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는 나홀로 여행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송년행사다. 번잡한 곳을 피해 가볍게 다녀올만한 고즈넉한 문화탐방 코스는 주변에 의외로 많다. 그 길을 안내하는 한 권의 책이 더 없이 반갑다.

▲ 새로 쓰는 삼국유사 2권
▲ 새로 쓰는 삼국유사 2권
◇새로쓰는 삼국유사2/강시일 지음/인공연못/335쪽/1만8천 원

삼국유사는 내용의 대부분이 역사를 은유해 작성한 전설 같은 이야기로 꾸며진사서다. 이 역사 이야기를 다시 재가공한 ‘새로 쓰는 삼국유사 2권’이 지난해 1권에 이어 속편으로 나왔다.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찾아가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문화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로 꾸며 역사문화를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이다.

삼국유사가 역사를 사실에 입각해 쓴 글이라면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역사적 사실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재구성한 소설적 이야기로 꾸며 재미를 더했다.

이 책은 삼국유사 내용을 해석해 관련 자료들과 함께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스토리텔링한 내용들을 새로 쓰는 삼국유사라는 제목으로 써내려 간 역사소설 같은 내용으로 전개된다.

‘새로쓰는 삼국유사’ 저자인 대구일보 강시일 기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 현장을 찾아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문화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꾸며 역사문화현장을 소개싶다”며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이어 “지역의 역사문화현장이 가진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재구성해 영화와 드라마, 시와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산업화한다면 경제 활성화와 함께 보다 윤택한 삶의 질은 덤이 될 것”이라 전했다.

‘새로쓰는 삼국유사 2권’은 1권의 기이편에서 소개한 신라왕조사의 원성왕 이후의 왕조사와 삼국에 불교가 전해지는 이야기를 실은 흥법편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덕왕과 해상왕 장보고, 당나귀의 귀 경문왕, 처용랑과 망해사, 진성여왕, 효공왕과 경명왕에 이어 신라 멸망군주 경순왕까지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꾸몄다.

흥법편에서는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의 이야기와 흥륜사 금당에 그려져 있었던 10명의 유명 승려에 대한 신화같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내년에는 3권과 4권에 탑상편,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등의 내용을 담아 삼국유사 전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책으로 펴낸다는 계획이다.

▲ 코 떼인 경주 남산
▲ 코 떼인 경주 남산
◇코 떼인 경주 남산/이하석 지음/한티재/240쪽/1만5천 원

이하석 시인의 경주 남산 답사기. 고등학생 시절부터 경주 남산을 사랑해온 시인은 이 산의 수많은 골짜기와 등성이, 산책길을 오랫동안 걸었다. 허물어진 탑 자리와 옛 절터를 지나기도 하고, 바위에 새겨진 부처를 만나 신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렸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너져 흩어졌던 탑들이 복원되기도 하고 방치돼 있던 유적이 정비되기도 했다. 책에 실린 열세 편의 글을 읽다 보면, 오랫동안 남산을 사랑해온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걷는 맥박을 느끼게 된다.

경주 남산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한국 불교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에 해박하지 못하다고 저자는 스스로 말하지만,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천착해 온 원로 시인의 안목으로 소개하는 경주 남산은 독자에게 문학적 향취와 함께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특히 ‘삼국유사의 현장기행’이라는 책을 펴낼 만큼 오랫동안 신라의 역사와 설화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해 온 저자의 공력이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긴 세월 동안 저자가 곳곳을 걸으며 옛 절터와 불상과 돌탑의 유래를 사색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쓴 이 책은, 경주와 남산을 알아가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는 엽서 크기만 한 스케치 수첩과 미니 팔레트를 갖고 다니며 바위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산에서 찍은 사진을 작은 화폭에 담기도 했다. 경주 남산의 불탑이며 바위, 형산강 너머로 보이는 전경을 그린 수채화에는 시인의 남산 사랑이 담뿍 담겨 있어서, 독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그림엽서 같기도 하다.

최근 들어 국내여행에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 책을 들고 남산을 걸으려는 독자들을 위해 지도를 책 앞에 실었다. 저자가 걸었던 주요 지점을 표시하고 글의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겨, 책을 읽으며 시인이 걷고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마애불과 돌탑에 서려 있는 신라인들의 희망과 믿음을 떠올리며 경주 남산을 직접 걸어보려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지도가 될 것이다.

▲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
▲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김치호 지음/한길아트/408쪽/2만 원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는 깊고 넓은 고미술의 세계에 심취한 어느 경제학자가 한국미술의 아름다움과 원형을 찾아 떠난 30여 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미술계에 속하지 않은 저자가 일반 컬렉터이자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술시장의 위기와 대안, 작품소유에 대한 지독한 욕망을 좇은 사람들과 관련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국내외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를 두루 섭렵하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도 한다. 저자가 가장 아끼는 민화와 고가구 등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민예에 대해서도 심혈을 기울여 썼다.

저자는 그간 자신의 행적을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민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고미술 사랑은 한국미술의 원형에 대한 호기심으로, 궁극의 아름다움에 대한 해탈로 이어졌다. 이 책은 이제 막 고미술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 컬렉션의 유혹을 느끼는 사람,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작은 빛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누구는 우리 고미술품을 ‘골동’이라 폄훼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수집가들의 취미 또는 완상의 영역으로 치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목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우리 삶 속에 체화되고 구현된 색채미나 형태미가 고미술의 조형성과 미감에 맥이 닿아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창령사 오백나한에는 성과 속을 넘나드는 나한의 이미지가 극대화돼 있다. 그 느낌은 세속적이면서 초월적이고, 자유로우면서 범박하다. 고졸함의 위대한 승리이자 고려미술의 꽃이다. 1천년 전 고려의 석공 장인들은 신묘한 솜씨로 500점의 얼굴과 옷자락을 손 가는 대로 무심의 마음으로 빚으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분출하는 법열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같은 듯 다르고 거친 듯 편안한 그 표정 하나하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넘어 격렬한 감동과 환희심으로 전율케 한다.

경제학자이기도 한 인 작가는 한국미술의 미학적 특질과 컬렉션 문화를 탐구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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