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대구·경북(TK) 국회의원들이 물러터졌다는 비아냥을 듣는다. TK 정치인들이 한꺼번에 매도당하고 있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추진이 발단이다. 당 지도부만 바라보며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지역 정치인들이다. 가뜩이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던 터에 큰 이슈가 터졌는데도 TK 의원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최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약속했다. 한일 해저터널까지 얹어주겠다며 한술 더 떴다. 10여 년 전에 불가 판정이 난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흘러간 노래를 다시 틀고 있는 여당의 요란에 몸이 단 야당도 가세했다. 예비타당성조사도 건너뛰고 예산도 따지지 않고 퍼주겠다고 손들어주었다.

따놓은 당상처럼 여겼던 서울과 부산시장 보선 분위기가 확 돌아서자 야당인 국민의힘이 안달이 났다. 득달같이 부산에 간 김위원장은 PK 의원들을 들러리 세운 채 특별법을 포함한 무더기 공약을 발표했다.

-가덕도 신공항 입 닫고 있는 의원들에 뭇매

TK는 호떡집에 불난 듯 덜썩였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도 반발했지만 별무소용이다. TK는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제 기능을 못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특히 영남권 5개자치단체장이 합의로 결정한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국책사업을 정치권이 백지화시켰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판국에 TK 정치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기껏 절차상의 문제를 거론할 뿐이었다. TK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TK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부산 보선에 대한 정략적 접근을 애써 외면했다. 부산 선거판이 뒤집어질 상황에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에 “안 돼”를 외치는 모습을 바란 것은 지역민들의 희망에 불과했다. 웰빙 정당 TK 의원들의 한계라고는 하지만 무기력한 모습에 지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가빈즉사양처 국난즉사양상(家貧則思良妻 國亂則思良相·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좋은 재상을 떠올린다)’고 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 백승홍, 박승국 등 왕년의 정치인들을 소환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전 의원들이다. 투박하긴 했지만 지역 이익 대변을 위해 몸 사리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논리를 개발하고 물고 늘어졌다. 집요함에 정부 당국이 손발 들었다. 공무원과 언론으로부터 지역 현안 해결에 가장 역할을 많이 한 의원들로 평가받았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수성을)도 왕년의 전사였다. 그는 독설과 송곳 질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홍 의원은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하는 소신 발언으로 지역 여론과 등을 졌다. 그런데 가장 절실한 지금 지역에 투사형 정치인이 없다.

-지역 현안 몸 던지는 투사형 정치인 절실

큰 정치인, 된 인물을 못 키우는 우리 정치 풍토를 탓해 뭣하랴마는.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이라면 지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야당은 독해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물러빠진 지역 정치인에 지역 이익 대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밀당도 정치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사안에 따라 정략적 판단과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래도 이렇게 힘없이 끌려가는 모습은 아니다. 무는 개를 뒤돌아 본다고 했다. 우는 아이 떡 한 조각 더 주는 법이다. 대세와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그냥 주저앉아선 안 된다. 적어도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집권당의 오기와 만용을 고발하고 사과를 받아냈어야 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거수기 정치인은 필요 없다. 조직에서 미운 털이 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필요할 땐 원칙과 소신에 따라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생명도 길어진다. 지역 정치인들이 너무 매가리가 없다. ‘싸움닭’이 돼야 한다. 그래야 지역도, 정치인도 살 수 있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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