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의 걸음걸이가 부실한 줄 몰랐더니 그예 보낸 몇 편 시가 멸치 떼를 몰고 왔네 무심코 멸치 똥을 까다 만져보는 시의 뼈//내가 시방 내 시 속의 골밀도를 생각하며 마른 멸치 똥을 까듯 누군가는 또 어디서 내 시의 똥을 까겠지 골밀도를 생각하며「대구문학 182호」(2022, 대구문인협회)‘멸치 똥을 까며’는 구와 장을 구분 짓지 않고 줄글처럼 이어진 형태로 두 수를 표기하고 있다. 단숨에 읽어나가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핵심어는 걸음걸이, 부실, 몇 편 시, 멸치 떼, 멸치 똥, 시의 뼈, 골밀도, 누군가, 내 시의 똥 등으로 볼 수 있겠다. 특히 두 번 등장하는 골밀도와 멸치 똥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화자는 내 시의 걸음걸이가 부실한 줄 몰랐더니, 라고 말하다가 그예 보낸 몇 편 시가 멸치 떼를 몰고 왔네, 하면서 별안간 다른 정황을 연출한다. 여기서 보낸, 은 발표한, 으로 읽힌다. 지면에 작품을 몇 편 수록했는데 그 시가 멸치 떼를 몰고 온 것이다. 그렇다면 멸치 떼가 함의하는 것 즉 멸치 떼, 라는 은유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멸치가 아니라 멸치 떼다. 대여섯 마리가 아니라 멸치가 떼로 몰려온 것이다. 화자는 이어서 무심코 멸치 똥을 까다 만져보는 시의 뼈, 라는 의미심장한 진술을 하고 있다. 멸치 똥은 멸치의 몸 가운데에 들어 있는 까만색의 내장 따위를 일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멸치 똥을 까는 일은 번거롭고 고단한 일이다. 필요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생각할 것은 까다, 라는 시어다. 말을 까다, 네가 나를 까느냐, 라는 문장에서 보듯 다소 부정적인 어투다. 그런데 화자는 멸치 똥을 까다가 시의 뼈, 를 만져보았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자신의 시 속의 골밀도를 생각한다. 골밀도는 뼈의 건강과 직결되므로 시의 건강성을 생각하면 골밀도를 높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멸치 똥을 까는 일을 떠올리다가 시의 골밀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점이 이채롭다. 시인의 손을 떠난 시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긴 생명력을 가지고 오래 인구에 회자하기를 희구한다. 만구성비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한 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엄정하기 마련이다. 독자들에 따라서 그 평가는 절상되기도 하고 절하되기도 한다. 화자는 끝으로 마른 멸치 똥을 까듯 누군가는 또 어디서 내 시의 똥을 까겠지 골밀도를 생각하며, 라고 긴 여운을 안기는 끝맺음을 보인다.반세기 가까이 애오라지 시조 창작에만 전념해 온 시인은 이미 독보적인 적공을 이루어 왔지만, 여전히 엄정한 눈으로 자신의 시에 대해 천착과 궁구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이보다 더 외롭고 높고 눈부실 수는 없을 터다.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