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의 타당성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안전성 문제와 함께 ‘공항시설 확장을 위해선 부산시와 협의해야한다’는 취지의 법제처 유권해석을 인정, 김해신공항 안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김해공항을 확장하면 비행기가 인근 산과 충돌할 위험성이 있다며 ‘가덕도 신공항’을 주장해온 부산시의 입장을 감안하면 김해신공항은 물 건너간 형국이다.

부산시가 정치 채널을 통해 공항 입지를 뒤집으려고 계속 생떼를 쓰자 단호히 거부했던 국토교통부마저 태도를 바꾸었다. 국내전문가로 꾸려진 검증위가 세계적 전문기관의 판단을 다시 검증하는 방법을 수용한 셈이다. 모두 승복하게 하자는 의도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겼는데 이제 그보다 하위수준의 위원회에서 그 결론을 뒤집으려는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일부 사람에게 침익적인 처분과 달리 정책결정에선 실체적 정의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콘텐츠가 절차적 정당성보다 더 중요하다.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정책결정을 뒤집는 건 꼬리로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절차적 정의가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절차적 흠결은 사후에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영남권 신공항의 연혁은 멀고 질기다.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검토를 지시한 것이 영남권 신공항의 시발점이다. 2007년 11월 건설교통부 제2 관문공항 건설타당성 조사연구 용역에서 남부권 신공항 건설 필요성이 인정됐고, 2008년 9월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의 광역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 2009년 9월 지식경제부의 지역발전 5개년 계획의 선도 SOC사업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2011년 3월 입지 평가 결과 영남권 신공항은 극적으로 백지화됐다. 밀양 39.9, 가덕도 38.3의 평점을 받아서 50점에 미달한다는 이유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영남권 신공항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5개 관련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승복에 대한 다짐을 받고 세계적 공항전문기관인 ADPi와 한국교통연구원에 영남권 신공항 입지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겼다. 2016년 6월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결과를 발표했다. 밀양과 가덕도가 경쟁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김해공항 확장안이 가장 효율적인 대안으로 제시됐다. 다들 썩 만족해하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수용해야 했다. 오랫동안 영남권을 달궈온 해묵은 논쟁이 싱겁게 마무리됐다. 그 후 영남권 신공항은 대구공항 이전과 김해공항 확장으로 이원화 돼 별도로 진행됐다.

그러던 차에 2017년 문재인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고, 2018년 오거돈 민주당 후보가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정부에 종전 입지 평가의 재검증을 요구했다. 그 검증에 대해서 지금까지 차일피일하다가 이제 와서 그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 표에 눈멀어 국민과 국익, 법과 정의가 내팽개쳐지는 꼴을 보자니 열불이 터진다.

신공항 입지 평가는 ‘판단여지’가 작용하는 전문적 영역이다. 그 정당성여부 판단은 불가능하거나 합당하지 않아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적 판단을 수용한 행정청의 정책결정은 자기 판단의 기초 또는 구성요건으로 삼아야 하는 구속력을 가진다. 국토교통부가 영남권 신공항 정책을 확정하고 대외적으로 공표했다면 명백하고 중대한 하자가 존재해 당연 무효라 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번복하거나 백지화할 수 없다.

김해신공항이 정치공작으로 뒤집어질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책사업을 막무가내 뒤집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면 정책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지켜내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해 안정성과 신뢰성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부산이 낙후됐다면 공항이 비좁아서가 아니다. 김해공항을 가덕도로 옮겨서 부산이 발전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는 인과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두 차례에 걸쳐 꼴찌로 평가된 가덕도를 그처럼 죽기 살기로 고집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때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공항을 꼭 그 물구디에 해야 하나. 이제 고마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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