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모 시로 읽기·15 -홀소리 ㅏ/문무학

한글이 한반도면 ‘ㅏ’는 백두대간/ 아아한 높이에서 남서로 돌아가면/ 북녘에 이르기 전에 명치끝이 아려온다// 아픔과 아름다움이 ‘ㅏ’로 시작되는 건/ 아파도 ‘아’하고 아름다워도 ‘아’하기 때문/ 아픔과 아름다움은 ‘아’자 항렬 피붙이다

「가나다라마바사」(학이사, 2020)

문무학 시인은 경북 고령에서 출생했고, 1982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가을 거문고」, 「설사 슬픔이거나 절망이더라도」, 「눈물은 일어선다」, 「달과 늪」, 「풀을 읽다」, 「낱말」, 「누구나 누구가 그립다」, 「가나다라마바사」와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벙어리 뻐꾸기」 등을 펴냈다. 특히 낱말에 대한 근원적인 천착은 주목할 만한 특장이다.

‘한글 자모 시로 읽기·15’는 인상적이다. 화자의 상상력은 자유자재하고 활달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글이 한반도면 ㅏ는 백두대간, 이라는 표현은 거저 얻은 구절이 아니다. 숙고 끝에 읊조려진 것이다. 아아한 높이에서 남서로 돌아가면 북녘에 이르기 전에 명치끝이 아려온다, 라는 대목도 예사롭지가 않다. 별안간 남북문제가 다가오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감지된다. 북녘이라는 말이 주는 파장이 그렇기에 명치끝이 아려온다, 라는 구절은 강한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아픔과 아름다움이 ㅏ로 시작되는 것은 아파도 아, 하고 아름다워도 아, 라고 하기에 아픔과 아름다움은 아, 자 항렬 피붙이임을 힘줘 말한다. ‘한글 자모 시로 읽기·15’는 말에 대한 부단한 천착 끝에 민족사 문제까지 가닿는 시의 파장과 진폭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다른 작품을 더 보겠다. ‘한글 자모 시로 읽기·8’은 닿소리 ㅇ에 대한 연구다. ㅇ은 둥글다 그래서 크고 넓다, 라면서 앞장, 서는 앞, 자도 강하다, 는 강, 자도 ㅇ에 엉겨 있어서 이끌어갈 힘이 센 것임을 구명한다. 이 정도면 굉장한 천착이다. 엉겨 있다는 생동감 있는 시어 선택도 그렇고 힘이 센 것을 말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한글 자모 시로 읽기·19’는 홀소리 ㅗ에 대한 노래다. ㅗ는 놀람이다, 감탄이다, 인정이다, 라고 뜻깊은 의미 부여를 한다. 그 다음으로 오, 라고 동그랗게 입 한 번 벌리면 세상도 둥글어지면서 용서가 쉬워지게 됨을 상기시킨다.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집요하게 우리말을 붙들고 앉아 부단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한글 자모 시로 읽기·2’에서 니은, 은 한글 자모 두 번째 자리지만 세상 제일 먼저인 나, 를 쓰는 첫소리여서 첫자리 비워주고도 첫째가 될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한글 자모 시로 읽기·5’는 윗입술 아랫입술 앙다물어 내는 소리여서 함부로 열지 말라고 사방을 다 막았는데 말, 자의 머리소리가 ㅁ인 까닭, 이라고 일러주고 있다.

문무학 시인의 우리말 사랑은 하늘을 감동케 할만하다. 수십 년 동안 낱말 연구에 천착해 작품집으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는데, 그 완판본 같은 한글자모시집 「가나다라마바사」를 최근에 상재했다. 이 작품집에는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흥미를 끄는 말놀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 속에는 인생의 의미, 살아가는 자세를 일깨우는 교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감칠맛으로 말미암아 읽는 맛을 더한다.

그는 이렇듯 한글자모시집을 통해 시의 새로운 한 경지를 열어 가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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