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

수필가

유난히 고요한 한낮이면 반짝 은빛으로 빛나던 우물 속 깊이 떨어져 있던 숟가락 하나, 그것은 은수저였을까. 커다란 살구나무에서 연분홍꽃잎들이 살풋 떨어져 내려 앉아 있던 우물에는 아직도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까?

올망졸망 여섯 남매의 생계를 책임 진 힘겨웠을 아버지의 등에 어머니가 부어주셨던 시원한 등목 물 한 바가지. 여름철이면 큰 함지에 수박이며, 참외며 붉은 자두가 맑은 물속에 잠겨 있던 우물은 내 기억의 보물 창고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달았으며 겨울엔 아마도 따뜻하지 않았을까, 맑은 물 한 바가지를 퍼 올리며 나는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물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동네 하나밖에 없는 우물가는 여인네들이 못다한 말들을 풀어내는 수다의 장소였고, 볼 붉은 처녀들에게는 동네 총각들과 살짝 눈 맞출 수 있는 달큼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곳은 어우렁더우렁 더불어 살아가는 소통의 터, 열린 광장이었다. 그 우물가 곁에는 늙은 앵두나무 한 그루가 그들의 이야기를 슬며시 엿듣고 서 있다.

그러다 집집마다 우물을 팔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집마다 샘을 팠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다르듯 물맛도 다 달랐다. 그래서 이 집 저 집 열려진 대문으로 좋은 물맛을 찾아 물 주전자를 들고 다녔다.

우리 집 작은오빠도 옆집으로 한 주전자 물을 기르러 갔다가 우물높이가 낮은 그 집 우물에 들어와 있는 낮달을 보고 신기해서 그것을 잡으려고 두 손을 뻗치다가 우물 속에 거꾸로 처박혔다. 낮달은 사라지고 우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오빠. 마침 그 집 툇마루 끝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이 예닐곱 살쯤 된 우리 오빠를 황급히 건져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오빠는 옷을 적시고 저지레를 했다고 엄마에게 혼날까봐 물에 쫄딱 젖은 채 동네 호두나무 집 골목으로 줄행랑을 쳤다.

우물 속 전설의 그 이야기를 친정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즐겁게 되풀이하며 지엄하고도 인자로웠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두레박의 우물이 조금 더 쉽게 물을 받을 수 있는 펌프로 바뀌던 날, 한 바가지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냥 신기했다. 애써 두레질을 하지 않아도 몇 번의 펌프질로 금방 한 양동이의 물을 받곤 했으니까. 동네 사람 모두 모여 함께 하는 우물이 아니었어도, 맑은 하늘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깊은 우물이 아니었어도, 펌프는 나름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샘이었다. 펌프의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 그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고등학교, 대학을 모두 타지에서 보낸 나는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방학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마중 나왔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마중 나가는 일은 사랑을 알게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의 애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샐비어 꽃 예쁘게 피어 있던 기차역이거나,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북적이는 버스 터미널에서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마중하는 일, 그것은 사랑의 마음, 펌프의 마중물 마음이다.

이제는 따뜻한 실내 공간 속으로 들어가 앉은 수도꼭지를 보며 생각해 본다. 사라진 우물, 닫혀진 마음, 과연 문명은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맑은 날이면 아련히 빛나던 은수저와 살빛 투명했던 물고기의 신비가 함께 했던 두레우물, 당신의 노고를 알아주었던 마중물로 퍼 올린 한 바가지의 물을 마셔볼 수 있다면! 거기에 동네 사람들의 재미나고 따뜻한 소문까지 곁들인 시원한 물 한 바가지.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