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슬픈 자화상~

…첫사랑 여인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가슴이 뛴다. 한 살 아래인 영희는 단발머리 소녀였다. 나는 홀어머니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 아들이었고, 영희는 고향 인근에서 떵떵거리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 가족은 내가 영희와 사귀는 걸 싫어했다. 궂은일을 하는 어머니와 지독한 가난이 허물이었다. 막 봉투를 열려는 순간 문자가 왔다. 고모가 위암으로 입원했다고 한다. 고모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분이다. 즉시 병원으로 갔다. 마침 과장이 애제자였다. 연세가 높아 병세를 장담하기 힘들단다.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고모는 서문시장에서 건어물장사를 했었다. 중3때 대구 유학을 주선하고 학창생활 내내 도움을 주었다. 고1 여름방학 때 영희를 길에서 만났다. 대구의 고교로 진학하길 바란다면서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고2 여름방학 때 뒷집 아이를 메신저로 활용하여 영희를 당집으로 불러냈다. 그날 밤 은은히 풍기던 찔레꽃 향기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고모의 위암수술이 끝났다. 해질 녘에 빈집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영희 편지를 펼쳤다. 핸드폰번호만 적혀있었다. 전화하라는 말인가. 왠지 기다리지 않을 것 같다. 첫 휴가 때였다. 그리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영희는 돈 많은 재일교포에게 시집갔다고. 신부얼굴에 눈물자국이 있었다는 말을 뒷날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입대전날을 떠올렸다. 군대생활 잘 하라는 말과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교환했다.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하다가 통금 시간을 넘겨 여관 신세를 졌다. 그날 밤 우리는 옷깃 하나 닿지 않았다. 옆방의 얄궂은 소리에도 유혹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었다. 두려워서였는지, 확신이 없어서였는지. 그러한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줄 모르고 휴가 때까지 눈이 빠지게 편지만 기다렸다. 신부의 눈물이, 영희 탓이 아닌, 나의 잘못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 고모의 병세가 호전되자 관심이 영희로 옮아갔다. 폰 번호가 적힌 편지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영희 쪽에서 소식이 오길 기다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영희의 일로 만나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약속 시간에 오라는 곳으로 갔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나왔다. 말기 암 환자였던 영희를 돌보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마지막까지 폰을 들고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세월이 지나도 오빠는 낯설지 않아요. 가엽게 여기시고 마음 푸세요.”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첫사랑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첫사랑이기에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기에 매끄럽지 못하고 실수투성이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첫사랑을 회고해보면 바보 같은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감싸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아둔한 머리를 쥐어박기도 한다. 그래서 남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자면 자신의 한심한 판단력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보지 못한 길」에도 결정적 실수가 노정된다. 여름방학 때 당집에 나와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 영희에게 그에 상응하는 확고한 결심을 보여줄 한방이 없었다. 또 입영전야에 확신을 심어줄 용기 있는 행동을 기대했던 영희에게 오히려 수치심을 느끼게 했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영희를 실망시킨 주인공은 사랑엔 젬병이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되돌아보고 아쉬워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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