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리」 (우먼라이프, 2004)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살아있는 동안 권력을 가지고 아무리 재물을 모아도 죽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은 부자라도 저승길 떠날 땐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 부귀영화가 덧없고 부질없다. 너무 아등바등 욕심을 부리며 살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인생이 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할 뿐 정신적 성취마저 부인하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공수래공수거는 인생무상과 상통한다. 인생무상은 불교에서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이는 마음을 비우고 무욕의 삶을 살도록 중생을 계도하는 도구개념으로 기능한다. 물욕과 식욕, 색욕을 내려놓고 만족의 기준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면 정신적인 포만감이 쉽게 찾아온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생무상은 행복한 삶을 위한 발상의 전환일 수 있다. 도교의 무위자연과도 유사한 관념이다. 현재의 필요를 초과하는 소유는 무의미하다는 어느 스님의 생각에 수긍한다. 인간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암시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집착과 욕심은 본능에 터 잡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여인이라면 반지와 팔찌를 갈망한다. 아기는 고사리 손을 움켜쥐고 유아는 젖꼭지를 문다.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움켜쥔다. 죽을 땐 유서라도 남겨야 비로소 편히 눈을 감는다. 그렇지만 죽고 나면 그뿐이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가는 사자는 아무도 없다. 세기의 섹스심벌 마릴린 몬로마저 예외일 수 없다. 그녀는 생전에 애지중지 아끼던 30캐럿 다이아몬드 하나도 가져가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토지를 거래할 수 있지만 공정과 신뢰를 무너뜨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영리를 추구해선 안 된다. 불법적인 땅 투기에서 드러나는 공직자의 추태는 정말 좀스럽고 추악하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어려운 마당에 분노게이지를 한껏 밀어 올린다. 수치와 치욕을 모르는 간 큰 투기꾼들에겐 수갑과 족쇄가 제격이다. 수갑과 족쇄마저 욕심내는 것이라면 기꺼이 채워주는 것이 맞는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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