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죽음

발행일 2019-03-26 09:39:0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어느 죽음

신동환

(객원논설위원, 전 경산교육장)

수도권에 있는 L병원. 아직 의사들이 출근하지 않는 아침 7시께, 앰뷸런스 한 대가 급히 응급실에 들어섰다. 70대에 접어든 환자가 실려 왔다. 아직 의료진이 없는지라 응급조치만 해놓고 의료진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의료진이 왔다.

환자를 한참 살피던 의료진은 가족을 나무랐다. 왜 이제 데려 왔느냐? 이제까지 환자를 이렇게까지 방치할 수 있느냐, 모든 장기가 말기 암 환자 같은 상태이다. 도대체 환자는 뭐 하는 사람이냐, 가족은 죄지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약사를 하다가 쉬고 있어요.” 약사? 약사의 몸 상태가 이렇다고, 어이없어하던 의사는 진단 아닌 진단을 내렸다. ‘환자 자신이 병원을 기피했다면 자살이고, 가족이 무관심했다면 타살이다.’

환자는 약사이다. 그는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을 땄다. 70년대 초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못살 때. 약학 대학은 수재가 아니면 합격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방대학을 졸업한 지라 수도권에 취업하기가 어려웠다. 가정 형편상 서울 근처에 직장을 얻어야 했다. 친척 형과 동업으로 약국을 차렸다. 동업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친척 형에게 사기를 당하고 약국을 접었다. 사회의 쓴맛을 느꼈다. 평생 공부밖에 모르고, 가난하지만 남을 속일 줄 모르는 가풍에서 자란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는 충격으로 잠시 집에서 쉬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다 그의 직업 전선에 이상이 생기었다. 한 약국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병이 생긴 것이다. 가족에게는 약국에서 주는 밥이 입에 맞지 않는다. 집에서 약국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등의 핑계를 대었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기존 사회의 생리가 그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술이 그의 도덕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약국을 자주 옮겼다. 그러다 그는 그의 생활 근거지에서 수십㎞가 넘는 곳의 약국에 근무하게 되었다. 자신의 직업에 갈등하던 그는 장기 휴직을 택하였다. 그리고 직장에 나가지 않았다.

한번 장기간 쉬게 된 직장을 다시 잡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아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본인 또한 하늘에서 별 떨어지기를 기다리니 취직의 문은 점점 굳게 닫혀 갔다. 세월은 어찌 그리 빨리 달리는지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오랫동안 칩거에 들어간 그의 생활은 뻔하였다. 학창시절을 지방에서 보낸 그에게는 말벗할 동창도 없었고, 내향적이라 직장 친구도 사귀지 못하였다.

그는 혼자였고 그의 생활공간은 컴퓨터와 거실이었다. 하루 종일 담배만 피우면서 컴퓨터의 바둑이나 증권투자를 하였다. 증권은 소액 투자자인 그에게 무덤이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그는 마음의 병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위리안치 하였다. 자신의 영역에 울타리를 만들어 자신을 가두었다. 사회와 단절을 한 그에게 컴퓨터와 담배 그리고 고독은 유일한 생활의 벗이었다. 그는 문밖 출입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가끔 찾아온 친척과도 서너 마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십년을 넘게 혼자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쁜 병이 찾아 왔다. 약사인 그는 어떤 병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병의 상태를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조금 있던 돈은 증권 투자로 탕진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다주택에서 받은 전세금마저 실직기간의 생활비로 다 써버렸다. 병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병원에 가자는 가족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나마 있던 집이라도 팔아야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병원에 가도 고칠 수 없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떠났다. ‘노후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많이 대화하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한다. 그런 말들을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을 목격하고는, 외로움이라는 병, 사회로부터 자기를 닫는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은 사회와 격리되어 외롭게 사는 노인들에게 하나의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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