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축제와 오백나한(五百羅漢)전시회

류시호

시인 수필가



여러해 전, 삿갓을 쓴다고 김립이라 부르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선생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는 강원도 ‘영월 김삿갓 문화제’에 초대받아 간적이 있다.

김삿갓 문학관에서 김삿갓 생가터까지 걸으면서, 난고 시인의 풍자와 해학을 생각했다. 그래서 시향(詩香)이 어우러진 산길 숲속에서 시심(詩心)을 살려 시 한편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가터 가는 길목에 전국의 시인들이 쓴 감성의 시들을 전시하여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이 시들은 김삿갓 시인이 살던 계곡 이름을 붙여 ‘노루목에 부는 바람’이라는 문집을 만들었는데, 필자도 김삿갓 문화제에 어울리는 시 한편을 제출하여 축제의 일원이 되었다.

이곳에는 김삿갓 묘와 생가를 비롯해 시비와 문학관이 있고, 문학관 내에는 김삿갓의 친필과 장원급제 시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김립시집을 편찬한 이응수씨는 미국의 시인 휘트먼과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함께 19세기 ‘세계시단의 3대 혁명가’로 높이 평가 했다. 그래서 문학의 지식인들은 난고 시인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존경한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羅漢)’ 전시를 보았는데, 18년 전 강원도 영월군 야산에서 발굴된 나한상 317점 중 일부였다. 그동안 영월은 김삿갓 문화재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만 생각하다가 오백나한을 알게 되었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보살에 버금가는 신성함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 나한상은 대부분 석가모니의 제자들로 성자의 모습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도 표현된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에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 나한상들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며,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순박한 표정과 투박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 내면을 일깨우는 명상의 나한, 산과 바위, 동굴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는 나한 등 구도자의 모습으로 구현하였다. 곁에 있던 학예사는 “나한은 수행으로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이다.” 라고 하는데, 영월의 나한들은 돌에 새겨진 얼굴들이 하나같이 고요하고 평안했다. 이 나한상은 6백여 년 전의 조각품으로 석공이 정성스럽게 정으로 쪼고 끌로 깎아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오백나한은 석가모니 생존 시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 등을 칭하는데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중국 푸젠성의 서풍암에는 오백나한원(五百羅漢院)이 있고, 저장성 서암사에는 철조(鐵造)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일본 도쿄의 라칸사(羅漢寺)와 교토의 다이도쿠사(大德寺) 및 도호쿠사(東福寺) 등지에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영천 은해사 거조암에 석조(石造) 오백나한을 모신 법당이 있다.

필자는 김삿갓 문학축제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그리고 영월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회를 통하여 또 다른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지성적 인간으로 가장 좋은 사상과 감정, 가치 있는 삶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남겨야 한다. 한국의 셰익스피어 난고 시인의 행적과 오백나한들의 얼굴을 보면서 앞으로 문학인으로서 고민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오백나한들의 표정과 김립 시인의 활동을 보면, 문학적인 삶과 나한들의 얼굴에서 잡념과 번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강원도 영월은 감자, 옥수수, 송어 등과 맑고 푸른 동강의 아름다움이 있다. 가끔씩 역사여행을 통하여 생활의 변화를 주면 새로운 것도 발견하고 자신의 발전에도 좋다. 가슴이 답답할 때 훌훌 털고 강원도 영월에 가서, 역사의 현장과 문화 활동을 통하여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껴보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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