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에게 배우는 아버지의 참모습

발행일 2021-03-18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장성애 소장
장성애

하브루타창의인성교육연구소장

조선 중기의 사람이었던 퇴계 이황은 정치가로, 학자로, 교육자로서 현대적 의미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예문관 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의 요직을 제수받아 역임했기 때문이다. 또한 말년에는 16살의 어린 선조 임금을 위해 성학십도를 만들어 올리는 등 임금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로써 퇴계는 숙부 이우, 친형 온계 이해와 더불어 진성이씨 가문을 명문가로 만들었으며 성리학자이자, 교육자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퇴계의 가정사는 불우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는 전처 자식과 더불어 7남매를 건사해야 했다. 퇴계는 첫 번째 부인과는 둘째 아들을 낳자마자 사별했다.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재취부인과도 힘든 결혼생활을 했으며 출산 도중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장성한 둘째 아들도 결혼하자마자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증손자도 어릴 때 영양실조로 죽게 됐다.

중종반정 이후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퇴계의 형 온계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퇴계도 관직을 내려놓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이런 와중에 퇴계의 자녀 교육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퇴계가 남긴 편지인 가서(家書)에 잘 나타나 있다.

퇴계는 개인적인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 그런 일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핑계도 변명도 하지 않는 당연함에 대한 태도로 일관한다. 대신 어머니가 부재한 자리를 아버지인 자신이 꽉 채워준다. 엄할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은 퇴계의 이미지에 비해 그가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들은 더할 수 없는 자애의 말로 가득 차 있다. 가정의 불운이 자녀 교육을 게을리할 이유가 될 수 없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절망과 좌절의 이유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퇴계는 보여주고 있다.

퇴계는 평생 대략 200여 명이 넘는 인물을 대상으로 3천200여 통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서간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 집안사람들에게 보낸 가서는 1천200여 통이다.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가 621통, 맏손자 안도에게 보낸 편지가 131통이다. 퇴계가 100통 이상 편지를 보낸 제자들은 정유일(176통), 월천 조목(150통), 이정(138통)뿐이다. 퇴계가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수를 비교해 볼 때, 퇴계가 아들과 손자와의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가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들은 흔히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교육을 소홀히 한다. 퇴계의 가서를 살펴보면 농사일, 하인 다스리기, 집안 대소사 챙기기 등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지만, 그중 아들과 손자 그리고 조카들의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자녀들에게 성공 지향적인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방법으로 학문을 권장하고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며, 일생 아버지인 자신의 삶과 더불어 점검하고 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60살이 넘은 아버지가 자식으로부터 ‘아버지를 존경한다’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퇴계의 아들 이준, 퇴계의 맏아들 이안도 그리고 조카, 처조카 심지어 사돈들의 집안사람들까지 퇴계의 문하생들로 기록돼 있다. 퇴계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의미이다. 좋은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아버지일 것이다. 그러나 존경하는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답을 보여주는 삶의 모델 그 자체이다. 가까운 가족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만큼 행복하게 성공한 삶이 또 있을까?

퇴계는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하는가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어른’을 대변한다. 사회적으로 바쁜 것도, 가정의 불우함도,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는 것도 자녀 교육을 할 수 없다고 변명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또한, 자녀와의 소통이 어렵다고 하는 부분 역시 야단맞을 일이다. 건강이 늘 여의찮았던 퇴계가 붓으로 장거리 소통을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녀에게 한 줄의 글이라도 전하려고 하는 관심과 사랑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인류의 스승 퇴계의 모습이 바로 현대의 우리가 추구하는 다시 살펴야 보아야 할 참된 아버지상이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든 아니든 우리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는 아버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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