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시

성국희



당신은 궁서체로 새겨진 책입니다/ 밥상머리 하신 말씀 밑줄 붉게 그어놓고/ 아직도 못다 읽은 책, 아버지란 책입니다

당신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입니다/ 바람 잘 날없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당신은 밑동이 굵은 아버지란 나무입니다

당신은 어디서든 길이 되는 지도입니다/ 길 잃은 자식들 앞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당신의 깊은 주름살, 아버지란 지도입니다

당신은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입니다/ 사남매 삶 속에서 늘 밝은 빛이 되신/ 당신은 가장 뜨거운, 아버지란 태양입니다

글이 되고 그늘이 되고 길이 되고 빛이 되신/ 아버지, 그 이름 앞에 큰절을 올립니다/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 당신께 바칩니다

-『미쳐야 꽃이 핀다』(목언예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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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희는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11년 서울신문과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꽃의 문장』『미쳐야 꽃이 핀다』가 있다.

‘헌시’는 아버지 고희에 부쳐라는 부제가 있는 사부곡이다. 간절한 마음이 전편을 관주하고 있다. 딸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분이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딸을 어여삐 여기고 세상의 모든 딸은 아버지를 극진히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은 훌륭하게 자라서 훗날 좋은 어머니가 된다. 사실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게는 큰 나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넉넉히 받은 자녀는 비뚤게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화자는 당신은 궁서체로 새겨진 책이라고 말한다. 밥상머리에서 하신 말씀을 밑줄 붉게 그어놓고 아직도 못다 읽은 책이 아버지라는 책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한다. 칠순이라면 적잖은 연륜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회갑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가 많았다. 요즘 70세는 아직도 청년이다. 건강을 잘 유지한 분들은 활기가 넘친다. 화자는 또 당신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로서 바람 잘 날 없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밑동이 굵은 아버지라는 나무라고 노래한다. 어디서든 길이 되는 지도여서 길 잃은 자식들 앞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깊은 주름살은 아버지라는 지도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당신은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이기에 사남매 삶 속에서 늘 밝은 빛이 되신, 가장 뜨거운 아버지라는 태양이라고 형용한다. 하여 글이 되고 그늘이 되고 길이 되고 빛이 되신 아버지, 그 이름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고희를 경하 드린다.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을 당신께 바친다.

‘헌시’는 다소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정서가 진중하고 절절하여서 아버지께 바치는 헌시로서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돌아가시고 나서 기리는 마음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한 가운데 고희를 맞은 아버지를 위해 시인으로서 이러한 사부곡을 써서 직접 육성으로 읽어드리게 되니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아버지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법하다. 그 어떤 효도보다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기에 복된 일이다.

그는 젊은 시인으로서 시조라는 시의 한 갈래를 선택하여 창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고뇌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신작 시조집 곳곳에 자신만의 시조론을 개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고 궁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귀해 보인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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