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白松)을 바라보며/ 정호승

발행일 2021-02-07 14:36:4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모든 기다림은 사라졌다/ 더 이상 기다림에 길들여질 필요는 없다/ 잠 못 이루는 밤도 사라져야 한다/ 그 어딘가에 순결한 기다림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모든 희망은 사라졌다/ 더 이상 희망에 길들여질 필요는 없다/ 절망 따위는 더더구나 필요 없다/ 그 어딘가에 성실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이제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봄은 언제나 기다리지 않을 때 왔다/ 겨울은 봄을 준비하기 위하여 있는 게 아니라/ 겨울을 살기 위하여 있다// 지금이라도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려라/ 무심히 흰 눈송이가 솔가지 끝에 켜켜이 쌓여도 좋다/ 허옇게 속살까지 드러난 분노의 상처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을 찾아서」 (창비, 2020)

백송은 중국 베이징 인근지역이 원산지다.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드나들면서 가져온 씨를 심어 키운 것이 우리나라 백송의 기원이다. 나무껍질이 희뿌연 희귀한 소나무이고 생물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그 줄기와 가지가 일반적인 소나무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파리를 보기 전까진 소나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고고한 모습이 군계일학마냥 두드러지고 조금 신령스럽기조차 하다. 그 앞에 서서 괜스레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고친다.

스스로에게 확고한 자신감이 없을 때 기다림을 찾아 의지한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정답을 찾지 못할 때 기다림을 불러낸다. 마음이 약해지고 힘이 빠지면 요행을 기대하고 행운을 기다린다. 기다린다고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버릇처럼 행운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기다림은 나쁘게 보면 자기변명이거나 자기기만이기도 하지만 좋게 해석하면 살기위한 몸부림이거나 긍정의 아이콘이다. 신성한 백송을 보면서 기다림을 모두 벗어던진다. 백송의 생명력이 기다림을 지운다.

희망은 다가올 미래에 바라던 결과나 성과가 얻어질 것이라는 기대나 예측을 뜻한다. 희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인생이지만 열심히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험한 삶을 인내한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희망에 길들여져 있는 셈이다. 백송을 바라보는 동안 희망과 절망은 모두 다 사라진다. 시인은 희망을 거절한다. 과거의 고난을 현재에 품고 미래로 미루던 성과마저 현재로 소환한다. 희망은 현재의 성실한 삶으로 대체된다.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 겨울은 춥고 길지만 세월이 흐르면 따스한 봄날이 찾아온다. 그래서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견뎌낸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인고의 계절이다. 봄은 항상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왔다. 백송을 보노라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잊는다. 그렇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겨울을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고 겨울을 제대로 살고 또 즐겨야 한다.

절벽 위에 선 백송을 본다. 추운 겨울이라도 내일을 기약하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북풍이 불면 몸을 움츠리고 눈이 내리면 눈송이를 받는다. 뼈와 살이 허옇게 드러나도록 시련을 겪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백송은 고난과 시련의 상흔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고한 기품과 경건한 자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한 내공에서 우러난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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