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대구 시민의식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코로나19’ 확진자가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나면서 감염병 위기경보가 최상위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된 가운데, 불안심리를 극복하고 대구의 역량을 결집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시민운동이 불붙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정부와 일부 수도권 언론이 ‘대구 코로나’란 표현과 함께 지역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를 쓰자, 대구시민들이 불쾌감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승화시킨 자존심의 발로로 풀이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질병에 지리적 위치, 개인 등을 지칭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이름이 ‘COVID-19’로 결정된 이유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내 명칭을 ‘코로나19’로 정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코로나 보도준칙을 배포하면서 “지역명을 넣은 ‘○○폐렴’ 등의 사용은 국가·종교·민족 등 특정집단을 향한 오해나 억측을 낳고, 혐오 및 인종차별적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과도한 공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질병에 지역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여전하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정부는 ‘대구 코로나19 대응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가동’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대구 코로나19’란 지역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한 종합편성채널은 ‘서초구 상륙한 대구 코로나’란 자막을 내보냈다가 비난을 샀다. 이밖에도 수도권 신문과 방송에서는 ‘코로나19 확산, 텅 빈 공포의 대구’, ‘진열대 텅 비었다...코로나 덮친 대구 사재기 행렬 “전쟁난 줄”’ 등의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내 지역혐오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오는 4월15일로 예정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담은 표현마저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대구지역에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나타나는 추세다. 대구의 한 광고업체는 코로나19 때문에 흉흉해진 지역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1분2초 분량의 영상을 제작해 배포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에 사람이 없다?’란 자막과 함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리를 담은 영상으로 시작한 이 영상은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어 ‘정부 대응 때문에’ ‘중국인 때문에’ ‘신천지 때문에’라고 선택지를 줬다가 ‘아니면, 앞선 시민의식 때문에’이라고 정답을 제시한다. 거리가 텅 빈 모습은 공포나 불안심리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가족과 함께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어 ‘대구시민의 힘을 믿습니다’란 문구가 나오고, ‘#힘내라_대구’란 해시태그로 마무리된다.

전국적으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대구시민을 위한 ‘마스크 나누기 운동’도 추진되고 있다. 지역 대학의 한 교수가 제안한 이 운동은 전 국민이 여분의 마스크를 모아서 대구지역의 임산부, 저소득층, 보훈대상자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는 대구시청 등 관련부서를 찾아 구체적인 마스크 수거방법과 전달방법을 상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페친들에게 “깨끗이 포장된 마스크 한두 개라도 십시일반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응도 좋은 편이다. 동참을 약인 댓글이 적지 않게 달리고 있다. 지역 언론사에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줄 마스크를 제공하겠다는 독지가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생필품 사재기 기사는 팩트가 아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전국적인 품귀현상을 보이는 품목이지만, 생필품 사재기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사재기를 소재로 쓴 기사를 본 대구시내 한 마트 사장은 “사재기 하실 분 환영합니다. 종전의 가격으로 얼마든지 공급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필자가 들러본 상점에서도 사재기로 진열대가 비어있는 경우는 없었다.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위기에 놓인 대구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기사는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정파적, 개인적 이익만을 위해 시민들을 분열시키고 선동하는 행위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며칠 전 페친이 보내준 ‘마스크 인문학’이란 제목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네 호흡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한 것이 아니다/ 혹 내 호흡이 가졌을지 모르는 병이/ 너에게 감염될까 두려운 거다/ 너를 막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나를 막고 순결한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너와 나, 우리는 서로 마스크를 낀다/ 서로의 몸이 멀어지는 불온한 전염의 시대,/ 우리는 마스크로 마음을 나눈다.’ 요즘 대구시민들의 마음이 잘 나타난 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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