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이 굿바이/ 임선희

발행일 2020-12-23 09:22:4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버리고 버림받고 헤어지고~

…채희는 은행 영업시간 중에 ‘집을 나간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바지와 셔츠를 다려놓지 않았다고 다툰 일이 화근이다. 울고 싶은 차에 뺨을 때린 꼴이긴 하다. 버렸으니 이제 버림을 받을 차례인가.

채희는 벽지에서 교사를 하던 진우와 결혼했었다. 주말부부로 맞벌이를 하면서 딸을 키우기 버거워 홀로 살던 시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여윈 시아버지는 어렵게 살아온 터라 채희와 세대차가 많이 났다. 살림살이와 육아에서 사사건건 부딪혔다. 피아노 학원을 하던 친구 인미가 딸아이 육아를 도와주러 자주 들렀으나 시아버지와 티격태격하긴 매일반이었다.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은행 내에서 유능한 인재로 승승장구하던 현재 남편을 만났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사귀었다. 은행 내에서 두 사람의 불륜 스캔들이 퍼지는 바람에 남편은 좌천되었다. 채희는 시아버지에게 외도를 들켜 전 남편 진우와 헤어졌다. 그리고 현 남편과 살림을 차렸다. 은행 대출을 내어 보금자리아파트로 입주했다. 남편과 한 마을에 살면서 가까이 지냈던 촌스런 사촌여동생이 보금자리아파트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살림을 챙겨주었다. 어떨 땐 한 달씩 들어와 기거하기도 했다. 친구는 사촌여동생을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다. 남편의 출장이 잦았다. 출장을 핑계로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그렇게 2여년이 흘렀다. 가끔 전 남편 진우 생각이 났다. 전 남편은 새 장가를 들었다. 딸도 제법 컸으나 모유 수유를 안 한 탓인지 그리 그립진 않다.

신혼 초에 남편과 갔던 아담한 카페를 찾았다. 유리창 안으로 남편과 여자와 사내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여름 채희가 남편에게 사준 남방을 줄인 옷을 사내아이가 입고 있었다. 그 사내아이는 사촌여동생이 데리고 왔던, 채희를 예쁜 이모라 불렀던, 그 아이였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사내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 속에서 딸아이의 눈을 보았다. 채희는 돌아서 나와 골목길을 내달렸다.

인미 집 근처 지점으로 지원해서 그녀의 쓰리 룸에서 같이 살기로 했다. 기대와 달리 들어보지도 못한 도시로 발령이 났다. 짐을 챙겨 남편이 떠난 보금자리아파트를 나왔다. 캐리어를 끌고 약속장소에서 인미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폰도 받지 않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새 근무지로 발령 난 도시를 향해 갔다.…

맞벌이부부의 고단한 삶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눈물겹다. 유교적 가치관에 젖어 있는 사회에서 가정과 직장 어느 쪽도 포기하지 못한 채 고통 받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가슴 뜨끔한 남자들이 적지 않을 터다. 신세대 부부는 가사분담이 체질화된 세대이고 보면 이런 이야기 자체가 고리타분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 수 있다. 중년 이상 맞벌이 남성은 이 소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남성 주도적 사회에서 양성평등을 넘어 자기 주도적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늘어난 인간수명과 짧아진 사랑의 존속기간이 마찰을 일으키며 결혼제도를 균열시키고 있다. 개개인의 경제적 독립이 이런 추세를 부추기고 뒷심을 써주는 탓이기도 하다. 결혼생활이 예외일 수 있는 미래가 곧 다가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뒷덜미를 잡는다. 출생률 저하는 그저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게 맞을지 모르지만 관습에 길들여진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남자이기 때문일까. 설거지나 해야 할 것 같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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