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지방공무원 채용시험 과목에 지역학이 포함돼야 합니다.”

지난 토요일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이 올 한 해 ‘대구 제대로 알기’란 주제로 진행한 국비 공모사업 ‘길 위의 인문학’을 마무리하는 후속모임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관문인 ‘공시’에 해당 지역에 대한 지식을 확인할 수 있는 과목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요구할 만한 이야기다. 특히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가 30년 가까이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꼴찌를 유지하고 있는 대구의 시민으로서는 마땅한 주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이뤄진 세계화시대에 지역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도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로 바뀐 지 오래다. 그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은 문화콘텐츠란 인식이 일반화된 문화의 시대를 맞았다. 문화콘텐츠가 아니라면 스토리텔링을 통해 해당 도시의 문화적 배경이라도 담아야 상품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지역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시민들이 지역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 바로 이 대목이다.

필자는 지난 2007년 영국에 출장을 갔다가 그 즈음 주영한국대사관에 신설된 한국문화원 관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관계자에게 런던에서 먹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형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의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진출을 포함해 100만 관객 달성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해외시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나 런던에서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면에 한국적 리듬으로 무장한 ‘난타’와 동양무예 퍼포먼스인 ‘점프’가 큰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서양의 무대공연 장르인 뮤지컬보다 동양적인 매력을 발산한 넌버벌 퍼포먼스가 유럽인의 눈길을 끌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지구촌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미디어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시대에 살고 있다. 베를린필과 런던필의 공연실황을 큰 어려움 없이 스마트폰으로 집에서 즐기는 세상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다른 곳에서 성공한 콘텐츠를 가져다 쓰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됐다. 글로벌시장을 두드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리 지역을 더 공부해야 하고, 지역에 몰입하지 않고서는 해답을 얻기 어렵게 됐다.

오죽하면 지역학이 공무원시험 과목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자신이 근무하고자 하는 지역에 대한 관심을 점검하는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급여를 받는 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자세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다. 이처럼 공무원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침체된 경제상황 때문에 민간영역에서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쳐다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관급사업 뿐이라는 것이 시중의 여론이다. 시장에 수혈될 돈줄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날 ‘대구의 미래를 묻다’란 주제로 진행된 후속모임에서 거론된 다른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서울 지향적인 현실에서 탈피해 열등의식을 벗어던지고 자긍심을 갖는 시민이 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지역을 제대로 공부함으로써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하려는 시민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또한 권력 지향적인 대구시민의 자세를 지적하는 언급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한 채 기득권에 기대려는 성향이 지적되기도 했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 동안 이야기는 자연스레 미래를 여는 교육으로 모아졌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이과에서 의사, 문과에서 판검사를 만들려는 학부모의 욕심은 역시 권력 지향적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보다는 똑똑한 청년들이 과학과 문화 영역을 공부해 세계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도록 이끌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대구의 젊은이가 포함된 BTS와 ‘미스터 트롯’의 열풍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지금보다 나은 대구의 미래를 여는 첩경이란 의견도 모았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란 금언과 함께, 우리 지역의 자산과 우리의 삶으로 미래를 개척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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