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코로나19를 이기는 지방자치의 힘

발행일 2021-02-17 10:57:0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구시 채홍호 행정부시장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

미 외교의 거두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코로나19가 제3차 세계대전처럼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꿀 것이라 예측했다.

지난해 대구시청에 첫발을 들이며 취임식을 생략하고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점검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구가 그렇게까지 긴박한 전쟁터가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취임 열흘 남짓한 지난해 2월18일,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폭풍우처럼 감염병 대유행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코로나19와 함께 한 지난 1년은 오롯이 대구시민들의 위대한 시민 정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방자치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코로나19는 25살 청년이 된 대한민국 민선 지방자치의 진가를 제대로 드러냈다. 지역 구조와 환경에 따라 코로나19의 발생 추이와 확산 양산이 달라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감염병 관리는 지방 실정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영국 성공회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 대주교가 “감염병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대응임이 명확해졌다. 중앙 집권적 코로나 대응은 지역화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사태의 고비 고비마다 창의성과 혁신성을 발휘해 선제적으로 조치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를 선도하며 방역 한류로 대표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만들어냈다는 전문가의 평가가 많다.

그 중에서도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와 같은 세계를 놀라게 한 기발한 방역 모델은 코로나19 초기 가장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던 대구의 현장에서 나온 성과다.

지난해 코로나19의 대유행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구시는 시민원탁회의, 신청사 공론화위원회와 같이 그동안 꾸준히 축적해온 성숙한 시민 참여형 모델에서의 자치력과 소통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무엇보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지역 가용자원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구시의사회는 첫 확진자가 발생 하자마자 시청에 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즉각 대처에 나섰다. 또한, 초기 확진자 급증으로 병상이 부족해 자택 대기 중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의료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의사회 자원봉사자 160여 명과 공중보건의들은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해 입원대기환자를 직접 모니터링하고 중증도 분류에 돌입했다. 그 바탕에는 첨복단지 유치 활동에서부터 다져온 대구시와 의료계의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거버넌스 체제가 있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시가 된 ‘3·28 대구운동’이다. 지난해 2~3월 코로나19가 들불처럼 번지던 당시 대구 시민들은 스스로 방역 주체가 돼 마스크 쓰기와 이동 최소화, 모임과 집회 중단, 2m 거리두기 등을 실천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이 빛을 발했고, 많은 외신들은 “코로나19 일상에 대구는 많은 세계인들에게 삶의 모델처럼 비쳤다”며 찬사를 보냈다.

세 번째는 시민과 방역정책을 함께 결정한 ‘코로나19 극복 범시민대책회의’다. 혹독한 초기 상황을 시민의 자발적 동참으로 극복한 대구시는 방역 대책을 결정함에 있어 시민 참여와 투명성 확보를 통한 신뢰감 형성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 그래서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단체장과 시민들이 함께 방역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권영진 시장의 이러한 파격은 방역에 대한 시민의 공감과 실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대구시의 방역 대책에 대해 시민의 79.5%가 ‘잘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마스크 쓰GO 운동’ 등 시민 참여 정책이 가장 잘한 분야로 꼽힌 것을 보면,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한 ‘자치’의 경험이 방역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한 도시로 대구를 기억하고, 대구 시민은 서로를 자긍심과 신뢰로 기억할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이 시민 스스로(自) 다스릴(治)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다.

아직도 코로나19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시민들의 일상 회복과 경제 도약을 위해 현장 중심형 지방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뿐만 아니라, 다가올 ‘재편되는 세계질서’에 더욱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모든 정책 추진에 있어 지방 정부의 자율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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