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가 저쯔만치/이제 고마 됐다 아이가/눈치코치 없이 퍼질러 앉아 있을끼가//떠날 날 스스로 알아야 박수 받는 법이여//저것 봐/햇살 타고 달려오는/푸른 바람//떠나고 채울 자가 뒤섞여 요동하는/지금은 밀리기 전에 떠나야 할 시간이여//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맛이 더 있는 기여/새 하늘 새 땅을 노래할 세대를 위해/그 질긴 미련을 접고/자리 뜨라/AC8

「나래시조」(2020, 봄호)



리강룡 시인은 경북 성주 출생으로 1983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한지창에 고인 달빛’, ‘영혼의 닻’, ‘백합의 노래’, ‘신지리’,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등이 있고, 평론집 ‘생각의 텃밭에 핀 꽃을 찾아서’, ‘찬찬히 보기, 뜯어보기’ 가 있다.

오늘은 2월3일 입춘이다. ‘대춘’은 봄을 기다린다는 뜻인데 새봄과 더불어 혹독한 바이러스가 물러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제목이다. 또한 구어체를 구사해 보다 친근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물러가 저쯔만치 이제 고마 됐다 아이가, 라는 말은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특히 고마 됐다, 라는 구절은 몇 해 전에 펴낸 어떤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굉장히 정감이 가는 말이다. 눈치코치 없이 퍼질러 앉아 있을끼가, 하면서 떠날 날 스스로 알아야 박수 받는 법이여, 라고 설득하고 얼마간은 을러댄다. 그러면서 저것 봐 햇살 타고 달려오는 푸른 바람을 보라고 눈짓을 보낸다. 떠나고 채울 자가 뒤섞여 요동하는 지금은 밀리기 전에 떠나야 할 시간이여, 라면서 거듭 재촉한다. 뒤섞여 있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 되기 때문이다. 정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맛이 더 있는 것이 틀림없다. 새 하늘 새 땅을 노래할 세대를 위해서 그 질긴 미련을 접고 자리를 떠야 마땅할 일이다. 그래서 몹시 점잖은 화자마저도 결구에서 속된 말을 영어와 숫자를 섞어서 쓰고 있다. AC8, 이라는 언사가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다 알 일이다. 이렇게까지 마무리 짓고 있는 것은 코로나19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1년이 지나도록 지구촌을 장악하고 있는 팬데믹 사태 앞에서 일상은 무너졌고, 엄혹한 방역의 나날을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지내고 있다. 이젠 새봄이니 강추위와 함께 바이러스가 사위어들고, 봄다운 봄을 맞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의 다른 작품을 한 편 더 보자. 계절은 가을이다. ‘은행나무숲의 시’라는 제목이다. 살다가 도대체 왜 사는지 궁금할 때 은행나무 줄지어 선 가을 숲에 나는 가자, 라고 우리의 옷소매를 이끈다. 진정 왜 살고 있는가, 무엇을 바라보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잎들이 몸으로 읊는 금빛 시가 눈부신 은행나무 아래 서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 것이다. 황금빛 빈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간의 행간마다 일어서는 손을 보자, 라는 화자의 섬세함은 아무나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하루 노란 건반 위를 출렁이는 멋진 손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팽그르르 돌아가는 바람개비여서 추레한 옷깃에도 황홀한 색을 앉히면 발랄한 이분음표의 노래 한 절 들릴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필치나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봄은 어김없이 온다. 봄은 희망이다. 만물이 소생하면서 사람들도 생기를 얻는다. 힘찬 기지개와 함께 새 기운을 받아 다시금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또 한 번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때 잘 채비하며 맞을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