한 홉스의 윤리적·정치적 체계는 사회계약론으로 발전한다. 정신분석의 대가인 프로이트의 리비도(Libido)와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 역시 욕망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욕망에 따른 결과치가 행복을 담보하는지 여부는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욕망은 만족을 향해 움직일 때 동원되는 에너지라는 점이다.이러한 욕망을 나타내는 ‘하고재비’란 말이 있다. 경상도 방언으로 ‘무슨 일이든 견디지 못해 하려고 덤비는 사람’을 일컫는다. 인간 본성에 따른 욕망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현재의 모습을 떠나 미래에 대한 비젼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지는 평범한 모습이기도 하다. 언뜻 무모함으로 비칠 수 있지만 내일이라는 희망을 담보하는 ‘하고재비’는 개인의 삶과 국가의 앞날을 예측하는 지표인지도 모른다.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 되면서 ‘잠재적 죄인’이 양산되고 있다. 확진자로 판명되는 순간 죄인 아닌 죄인이 되는 까닭에 서로를 불신하는 시대가 만들어 지고 있다. 대구 신천지 교회로 시작된 지역과 단체 확산으로 특정 종교,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가 극에 달하더니 이제는 비난의 대상마저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논리에 갇힌 듯하다. 하물며 봄나들이 떠난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마저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을 전체주의적 올가미로 옥죄고 있음이 분명하다. 관음증 환자처럼 번지는 타인의 삶에 대한 훈수는 청와대 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린치가 이뤄지고 제도적 장치에 의한 사법적 판단의 사항임에도 무분별한 청원과 그에 따른 여론형성은 마녀사냥과 다름없어 보인다. 나 아닌 타인의 권리가 우선돼야 하며 그것이 배려이며 최선이라는 잣대는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출발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됨을 명백히 자각해야 한다. 개인의 권리에 대한 위임으로 국가가 존재하게 됐고 그로 인한 국가의 역할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제도와 그에 따른 행정은 개인 간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역할과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악에 대한 보호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주의 국가론이 가지는 의미이며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실체이다.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우리나라만의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불황 또한 사실이다. ‘백신전쟁’이 곧 경제회복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이 백신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이러한 시점에 국가의 역할이 진정으로 필요하며 국민을 위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전체 인구 대비 사망률이 얼마냐 라는 자기 위안이나 지나간 K-방역의 향수에 젖어 막연한 집단 면역을 홍보할 여유가 없다. 적폐세력이니 신적폐세력이니 하는 프레임 놀이에 빠져 과거로의 회귀를 쫓는 것은 자가당착일 수밖에 없다.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 개개인의 의욕을 살리는 길은 오직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돌리는 길 뿐이다. 서로간의 불신과 반목을 허무는 길 또한 마스크를 벗고 대화할 수 있는 ‘평범한 소통’의 기억들이다.지난 서울, 부산시장 선거 이후 패미니즘 논쟁과 2030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대한 여론이 분노로 치닫고 있다. 선거결과에 따른 분석을 바탕으로 정치인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이 ‘여성 군입대 문제’와 여성할당제 등등 ‘젠더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패미니즘을 옹호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 심리가 2030의 투표결과라는 야당 정치인의 분석으로 시작된 논쟁의 시발점은 대선을 향한 노림수임이 분명하다. 그나마 청년층에게 주어진 탈출구였던 가상화폐와 ‘영끌’ 부동산에 대한 현 정부와 민주당의 부정적 시각과 실책은 세대 논쟁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2030 표심을 잡겠다는 정치 공학적 계산에 따른 ‘속보이는 갈라치기’임이 분명하다.건강한 사회적 담론이 되기 위해선 ‘하고재비’를 양성하는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나간 ‘군가산점 제도’의 부활이나 ‘여성 군입대’라는 단편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청년층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가치와 역할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를 짊어질 그들에게 예측가능성과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파이어족’이 꿈이 돼서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해수욕장 옆 11만9천726㎡의 땅에 색색의 튤립이 활짝 폈다. 이름 뿐 아니라 색상과 모양까지 특이한 200여 종의 튤립이 주는 풍경은 황홀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충청남도 태안에서 열리고 있는 ‘2021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 이야기다.지난주 튤립박람회 현장을 찾았다. 2012년 화훼농가에서 시작해 올해 10주년을 맞은 박람회는 작년엔 코로나19 영향으로 행사 자체가 취소됐다. 그래선지 올해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튤립의 향에 취해있었다. 굳이 세계튤립꽃박람회라 이름 지은 건 태안이 2015년과 2017년 세계 5대 튤립도시로 선정된 영향이 크다고 한다. 관광지인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과 접해있는 축구장 15배 크기의 땅을 튤립과 루피너스 등이 뒤덮고 있다. 튤립의 색이 이렇게 다양한지, 이렇게 예쁜 꽃이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튤립의 꽃말은 색상별로 다르다. 그 중 노란 튤립의 꽃말은 ‘헛된 사랑’. 실제로 1600년대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을 향한 헛된 사랑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튤립을 두고 지나치게 과열된 투기현상을 보인 것이다.당시의 네덜란드는 유럽 교역의 중심이었다. 거기에다 직물 산업의 호황으로 상인들은 엄청난 자본을 쌓아나갔다. 이들이 부를 과시하는 수단은 자신들의 초상화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다. 당시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가장 적합했던 튤립은 귀한 꽃이었다. 때문에 부의 상징으로 투기나 매점매석이 발생하는 폐단이 생기기도 했다.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튤립광풍이 몰아치며 한 뿌리의 가격이 4천500만 원이나 나가고 희귀종은 1억 원이 넘을 정도였다. 튤립 한 두 뿌리를 사서 되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리고 자금을 마련했다. 실제 1635~1636년 사이 튤립 가격은 59배나 폭등했다. 그러나 투기 열풍이 지나자 가격은 이내 폭락했다. 시장은 완전히 붕괴됐고 뒤늦게 뛰어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파산했다.튤립 구근이 양파 가격으로 순식간에 떨어진 건 꽃 감상이라는 실수요보다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튤립 버블’이다. 이후 튤립버블은 IT(정보기술) 버블, 혹은 부동산 버블 등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의 예로 거론되게 됐다.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이를 사고파는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믿음이나 기대 때문에 형성된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상품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도 투기꾼들이 구매하는 것은 항상 더 높은 가격에 사려는 ‘더 큰 바보’가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는 투기가 판을 치고 버블의 징후가 나타나는 요즘의 우리나라 자산시장과도 많이 닮아있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가 그렇다.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개월 만에 1억 원 넘게 오르며 11억 원을 넘겼다는 소식이다. 최근 1년1개월 사이 2억 원이 오른 셈이다. 여기다 정치권의 부동산 규제 완화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다시 2주째 뛰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장내 일평균 주식 거래대금이 1조2천500억 원을 기록했다. 장내 일평균 주식 결제 규모가 1조 원을 넘은 건 역대 처음이다.사정이 이렇다보니 두 사람만 모여도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이야기다. ‘영끌’은 부동산과 주식을 거쳐 이제 가상화폐로까지 이어졌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코인 채굴앱이 성행하고 SNS에서도 앱 가입을 홍보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코인에 투자해 거액을 벌어 ‘파이어(FIRE)족’이 됐다는 무용담도 횡행한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유를 얻어 회사를 일찌감치 그만두는 이들을 가리킨다.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거품이 꺼진 이후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튤립버블로 위기가 있었지만(실제로 이후 영국에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내줬다) 연착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세계 최강의 실물경제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무엇보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의 투기에 쏠린 관심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돌려야 한다. 파이어족이 젊은이들의 꿈이 돼서야 되겠는가.

‘세계 책의 날’을 생각한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지난주 금요일인 4월23일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다.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독서 진흥, 도서출판 장려, 저작권 보호를 촉진하기 위해 스페인의 요청으로 1995년 열린 28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했으며, 다음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매년 실시되는 기념일이다. 올해 26회째를 맞았다.매년 4월23일이 기념일이 된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했던 ‘상트 호르디(성 조지)의 날’ 풍습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세계적인 대문호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1616년 4월23일 동시에 서거했기 때문에 이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는 설이다.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독서의 해’를 맞아 책으로 행복한 마음을 전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세계 책의 날’ 애칭을 ‘책 드림 날’로 정했다. ‘책 드림’은 ‘책을 드린다’란 뜻과 함께, 영어 ‘Dream’을 활용해 ‘책에서 꿈과 소망, 희망을 찾는다’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올해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4월23일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기념식을 열고, 책과 장미를 선물하는 ‘책 드림’ 행사에 당첨된 시민 423명과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대구에서도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구시는 지역서점과 시민들의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원사업보다 더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냈다. 몇몇 다른 지역에서는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은 뒤 도서관에 반납하면 책값의 상당 부분을 되돌려주는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이 경우 시민들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선택하기 때문에 도서관 입장에서는 같은 책이 밀려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대구의 경우 도서구입비를 지원함으로써 시민들이 자신이 선택한 책을 반납하지 않고 소장할 수 있기 때문에 지원사업의 실효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구체적으로 소개하자면 4월23일부터 11월까지 선정된 지역인증서점 30곳에서 책을 구입하면 1인당 10만 원 범위 안에서 지역출판사 간행도서는 책값의 80%, 다른 지역 출판사의 경우는 50%를 지원한다. 만 13세 이상 대구시민이면 누구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초·중·고 문제집이나 사전, 종교경전, 취업 및 자격증 관련도서와 만화책, 컬러링북 등은 지원에서 제외된다. 지역인증서점 연락처와 서점별 지원금 소진 여부는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홈페이지(www.dpp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도서출판 학이사와 라일락뜨락1956은 23일부터 30일까지 ‘코로나19 퇴치 기원 및 2021 세계 책의 날 기념 향토작가 4+23 초대 도서전’을 이상정 장군 및 이상화 시인의 생가에 자리를 잡은 라일락뜨락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4’에 해당하는 전시도서는 지난해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기승을 부리던 상황을 기록한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 ‘아침이 오면 불빛은 어디로 가는 걸까’, ‘등불은 그 자체로 빛난다’다. 그리고 시, 산문, 아동문학, 인문, 소설 분야의 지역작가 23명이 쓴 책의 표지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 개막일인 ‘세계 책의 날’에는 지역작가들을 대표한 5명이 북토크를 진행했으며, 전시장을 찾는 시민 27명에게 선착순으로 장미꽃 한 송이씩을 선물했다.세계 책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던 행사인 ‘대구, 책으로 마음잇기’가 지난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지만, 올해는 이 행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슬로건은 ‘책으로 마음잇기, 책으로 세대잇기’다. 책을 통해 시민들이 서로 마음을 잇고, 지역 선배인 기성세대와 후배인 청년들이 서로 마음을 잇자는 의도다. 4월23일부터 5월16일까지 자신이 추천하는 책의 표지와 23쪽 사진을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캠페인 참여자 중 20명을 추첨해 책을 선물한다.코로나19 사태가 극성을 떨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책을 찾는 시민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비대면 시대에 책의 가치를 되새겨보기 위해 1995년 제28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책의 날’ 제정 결의안 중 일부를 소개한다. ‘유네스코 총회는 역사적으로 인류의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존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해온 책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또한 도서의 보급이 독자뿐 아니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발전시켜 이해, 관용, 대화를 기초로 한 사람들의 행동을 고무시킨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에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책의 날을 제정하지 않았음을 인식해 4월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제정한다.

나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일까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크레파스와 수채물감의 특정색을 살색으로 이름 붙인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을 개정하도록 권고한다.’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 7월 크레파스 색상의 피부색 차별에 관해 권고한 결정례의 주문 내용이다. 이후 기술표준원은 살색을 연주황으로 개정 고시했고, 한자표기인 연주황은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어 어린이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자 인권침해라는 지적에 2005년 ‘살구색’으로 최종 변경했다.이후 16년이 지났다. 하지만 색깔과 관련된 인종주의적 편견은 여전하다.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언론에서조차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검은 대륙의 코로나, 더 암울하다’ 지난해 12월 어느 일간지의 제목이다. “검은 대륙의 코로나…. 속수무책” 올해 1월 한 공중파 방송사의 뉴스다.제목만 보면 자칫 20년 전 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에도, 아직까지도 여전히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부르는 언론과 마주한다. 생각해보자. 검은 대륙과 반대되는 하얀 대륙은 쓰지 않는다. 마치 ‘검둥이’라는 말은 쓰면서도 사람을 향해 ‘흰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처럼.‘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저, 창비)를 쓴 저자의 말을 빌리면 차별의 표현을 담은 이런 말을 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당신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스스로가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양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가족이고 동양인과 결혼하면 다문화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이미 차별의 용어가 돼 버린 것이다.요즘 미국에서는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과 노인인데다 욕설부터 협박과 폭행까지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StopAsianHate(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라는 해시태그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방탄소년단도 ‘인종차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얼마 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도 인종차별의 표적이 됐다. 최근에는 미국 올림픽 가라테종목 국가대표인 일본계 미국인이 혐오범죄의 표적이 됐고 그전에는 10대 한국계 여성이 ‘매춘부’라는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있는 증오 극단주의 연구센터 발표 자료가 심각성을 반증해준다. 센터는 반 아시아계 미국인 증오범죄가 2020년에 전년도에 비해 약 14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에서 주로 흑인과 백인, 또는 히스패닉에 대한 증오범죄 등 전체 혐오 범죄율은 6%가 감소한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수치다. 미국 사회에 코로나 바이러스와 아시아 차별 바이러스 등 두 개의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하긴 미국만의 문제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면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달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경기, 전남, 전북 등 일부 광역단체도 서울시를 따라 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며, 아니면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행정기관의 힘으로 차별을 명령한 것이다. 아시아인들이 미국 등지에서 혐오발언을 듣는 것과 뭐가 다른가.혐오는, 또 차별은(의도하든 아니든) 전염이 빠르다고 했다. 서로를 부추기는 기운이 넘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잔인해지고 죄책감도 사라져간다. 그러다보면 혐오 또는 차별이 어느새 폭력으로 변해가는 것이다.지난 3월 말 일본의 한 편의점 업체가 여성용 속옷의 색깔을 살색이라고 표기했다가 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제품을 회수했다. 그러자 왜 살색 표기가 문제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일본의 누리꾼들이 많았다. 이처럼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심각한 혐오주의자나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선량을 가장한 이 같은 차별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꾸준히 시정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물론 언론이 먼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벗어날 일이다.

나라 지키기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일제 강점기에 이어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는 내 나라가 뭣보다 소중하다. 나라를 지키려고 군대와 무기를 갖추고 철책과 참호도 만들었다. 그러나 싸움의 형태도 변하고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 모든 분야가 동원되고 있다.그래도 국방이 여전히 선두다.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에 가야하고, 병역의 의무를 하지 않은 자를 곱게 보지 않는다. 예산의 절반을 국방비에 쏟아붓기도 했고, 최신 전투기 도입과 개발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북의 핵탄두 미사일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다.다음은 경제다. 국민들이 먹고살며 산업을 일으키는 데 온 힘을 기울여왔다. 덕분에 삼성전자, LG화학 같은 기업들이 반도체, 스마트폰, 전지 분야에서 세계 톱이 됐다. 한국에 기반을 둔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되고, 국내 기업에 투자한 외국인의 비중도 20%를 넘는다. 이들 기업과 외국 투자가들이 나라 지킴이 역할을 한다.우리가 위기 때마다 미국이 도움을 줬다. UN도 큰 힘이 됐다.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 다투기도 돕기도 했다. 불과 60여 년 전만 해도 원조를 받았지만, 이제는 개발도상국가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우선주의가 확산되고,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외교다.수백만 외국인 관광객이 전국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 자체가 방패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분쟁 억제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경주, 제주에 리조트를 개발하고, 호텔과 컨벤션센터를 만들어 대규모 국제회의도 열었다. 각국 비행기가 오가고, BTS를 찾아 세계 방방곡곡에서 온다. 관광도 나라 지킴이에 한 몫을 한다.코로나19 세계 확진자가 약 1억3천만 명이고 사망자는 286만 명이다. 방역을 위해 국경을 막기도 했지만, 백신 개발을 위해 협력도 했다. 국민 80% 이상 백신접종으로 집단면역이 이뤄져 마스크 없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기뻐하는 이스라엘 교민이 부러웠다. 영국은 백신여권만 가지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백신도 새로운 형태의 나라 지킴이다.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온라인화로 반도체가 더 필요하게 됐다. 컴퓨터, 자동차, 인공지능도 반도체가 없으면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만 TSMC가 세계 반도체 파운더리 부문의 절대 강자가 됐다. 그간 중국의 무력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TSMC 첨단기술이 나라를 지키는 셈이다.단결이 최고다. 사분오열하면 이길 수 없다. 부모형제 생각이 다르고, 세대 간에도 차이가 난다. 나만 잘 살려고 하면 편이 갈라지고 싸움이 난다. 이익추구가 목적인 기업도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경영에 나서고 있다. 좋은 정치야말로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나라를 지킨다.우리는 지난날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경제, 문화, 기술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선두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정치만큼은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정치인 가운데 엘리트 관료, 교수, 법조인, 사회단체 출신이 많다. 그런데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그간의 이성과 명예는 온데간데없어지고 거수기나 싸움닭이 된다.4·7 재·보궐선거에서 제1 야당이 모두 이겼다. 서울에서는 4연패 뒤에 10년만의 승리다. 결과는 대체로 민심을 읽지 못한 정권 심판이란 평가다. 문제는 과정이다. TV토론회에서 정책은 뒷전이고 거짓말 공방전만 오갔다. 유권자들은 말싸움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비전과 포부를 원했다. 또 선거를 공정히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도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무능, 위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특정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표현이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선관위야말로 내로남불이 특정 정당을 쉽게 떠올린다고 인정한 셈이 아닌가. 판단은 유권자 몫이다.1년 후면 대통령·단체장 선거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지금부터 신중하고 사려 깊게 지켜보자. 잘하면 나라도 지방도 세계 일류가 된다. 그게 바로 나라 지키기다.

4·7보궐선거, 패자들의 치졸한 자기 최면

김시욱에녹 원장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는다는 말이 있다. 결과에 대한 예측과 그 가능성을 미리 살피고 일을 처리하란 말이다. 사람사이의 일에서 이 말은 더없이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제될 때 내 행위의 부당성마저도 용납되리라 기대하기에 그러하다. 내 편에서 이해하고 지지할 사람이기에 작은 허물로 감싸 주리란 기대는 더 큰 허황된 결과마저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팔베개 해주며 연신 토닥거려 주겠거니 하는 위로일지도 모른다.4·7보궐선거가 끝이 났다.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서울과 부산시장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국민의 힘이 낸 후보자들이 당선됐다. 절대 지지기반인 ‘대깨문’을 비롯해 친여 성향의 국민들의 결집이 전세를 역전시킬 것이라던 여권 지도부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시작된 보궐 선거임에도 여권이 믿었던 것은 ‘누울 자리’가 있으리란 기대였다. 강성 지지의 ‘문빠’를 자처하는 ‘대깨문’과 친여 성향 언론인들의 지원 방송은 그들의 ‘막연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여론 발표 금지기간 동안, 한 자릿수 격차니 역전이니 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자체분석 발표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준 민심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과 자신들의 행위를 단순한 작은 허물로만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성추행 문제만이 아니라 수많은 허물들과 부당함, 불공정이 드러났음에도 국민은 내 편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위로의 대상이라 믿은 문제 인식의 오류는 ‘거짓말’이라는 프레임 속에 스스로 갇히는 오만함이 됐다. LH사태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와 박탈감이 팽배함에도 상대 후보를 ‘거짓말’ 프레임으로 덮으려던 안간힘은 차라리 안타까움이었다. ‘촛불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 달라’던 여권 후보의 호소는 스스로 대다수 국민을 부정한 친문 프레임에 갇힌 꼴이었다.시작부터가 잘못된 판단이었다. 누울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다리를 내어 달라는 형식이었다. 시장자리를 수개월 공석으로 만든 원죄의 여당이 후안무치의 행보를 보인 이번 보궐선거는 차기 집권마저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거기간 내내 야당인 국민의힘의 태생적 근원을 공격하며 자신들의 정직함과 공정을 우월함의 무기로 삼았던 민주당의 허세는 과연 무엇인가. 조국 전 장관의 가족 문제를 기점으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문제,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의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가족 문제까지 수없이 많은 불공정과 특혜 의혹이 불거져 나왔음에도 자신들은 ‘선’이고 국민의힘은 ‘악’의 축으로 규정한 근거는 무엇일까.‘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권이라는 자위적 정당성이 이들에게 오만함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선거 패배 후 위에서 나열한 사람들이 SNS를 통해 공통적으로 내비치는 속마음을 보노라면 그것은 더욱 확실해 보인다.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과 불공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신보다 못한 국민의 힘에 패배한 것이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 전부인 것 같다. 이러한 모습 또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최근 친여 성향 사이트 댓글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강성 지지 세력인 ‘문빠’들의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이 참으로 이채롭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줬음에도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이루지 못한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투표 포기와 야권으로 전환됐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야권 지지 언론과 유튜버들의 여론 조작으로 선거가 왜곡됐으며 무능한 국민들이 그들에게 현혹됐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은 친여 방송 매체에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최근 여권의 김해영 전 의원은 ‘조국, 추미애, 부동산, LH사태’가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고 소신 발언했다가 TBS 뉴스공장 김어준의 인신 공격성 저격을 받았다. 또한 2030세대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조국 사태와 윤석열, 추미애 갈등, 성추행에 따른 보궐 선거와 당헌을 고치고 후보자를 낸 것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강성 지지자들의 메일 폭탄과 SNS를 통한 공격은 그칠 줄 몰랐다. 선거 결과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 그리고 반성은 이미 그들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절대선이라는 자기 최면’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뿐 자기 부정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지난 12일 발표된 재야인사들의 민주당 및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인적 쇄신 요구는 여권과 그 강성 지지 세력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종교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촛불혁명’의 열매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변화하려면 두 배 더 빨리 뛰어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땅 속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겪고 원래 세계로 돌아온 일곱 살 소녀 엘리스는 6개월 후 다시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체스판의 세계인 거울 나라에서 칸과 칸 사이를 누비던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붉은 여왕의 “빨리, 더 빨리”라는 재촉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달렸지만 이상하게도 앨리스는 출발 장소인 나무 아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 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여기선 죽어라고 뛰어야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어.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해.”영국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후속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이다.붉은 여왕이 주는 이 교훈은 미국의 진화학자인 베일른이 생태계의 평형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되고 마는 현상을 설명할 때 동원되는 이야기다. 경영학에선 주로 적자생존 경쟁론을 설명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경쟁이 시장의 모든 기업을 강하게 만든다는 이론이다.변화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결국 도태된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이론을 증명해준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워크맨’을 히트시켰던 소니, 세계 필름시장을 주도하면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던 코닥, 세계 최초로 노트북PC를 상품화한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D램을 최초로 개발한 인텔이 그랬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 최고라 하더라도 경쟁 기업에 뒤처져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하지만 붉은 여왕이 주는 교훈은 ‘이상한 거울 나라’나 생물학의 적자생존이나 경영학의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 속 붉은 여왕의 경고는 종종 현실이 돼 우리들 앞에 나타날 때가 많다. 지난해부터 폭등한 부동산 시장이 그렇다. 집 한 채를 장만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달려왔는데 집값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심기일전, 다시 뛰어보지만 집값은 더 멀리 달아나 버렸다. 달려도 달려도 잡히지 않는다.어차피 끊임없이 변하는 게 세상 이치다. 나 역시 숨이 턱 막힐 만큼 쉬지 않고 달리지만 겨우 출발과 같은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달려도 앞서가지 못한다는 데서 좌절감을 느낀다.범위를 조금 넓히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아나가는 청년들이 이상한 거울 나라 속 앨리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자 사자 뛰는데도 취업은 물론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다. 게다가 기회는 평등한 게 아니라 박탈당했고, 과정은 공정한 게 아니라 졸속이었으며, 결과마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낀 이들의 불만이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로 표출됐다.현실이 이런데도 여야정치권은 아직 두 배 더 빨리 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정신 차린 여당은 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 반성하고 성찰하겠다고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합당을 두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양상이다.‘제3의 물결’, ‘권력 이동’ 등 저서를 남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집단별로 변화의 속도를 비교했다. 기업의 변화속도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비정부조직인 NGO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정부는 25마일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학교가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이었고 법 조직의 변화속도는 고작 1마일이었다.정치조직에 변화와 혁신을 맡겨뒀다간 대한민국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붉은 여왕의 경고를 되새긴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하는데 정치권은 과연 그럴 준비가 돼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동화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사회의 전 조직이 지금이라도 당장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을 때다. 앨빈 토플러에게 묻는다면 분명 정치조직부터라고 할 것이다.

2021년 도서관주간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4월12일(월)부터 18일(일)까지 1주일간은 ‘도서관주간’이다. 올해로 57회를 맞았다. 한국도서관협회는 도서관의 가치와 필요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을 왕성하게 이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1964년 도서관주간을 정하고, 매년 같은 기간에 전국의 각종 도서관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동안 도서관주간은 1967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때문에 운영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도서관주간은 명실공히 도서관과 이용자의 축제기간이다. 이 때문에 설립 주체에 따라 국·공립·사립도서관으로, 설립 목적에 따라 공공·대학·학교·전문·특수도서관으로 구분되는 전국의 각종 도서관들은 매년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 도서관주간을 축하하고 있다. 올해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도서관주간 행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지치고 힘든 국민을 위로하고 있다.제57회 도서관주간을 앞두고 공모한 공식주제와 공식표어에도 코로나 사태의 영향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공식주제는 ‘당신을 위로하는 작은 쉼표 하나, 도서관’(인천광역시 수봉도서관)이 선정됐다. 또 공식표어로는 ‘도서관, 책을 다독! 내 삶을 다독다독!’(수성구립 용학도서관)과 ‘집콕 중인 당신, 도서관이 희망이 되어 드릴게요’(박현희)가 선정됐다. 용학도서관이 제안한 표어는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어(多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내 삶을 다독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다른 해의 표어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난해 공식주제로 선정된 ‘도서관 책 한 권, 세상을 테이크아웃하다’(북구구수산도서관)는 대구가 코로나 사태의 확산지가 된 상황에서 도서관의 문을 닫고 폐가제 대출방식인 ‘북 워크 스루’를 운영하던 모습을 담아냈다. 또 2019년 선정된 ‘도서관, 어제를 담고 오늘을 보고 내일을 짓다’(달성군립도서관)에서는 평상시의 도서관 모습이 평화롭게 그려진다. 3년째 공식주제와 공식표어 선정기관으로 대구지역 구립 또는 군립도서관이 이어지는 점은 우리 지역 도서관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해석된다.전국적으로도 올해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민간단체인 한국도서관협회 주도로 도서관주간이 운영됐지만, 올해부터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이 동참해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제57회 도서관주간 기념행사를 추진하면서 대국민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입법 움직임도 긍정적이다. 도서관주간 첫날인 4월12일을 국가기념일인 ‘도서관의 날’로 정하고, 도서관주간을 정부가 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도서관법 전부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됐다. 도서관주간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이다.이밖에도 도서관법 전부개정안에는 도서관의 구분을 체계화하고, 공공도서관 설립을 위한 사전절차를 도입하고, 국립 및 공립 공공도서관은 사서 및 자료 기준에 맞춰 등록할 것을 의무화하고, 공립 공공도서관에 한해 관장을 사서직으로 임명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한편 도서관주간의 유래를 살펴보면 미국의 도서관운동에서 자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도서관협회가 1964년 발표한 도서관주간 취지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며 미국에서는 금년도 행사를 합해 7회째’라면서 ‘미국에서는 독서의 상징을 열쇠(Reading is the Key)로 표시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열쇠이며, 둘째는 보다 나은 세계로 향하는 열쇠이며, 셋째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정한 판단을 내리게 돕는 열쇠라는 설명이다.이와 함께 취지문은 지금 적용해도 손색이 없는 도서관의 가치를 적었다. ‘도서관주간은 책과 도서관의 봉사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중요한 영향력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도서관이 그 국가의 문화와 교육발전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널리 인식시키고, 국민의 독서를 도와주는 커다란 행사’라면서 ‘국민의 생활에 있어서 도서관이란 무엇인가를 일반시민에게 이해를 촉진시키는 사회적인 운동이다’라고 강조했다.올해 도서관주간을 맞아 다짐하는 한편, 소망하는 것이 있다. 코로나19의 4차 확산이 우려되는 시점에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개인방역을 비롯해 도서관 소독과 환기 등 방역수칙을 더욱 철저하게 지킬 것을 다짐한다. 또한 ‘도서관의 날’이 하루빨리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도서관이 시민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한편, 시민 모두가 지적 자유를 향유하도록 지원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승자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195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 인근의 절벽 위. 출발 신호와 함께 두 대의 자동차가 절벽을 향해 급출발을 한다. 차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지는 ‘치킨 런’ 게임이다. 주인공은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지만 상대는 손잡이에 옷이 걸리는 바람에 차와 함께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제임스 딘(James Dean) 주연의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한 장면이다.비슷한 내용의 게임이지만 종종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장면이 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신호와 함께 서로를 향해 질주를 한다. 핸들을 꺾지 않아 충돌하면 둘 다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핸들을 꺾어 충돌을 피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으나 겁쟁이를 뜻하는 치킨(chicken)으로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먼저 피하는 쪽이 패하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원래 치킨게임은 20세기 후반 미국과 소련의 극단적인 군비경쟁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양쪽 모두 파국에 치달을 수 있는 극단적인 경쟁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어제로 마감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유세전이 흡사 치킨게임을 보는 듯했다. 선거 때만 되면 그렇듯 이번 선거도 정책은 온데간데 없고 상대를 향한 막말과 비난만 난무했다. 마주 보며 돌진하는 양상 때문에 이번 선거 역시 어느 쪽이 이기든 후유증은 오래갈 듯하다. 서로 정당한 파트너로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깔아뭉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사실 그동안 수많은 치킨게임을 지켜봐왔다. 극적인 효과는 연출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오세훈-안철수 후보의 정치인생을 건 양보없는 대결도 치킨게임으로 묘사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었다.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의 의료정책을 두고는 정부와 전공의 양자가 강대강 대치로 치킨게임을 벌이기도 했다.치킨게임은 국가 간에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역과 통상, 기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전 세계 경기 침체와 관련되는 치킨게임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 역시 마주 보고 돌진하는 자동차처럼 양보 없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이 갈등이 오래 갈수록 한국은 물론 일본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발씩 양보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치킨게임이라면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립이라는 형태로 지겹도록 봐오던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보듯 마주보고 질주하는데도 양쪽 모두 핸들을 꺾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핸들을 고정해두었으니 네가 알아서 피하라는 투다. 때로는 핸들을 뽑아 던져버리는 무모한 방법을 쓰며 네가 피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모 아니면 도’를 외치며 기어이 100%의 승리만을 꿈꾼다. 이러면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다.공멸을 피하기 위해선 정면충돌 이전에 치킨게임을 끝내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어떻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나는 피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으니 상대에게 네가 핸들을 꺾고 네가 겁쟁이로 놀림을 받으라고 강요해선 안전하게 게임을 끝낼 수 없다.양쪽 모두에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신호와 함께 둘 다 동시에 핸들을 꺾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출발 전에 이미 핸들을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시켜 이 방법마저 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충돌하더라도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차라리 심각한 부상을 입더라도 맞부딪치고 말겠다는 뜻이다. 중간에 완충지대를 만들려 애쓰는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면서다. 애먼 국민들만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지. 공멸의 길로 질주하는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승자라는 사실을 왜 잊어버리고 있는지.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보면서 괜히 한숨만 늘어간다.

4·7 보선과 정치문화

이상섭경북도립대 명예교수곧잘 만났던 외국의 학자들은 “당신네 나라는 아직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역경 속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고, 선거도 제 날짜에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 꽤 발전된 것처럼 보이고, 선진국인양 행동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네들은 제대로 오래된 정당 하나 없다. 또 정당의 잘못된 ‘정치행태’ 때문에 진영논리에 매몰된 유권자들의 정치문화가 문제”라고 한다. 그들은 정당과 정치발전이 곧 민주주의 발전으로 정착된 나라들이다.4·7보선의 본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부산 두 시장이 저지른 성추행으로 태어났다. 당헌 제96조 2항의 공천금지 약속을 희한한 핑계로 바꾸고, 후보를 공천한 나쁜 정치행태를 보니 그 말에 실감이 간다. 이는 국민무시이며 한마디로 후안무치다.더욱이 혁신한다며 그 당헌을 만든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당의 선택을 존중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도 안 지키는 집권당이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니 어불성설로 비쳐서다.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가 더 낫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이 다시 회자됨도 같은 이유다.혹자는 이번 보선 구도를 ‘여·야 대결이 아닌 민주당 대 국민’의 한 판이며, 전대미문의 ‘성희롱 이벤트’라고 한다. 오거돈, 박원순 전 시장에 이어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도 이 대열에 합류해 어렵게 보였던 양당 간 (사실상의)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셈이다. 이를 역사적인 ‘성추행 단일화’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국제적 망신이다.선출되는 시장의 임기는 1년 남짓인데, 나랏돈 수십조 원이 들어갈 가덕도신공항과 재난지원금도 LH 사태와 민도 탓인지 약효가 별로여서 안달하는 것이 여당의 모습이다. 이번엔 부디 공약 남발보다 성추행 근절을 위한 ‘심판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통렬한 반성, 진정어린 사과와 책임자 단죄가 선결돼야 함은 상식이다. 피해 여성과 그 어머니의 한 맺힌 통곡을 외면하면 안된다.그간 민주당이 보여준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이 달린다. 이해찬의 XX자식 발언, 피해 호소인 지칭, 임종석의 ‘박원순 예찬론’, 친여 검사의 ‘꽃뱀’ 망언 침묵 등이 증거다.선관위도 그렇다. 시민단체에서 내건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캠페인 문구를 불허한 걸 보니, 인사청문회서 논란이 컸던 조해주 국민대 겸임교수를 굳이 상임위원에 임명한 저의가 바로 읽힌다.국민 알 권리의 상징인 촛불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그렇게 겁이 나면 차라리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이 답으로 들린다.선거 경비도 무섭다. 서울 487억 원, 부산 219억 원은 다 시민 혈세다. 국고에서 주는 선거비 보전금 130억 원도 국민들 돈이다. 여당의 성희롱으로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안기는 결과다. 작년에 민주당이 받은 보조금 327억 원의 일부라도 반납하는 것이 염치고, 도리다. 원인 제공당의 뻔뻔함에 할 말이 없다.필자는 귀책 정당의 공천 금지, 정당과 개인의 선거비용 부담, 구상권 청구, 정당보조금 삭감을 주장해왔다. 차제에 이를 당헌 아닌 ‘입법화’로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유사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된다. 그러나 기득권 고수로 추진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이쯤 되면 방법은 단 하나 선거혁명(election revolution)뿐이다. 선진국들은 다 그랬다. 보선을 왜 하는지, 성추행 사건은 어떻게 됐는지, 후세가 짊어질 빚은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따져보고, 투표에 임해야 한다. 선거결과는 민도를 반영한다. 오로지 유권자의 몫이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 안타까워라

김시욱에녹 원장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반대시위가 연일 국제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미얀마 민주 수호세력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외침은 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국가고문 아웅산 수치와 미얀마의 대통령 윈 민 및 여당 지도자들이 축출된 뒤 가택 연금됐으며 체포된 사람들만 약 2천여 명이다. 미얀마 시위대들은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UN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의 쿠데타 규탄과 여러 국가들의 우려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언한 미얀마군은 수도 양곤과 여러 도시에서 무력 진압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 소집, 미얀마군의 행동을 규탄하고 억류된 사람들을 석방하며 민주주의를 복구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의 초안이 나왔지만, 최종적 의견 결정에 이르지 못했다. 본국에 성명 초안을 보내 검토해야 한다는 중국과 러시아 대표의 주장으로 15개국 회원국 모두의 지지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국제법과 그 실제적 효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백악관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경제 제재 선언이 오히려 실효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국내 문제로 내정간섭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라 더욱 그러하다.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지난 날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군사 정권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 반대 진영과 민주 운동세력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다. 1980년 5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광주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의 주도로 시국성토대회가 연일 개최됐다. 학생들은 광주 도심으로 진출했고, 시민들과 연합해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시위가 확산되자 신군부는 공수부대 투입과 전국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국에서 대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피로 얼룩진 광주 금남로’로 표현되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모습이었다.1985년 2·12 총선은 야당의 승리였다. 야당은 지역별 개헌추진본부 결성식을 통해 군사 독재의 퇴진과 민주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범국민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정국을 직선제 개헌 국면으로 몰고 갔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 당사와 연수원이 점거되고 학생들의 분신, 투신자살이 이어졌다. 1987년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의 최루탄 사망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넥타이 부대’라고 불린 직장인들과 중산층 시민들이 직접 시위 대열에 참여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삭발과 혈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19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갖고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다. 피로 얼룩진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결실이었다. 이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5·16 쿠데타 이후 32년간 지속된 군사 정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서울과 부산에서 시행되는 시장 보궐선거의 후보자와 여야 진영 모두는 그 시대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다. 그 누군가는 죽어간 친구를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행방불명자’로 등록된 누군가의 가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택적 정의’만 살아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지만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선거에서의 득표를 위한 국민이 필요할 뿐 목숨을 내 걸고 민주를 갈망하던 국민을 염두에 둔 정치인은 없어 보이는 것 지나침일까. 민주세력이라던 그들이 정치인이 되는 순간 이미 기득권층이 되고 지지기반을 위해 ‘편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 더더구나 현 집권여당과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다. 소통 부재의 독단과 국정 농단의 비선 실세를 끌어내리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나가겠다는 정부가 아니었던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의 거부와 수많은 정책의 실패에도 ‘내 편’을 끝까지 안고 간 현 정부의 독선과 아집은 전 정권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주일 뒤에 치러지는 선거는 민주당 당적을 가졌던 시장들의 성추행으로 발생한 보궐선거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는 정당의 당헌마저 바꾸고 후보자를 내고 있는 집권당이기에 오만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도가 30%이하로 떨어지고 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그들에게 우리는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선거결과를 낙관하는 집권당의 현실인식 앞에 차라리 절망감이 앞선다.

우연히 신드롬은 변명일 뿐이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우연히’ 봄이 왔다. SNS에서 온통 벚꽃 사진들로 도배된 이후에야 ‘우연히’ 봄이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봄은 우연히 온 게 아니었다.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최근 뉴스에서 ‘우연히’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들어오던 참이어서 봄도 뜻하지 않게 저절로 온 것으로 느꼈으리라.‘우연히 신드롬’의 시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토지 투기 의혹에 대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놓은 발언이었다. 변 장관은 “(LH 직원들이) 정황상 개발정보를 알고 토지를 미리 구입했다기보다는 신도시 개발이 안될 걸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LH 직원들이 ‘우연히, 그것도 개발 될 줄도 모르고’ 땅을 샀을 뿐이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이었다.이후 우연히 신드롬은 ‘땅 샀더니 신도시 됐다’라거나 ‘LH도 신내림 직원 있었구나’ 등의 다양한 형태의 패러디를 불러왔다. 지난 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심을 살피기 위해 강원도 춘천 중앙시장을 찾았다가 시민이 던진 달걀을 맞았다. 그러자 “달걀을 무심코 던졌는데 우연히 이낙연 대표가 맞은 것이다” 등의 패러디가 쏟아졌다.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변명하는 것은 여권의 단골 해명이기도 했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져 나온 2019년 하반기 때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김기현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울산시장 후보에 대한 울산지방경찰청(당시 청장 황운하) 비리 수사가 ‘청와대 하명’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 관계자와 제보자가 짜고 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청와대는 “(제보를 받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과 제보자는 캠핑장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사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그렇지만 우연히 만났다는 제보자가 당시 선거에서 당선된 송철호 현 시장의 핵심 측근인 송병기 현 울산 경제부시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의 본격 수사를 불러왔다.‘검언유착 의혹’ 수사 도중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도 우연을 강조했다. 그는 “우연히 제가 한 검사장의 몸 위에 밀착된 것은 맞지만, 이는 휴대전화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은 것일 뿐 폭행이 아니다”고 말했다.야당이라고 해서 ‘우연히 신드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나서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엘시티 분양권 매매 과정을 놓고 벌인 여야간 공방에서도 ‘우연히’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박 후보 측과 부동산 중개인이 우연히 만나 분양권 전매계약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것이었다.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특혜 의혹에 우연이라는 변명을 했다가 화를 키웠다. 2016년 ‘비선실세’ 최서원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이 일던 당시였다. 이화여대 현장조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정씨의 입학연도인 2015학년도에 때마침 승마가 체육 특기 종목에 포함된 이유를 묻자 이화여대 측은 “우연의 일치”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이 말 때문에 이대생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검찰의 대대적 수사로 이어졌다.문제는 고위층의 잇따른 ‘우연히 신드롬’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빌라 아래층에 사는 여성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잡힌 남성이 “우연히 누른 도어락 비밀번호가 일치했다”고 변명한다. 해외 원정도박으로 입건된 아이돌 그룹 멤버는 “필리핀에 갔다가 우연히 도박을 하게 됐다”고 둘러친다. 가격표 바꿔치기로 고가의 와인을 상습적으로 훔친 남성은 “우연히 싼 가격표를 붙여보니 되더라”고 한다. 심지어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하는 ‘박사방’ 이용자들마저 “우연히 보게 됐다”며 면책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다.더 이상 우연을 가장한 변명이 통하는 사회가 돼서는 곤란하다. 궁색한 변명이야말로 오만이며, 구차한 변명이야말로 쓰레기임을 왜 모르는가. 더 이상 ‘우연히’라는 단어가 바이러스가 돼 코로나19처럼 이 사회를 마비시키는 걸 두고 볼 수 없지 않은가.그래서 우연히 봄이 온 줄 알았다는 변명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사람도서관’으로 지역공동체 강화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용학이네 사람책방에 사람책을 모십니다.’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자리한 용학도서관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의 내용이다. ‘용학이네 사람책방’은 용학도서관에서 운영되는 ‘사람도서관’의 이름이다. 사람도서관은 ‘사람책’으로 구성된 도서관이다. 사람이 책과 마찬가지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신개념 도서관이다. 사람책은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마찬가지다. 도서관 안에서 읽을 수도 있고, 도서관 밖으로 빌려가서 읽을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사람도서관의 기원을 찾아보면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의 사회운동가인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2000년 덴마크에서 열린 한 뮤직페스티벌에서 이벤트로 시도한 것이 시초다. 이용자가 원하는 사람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인 ‘Living Library(살아있는 도서관)’가 그것이다. 당시 덴마크의 청소년폭력방지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던 그는 사람책을 통해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사람들 사이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기 위해 사람도서관을 시도했다고 한다.에버겔은 2014년 국회도서관과 희망제작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면 그는 친구 네 명과 함께 사람도서관을 고안했다. 목적은 일상적이지 않은 종교, 성적 취향, 인종, 직업 등을 가진 사람책을 통해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도서관은 동성애자, 무슬림, 이민자 집단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지역사회 시민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갈등을 해소해 사회통합에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그는 199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파티에 가던 자신의 친구가 칼에 찔려 숨진 뒤 ‘스톱 더 바이올런스’란 비폭력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사소한 싸움에 휘말린 친구가 왜 그렇게 무참히 죽어야 했는지, 극단적인 범죄를 막으려면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해결책으로 고안한 것이 바로, 사람도서관이다. 갈수록 다원화되는 사회가 안고 있는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와해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운동으로 시도한 것이다.용학이네 사람책방은 에버겔의 의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책이 거대 담론을 거론하기보다, 내 이웃과 소통하고 경험이나 삶의 지혜를 나누도록 유도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나누고 싶은 지혜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 나이, 직업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람책으로 등록할 수 있으며, 한 달 단위로 사전에 안내되는 사람책을 만나고 싶은 주민은 누구라도 매주 금요일 오후 4시30분 용학도서관을 찾으면 된다. 사람책을 직접 만나지 못한 이들은 유튜브 용학도서관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콘텐츠를 통해 사람책을 만날 수 있다. 사람책 영상은 2019년부터 제공되고 있다.유명인도 아닌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누가 듣겠느냐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대면 모임이 불가능한 때를 제외하고는 2018년 6월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매주 진행되고 있다. 이때까지 평범한 이웃 100여 명이 재능나눔 시민운동 차원에서 사람책으로 등장해 지역주민들과 소통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20~40명씩,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가 유지되는 요즘은 15명 안팎의 주민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사례는 감사장과 자그마한 기념품뿐이지만, 대부분 사람책은 이웃과 소통하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용학이네 사람책방에 앞서, 용학도서관에서는 ‘청출어람 청어람’이란 사람도서관이 운영됐다. 2016년 3월부터 다섯 학기 동안 진행된 청출어람 청어람은 매주 한 차례 인근 중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및 직업 정보를 제공하는 재능나눔 사람도서관이었다. 당시 자신의 직업을 안내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자, 100여 명이 선뜻 동참했다. 매 학기 초 사람책과 직업, 일정을 인근 학교에 안내하면 학급이나 동아리 단위로 참여하기도 하고, 해당 직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도서관을 찾았다. 가끔 사람책을 지역 학교에 대출하기도 했다.사람도서관이 수년째 지속되는 힘의 근원은 대화다. 사람책이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이 청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책으로 등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웃에게 풀어내는 사람도서관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강화되길 소망한다.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후 청와대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단 초청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나눈 가벼운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함께 백악관 내 로즈가든을 산책하던 박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설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 않느냐”며 “내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는데 팁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Be natural(자연스럽게 하라)”이라고 말했다며 소개했다.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견줄 만한 연설의 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열변을 토해내며 청중들의 피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해 지지를 끌어내는 쪽이다. 오바마의 연설은 정반대이다. 일상적인 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그래서인지 오바마의 연설은 영어 교재로도 인기가 높다.오바마의 연설이 특별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꼽는다. 게네랄파우제는 합주곡이나 합창곡에서 모든 악기가 일제히 쉬면서 악곡의 흐름을 갑자기 정지시키는 기법이다. 연설에 이 개념을 대입시키면 침묵에 해당한다. 침묵이 말보다 더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오바마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대표적인 예가 2011년 1월12일 열렸던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 오바마의 연설이다. 이 사건으로 숨진 여덟 살 소녀를 언급하던 그는 연설 도중 갑자기 침묵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잠깐 동안 놀란 청중들은 곧 그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 책임감 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침묵의 연설은 51초간 이어졌다. 어떠한 말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51초간의 침묵은 뉴욕타임스가 “2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며 찬사를 쏟아낼 정도였다.이탈리아 아동교육자이자 몬테소리 교육의 창시자인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 활동은 침묵이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을 둥글게 앉힌 후 30초, 혹은 3분 등 일정시간 침묵하게 한다. 단순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는 동안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는 활동이다. 그런 다음 침묵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발표를 하게 한다. “침묵은 집중력을 높여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준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말이다.18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침묵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격언이다. 때에 따라선 침묵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테오프라스토스도 침묵을 옹호했다. “바보는 말을 할 줄 몰라 침묵하지만, 강자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침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사회에선 강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과격한 말로 자기 편 끌어들이기에만 혈안일 뿐이다.그렇다고 무작정 침묵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침묵이라는 무기’를 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코르넬리아 토프는 오히려 말의 양을 조절해 침묵을 효과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툭툭 내뱉기만 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해야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잠시라도 고민해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불편해 하는데도 열혈 지지층만을 바라보고 하는 말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나아가 침묵의 기술을 연마하라는 다그침이다.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코앞이다. 선거라는 게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막말 한마디에 따라 당락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당락은 침묵의 기술을 누가 더 잘 구사하느냐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다.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는 침묵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곧 자기 혀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다음은 선거에서 당락을 가를 수도 있을 만한 탈무드의 가르침이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