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고향에는 등기된 집 한 채 있다/ 아버지가 애써 일군 집/ 어머니가 금비녀처럼 가꾸신 집/ 오남매 꿈이 영글어 피어난 외딴집// 썩어가는 기둥에 녹슨 못/ 거미줄이 애써 감싸고/ 몸통 드러낸 주춧돌/ 잡초에 매달린 채 힘겨워하며/ 찢어진 양철지붕 빗물 막으려/ 용쓰다 뒤집혀 바람 겁나 떨고 있다/ 그을린 정지문 붙잡고 의지하는/ 뒤뜰 가죽나무의 무성한 잎사귀/ 주인 없이 지켜온 텅 빈 마음/ 십 년 상처 다독이고 있다// 점점 넓혀가는/ 타성바지 틈에 끼어, 그래도/ 가끔이면 가보고 싶은 집

「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

의식주는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꼽힌다. 그 순서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인간생활의 엑기스를 잘 뽑아낸 말이다. 의복은 인간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도구이고 개성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다. 음식은 생존에 절대적인 존재로 생명유지의 기초적인 전제조건이다. 주거는 비바람과 상위포식자 또는 해충으로부터 비켜나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씨족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생활공간이다. 의복과 음식은 개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에 그치지만 주거는 개인을 넘어 가족의 안락한 공간이란 범주로 그 중요성이 확장된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주거는 발을 디디고 있는 땅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주거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함의다.

안락하고 안정된 삶은 주거안정 없이는 기대난망이다. 만족스런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욕망이 끈질긴 이유다. 집값 폭등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는 현상이 생뚱맞은 일은 아닌 셈이다. 먹고 입는 것은 생존의 기초조건이긴 하지만 그 필요성이 반복적 소모적이어서 그 대가가 시계열적으로 잘게 분산되는데 비해 주거는 그 성격이 배타적 영구적이어서 그 희생이 집중적이고 덩어리가 크다. 더구나 주거공간은 각자의 생활근거지에서 근접할 필요가 있는 까닭에 땅이 갖는 고정성, 부동성과 부증성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극심한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족의 안락한 쉼터이자 생활공간인 집으로 나타난 것은 자연스럽다. 아직도 남아있는 고향의 집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남매까지 그리움의 광장으로 불러낸다. 아버지가 힘들게 마련하고 어머니가 정성껏 가꾼 보금자리에서 오남매가 숨결을 함께 나누며 꿈을 키웠다. 그 가족의 둥지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방어기제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비록 빈집이지만 든든하다.

기둥은 썩고 못은 녹슬었다. 함께 숨을 탔던 거미마저 안쓰러운 듯 거미줄로 가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세월의 시샘을 막을 수 없다. 무성한 잡초에 가린 주춧돌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비바람에 찢어진 양철지붕은 서럽게 떨고 있다. 연기에 그을린 부엌문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뛰어나올 것만 같다. 뒤뜰에 선 가죽나무엔 가죽 잎이 무성하다. 양념장에 곰삭힌 가죽 잎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흐뭇해 할 것 같다.

타성바지에 둘러싸여 주인도 없는 곳을 홀로 지키고 있는 그 정성이 갸륵하다. 십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모진 세월을 버텨낸 그 의지가 기특하다. 옛 사람은 떠나고 새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일 뿐이다. 세상사가 무상해지고 지난 삶을 되돌아 볼만한 때가 되니 수구초심은 인지상정이다. 고향 집이 아련히 생각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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