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가계부채가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은 크게 보아 부동산 정책 실패와 경기침체에 기인한다. 부동산 가격에 연동된 부동산 담보대출이 급증하고, 전세가에 연동된 전세보증대출이 폭증한 것이 그 한 축이라면,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와 노사갈등 일상화 및 정치적 갈등에 뿌리를 둔 일본과의 무역마찰 등으로 초래된 총체적 경제난국 상황에서, 설상가상 코로나 팬데믹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소시민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생계형 대출이 급증한 것이 또 다른 한 축이다.

가계부채 급증은 원리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원리금 부담 가중은 가처분 소득을 줄여 소비를 위축시킨다. 소비위축은 다시 소득을 줄여 채무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악순환의 끝은 파산이다. 한계상황에 처한 가계와 기업의 파산은 심각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복합불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일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손쓰기 힘든 상황이 오기 전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대형사고는 갑자기 또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징후와 좋지 않은 조짐을 보여준다. 그런 사소한 전조들을 방치하거나 간과하면 결국 큰 사고가 터지고 만다. 이를 통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계속 늦장을 부리면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하인리히의 법칙과 전래 속담은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통점이 있다. 일이 악화되기 전에 적확한 조치를 취해야만 낭패를 피할 수 있다.

최근 은행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는 걸 보면 정부도 나름 위기상황을 인지하는 듯하다. 허나 돈줄을 틀어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다. 오줌 싼다고 고무줄로 고추를 싸매는 어리석음이다.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언 발을 녹이려면 불을 피우는 것이 정석이고, 오줌을 싸지 않게 하려면 자기 전에 수분 섭취를 막는 것이 발본색원하는 방법이다.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원인요법이 아닌 그 증상만 다스리는 대증요법은 병을 더 키울 뿐이다.

정부가 은행대출을 틀어막으면 제2금융권에 몰려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은행권의 대출이 소액이다 보니 여러 곳에서 빚낼 수밖에 없고 금리가 더 높다 보니 원리금 부담이 더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막판엔 사채업자를 찾아 급전을 쓰게 마련이다. 가계부채를 줄이자는 선의가 오히려 취약계층을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다. 세상에 빚내고 싶어 안달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다 보니 부득이 빚을 내는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개선시켜주는 것이 빚을 내지 않도록 하는 근원적인 처방이다.

가계부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가계소득을 올려줘야 한다. 가계소득은 시장을 통해 얻어진다. 결국 가계부채를 줄이는 근본적인 방책은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 친화적이고 시장 친화적이어야 경제가 기를 편다. 경제성장은 기업이익을 증가시키고 투자를 활성화시키며 고용을 늘린다. 노동수요가 늘어나면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 전반에 걸쳐 선순환이 일어나고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이는 경제의 원론이다. 정부도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 식으로 부작용이 뻔한 대증요법을 쓰는 걸까. 정치권의 성급한 요구에 호응해야 하는 사정이 그 원인일 것이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임기가 짧고 정치바람을 타는 반면 근원적 처방은 그 효과가 더디고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다 보니 즉효가 나는 대증요법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부동산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돈을 틀어막는 대증요법이 먼저 나오는 경향이 있다. 더디고 힘들지만 공급을 늘리는 것이 맞는다. 수요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사항이고 불특정 다수로 분산돼 있어 그 조정이 어렵다. 부동산정책은 공급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수급은 이동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수요가 서울에 몰리는데 대구에 집을 지어봐야 말짱 황이다. 강남에 수요가 몰리면 강남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 요체다. 강남 부동산의 물량이 늘어나 그 효용이 떨어지면 수요도 줄어들고 가격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답은 현장에 있고 의외로 단순하다. 시장에 맞서는 오만은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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