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다’는 논란…시대상의 자화상||‘내로남불’ 사회, 내게서 원인 찾아야

▲ 홍석봉
▲ 홍석봉
홍석봉 논설위원

7일은 이슬이 내리고 가을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얼마 전 정치권의 ‘철없다’는 말이 화제가 됐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전 국민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에 대해 “철없다”는 야당 의원 지적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동의 표현으로 말이 많았다. 논란이 일자 홍 부총리가 주워 담기에 바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원을 두고 정치권의 논의가 한창인 때에 나온 말이다. 확대 해석과 유도 발언이 빚어낸 설화(舌禍)다.

대권주자 반열의 이 지사에게 철없다는 말은 ‘당신은 아직 멀었다’는 조소적인 의미가 다분하다. 이 지사도 “재난지원금을 30만 원씩 100번 지급해도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 비율보다 낮다”는 국가 재정을 감안하지 않은 말을 해 철없다는 비아냥을 자초한 측면이 없진 않다.

‘철들다’라는 말은 ‘사리를 분별해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라는 뜻이다. 흔히 “그 녀석, 군대 갔다 오더니만 철들었네” 등의 말로 쓰인다. 원래 ‘철’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현상에 따라 일 년을 구분하는 계절을 의미한다. 또한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를 일컫기도 한다.

-‘철없다’는 논란…시대상의 자화상

‘철들다’는 어떤 일을 하기에 적당한 때가 됐음을 말한다. 나이가 들거나 경험이 풍부해서 성숙한 상태를 나타낸다.

철 없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다. ‘철’자에 모른다(不知)는 한자어를 붙여 사용하는 말이다. ‘철부지’는 옳고 그름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린애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철딱서니, 철따구니’는 ‘철’의 속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와 태풍의 2중고를 겪고 있다. 전례 없는 역병으로 사회와 경제가 위기에 놓였다. 사회가 끝 모를 혼돈 상태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사 파업까지 겹쳤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네 탓 공방으로 날을 지샌다. 미국과 중국은 극한 대립 중이다. 우리나라는 안팎 곱사등이 신세다.

원인을 밖으로 돌리지 말자. 모두가 철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고 집권 여당은 덩치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종교계는 자기주장만 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률의 기준이 무너졌다. 모두 저만 옳다고 한다.

우리는 제구실 못 하는 이에게 ‘제발 철 좀 들어라’고 말한다. 철든 어른이 없는 우리 사회를 빗댄 말일까. 사회 일각에서 유명인들이 자신이 되레 철들지 않음을 나타내는 반어법적 표현이 유행이라고 한다.

2천500년 전 공자는 지학(15세), 이립(30), 불혹(40), 지천명(50), 이순(60), 종심소욕불유구(70)로 나이에 따라 사람이 갖춰야 할 됨됨이를 유형별로 제시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60, 70이 넘어도 불혹(不惑)에도 미치지 못하는 철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내로남불’ 사회, 내게서 원인 찾아야

일본의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마미(片田珠美)는 현 사회를 아이는 물론 어른도 성숙하지 못한 ‘철부지 사회’라고 진단했다. 욕망과 경쟁의 시대에 나이 들어도 관조는 물론, 제대로 포기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우리 사회에 혐오와 내로남불이 판친다. 철든 어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큰 어른은 더더욱 없다. 여야는 서로 네 탓 공방만 한다. 특히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네 탓 떠넘기기는 점입가경이다. 국민들은 반성은커녕 네 탓 몰아세우기에 급급한 철면피에 넌더리를 낸다. ​

중용에 ‘반구저신(反求諸身)’이라는 말이 나온다. ‘잘못이 있으면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돌이켜 그 원인을 찾는다’는 뜻이다. 일이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서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나 성경의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원래 제 허물은 보이지 않고 남의 허물은 크게 보이는 법이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자세다. 모든 문제는 내 탓이라고 말할 수 있는 된 사람이 아쉽다. 정치인들이여 철 좀 드시라.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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