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숙주역할에 지친 국민들, 그들도 기생충이 되고 싶다.

김시욱 에녹 원장
김시욱

에녹 원장

흔히들 사용하는 인터넷 검색엔진에 기생충을 쳐본다. 영화 ‘기생충’과 관련된 단어가 10위권 이상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짜파구리 조리법도 동시적으로 뜨는걸 보면 아카데미상 4관왕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듯하다. 반지하의 찌든 삶에서 상류층의 삶을 누리고자한 한 가정의 비극적 결말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내외와의 짜파구리 파티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혐오와 경멸의 대상인 기생충이 대한민국을 전세계에 알렸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후, ‘조국흑서’의 공동저자인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 박사의 비유는 더더욱 흥미롭다. 문재인 대통령을 ‘편충’에 비유하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말라리아’로 비유하고 있음은 현재 대한민국이 기생충의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떤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형태는 ‘공생’과 ‘기생’의 두 가지로 나뉜다. 서로 다른 두 종이 관계 속에서 양쪽 모두 이득을 얻는 것을 공생이라 한다면 기생은 한 쪽만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익 없이 손해만 보는 생물체를 숙주로 해서 최소한 일생의 어느 시기는 기생생활을 해야만 기생충이라 부를 수 있다. 성충이 기생하는 숙주를 ‘종’숙주, 유충이 기생하는 숙주를 ‘중간’숙주라 부르는 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기생충의 삶은 자손 번식이 전부인 삶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숙주를 통해 주거지와 영양분을 공급 받기에 오직 자신과 자손의 번식에만 몰두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기생충의 일종인 ‘회충’은 한번에 20여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생명체가 이렇듯 많은 알을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쓰러질 숙주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정한 기생의 삶에 대한 대비책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기생충들이 숙주에 대한 지나친 공격 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전문가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엄마찬스’와 ‘아빠찬스’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현실에서 새삼 기생충의 삶이 오버랩된다. 본능적 삶을 사는 기생충조차 후대를 위한 번식력이 그러할진대 지적능력을 바탕으로 환경을 이용할 줄 아는 인간에겐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자유 경쟁의 자본주의의 병폐가 아니라 당원이 되고자 위험을 감수하는 공산주의의 현실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1세대의 권력 잡기와 자리보전은 2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번성과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어느 정치체제에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갖는 본성적 생존욕구이며 번식을 통한 자기 영속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

최근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통해 나경원 전 국회의원의 엄마찬스가 도마에 올랐다. 조국·정경심 부부의 부모찬스와 추미애 장관의 엄마찬스로 청년층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여당으로선 당연한 수순의 역공일 수밖에 없다. 흔히 ‘물타기 전략’으로 부르는 이러한 반격은 지지층을 더욱 견고하게 결집시키고 상대 세력에 대한 흠집 내기를 통해 프레임전을 형성해 나가고자 하는 의도임에 분명하다. 미루어 짐작컨대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 힘의 입장에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 국회의원들이 밉겠지만 한편으론 서로가 찬스를 쓰고 있는 입장이라 ‘보여주기식 제스추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 설정을 정의해 온 한 해인 것 같다. 늘 ‘국민이 최우선’이라고 소리 높여 온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기생충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국민의 공익을 위한다며 펼친 정책들이 어느새 정치 권력자들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현실에서 그들이 의도하든 아니든 기생충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 기생충은 자신의 영양 공급원이자 생존의 터전인 숙주에 정착하기 위해 면역세포와 치열한 싸움을 한다고 한다. 싸움을 통해 두 세력의 타협이 이루어지고 기생충은 숙주를 괴롭히거나 크나큰 해를 입히지 않고 숙주 또한 면역을 억제 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한다. 이는 곧 국민과 정치권력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국민을 숙주로 한 정치권은 연일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환심을 사고자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가족의 안위가 우선이다. 여야는 서로가 ‘적폐와 신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숙주인 국민을 차지하려고 피가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프레임 전쟁과 코로나 19의 고통 속에서 국민은 어느새 죽어가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우선시 하는 위정자라 하더라도 ‘기생충도 숙주를 죽이지 않는다’란 말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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