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사회2부 경북지사 취재부장

‘시간’의 보복

프랑스령의 외딴 섬 코르시카 출신으로 가난과 설움 속에서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다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최후를 맞은 나폴레옹은 많은 말을 남겼다.

그는 최후의 순간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고 탄식했다.

유배지에서는 ‘소설 같은 나의 생애여’라는 말을 남겨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무십일홍, 회자정리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입자는 세상의 모든 질서를 돌려놓았고 이로 인해 서민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겨울 대유행을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경고는 흘려듣고 ‘K방역'으로 세계적 방역 모범국이 됐다고 자랑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12월12일 기준 신규확진자는 1천 명이 넘어섰다. 당분간 확진자 숫자는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부의 방역 대책 실패가 초래한 결과이다.

정치는 어떤가. 문재인 정부와 여권은 검찰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은 뒷전인 채 견제 장치 없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관련 법안을 연말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코로나19가 온 나라에 창궐하고 서민들은 힘겨운 삶을 한탄하며 아우성치고 있는 와중에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내년에도 저성장이 계속돼 장기적인 침체가 지속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무수한 악재들이 연속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덮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지만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위정자들의 정치는 퇴행적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 생각할 뿐 코로나19로 늪에 빠진 서민들의 위기 극복을 위한 신뢰할만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일반 국민들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선뜻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물어가고 있는 2020년 말 우리의 현실이다.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인 셈이다.

국민들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과 크고 작은 위기와 위험 속에서도 용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됐다.

놀랍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뚜렷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생각한다. 그런 일들로 인한 영향력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라고 자위하며 버텨나간다.

많은 이들이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좌충우돌하며 허위적 거리는 것보다는 냉정과 침착함을 유지하라고 주문한다. 사태 해결에 훨씬 도움 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국내 정치상황을 경험한 우리는 냉정과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잘못 보낸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단기적인 성과와 임시방편적인 위기 모면을 위해 기본과 원칙, 절차적 정당성을 묵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이 그랬고 정치가 그랬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그 수단과 방법이 아무리 부당하고 부도덕해도 결과만 좋으면 탈법과 불법이 묵인되는 과정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현실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중시주의는 장기적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윤리의식과 시민정신의 배양을 가로 막은 것이다.

이제 잘못된 시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주체가 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잘못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내년은 서울, 부산 등에서 보궐선거가 있는 해이다. 대선에 앞선 국민의 심판이 기다려지는 해이기도 하다.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가슴 서늘한 판단을 내리겠다는 의지를 지금부터 보여줘야 한다. 우리 모두 ‘시간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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