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조옥상 ‘그날의 단상 희방사’ 수상소감

가을입니다. 가을 햇살이 지독한 불청객 코로나19를 불태워 버렸으면 합니다.우기도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에 앉으면 땀이 줄줄 흘렀지요. 꿈속에서도 감히 당선되기를 사모해 온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이었습니다.전화를 받는 순간 매우 기뻤습니다.수필을 쓴지 여러 해 됐지만 여전히 초보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 않는 수필을 쓰고자 노력하겠습니다. △평사리 토지문학대전 수필 대상△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보훈문예작품공모전 추모헌시 최우수상△이지웰가족복지재단 수기공모전 수기 대상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조옥상 ‘그날의 단상 희방사’

천년사찰 희방사를 감싸고 흘러가는 숲이 울울창창하다. 소백산 아래 고즈넉한 희방사! 불자들이 삼삼오오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이 해사한 잎을 흔든다. 흐르는 계곡물은 감로수처럼 신령스럽다. 숲 향기가 훅 풍기자 맹맹했던 코가 뻥 뚫린다.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향기가 숲 향기라 한다. 거대한 소백산 숲 향기에 온몸이 경쾌해진다. 희방사로 오르는 길에서 얻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 가슴 또한 설렌다. 자연은 늘 그러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좋다. 서로를 조화롭게 보안하는 자연이라는 웅장한 이치가 길을 나선 나그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들꽃 소소한 이 길은 생경하지 않다. 희방사에서 십 리쯤 떨어진 풍기에서 유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작로에 수없이 박혀있던 돌부리는 다 어디로 가 뒹구는지, 잘 닦아진 길에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청아한 매미소리와 거대한 숲이 바투 다가온 걸 보니 희방폭포가 눈앞에 펼쳐질 모양이다. 매표소를 지나 폭포에 다다랐다. 수십 년의 풍화작용에도 청청한 위상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은빛 포말에 우중충하게 뒤집어쓴 세상 먼지를 씻고 가파른 철제계단을 오른다. 너럭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진 풍상에도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바위에 앉아 이끼 낀 추억 한 자락을 꺼낸다.희방사 마당으로 들어섰다. 천년 역사의 숨소리가 마치 지나간 어제 같다. 댕그렁! 정연한 기와비늘을 떨며 산사 처마에 달린 풍경이 운다. 허공의 뜰을 깨우는 저 풍경은 얼마나 많은 날을 쇠줄에 묶인 채 견뎌 왔을까. 저리 맑은소리는 어떠한 성불로 하여 얻어진 공명일까.아버지는 몸이 허약하셨다. 희방사에서 두 해쯤인가 요양을 하셨다. 국가고시를 준비하시던 중 지병이 도진 것이다. 가족을 두고 깊은 산중으로 거처를 옮기셨던 아버지, 장녀인 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동생들은 어리광부리는 나이였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조르면 엄마는 우리를 깔밋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혀 희방사로 향했다. 완행열차만 쉬어가는 역사를 지나, 개망초 흐드러진 비포장을 폴짝거리다 엎어지면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잠시 쉬어가는 그 옆으로 산수국이 구슬처럼 피어 있었다. 잉크색 꽃을 탐스럽게 피운 산수국은 아버지의 얼굴처럼 환했다.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시는 아버지는 여름이면 다래를 따서 쌀 속에 묻어두었다가 꺼내주셨다. 말랑해진 다래는 달콤하고 맛있었다.숲속으로 달아나는 조릿대 바람을 붙들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서성인다. 대웅전 옆이었던가, 지장전 앞이었던가, 아버지의 방 띠살문은 보이지 않고, 돌과 나무와 꽃과 새들이 조화로운 화음을 주고받을 뿐이다. 텅 비어서 다시 채울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낙심천만에서 오는 실망의 간극에는 어떠한 값이 주어질까.초등학교 사학년 가을소풍이었다. 소풍 장소는 희방사! 고민에 빠졌다. 폭포 위 너럭바위에 오르면 희방사가 보이고 그 사찰 오두막에는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했지만 그곳에 와 계시는 수척해진 아버지를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소풍날 아침 엄마는 분주하지 않았다. 김밥을 말고 계셨지만 맛있는 냄새도 나지 않았고 선생님께 드릴 김밥은커녕 과자도 사과도 들어있지 않았다. 선생님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찐빵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바위 모퉁이에 숨어 김밥 서너 개만 먹고 집결 장소로 내려왔다. 특기 자랑이 시작되는 동안 아버지는 말랑해진 다래를 주시려고 당신 딸을 찾으셨던 것 같다. 발칙하게 간과했던 철없는 행동에서 오래도록 자유롭지 못했다. 부모님께선 소풍날에 대하여 일절 묻지 않고 빙그레 웃어넘기셨다. 그날 이후 다래는 맛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입에 대지 않았다. 요즘에도 서양 다래라는 키위를 보면 딸을 찾다가 쓸쓸히 돌아서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른거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동종소리 은은한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두운조사가 창건설화*에 기인하여 세웠다는 수수한 사찰이다.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지만 천년고찰의 고아한 향기를 품고 있다. 내 선친에게 무량한 자비를 베풀어준 희방사! 건강을 되찾으신 아버지는 국가고시도 합격하는 영광을 얻으셔서 우리 가족은 별 굴곡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종심이 된 이쯤 이승을 떠나시던 선친의 세수가 되어서야 참회의 서를 써 내려가는 심정으로 희방사를 찾았다. 산허리를 휘감은 운무 따라 아버지의 흔적도 흘러갔지만 애잔한 그림자 하나 어릿어릿 얼비쳐온다. 수그러진 고개를 들어 평화로이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닦는다.*창건주인 두운조사가 소백산 연화봉 중턱 동굴 속에서 겨울철에 수도할 때 찾아온 호랑이의 목에 박힌 비녀를 뽑아주자 호랑이는 은혜를 갚고자 처녀를 물어다 놓는다. 처녀는 지금의 경주 유석의 무남독녀다. 두운은 동굴 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봄에 집으로 데려가니 유호장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고 무쇠로 수철교를 놓아주며 절 이름을 희방사라 하였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정석순 ‘가실성당에 핀 붉은 넋’

붕딤이산(부엉이산) 아래 가실마을은 단아하다. 아치형의 나무 터널을 벗어나자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다가온다. 널찍한 주차장을 지나면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성당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백 년 성상이 서린 가실성당이다.가실성당 정문 앞에 있는 작은 녹원이 눈을 끌어당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잔디밭이며 잘 가꾼 수목이며 여느 집 뜨락처럼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이다. 한티재로 안내하는 표지판, 방문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담은 작은 집, 하얀 조각상을 중심으로 둘러쳐진 작은 나무들. 모든 권위를 내려놓은 주인장처럼 친절하게 나를 맞는다.성당 앞 정원의 배롱나무 가지마다 붉은 꽃이 가득하다. 내가 찾는 배롱나무다. 오래도록 가실성당의 역사를 목도한 나무로 다섯 그루이다. 오랜 연륜을 품고 있어 길가 여느 배롱나무와 자태부터 다르다.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다섯 개의 가지는 차라리 기둥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불러야 연륜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더욱 붉게 피운 꽃송이들이 버섯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지주를 감싸고 있다. 허리를 숙이고 꽃그늘 아래로 들어가 보았다. 오랜 세월을 한 개의 지주에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던지 다섯 개의 지주에 세월을 담아왔다. 껍질조차 터져버려 속살이 겉이 되었다. 기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자 감춰진 아픔이 저려온다.1784년 이 땅에 실학자들에 의해 천주교가 들어왔다. 하지만 서양귀신이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받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창녕성씨 성섭이라는 학자가 천주교 진리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하였는데 1789년 돌아가시고 증손자 성순교가 열심히 신앙을 믿고 실천하다가 1860년 경신박해 때 상주에서 순교하였다.박해는 그치지 않았다. 한티재에 숨어서 숯과 독을 구워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곧이어 추수할 누런 곡식 들판을 버리고 포졸들을 피해 한티재로 숨은 사람들. 아이들을 등에 업고 팔에 끼고 도망치다가 깊은 도랑물에 떠내려 보내는 가슴 쓰라린 부모들. 그러나 다시 붙잡혀 와서 결박당한 채 참수대 위에 꿇어앉고 말았다.망나니들이 목을 자르자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칼끝에 맺힌 핏방울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 그 붉은 넋들이 땅속에서 잠자다가 다시 피었을까? 뜨거운 8월의 햇볕 속에 핀 배롱나무꽃이 더욱 붉게 타오른다.신앙의 자유를 얻은 기쁨도 잠시였다. 동족끼리 총칼을 겨누는 부끄러운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다. 부모를 잃은 숱한 아이들이 고아가 되어 전장에 버려졌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피비린내가 고지마다 감돌았다. 융단폭격으로 숱한 목숨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산화했다.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해서 바깥세상을 모르랴. 배롱나무는 바람이 전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미국 제1기병 사단장 로버트 게이는 북한군이 낙동강을 넘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의 희생을 안고 왜관철교를 포함한 낙동강의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배롱나무는 그 괴로운 자백도 바람으로 들었다.순교자의 아픔도, 남하하는 적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하는 아픔도 배롱나무는 모두 끌어안고 살아왔다. 역겨운 피비린내와 밤낮 울려 퍼지는 총성, 인도교를 건너기 위해 철교에 매달린 사람, 견디지 못해 강물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아비규환이 여린 잠결에 들려왔다.‘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전세를 역전시키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국군과 유엔군의 노랫소리에 무슨 의미를 두었을까만 어느 누구의 승리도 아닌 서로의 가슴에 총질만 했던 비극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가장 분명한 진실을 담고 살아왔을 것이다.낙동강 전투 중에 가실성당은 남, 북한군의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피아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기에 원형을 보전할 수 있었다. 기둥 한쪽에는 피투성이가 된 젊은 군인들과 학도병들의 주검도 각인되었겠지. 그들의 원혼이 폭염이 되어 내리는 배롱나무 붉은 꽃이 상여가 되어 한을 바람에 추슬렀겠지.배롱나무는 많은 사람의 한과 아픔을 기록한 지주들을 붉은 꽃으로 덮었다. 드러내기에는 너무 많이 아프고 다 말하기에는 너무 깊이 사무쳐서 그럴까. 단지 붉은 꽃으로만 말하는 배롱나무가 나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가르쳐준다. 지금은 잊은 채 살아가며 그것들은 과거의 일이라며 가슴 한편으로 밀어내기에는 배롱나무에게 너무 미안하다.배롱나무의 붉은 꽃송이들은 순교자의 피와 한국전쟁에서 흘린 군인들의 피를 묵묵히 받아들여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지난 세월을 지니고 있는 배롱나무 앞에서 할 말을 잊은 듯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배롱나무는 주인인 성당의 높이에 비해 한없이 낮게 전지하였다. 가지마다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스스로 순교자가 된 듯하다. 온갖 풍상을 거쳐 오늘까지 100년을 피워온 배롱나무의 붉은 꽃잎들은 이제 순례객을 맞이한다. 이 땅의 비극을 아는 순례객들은 배롱나무 동산에서 잠시 묵상한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정석순 ‘가실성당에 핀 붉은 넋’ 수상소감

바쁜 일상에서 특별한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잠시 멍하니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제11회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에서 입선에 들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학창시절에는 문학에 관심이 많아 책 읽기나 글쓰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엄마로서, 교사로서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시절 문학에 대한 열정이 식다 못해 꺼져갈 즈음 우연한 기회에 수필을 다시 접하게 됐습니다.지난 8월 남편과 함께 뜨거운 햇볕을 맞으면서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에 있는 가실성당을 찾았습니다.몽실몽실 붉은 배롱나무 꽃송이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순국선열들의 핏방울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목숨을 바치며 지켜온 것에 비해서 난 현재 그분들의 희생을 이용해 영광을 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그날의 기록을 이번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에 출품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는데 상까지 받으니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합니다.제 안에 꺼져가던 문학 열정을 다시금 살려주신 김이랑 문예창작실 선생님,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경남 고성 출생△석적초등학교 교사△현재 김이랑 ‘문예 창작 교실’ 회원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정미영 ‘윤장대’

예천 용문사는 소백산의 깊은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단풍나무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회전문 앞이다.합장한 채로 자운루를 올려다본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회담 장소로 호국불교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호국의 염원이 응집된 소리들을 내 마음속에 받아 적으며 대장전으로 향한다.용문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곧장 대장전을 찾았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그 자체가 보물이다. 대장전 안에는 4개의 보물이 모셔져 있다. 손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 2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남아 있고, 목각후불탱,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각탱화다.법당에서 만나는 할머니의 얼굴은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서렸다. 다소곳이 걷는 모습은 근엄했다. 향을 피우고 꾸밈도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고 거듭 절을 했다. 할머니의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기운이 솟는 것일까? 오직 부처와 일체가 되려는 몸짓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절을 했다.길고 정성스러운 절이 끝나면, 불단 양옆에 놓인 윤장대를 돌렸다. 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을 윤장대라고 한다. 고려 명종 때 자엄스님이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들에게도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 소원성취하도록 안치했다. 경전을 몰라도 책장을 한 번 돌리면 일만 번의 다라니경을 읽은 공덕을 쌓게 된다.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훼손을 우려하여 요즘은 음력 3월3일과 음력 9월9일 두 번만 돌릴 수 있다.윤장대는 전륜장이라고도 한다. 겹처마의 팔각지붕 형태에 치밀하게 짠 공포로 이루어진 다포계 양식으로, 8면의 각 면에 문을 하나씩 달았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꽃살문에는 8개의 다양한 꽃 조각이 장식되어 있는데, 꽃잎마다 아포리즘이 얹혀 있는 것 같아 저릿한 감동으로 다가온다.윤장대는 마치 팔각목조건물을 축소하여 놓은 것 같다.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아랫부분은 낙양처럼 조각 장식을 하고, 한쪽 모서리에는 긴 손잡이를 마련하여 그것을 잡고 경장을 돌릴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고 마모된 손잡이에는 할머니의 애절한 손길이 스며있다.할머니가 용문사를 찾아온 이유는 윤장대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였다. 경전을 읽지 않고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고, 죄와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니, 각별하게 와 닿았다.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의지해 살았다. 그런데 육 남매 중 세 명의 자식을 먼저 앞세웠다. 맏이는 이십 대에 전쟁터에서, 둘째는 삼십 대에 병으로, 내 아버지는 사십 대 끝에 교통사고로 돌아갔다.할머니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목숨 같은 자식들이 단명했다며 통곡했다. 자식들의 죽음은 숨기고, 가리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원망할 대상이라도 존재한다면 후회하더라도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을 텐데.할머니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마주 대할 용기를 잃어갔다. 그래서인지 점점 타인 만나기를 꺼려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지 않으면 좋으련만. 할머니에게 이어지는 모든 관계의 줄 위에서 허둥대며 바투 다가서지 못했다.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식들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을 가슴으로 삭이니 몸져눕는 날이 늘었다. 할머니의 조그만 등에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업고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더욱 윤장대를 의지해 돌렸다.그러면 어느새 가슴 속에 서린 응어리가 풀렸다고 하셨다. 원망하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생활의 모든 번뇌와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단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니 의심하는 마음 없이 온몸으로 윤장대를 믿고 받아들였다.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빌었다. 할아버지와 세 아들이 극락에 가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원했다.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다.대장전 가득 향내가 자욱하다. 소신공양하는 향을 보니 숙연해지며, 자손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신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경내를 떠돌던 기원의 말들이 내 두 눈에 닿아 눈물방울로 맺혀 흘렀다.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웅숭깊은 마음 탓에 내 가슴마저 촉촉하게 젖어든다.할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 윤장대를 돌린다. 할머니에 대한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인자들이 손잡이에 옹이처럼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다. 품새를 찬찬히 훑어보며 눈에 담고 있는데, 바람결에 목탁 소리가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부처님의 설법인 해조음이 들리는 듯해 두 눈 감고 합장한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정미영 ‘윤장대’ 수상소감

뒷산을 오릅니다. 가끔은 익숙한 길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산에서 길이 아닌 곳도 자꾸 걸으면 새로운 산길이 생겨나듯이 제 글도 자꾸 써나가면 언젠가는 나만의 오솔길이 만들어지겠지요. 여러 갈래의 오솔길이 마침내는 산 정상으로 이어지듯이 앞으로 내 삶이 진솔한 글쓰기를 향해 나아가길 바랍니다.망각된 것은 호명할 수 없습니다. 문화유산에 담긴 깊은 울림들이 소멸되지 않도록 문화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 답사의 길 위에 소담스러운 들꽃 한 송이가 피어나길 기도합니다.부족하지만 어여쁘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경북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 주시는 대구일보에도 곡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포항소재문학상 최우수상△호국보훈문예대상 우수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춘희 ‘매듭 없는 맺음’

잠을 앗아 간 더위와 싸우다 문득 오래전 어머님이 장만해 주신 삼베 홑이불이 생각났다. 이제는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지만, 침대 위에 깔아 놓으니 등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렁인다. 며느리 여름나기까지 자상하게 살피던 어머님을 회상하며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 마을을 찾았다.시골 동네는 겉보기에 고요한 듯하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줄기 속에 물과 양분이 끊임없이 이동하듯 내면에는 끈끈한 전통이 흐르는 기운을 느낀다. 마을을 안은 비봉산 산봉우리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산 아래로 비단 폭을 펼쳐놓은 것 같은 길안천이 너른 들판을 적시며 여유롭게 흐른다.거리에는 인적이 뜸하다. 한낮의 맑고 투명한 햇살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농가의 이끼 낀 기와만이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하고 방문객을 맞이한다. 돌과 흙이 어우러진 담벼락은 옛 정취를 돋운다. 흙벽을 따라 채송화가 오종종하게 핀 좁은 길을 걸으니 어릴 적 놀던 골목길이 생각난다.반쯤 열려있는 대문들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손짓을 보낸다. 언제든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아도 좋단다. 집마다 바지랑대에 의지한 빨랫줄에는 마른 풀 다발이 걸려있다. 누런 삼껍질은 온 동네가 삼베를 짠다고 뽐내는 듯하다.대마 씨는 4월에 포근한 땅을 만나 싹을 틔워 올린다. 줄기가 어른 키만큼 자라고, 푸르던 색깔이 누렇게 변하는 7월이면 수확을 한다. 낫으로 자른 줄기는 삼굿에서 찐 다음 하루 햇빛에 말린다. 다시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기고 빛을 쬔다. 다음에는 삼톱을 잡고 겉껍질을 벗겨낸다. 남은 속껍질을 ‘계추리’라고 한다. 이것을 일일이 여인의 손톱으로 째고 훑어내려 가닥을 낸다. 찢은 속껍질의 섬세함에 따라 구분하여 ‘삼뚜까치’에 삼실을 건다.‘안동포 짜기’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다. 마을 청년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 기와의 색깔마저 풍화된 집에 들어선다.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꺼진 구들로 사랑채 문간방 바닥은 굴곡이 심하다. 안동포 짜기 무형문화재 제1호 기능보유자이신 우복인 할머니가 나이보다 오래된 베틀에 앉으신다.수확할 때 대마의 길이는 2m 정도인데 삼베 한 필의 길이는 22m이다. 결국, 삼실은 잇고 이어야 베를 짤 수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실을 잇는 삼삼기 과정을 몸소 보여주신다. 삼실 한쪽 끝을 입으로 찢어 두 가닥으로 만든다. 또 하나의 실은 침을 발라 뾰족하게 만든다. 쪼갠 한 가닥과 침 바른 실을 오른쪽 무릎 위에 놓고 비벼서 꼰다. 남은 한 가닥을 꼰 실과 합쳐서 다시 비벼 잇기를 완성한다.두 줄의 실이 매듭도 없이 한 몸이 된다. 실을 이을 때는 묶은 부분에 반드시 동그란 마디가 생기는 줄만 알았다. 마디를 만들지 않고도 묶이는 맺음이 신기하다. 삼실이 길고 길게 이어지듯 베 짜기도 대를 이으며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았을까.며느리를 맞는 시어머니의 마음도 찢어진 삼처럼 두 갈래가 아니었을까. 자기의 일을 이어줄 후계자로서 염려와 기대가 있었을 게다. 일이 서툴러서, 음식을 맛나게 하지 못해서, 때로는 젊다는 자체가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며느리 또한 늘 따라다니는 시어머니의 눈빛을 벗어나고 싶었으리라.갈등하는 두 마음은 서로 자리를 내어주었다가 다시 뺏기를 반복했을 게다. 꼰다는 것은 맞댄 두 실이 앞으로 혹은 뒤로 가며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서로 꼬고 꼬이는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시어머니인들 딸 같은 며느리가 밉게만 보였을까. 삼을 찢느라 여리디여린 입술에 피가 맺히고, 보드라운 허벅지에 푸른 멍이 번지는 것을 보며 애처로운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남겨져 기다리던 가닥이 꼬인 실과 다시 합쳐지며 맺음이 완성된다. 세월이 지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이번에는 서로 자리를 양보하느라 꼬임이 생겼을 것 같다. 돌려서 꽁꽁 묶은 매듭은 살아생전 만들지 않았지 싶다. 침 속에 든 효소가 영양소를 잘게 부수어 소화를 돕듯 닮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생산한다는 것이 거친 ‘계추리’를 부드럽게 하여 맺음을 도왔으리라.신라 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옷감 안동포. 베 짜기의 기능이 이어지듯 조용한 마을에 고부간의 은은한 정이 흐르고 있다. 우복인 할머니는 시어머니에게 베 짜기 기능을 이어받아 며느리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대를 잇고자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일상의 고통을 길쌈노래에 실어 날려 보낸 여인들의 한 많은 삶은 날실과 씨실이 되어 전통으로 승화한 것이 아닐까.매듭 없는 맺음이 안동포에 숨어 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춘희 ‘매듭 없는 맺음’ 수상 소감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보고 지냈습니다. 잠시라도 사라지면 생명이 위험한 공기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야 철이 들었는지 먹거리를 얻고 부대끼며 살아온 대구·경북 지역에 고마운 눈길이 갑니다.처음으로 마음이 머문 곳은 천년의 숨길이 이어진 안동포였습니다.은근한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시어머니의 생각이 가슴 속에 남아있었던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것을 반성하는 심정으로 아름다운 곳과 따뜻한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다.우리 고장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시는 대구일보에 감사드립니다.서툰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쓰기 공부를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신 선생님들과 문우들에게 아울러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문장 신인상 수상(2019)△ 고모령효예술제 수상(2018)△ 동서커피문학상 수상(2018)△ 문장작가회 회원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윤재 ‘월영교의 약속’

“여보, 우리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울이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이렇게 속삭이며 당신 가슴팍으로 파고들면 언제나 당신은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어린아이를 두고, 또 둘째를 임신 중인 아내를 남기고 31살의 젊디젊은 남편이 죽었다. 편지를 쓴 여자는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였다.구구절절 남편을 사랑한다는 원이 엄마의 편지가 460여 년을 잠자다가 남편 무덤에서 나왔다. 옆의 원이 엄마 무덤에서는 생전에 병중인 남편의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만든 미투리가 발견되었다. 이 미투리는 놀랍게도 원이 엄마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게 일편단심을 전할 때 머리를 잘라 신을 삼으며 남편의 쾌유를 빌던 바로 그 여자였다. 여필종부로 살면서 백년해로하겠다는 원이 엄마의 구구절절한 편지는 내 마음에 전율로 다가왔다.안동의 낙동강 상류에 가면 월영교를 볼 수 있고 거기에는 세월의 시공을 뛰어넘은 원이 엄마의 사랑이 숨 쉬고 있다. 월영교란 명칭은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옮겨온 인연으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낙동강을 감싸듯 안은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우니 바로 가슴에 스며든다. 아린 달빛은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또 그들 부부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월영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월을 뛰어넘은 우리는 다리 위에 올라 이들 부부의 숭고한 사랑을 달빛에 담아 모두의 사랑과 꿈으로 연결하여 승화시키고자 한다.예나 지금이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 사랑도 가는 사랑이 있어야 오는 사랑이 있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는 흔히 부부간에도 서로 나한테 잘해주기만을 바란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내한테 오는 사랑만 바라며 살았으니 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남겨진 유적과 유물에만 그 값어치를 매기곤 한다. 바탕에 깔린 무형의 문화인 정신세계는 등한시하고 있으니 자신을 변화시킬 양식을 얻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연한 인연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룬다. 연애를 할 때는 흔히 콩깍지가 씌어 온통 좋은 것만 보인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면 온갖 허점이 다 보이니 이젠 반품할 수도 없다. 예전 시골에 살 때 농사를 짓자면 농부는 우시장에서 농우를 사 오는 때가 있다.“이 농우는 일도 잘하고 1년에 한 번씩 새끼도 잘 낳습니다.”우시장에서 상인의 말에 현혹된 농부는 농우를 사 와 쟁기를 채우고 밭을 갈려면 상인의 말은 딴판이었다. 일을 잘하기는커녕 농부의 리듬과 맞지 않고 성질은 왜 그리 괴팍한지…. 농부가 얼마 동안 참으며 논과 밭을 가는 일을 시키려고 해도 도대체 말을 듣지 않는다. 참다못한 농부는 소를 끌고 시장에 나간다. 다른 사람을 속여 농우를 팔고 일 잘하는 소와 바꾸려고…. 우리는 흔히 이런 행동을 개비라고 한다.그런데 농부와 농우의 만남에는 개비가 적용이 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개비를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부부가 되었음은 오로지 서로 참고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해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단점을 캐다 못해 개비를 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혼인 것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이제는 농부가 소를 개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가 농부를 개비하고 있으니 요지경 세상이다. 조선 500년 남존여비의 유교적 사상이 근간을 이루었던 시대는 여자에게 무조건 희생을 강요했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여자에게 유교적 사상을 강요하고 때문에 다툼이 잦고 이혼율이 높은 것이다.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현시대에 나는 평생토록 아내를 하대하며 살았으니 과연 내게 무엇이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여우하고는 살아도 소하고는 못산다.’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여자가 여우짓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의 가슴팍에 파고들 수도 없는 일이다. 때론 여자도 소와 같이 우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남편이 여우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이렇게 부부가 정과 사랑을 주고받을 때 이응태 부부가 될 수 있고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원이 엄마의 테마공원을 돌아 월영교를 지나자니 하루 3번 가동된다는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린다. 그 물이 혹시나 원이 엄마의 한이 아닐까 하여 마다치 않고 맞아봤다. 그리고 아내 손을 꼭 잡았다.“앞으로 내가 잘할 테니, 우리 앓지 말고 올애도록 살다 함께 갑시다.”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내 손을 처음 잡았으니 쑥스러웠지만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절대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윤재 ‘월영교의 약속’ 수상소감

안동의 월영교를 둘러보고 쓴 글을 뽑아줘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내가 돌아본 경북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우리나라의 문화 중 경북만큼 다양한 문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불교와 유교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곳이 바로 경북이 아니던가? 또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유학자는 경북에서 나오지 않았던가?그런 경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 대구일보에 감사드린다.△1974년 공주교육대학 졸업 후 서산에 교사생활△1988년 대전으로 전입△2005년 대전에서 교장 승진△2013년 퇴직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연숙 ‘빛과 바람이 통하는 갓’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하필 장마철에 그 먼 곳을 간다고 약속을 잡았을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앞에 두고 새벽 창가에 섰다. 심상찮은 분위기다. 네 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기에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번뇌의 물결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훌훌 털고 나서 보니 어느새 팔공산 입구다. 마음이 걱정을 만들었다. 1천365개 계단을 알리는 푯말 앞에 섰다. 일 년이라는 숫자에 눈길이 머문다. 삼백육십오일 지켜주고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의미로 만든 계단일까. 그도 아니면 매일 고민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중생의 마음을 표현한 걸까. 계단을 다 오르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니 걷는 수고쯤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으리라.정오에 가까워진 햇볕은 따갑고 깎아지른 듯 펼쳐진 계단은 아슬아슬하다. 이까짓 계단이 아니다. 마스크 속 얼굴이 땀으로 따끔따끔하다. 평일에 찾은 팔공산은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날 뿐 한산하다. 간절한 무엇인가가 그들의 발길을 팔공산으로 향하게 했으리라. 스무 계단쯤 올랐을 뿐인데 벌써 다리가 후들거린다. 고뇌의 부피만큼 발걸음도 무거운 것인가 보다. 문득 내려오는 노파의 모습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장 난 경운기처럼 덜덜거리는 다리가 안쓰럽다. 아차 하면 툭 부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짓누르던 괴로움을 다 벗어 던지고 온 탓일까. 훌훌 날아가 버린 고뇌를 다시 붙잡아 오면 다리의 흔들림이 멈출지. 새벽부터 나섰을 노파의 푸석한 머릿결이 바람에 흩어진다.노파를 뒤로하고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부처님 앞에 섰다. 어떤 걸 내려놓고 어떤 걸 가져가야 하나. 딱 한 가지만이라니 욕심을 부릴 수 없다. 팔뚝만 한 큰 초에 불을 붙였다. 가장 큰 초다. 욕심인지 간절함인지 모르겠다. 이미 많은 초가 빨갛게 타오른다. 이유 없이 가슴이 뻐근하다. 이보다 뜨거운 불꽃이 있을까.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약사여래불로 불린다. 약사여래불은 불교에서 중생들의 병을 고쳐준다는 부처다. 병을 고친다는 의미 때문인지 대부분 약사여래불은 약 합이나 작은 병을 들고 있다. 이곳 부처님 또한 왼손에 작은 약 합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몇 해를 수십 번 다녀갔음에도 어리석음 때문인지 약 합을 보지 못했다. 아마 다른 불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약사여래불로 불리는 이유는 사각의 돌 갓에 있을 것 같다. 갓은 바람을 막아주고,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사람들의 괴로움과 간절함을 돌 갓이 막아 줄 것만 같은 이유다. 갓 위에 중생들의 소원이 켜켜이 쌓이리라. 내가 가진 고민과 간절함의 무게가 깃털 같았으면 한다.그저 돌의 수수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투어야 할 이유가 있었음일까. 꽉 다문 입술은 근엄하고 지그시 감은 눈이 묵직하다. 한 걸음 떨어져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쓰고 온 모자를 벗어 가지런히 놓았다. 두 손을 모으고 계단을 오르는 동안 절반은 이룬 것 같은 소원을 떠올린다.남편은 납품하고 받지 못하는 돈 때문에 힘들다. 뜻하지 않은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니 이쪽도 저쪽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 가지 소원만 이룰 수 있다니 저쪽을 위해 합장을 했다. 저쪽이 잘 돼야 남편이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절을 하는데 문득 잡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위한 기도가 먼저일 것만 같은 것이다. 결국, 소원은 두 개가 되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다 보니 짓누르던 것이 쑥 내려간다. 이만하면 되었다, 혹은 다 알고 있다, 염려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손길이 닿은 듯 마음이 편안하다. 갓에 소원이 실린 것일까.‘갓’ 하면 조선 시대 오만한 몸짓과 갈지자걸음의 양반을 떠올린다. 혼례를 치른 남성들은 상투를 틀고 모기장 같은 반투명 갓을 썼다. 갓은 권위기도 했다. 목울대에 힘을 주고 ‘이리 오너라’ 외치던 무소불위였다. 현대에 들어 외국인들이 이 갓을 보고 ‘빛과 바람이 통과하는 신기한 모자’라는 표현을 했다. 신선한 표현이다. 힘으로 누군가를 꾹꾹 누르던 권위가 아니라 떠나보내고 받아들이는 모자. 갓바위의 갓이 그러하다. 많고 많은 고뇌를 바람에 훌훌 날려 보내고 나면 돌 갓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음이다. 약 합 대신 왜 돌 갓이어야 했는지 알 것 같다.일상은 늘 불안, 초조, 근심 걱정이 되풀이되어 일어난다. 버리고 비우는 일이 일상의 물건에만 쓰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심(心)이 된다. 고민과 욕심, 두려움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근심이 사라지지만 마음은 알기조차 어렵다. 갓바위의 갓은 마음을 잡아두지 말라고 한다. 초조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겠는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소원성취다.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산하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한 계단 내려가는 순간 다시 불안함이 찾아든다. 마음은 술 취한 원숭이와 같다더니 왔다 갔다 종잡을 수 없다. 바람이 통하라고 머리에 쓴 모자를 느슨하게 풀었다. 바람은 언제쯤 불어줄까.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연숙 ‘빛과 바람이 통하는 갓’

팔공산은 제가 한 달에 두 번씩 다녔던 곳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민폐를 끼칠까 염려 하는 마음으로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팔공산 갓바위는 불교를 믿는 이들이 한 번이라도 다녀가는 곳입니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잊지 못할 곳이지요.제가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처음 찾은 것은 큰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대입 시험을 보려면 일 년이나 있어야 하지만, 부모 마음에 미리 덕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친구와 새벽 별을 보고 출발했지요. 안양에서 팔공산 입구까지 4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우리는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팔공산 계단을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면 떠나올 때의 불편했던 마음이 저절로 치유됐습니다.누군가에게 바라기만 했던 일, 혹은 남을 원망했던 마음들도 술술 풀어졌고요. 부처님 가르침대로 마음에서 집착을 내려놓으니 소원도 어느새 이뤄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지금 또 소원 하나가 이뤄졌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입상의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2013년 문학이후 등단△수필집 ‘모란꽃 뜰’ 출간△2018년 우리농산물 창작동화공모전 최우수상 수상△‘밥대장과 친구들’ 공저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능수 ‘인(仁)을 밟다’ 수상소감

이순의 언덕위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고통, 절망, 아픔, 미움도 뒤돌아보니 인생이란 항아리에 세월이라는 촉매제를 넣어 발효시키는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폭설과 폭우, 태풍은 자연을 지키기 위한 순환이듯, 처절했던 인생사는 행복과 삶의 의미를 깨달게 하는 교육이었습니다.삶의 체험을 담담히 풀어내는 작품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힐링하고 싶습니다. 삶의 의미에 새로운 맛을 내는 효소 같은 작가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늦깎이 학생 마다않고 지도해 주신 H. P. L 선생님에게 오늘의 영광을 돌립니다.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제대로 된 작가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US, IK 문학서클 회원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2015년 예술세계 신인상수상(수필부문)△에세이울산동인회△예술세계동인회△ 울산문협회원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능수 ‘인(仁)을 밟다’

문지방을 밟고 넘는다. 바닥에 경사면이 느껴진다. 움푹 닳아 파인 면과 닳지 않아 불룩한 바닥 면이 시차를 두고 신발에 닿는다. 올려다보니 정문에 이인문(履仁門)이란 현판이 당당하게 걸려있다. 인(仁)을 밟고 있는 내 발끝이 잠시 무거워진다.수봉정(경북기념물 제102호)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자리한 수봉 이규인의 고택이다. 수천 평 면적에 수봉정, 홍덕묘, 전사청, 열락당, 무해산방, 중간 사랑채, 안채, 곳간 등이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지형 따라 둘러쳐진 담장이 이웃과 인정을 나누었던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경북문화재로 지정한 후 수리한 공간과 세월 따라 무너진 담벼락에서 지난날 융성했던 가문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불국사 가는 한적한 괘릉마을에서 이인문을 만났다. 고택의 담벼락에 기댄 대문이 성큼 앞으로 나서 나그네를 반긴다. 주위환경과 어우러진 문이 마치 균형을 이룬 한 폭의 그림 같다. 곡선의 처마 끝에 푸른 하늘이 매달려 아롱대고, 쪽문 지붕 위에는 귀면와가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풍상 어린 문턱으로 세월이 사람을 앞질러간다.이인문이라는 이름은 명나라 남경 사대문의 하나에서 따왔다. 건국이념에 따라 인(仁)사상과 관련된 명칭을 궁궐의 전각과 대문 이름에 붙인 것이다. 수봉정의 대문을 이인문이라 부르는 것도, 주인이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이자를 ‘밟을 이(履)’로 해석하여 참된 인을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공자는 설문에서 인자는 사람 人변에 두 이二가 합쳐서 만들어졌다고 가르친다. 인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를 지녔다. 공자는 남을 사랑하는 것을 인 실천의 시작으로, 백성과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인 이행의 마지막으로 보았다.수봉 선생은 1859년에 태어나 78세에 돌아가신 경주 일원의 부자였다. 이재에 밝아 당대 만석꾼의 지위에 올랐다. 부를 형성하는 과정에 무리수가 따랐지만, ‘정승같이 쓰라’는 생활철학으로 만년엔 구제사업과 육영사업, 독립운동지원 사업에 흔쾌히 재산을 환원했다. 뿐만 아니라 여생 동안 인의 실천에 온몸을 던졌다.선생의 일생은 서당인 비해당과 약국인 보인재를 보면 알 수 있다. 비해당은 일제강점기에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 보인재는 빈곤한 병자에게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수봉정을 쳐다보니 켜켜이 쌓인 선생의 영혼이 말을 걸어온다.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가난한 환자들의 건강을 지킬 일이 후인들이 걸어갈 이정표 하나라고.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신돌석 장군이 을미의병을 일으켰을 때는 군자금과 생필품을 공급하였고, 독립의열단원으로 항일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육사에게 군자금과 피난처까지 제공해 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인이란 개인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거쳐 나라에까지 확대될 때 제 의미를 갖는다는 사례들이다.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다. 인은 이해이고 양보이고 사랑이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옛날에는 군자라 불렀다. 인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세웠던 때보다 현대사회에서는 사회계층 수만큼 갈등 수도 증가하고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몰입할수록 배려의 실천은 어려워진다. 인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실천할 때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사회이자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대문은 주인의 마음이며 사상의 표현이다. 남대문인 숭례문이 유교 사상의 표현이라면, 광한루 춘향사당의 단심문은 여인의 절개를 상징한다. 안동 도산서원의 유정문은 자연과 어울리려는 풍경을 뜻하고, 성주군 월항면 북비문은 이석문이 사도세자를 추모하던 정신을 나타내는 곳이었다.이인문이 남긴 가르침은 후손들이 설립한 경주중·고등학교에서 구현된다. 운동장에 서 있는 선생의 동상은 문에서 인격을 본받아서일까,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문으로 다가온다. 귀는 소리로 사람의 진실을 알아내는 ‘지혜의 문’, 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의 문’, 혀는 음식에서 건강을 찾아내는 ‘묘미의 문’, 코는 냄새로 자연을 이해하는 ‘신비의 문’처럼 보인다.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 석가는 가르친다. 사람의 도리도 마음에 달렸다. 문을 여는 걸쇠가 내부에 있듯이, 마음을 여는 손잡이는 내 안에 있다. 문을 닫으면 고립되고 열면 자유로워진다. 수봉 선생도 소작인의 아픔을 깨달으면서 마음을 비웠을 것이고 자신도 고립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대문의 문지방이 너덜너덜하다. 어짊을 밟아 올곧은 사람 인으로 거듭 태어난 선생의 모습 같다. 욕심의 문을 폐쇄하고 베풂의 문을 열기까지 걸린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고택과 역사를 같이한 화단의 아름드리 반송에도 인을 닦던 주인의 고통이 옹이가 되어 울퉁불퉁하다. 대문에서 피어난 인의 향기가 방문객의 마음을 정화하는 듯하다.이인문을 나선다. 들판에서 개구리의 합창 소리가 요란하다.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던 아이들이 후손에게 인의 가르침과 실천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삐걱, 이인문이 열리면서 주인장이 방문객을 전송하는 듯, 등이 후끈해진다. 인과 함께 길을 나서니 마음이 편안하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엄옥례 ‘구멍’ 수상소감

대구일보에서 주최하는 ‘제11회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에 응모했다.작품을 쓰기 위해 문화재를 탐방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작품을 쓰면서는 그 문화재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작품을 출품하고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다행히 선정돼서 내가 소개한 문화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작품을 통해서 부디 경북에 관광객이 몰려오기를 기대한다.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은 경북의 문화를 알리는 지렛대 역할이 되는 것 같다. 작품을 쓰기 위해서도 관광을 해야 되고, 작품으로 문화재가 알려져서 관광객이 늘어날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문화재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본다. △대구수필가협회 회원△대구문인협회 회원△수필집 ‘타법’ 출간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