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이리떼를 이길 수 있을까

발행일 2021-02-03 10:07:2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최근의 자산시장, 그 중에서도 주식시장을 보면 언제 또 그랬었는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특히, 미국의 비디오게임 유통업체인 게임스탑(GameStop)에 대한 공매도 세력과 이에 대항한 개인투자자인 로빈 후드들과의 대결은 그 자체로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초래했지만, 그것이 미국 주식시장은 물론 세계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보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더군다나 미국 자본주의 심장이자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뉴욕의 월가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국내 주식시장도 단기적으로 큰 조정이 있었을 뿐 아니라 특정 종목에 대해서는 동학개미의 저항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등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나타나기도 했기 때문에 향후 국내 증시의 향방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공매도(Short Stock Selling) 관련 규제정책의 변화와 그 영향일 것으로 생각된다.

잘 알다시피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그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 해당 주식을 빌려 매도해 가격이 하락하면 싼 가격에 사들여 되갚아 단기 매매차익을 꾀하는 매매형태로 투기성자본으로 분류되는 헤지펀드(주로 해외)가 즐겨 사용하는 전략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공매도를 찬성하는 쪽은 주식시장의 과열 방지 및 유동성 확대를 통한 매매 활성화를 이유로 꼽지만, 반대하는 쪽은 인위적인 주가 조정이나 채무불이행 등과 같은 부작용에 의한 피해가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 양쪽 모두 그럴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공매도에 대한 정책 당국의 입장이 참 애매하게 됐다. 미국에서는 연방의회의 청문회가 예정돼 있는 등 이번 게임스탑 사태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경제 불안정성과 각종 사회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버전 2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동학개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미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공매도에 대한 정책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 여론조사 결과 공매도 반대 의견이 60%를 넘었다고 하니 정책 당국의 고민이 그만큼 클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공매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윤리적인 경영자, 불투명한 경영, 부풀려진 기업 실적 등에도 불구하고 고평가된 주가는 공매도를 통해 정상화함으로써 투자자들은 물론 주식시장 등에 더 큰 폐해가 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순기능이 역기능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공매도에 제한을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특히, 공매도의 순편익 대부분을 해외의 헤지펀드가 차지한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증시 회복의 가장 큰 원동력인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국부유출이라는 점에서 공매도는 너무나 불합리한 게임이다. 기업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 시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훨씬 싸게 지분 매입할 수 있는 포이즌 필(Poison Pill)처럼 경영권 방어장치 없이는 공매도 등을 통해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물론,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간다.

연일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국내 주식시장이 활황이고, 그 때문에 완만한 조정기간을 거치면서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는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공매도의 순기능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눈물과 기업들의 희생으로 달성돼서는 안될 일이다. 개미와 이리떼(Wolf pack) 중 최종 승자가 누가될 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기울어진 운동장만큼은 고쳐 쓰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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