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네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들/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 시집『물방울 무덤』(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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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의 몸이 풀려 천변에는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 피어올라 불가역적인 완연한 봄이 당도해있다. 하지만 몸은 주춤거리며 두꺼운 옷을 쉬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미심쩍어하는 여인들은 로맨틱한 플로라 미니 원피스나 프릴 공단 스커트 입기를 주저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의 봄맛을 몸속에 채워 넣기 위해 어제까지 청도 미나리 마을로 가는 길이 붐볐다. 지난겨울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음’을 자랑하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스스로 대견해 한다. 겨울 더께를 씻어내고 정화해낸 정갈한 마음이다.

겨울을 헤치고 나온 거친 숨결이 봄 햇살에 숨을 고른다. 바람이 실어다 나르는 봄이 번민을 날려 보내고 은혜로운 삶을 채워 주고 있다. 푸른 수액이 흐르는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새 생명의 싹이 터 봉긋봉긋 맺힌 봉오리들이 어여쁘고 눈부시다. 어둠을 털며 봄이 기지개를 켤 때 대지는 기쁨의 환희로 출렁인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온 누리에 가슴 열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있다” 김구 선생의 말씀이 다시 환기된다.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는 새 생명들이 일제히 햇살에 반짝인다. 후미진 곳에서의 얼음 깨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땅속 푸른 기운들이 힘껏 박차 오르는 소리, 꽃망울 터지는 소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따위가 죄다 봄의 공기 속에서 화음으로 번진다. 시원찮은 위세의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하다고’ 이제는 견딜만하다고 결연히 말한다. 다시 맞는 새봄은 축복이고 은총이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시 사랑 받아야 하리라.

사순절에 어김없이 찾아온 이 봄기운으로 가슴깊이 묻어 두었던 회한과 무거움을 토해 버리고 생명의 신비와 부활의 생명을, 새털처럼 가벼움을 깊은 호흡으로 들이 마신다. 정신의 매무새를 바로하고 삶의 개선을 다짐한다. 전통적인 교회는 그리스도 수난의 성금요일에 금식과 금육을 권장한다. 그래서 사순절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을 금육일로 정하고 실천하는 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가정식이 아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예외라고 오래 전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그래서 지난 주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푸성귀에 싸먹는 고기 맛은 각별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봄바람의 이 놀라운 축복이여!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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