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행우

함께 걸어가 줄 동행 하나 있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 들어 줄 동행/ 내 속을 보고도 비웃지 않을,/ 부끄러운 삶 엿보지 않고/ 어둠에서 손 내밀어 줄/ 동행 있으면 좋겠다// 슬플 때 눈빛으로/ 기쁠 때 가슴 품으로/ 마음을 트고/ 말할 수 있는 동행/ 하나 있으면// 그를 위해 빛이 되고/ 꽃이 되고, 향기/ 은은한 동행이고 싶다// 나를 위해,/ 그를 위한 동행/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바람은 꽃바람」 (그루, 2020)

인생은 낯선 길을 가는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줄곧 가다가 보면 좋은 일을 만나 즐겁기도 하지만 힘든 일을 만나 고달프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웃음과 기쁨은 줄어들고 눈물과 한숨은 늘어난다. 몸은 쇠락하고 힘이 빠진다. 그 많던 친구들은 하나둘 멀어지고 마음마저 소원해진다. 수많은 지인이 휴대폰 안에 저장돼 있긴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통화가 거북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 돌아서서 또 통화하던 시절이 아련하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진정한 친구를 평생에 한명이라도 둔다면 잘 산 인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득의만만하게 웃었다. 주위엔 온통 친구들로 가득했다. 좋은 일엔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나쁜 일엔 가슴으로 위로하고 슬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믿음직한 벗들이 넘쳐났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나오라고 전화해도 군말 없이 뛰어나왔다. 그야말로 친구가 거름 지고 장에 가면 팔을 걷어붙이고 그냥 따라나서던 시절이 있었다.

예순이 넘어가면 인생길이 비교적 한적해진다. 어깨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켠다. 할 일을 대충 거둬가 버린 탓일 수 있지만 해야 할 일이 그다지 도전적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세상사를 차세대의 손으로 넘겨주고 집안에서도 뒷방으로 물러난다. 망토를 감고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차·차세대를 웃으며 지켜볼 뿐이다. 허전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지만 허리가 뻐근하니 무리수를 둘 순 없다.

다들 제2의 인생, 인생이모작이라며 새 출발을 독려한다.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나 외로운 마음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머지 삶을 우울하게 갉아먹는 것을 막을 길 없다. 모질고 험한 풍진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남은 삶이 더 공허할 수 있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곤궁한 처지에 놓여있으나 의지하고 비빌 언덕조차 변변치 못하다면 더 말해 무엇하리요.

인생길엔 동행할 사람이 필요하단 의미다. 한창 때야 혼자도 잘 버텨내지만 인생길 끝자락이 비쳐오면 동행이 그리운 법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자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 그런 것들을 가리지 않고 탁 터놓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행이 간절해진다.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등불이 돼주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하는 동행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길 동행은 필요한 시점에 갑자기 생겨나거나 만들어지진 않는다. 멀고 험한 인생길 가는 동안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볼 일이다. 찾았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사랑과 희생으로 지켜내고 보듬어줘야만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내가 너에게 등불이라면 너도 나에게 등불이다. 네가 나에게 향기로운 꽃이라면 나도 너에게 향기로운 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동행이길 희망한다면.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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