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사회2부 경북지사 부국장대우

흔히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예측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예측가능한 사람은 신뢰성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호작용에서의 돌발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예측가능한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설계를 할 수 있고 이루고자하는 꿈도 가진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이들 청년들의 3포 이야기는 오래됐다. 20~30대 청년들 상당수는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청년들은 여기를 더 해 주택문제와 인간관계를 추가해 5포 또는 이젠 희망과 꿈마저 저버렸다는 7포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암울하다. 그만큼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별로 행복하지 않고 사회로의 진출은 예측가능성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예측가능과 인간의 심리를 그려낸 이야기는 유태계 임상심리학자 브리즈니츠 박사의 이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브리즈니츠 박사는 완전군장을 한 이스라엘 육군 훈련병을 4개조로 나눠 20km 행군을 시켰다. 우선 1조에게는 행군거리를 미리 예고하고, 5km마다 남은 거리를 알려줬다.

2조에게는 ‘지금부터 먼 거리를 행군한다’라고만 알려줬다. 3조에게는 15km를 행군한다고 말했다가 14km 지점에서 20km를 행군한다고 변경 통지했다. 4조에게는 25km를 행군한다고 말했다가 14km 지점에서 오늘 행군은 20km로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정확한 행군거리와 중간지점에서 남은 거리를 알고 행군한 1조가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았다. 하지만 행군거리를 모르고 뛴 2조는 가장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3, 4조는 일반의 예상을 벗어났다. 예상보다도 짧은 거리를 행군한 4조가, 예상보다 더 먼 거리를 뛴 3조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해 브리즈니츠 박사는 “나쁜 소식이 큰 지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상하고 있던 거리보다 줄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병사들은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 왔던 것이다. 어려움이나 편안함보다는 희망과 절망이 인간에게는 중요한 문제이며, 인간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려울 때가 아니라 희망이 없을 때”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 역시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을 두고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단테는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찾은 지옥문 입구에서 ‘여기를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청년들의 7포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지옥으로 표현하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먹먹하다.

청년들은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만 꿈과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소망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졸업 후엔 기대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 좀 더 수고하고 땀 흘리며 더 먼 거리를 행군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뛰면서도 꿈의 실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다.

작금의 정치는 어떤가. 다가오는 대선에 앞서 사안을 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권력 투쟁에서 나오는 상식 밖의 언행과 행동은 국민으로 하여금 마음의 착잡함을 넘어 분노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권력 투쟁도 기본적인 매너와 품위를 유지해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이 계파나 정파의 순기능적 측면을 인정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매너가 사라진 막가파식 막말의 분출과 행동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염증과 혐오심만 부추긴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예측가능성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코로나19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정쟁을 일삼고 있다. 이젠 힘들어도 의지할 때 없는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게 되는 모든 분야에서 예측가능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품위 와 같은 세상살이의 기본과 근본을 다시 배우고 몸에 익히는 범국민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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