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개점 늦췄더라면

발행일 2003-02-27 20:20:5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27일 개점식을 갖고 영업에 들어갔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의 당초 개점일은 지난 21일. 하지만 뜻하지 않은 ‘2∙18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 유가족들과 아픔을 같이 하기 위해 개점을 일주일 연기한 것이다.

롯데는 이처럼 수억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을 감수한 채 당초 개점일 보다 일주일 늦게 영업에 들어갔으나 혹 “잇속만 챙기는 기업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모든 시민들이 침통한 분위기인데 고객들이 백화점을 찾아올까”하는 부담감이 팽배했다.

특히 지난 26일 저녁 7시 지하철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부근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3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추모열기가 팽배, 개점 이후 당분간 영업실적은 극히 저조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한 낮 기우에 불과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의 차량으로 인해 이 일대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할 만큼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다.

더욱이 백화점이 지하철 참사 이후 자원봉사차량과 구급차량, 취재차량, 조문 차량이 하루 수백대씩 왕래하는 사고대책본부와 합동 분양소가 마련된 시민회관과 맞닿아 있어 이 일대는 하루 종일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이에 따라 사고 이후 시민회관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가족들은 물론 조문객, 자원봉사자들까지 불만을 토로했다.

“아무리 돈벌이가 중요하지만 슬픔에 빠진 유족들이 코앞에 있는데 너무 한 것 아니냐”, “실종자들을 찾지 못해 밤잠을 설치는 유족들을 위해 개점을 좀 더 늦춰야 하지 않는냐” 는 등등 비난이 쏟아졌다.

롯데도 사실 지하철 참사 이후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왔다. 사고 이후 개점식을 바로 늦춘 것은 물론 10억원이 넘는 성금 납부, 합동 분양소 인근에 천막을 치고 10여명의 직원을 상주시키며 자원봉사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하지만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지하철 참사로 대구는 물론 전국이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개점식을 감행한 것은 섣부른감이 있는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물론 기업들의 정당한 활동은 어느 누구도 간섭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이 이왕 영업 손실을 감수했다면 최소한 지하철사고 경찰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거나, 실종자들에 대한 보상 기준이 마련된 이후 개점했더라면 롯데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대구 시민들에게 좀 더 각인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합동 분양소에서 차량들이 뒤엉켜있는 백화점 앞 도로를 바라보며 한 유가족은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이 벌써 시민들의 뇌리에 서서히 잊혀져 가는 등 고립되어 가는 것 같다”며 “저렇게 도로가 복잡한데도 백화점에 가기 위해 꾸역꾸역 밀려드는 차량을 보니 허망한 느낌이 든다”며 씁쓰레했다.

김종엽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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