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수에 딱 걸렸다.’ 국민의힘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요즘 심정이 아마 이럴 것 같다. 반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표현은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 말일 듯하다. 가덕도신공항 문제를 두고 하는 얘기다.

새해 들어 영남권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논란이 1일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결국 여야 합의로 이달 중 처리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 같은 정략적 행보와 달리 영남권의 민심은 여전히 부산 울산 경남과 대구 경북이 판이하다.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믿었던 국민의힘이 선거에만 매달려 기준과 원칙도 없이 민주당의 정치 공세에 굴복해 배신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부산 울산 경남에서는 애초 김해신공항 확장안을 5개 시, 도 단체장의 합의로 수용해놓고도 부산시장 보궐선거 확정 이후 나온 민주당의 가덕도신공항특별법 카드에 여론이 급변했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 이를 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 경제성 등 확인된 객관적 이유로도, 정서적으로도 가덕도신공항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경제성만 보더라도 가덕도는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신공항 후보지로 ‘경제성 없음’이라는 평가 결과가 나온 곳이다. 당시 심사 주체였던 동남권신공항입지평가위원회는 경제성뿐 아니라 환경성에서도 낙제점을 줬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도 가덕도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사전타당성 검토 결과, 자연환경 영향성과 사회적 편익 비용 등 여러 면에서 공항 부지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곳이다. 이런 전문기관의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2016년 당시 정부는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결정했다.

여기다 대구·경북에서는 정서적으로도 가덕도신공항은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밀양신공항 백지화 결정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함께, 가덕도신공항 재추진 과정에서 벌어졌던 TK 소외에 대한 불만도 있다.

2002년 민항기 추락사고로 100여 명이 사망하자 당시 김해공항을 대체할 신공항 건설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가덕도와 밀양이 유력 후보지로 부상했다. 이후 두 곳을 두고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백지화, 재추진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결국 김해공항 확장이란 애초 선택지에도 없던 결정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영남권은 가덕도를 원했던 부산과 밀양을 지지했던 대구 경북 경남 울산으로 갈라져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이렇게 팽팽하게 대립한 지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5개 시, 도 단체장들은 어떤 결과도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공동서명서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불과 4년 만에 이를 뒤집는 결정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새로운 곳도 아니고, 전문가들의 심층심사, 평가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총리실 김해공항검증위원회의 ‘김해공항 확장안 재검토 필요’ 결정은 지금도 그 법적 절차와 정당성에서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검토와 평가 과정이 필요한 국책 사업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게 대구·경북의 판단이다.

거기에는 또 여, 야의 지지 기반이 영호남으로 양분된 정치 현실도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가덕도신공항 문제가 텃밭인 영남권을 PK와 TK 둘로 갈라놓을 수 있는 사안인 데 비해, 민주당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이슈란 판단으로 얼마든지 정략적 접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간의 사정을 봐도,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한목소리를 내 대응하지도,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민주당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반해 대선 이후 영남권에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민주당은 부산에서 민심을 한번에 만회할 수 있는 폭발력 강한 필승 카드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었고, 실제로 최근 부산 민심의 추이에서도 이는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특히 집권당인 민주당은 4월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민 혈세 수십조가 투입될 국가사업을 정치적 득실만으로 결정했다는 국민적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특별법, 2월 국회서 처리될 듯

가덕도신공항특별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단독으로라도 처리하겠다고 공언해 왔던 민주당에 이어, 이를 반대해왔던 국민의힘이 최근 당론으로 특별법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2월1일 부산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가덕도와 일본 규수를 잇는 해저터널을 뚫어 부산이 하늘길, 바닷길, 땅길의 거점이 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정부의 ‘선 공식 입장 표명, 후 특별법 논의’라는 주장을 견지해 왔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소속 국회의원 136명 이름으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안을 공동발의하고, 당론으로 이를 2월26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민주당은 특히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를 1월에만 두 차례 부산을 방문한 이낙연 대표가 거듭 확인하고 부산에서 열린 당 싱크탱크 행사와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공개 선언하는 등 표심 몰이에 이용하고 있다.

◆ 존재감 바닥으로 떨어진 TK 의원들

그동안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전략을 뻔히 알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가덕도신공항에 PK와 TK의 이해가 상반돼 있어 당 차원에서 입장을 하나로 정리해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당내에 이견이 있으면 지도부가 나서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대구가 지역구인 주호영 원내대표마저도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게다가 선거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시간적으로도 묘책을 궁리할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쪽이든지 선택을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당론을 정하지 않고 대응하는 게 맞는 것인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만 깊어지는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1일 특별법 지지라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선택이 앞으로 선거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불확실하지만 당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TK 의원들의 입장이 궁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지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당장 대구·경북 민심이 들끓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가덕도신공항을 찬성하고 이에 대해 지역 정치인들이 함구하고 있다는 점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가덕도신공항 절대 반대라는 게 지역 민심이다’ 등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1일 가덕도신공항 반대 입장을 재차 밝혔다. 권 시장은 “김해신공항 확장안은 영남권 5개 시, 도 단체장의 합의에 따른 것인데 일방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가덕도신공항특별법까지 추진되는 데 대해 반대한다”고 했고, 이 지사 역시 “가덕도신공항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TK 의원들 가운데 김상훈(대구 서구), 강대식(대구 동을) 의원 등 2명은 1일 ‘가덕도신공항이 절차적 정당성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를 위해 △김해신공항 백지화 여부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5개 시, 도 단체장 합의 △철저한 연구, 검증과 타당성 조사 등을 제안했다.

한편 국민의힘 추경호(대구 달성) 의원은 1월28일 TK 지역구 의원 및 TK 출신 비례대표 등 23명과 함께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법률안에는 민간공항 시설과 연계 도로 및 철도 등 인프라 사업에 국비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을 국회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과 병합 심사해 민주당의 가덕도특별법 처리와 동시에, 대구경북통합신공항에 대한 국비 지원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게 지역정치권의 복안이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 메인사진1-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1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찾아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이라고 적힌 표지판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메인사진1-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1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찾아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이라고 적힌 표지판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메인사진2-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월21일 오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부산시로부터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현황보고를 듣고 있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의 2월 임시국회 처리를 공언했다.연합뉴스
▲ 메인사진2-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월21일 오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부산시로부터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현황보고를 듣고 있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의 2월 임시국회 처리를 공언했다.연합뉴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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