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기 ‘유투열풍’을 지켜보면서

발행일 2021-03-16 15:11:5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한국토지공사(LH) 직원들이 연루된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그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튀는 중이다. 앞서, 성폭력 고발 캠페인이라 할 수 있는 ‘미투(Me Too)열풍’이 전 국민의 전폭적이고 폭넓은 호응을 얻었던 것처럼 땅 투기 릴레이 고발도 그에 못지않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성폭력이 만연했던 것처럼 땅 투기 또한 우리 주위에서 광범하게 행해졌다는 방증이다. 관련 투기정보를 알고 있는 정보내부자가 상대방의 땅 투기 사실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유투(You Too)열풍’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투기는 그 소비나 이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가격상승으로 인한 매매차익을 목적으로 어떤 물건을 구매한 후 예상대로 그 가격이 상승하면 이를 매각함으로써 이익을 실현시키는 행위이다. 투기엔 미래의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위험부담이 존재하므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그에 상응하는 기대치가 시장에서 형성된다. 실패하는 경우엔 그 손실이 치명적이고 성공하는 경우엔 위험프레미엄으로 인해 이익도 그만큼 크다. 이렇게 보면 투기도 개인의 판단과 책임아래 이뤄지는 정상적인 경제행위임에 틀림없다. 투기와 투자는 그 동기가 다른 만큼 단기차익을 노리느냐, 장기간 보유하느냐의 결과론적인 차이를 갖긴 하지만 도긴개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 투기에 광분하는 것은 그럴만한 사유가 존재한다. 땅은 생존에 불가결하다. 토지의 특수성과 땅에 대한 불공정하고 비대칭적인 정보 상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땅은 물리적 위치가 특정지역에 고정돼 있고 생산요소를 사용해 그 면적을 증가시킬 수 없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땅은 다른 재화와 달리 강한 공공성을 갖는다.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이유다. 땅에 대한 공적 개발정보에 업무상 수시로 접근 가능한 내부자가 땅 투기를 하는 것은 공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배임이다. 생선을 지키는 고양이가 생선을 탐하는 것은 의무위반이고 배신행위다.

내부정보로 위험부담을 배제한 땅 투기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무시한 비열한 범법행위다. 공적 의무를 짊어진 공기업의 직원이나 국민의 공복 또는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반칙을 일삼는다면 그에 상응한 무거운 응징을 가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지고 판이 깨질 건 뻔하다. 반칙을 하면 사익을 채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판이 깨지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싸움터로 바뀔 터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두에게 돌아간다. 불법 땅 투기를 발본색원해 일벌백계해야만 깨진 판을 수습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시한 경제정책의 실패로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국민이 우울 모드다. 주택정책의 헛발질로 집값마저 살인적으로 치솟았다. 이런 경황 중에 터진 공직자의 땅 투기는 민심 대폭발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출산율이 끝없이 추락하는 현상을 타개해야 할 조치들이 그 동력을 상실했다. 비혼주의가 젊은 층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데도 그런 경향을 잘못된 사회현상이라고 질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혼을 권장하고 출산을 장려하기엔 염치가 없다. 청년의 입장에 선다면 무엇을 보고 결혼하며 누구를 믿고 애를 낳을 것인가. 졸업생의 절반도 채 받아주지 못하면서 결혼해서 애 낳으라고 말해봐야 말짱 꽝이다.

땅 투기를 근절하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눈앞의 현상에 집착할 게 아니라 멀리 보고 차근차근 차분하게 가야 한다. 바쁠수록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준비하고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익추구는 남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함께 사는 세상이 개인의 행복을 움틔우는 보금자리라는 진리를 일깨워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부동산 투기를 법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법치나 규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직업윤리를 가르치고 체질화시키는 장기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과욕은 화를 부르고 수분의 미덕은 행복을 불러온다. ‘미투열풍’, ‘유투열풍’이 불고 나면 땅이 더욱 굳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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