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최영미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 속 뒤집어놓는, 저기 저 감칠 햇빛/ 어쩌자고 봄이 오는가/ 사시사철 봄처럼 뜬 속인데/ 시궁창이라도 개울물 더 또렷이/ 졸졸/ 겨우내 비껴가던 바람도/ 품속으로 꼬옥 파고드는데/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 하는가// 죽 쒀서 개 줬다고/ 갈아엎자 들어서고/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에/ 무어 더러운 봄이 오려 하느냐/ 어쩌자고 봄이 또 온단 말이냐

-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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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통과의례처럼 머물고 있다지만 온 사방천지 봄이다. 꽃들은 아랑곳없이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러나 문자 좋아하는 사람들은 습관처럼 ‘春來不似春’을 들먹인다. 이는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서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하나인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족 왕에게 끌려가는 가련한 처지를 빗댄 고사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에 나오는 말이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뜻이다. 사막을 지나며 살풍경한 북녘땅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종필씨가 인용해 우리 귀에 익숙해진 이래로 봄에 이 말을 인용하지 않은 적은 별로 없다.

80년 전두환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부터 6·29선언까지 그들의 분탕질에 울화통이 터지는 마음을 날씨 한번 더럽게 좋다고 이 시는 탄식한다. 시인은 시집의 후기에서 “진짜로 싸워본 자만이 좌절할 수 있고 절망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대체 내게 그 말을 조금이라도 입에 올릴 건덕지가 있겠는지 여러 차례 반문해보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온몸으로 실천하진 않았지만 온몸으로 고민한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된 심신으로, 다가오는 봄을 속절없이 맞아야만 하는 이도 있으리라. 내 시도 그런 대책 없음에서 나온 게 아닌지.....”라 말하고 있다.

지금도 탐탁지 않은 시국을 통과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고 뒤집히기도 하는데 지랄 맞게 봄은 왔다.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 하는가’ 이 무기력은 무엇이고 환멸은 또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온갖 역겨운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정치는 정파적 이익에만 골몰해 있다. 진작 역사의 뒤편으로 조용히 물러나야할 정당이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는가 하면 집권여당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그 틈바구니에서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의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만 벙어리 신세다. 잡다한 쓰레기 같은 막말들과 가짜뉴스는 누가 재단하고 생산해내는지.

온갖 욕망이 뒤섞여 격렬하게 갈등하는 정치판에서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니지만 얼마나 더 국민을 속이고 국민에게 상처를 입혀야만 멈추려는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의롭고 용기 있는 정치인은 없는가. 입으로만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맞아 독립운동을 위해 몸과 재산을 바친 선열들을 기리면 뭐하나. 이 나라에서 장관 되려는 사람들은 정권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그렇게 불순물이 잔뜩 끼어있는가. 선열들처럼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는 살아가야 마땅하지 않겠나. 국민이 기대하는 눈높이를 좀 알아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적폐청산도 물 건너가고, 봄이 와도 봄이 온 것이 아니며 해마다 ‘더러운 봄’을 다시 맞이할 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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