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이외수

4월에는 부끄러움 때문에 시를 쓸 수가 없다

정치가들처럼 욕망 때문에 인생에 똥칠이나 하면서

살지 않으면 천만다행/ 이미 젊은날 접질러진 내 날개는

하늘로 가서 구름으로 흐른다

문을 열면 온 세상이 시로 가득하거늘

아침에 일어나 오늘도 해가 떠 있음을 알고

저녁에 잠들어 꿈속에 그대를 만나면 그뿐.

- 시집『그리움도 화석이 된다』(고려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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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날씨가 꽃샘추위로 하수상하니 정국마저 어수선하다. 엘리엇의 ‘황무지’를 떠올리며 그 ‘잔인함’을 실감하는 4월 접경이다. 봄꽃들이 만화방창하면서 완연한 봄이 당도한 것 같더니만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상태와 함께 잿빛 우울을 펌프질한다. 그리고 세월호와 제주 4.3, 4.19혁명을 떠올리면 우울한 상념이 꼬리를 문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3년 전 갑자기 쓰러져 100일간 사경을 헤매다가 이승을 떠나신 달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4월에는 부끄러움 때문에 시를 쓸 수가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제주 역사상 최대 비극을 우리 세대엔 국정교과서가 떠먹여주는 간략한 역사로만 알고 이해했었다. 빨치산 토벌로 규정한 제주4.3의 실상은 무차별 대량 양민 학살사건이었다. 미군정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진압군은 제주도민 중 70%가 공산주의자거나 공산주의에 동조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대량 학살계획을 채택했다고 전한다. 그 결과 제주도민 12%가 실제로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그 지경이니 줄초상을 당하지 않은 가족이 드물고 한 집 건너 한 집은 억울하게 학살된 희생자 가족이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제주지역의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 사이에는 진저리쳐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주 4.3사건은 세월호 참사와 함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우리의 아픈 역사다. 불편한 역사라고 해서 그 아픔을 파묻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걸레로 오물 훔치듯 흔적을 닦아낼 수도 없다. 아직도 제주 4.3과 세월호 참사는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 4.3은 다각적인 조사에 의해 국가폭력의 산물임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또 다시 왜곡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세월호 역시 그 전과 후가 달라지리라고 설레발이 쳤지만 아직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을 밖에 없는 정치인을 골라내는 일이다.

정말이지 ‘정치가들처럼 욕망 때문에 인생에 똥칠이나 하면서 살지 않으면 천만다행’인 세상이다. ‘이미 젊은 날 접질러진 내 날개’도 하늘로 갔는지 어디 시궁창에 처박혔는지 알지 못한 채 습관처럼 생명만 유지하며 망각과 무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4월은 차라리 가장 잔인한 달일 수 있겠다. 사람들은 싹을 틔울 아무른 채비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자연은 재생을 강요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어서 피어나라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문을 열면 온 세상이 시로 가득하거늘’ 삶의 버거움으로 아직은 ‘희망’과 ‘생명’을 온전히 적지는 못하겠다.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지만 좀 두고 봐야겠다. 고위공직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이참에 다 솎아냈으면 좋겠다. 그들로 인해 국민들이 자괴감과 박탈감은 내 몫이라며 언제까지 고통의 옹이를 끌어안고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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